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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Stars&People

보따리를 든 철학자

애초에 그의 인생 사전에 ‘정착’이라는 단어는 없었던 게 아닐까. ‘보따리’ 작가 김수자. 세계를 무대로 가장 한국적인 보따리를 싸고 풀기를 반복한 지 몇십 년이다. 오랜만에 열리는 그의 개인전엔 마음을 뛰게 하는 그만의 재주가 꽁꽁 싸매진 채다. 물론 기꺼이 풀어헤쳤다.

2016.09.12

 

1 새로운 단계로 진화한 또 다른 보따리를 들고 온 김수자.
2 보따리의 개념을 빛의 언어로 확장시킨 필름 설치 작품 ‘호흡’. 그 빛의 환영 속에 김수자가 있다.
3 연역적 오브제, 철, 페인트, 거울, 지름 1.5m×높이 2.45m(조각), 10×10m(거울), 2016

 

“미안해요. 어제 새벽 4시까지 작업을 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새벽 4시였고, 인터뷰를 위해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될 성싶어 할 수 없이 작업을 내려놓았단다. 오랜만의 한국행으로 꽉 찬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새벽까지 작업을 하다니. 과연 김수자답다는 생각이다.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늘 그렇듯 검은 옷차림의 그가 구름처럼 걸어왔다.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김수자. 그의 개인전 <현대차 시리즈 2016: 김수자 - 마음의 기하학>이 내년 2월 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이 컷은 콘텍스트가 없는 것 같아요. 여긴 어때요? 빛에 따라 그 색이 달라지죠.” 음의 고저가 거의 없는 느린 목소리로 그가 말을 잇는다. 이왕 찍힐 사진이라면 자신의 작업과 콘텍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우리를 이끈 곳은 야외 공간에 설치된 ‘연역적 오브제’와 필름 설치 작품 ‘호흡’이 만나는 장소다. “‘연역적 오브제’는 우주의 알로 알려진 브라만다의 검은 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인데, 검은 돌이 거울이 될 때까지 닦는 수련의 행위에서 착안했죠.” 브라만다의 검은 돌과 그의 작품의 한 축이라 할 오방색의 보따리가 합쳐진 작업. “오방색의 돌을 감싼 정방형의 유리 거울은 종친부 단을 상징하기도 해요. 조선의 족보이자 역사가 담긴 종친부.” 그 역사의 아카이브를 싸듯 자신의 보따리를 끌어들였다. 결국 오방색의 돌을 감싼 사각의 거울은 김수자가 숨겨놓은 찬란한 빛의 보따리인 셈이다. 유리 거울 위에 올라선 순간 한 인간의 내면이, 역사가 비춰질 듯 영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저길 보세요. 반사된 그 형태가 마치 호랑나비 같아요.” 서울관의 유리벽에 특수 필름을 붙인 ‘호흡’은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으로, 빛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빛을 입는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빛이 스미는 순간, 꿈꾸듯 몽환적인 빛의 환영이 펼쳐진다. 마침 어린아이가 유리벽 너머의 잔디밭 위를 아장아장 뛰놀고 있었고, 아이의 등 뒤론 빛의 호랑나비가 날고 있었다. 빛이 그려놓은 몽환적이고 찬란한 한 폭의 회화. 3차원의 공간과 2차원의 평면이 하나로 결합되는 묘한 접점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1 연역적 오브제, 2016, 석고로 본뜬 작가의 양팔과 손, 나무 테이블, 152×74.5×76cm
2 Thread Routes - Chapter I, 2010, 2015, Courtesy of Guggenheim Bilbao and Kimsooja Studio,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3 몸의 기하학, 2006~2015, 작가의 요가 매트, 185×63.5cm

 

 

또 다른 보따리의 여정
김수자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이름, 바로 보따리다. 사전적 의미론 보자기에 물건을 싸서 꾸린 뭉치.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됐지만 한국인에게 보따리는 삶의 한 자락 같은 것이었다. 삶을 위해 장터로 나서는 시골 할머니의 손에 들린, 무섭도록 화려하고 질펀한 색이었고, 쫓기듯 어딘가로 떠나는 아낙의 모습도 겹쳐졌다. 나름 도시로 공부를 떠나는 막내딸에게 반찬을 싸 들려준 내 엄마의 반찬 보따리 역시 하필 총천연색 보따리였다. 한국의 색, 기억의 고리를 천(보따리)을 통해 끄집어낸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 그의 보따리 앞에서 한참을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고 보니 ‘보따리’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도 있었다.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이나 생각 또는 재담 따위를 이르는 말. 사전엔 그 예로 꾀 보따리, 추억 보따리를 들었다.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보따리.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가족, 사랑, 정착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떠남, 결단의 의미일지 모른다. 보따리, 바늘, 실 등 한국 여인인 김수자에게도 그것은 너무도 익숙한 오브제였다. 보따리를 싸고 푸는 일에 누구보다 익숙한 김수자에게 그것은 몸이자 삶의 터전 같은 것이었다.
“1999년이 뉴욕에 처음 간 해인데, 어느 날 독일의 컬렉터인 호프만 부부가 집으로 찾아왔어요. MoMA PS1 그룹전에서 제 보따리 트럭을 보셨다면서.” 보따리를 싸서 트럭에 싣고 전국을 누비며 이를 영상으로 기록한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미술의 ‘노마디즘’을 화두로 건넨 김수자. “부부가 똑같이 적으면서 제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제 작품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게 느껴졌고,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어요. 당시 제 커리어에 있어서 힘든 시기였는데, 처음으로 뉴욕에서 제 작품을 컬렉션해주셨죠. 그래서 잊을 수가 없어요.” 베를린을 대표하는 컬렉터인 롤프와 에리카 호프만. 그날의 감동 때문이었을까. 호프만 부부의 남편 롤프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김수자는 부인 에리카를 찾아갔다. 그리고 롤프의 옷가지, 소지품을 달라고 했다. “즐겨 입던 옷, 모자, 신발, 안경 등을 모두 모아 보따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저 혼자가 아닌 아내 에리카에게 함께 보따리를 싸자고 제안했죠. 그게 에리카에게도 큰 의미가 됐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을 위한 보따리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김수자는 롤프의 또 다른 여행길에 필요한 것들을 모아 보따리에 넣고 매듭을 지었다. 훗날 에리카는 그날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것은 ‘남편의 삶에 대한 일종의 축하 파티’였노라고. 아직도 에리카와 가끔 메일을 주고받는다는 그. 바늘로 천(보따리)을 잇듯 김수자는 기꺼이 바늘이 되어 사람들 사이를 잇고 또 잇는다.

 

 

 

마음의 기하학, 2016, 관객 참여 퍼포먼스와 16채널 사운드 퍼포먼스 ‘구의 궤적’

 

 

 

1 찬란한 빛의 환영 속으로 김수자가 걸어 들어왔다.

2 각 지역 고유의 문화를 직물을 통해 풀어낸 <실의 궤적 V>. 김수자의 몸이 바늘처럼 그곳을 관통하고 있다.

3,4 To Breathe, 2015, Photo by Jaeho Chong, Courtesy of Centre Pompidou-Metz, Kukje Gallery, and Kimsooja Studio

 

 

심장을 타고 흐르는 구(球)의 노래  
“지금 사는 뉴욕 아파트는 2001년부터 살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심플해요. 15년은 족히 된 벨트도 있고 소파도 나달나달 구멍이 뻥,뻥,뻥 뚫려 있죠. 그런데 그 상태 그대로 써요.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몸의 흔적이고.” 심지에 벽에도 걸린 게 없는 심플함 그 자체.  딱 하나 있다면 옛날 지도라고 했다. 그런 그이니 꾸미는 것엔 도통 관심이 없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오프닝 때 입으라고 옷을 사주기도 해요. 너무 안 사니까(웃음). 옛날엔 컬러 옷을 입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안 입게 됐어요. 제 작품의 특성상, 주변에 화려한 색이 많으니.” 오방색의 보따리 작업을 하는 그에게 색은 그것이면 족했다. 검은 옷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건 그에 기인한다. “이건 제가 쓰던 요가 매트예요. 요가 매트는 우리 몸의 프레임을 담고 있죠. 몸의 기억, 역사의 흔적. 마치 이불보처럼 말이에요.” 전시장엔 단출한 그의 삶이 녹아든 특별한 작품 하나가 있다. 그 아래 쓰인 단서는 이렇다. ‘몸의 기하학, 작가의 요가 매트, 2006~2015’. 족히 10년. 쉼 없이 몸을 굽히고, 마음을 낮추었을 그의 요가 매트가 마치 회화 작품처럼 전시장 벽면을 채웠다. 요가 매트에 담긴 ‘몸의 기억’. 그것을 재료로 완성한 김수자의 요가 매트엔 쉼 없는 삶의 기억이 소리 없이 흐른다.     
“사람들의 수많은 마음이 이 테이블 위에 채워져 있어요. 재미있는 건 형태, 크기가 다 제각각이라는 거죠. 특히 중년의 아저씨가 가장 크게 찰흙을 가져간대요(웃음). 아이와 함께 온 엄마는 구를 나란히 함께 배치하고요.” 손으로 찰흙을 굴려 동그란 구(球)를 만드는 관객 참여형 워크숍 작품인 ‘마음의 기하학’이다. “10년 전부터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단순히 흙이 아닌 도자기가 가진 허(虛)의 공간에 말이죠. 한 갤러리에서 ‘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디자인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요. 모든 용기에는 허가 있어요. 물론 찰흙에는 없지만, 함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죠. 환경의 문제로 접근해봐도 찰흙은 하나의 보따리 역할을 하죠. 말라가는 지구에 물을 담을 수 있는.” 전시장엔 지름 19m의 대형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고 도자기의 재료인 찰흙도 함께다. 그는 관객들에게 몇 가지의 찰흙 중 원하는 것을 골라 구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고, 그 결과는 각양각색이었다. “손으로 그것을 계속 굴리고 다듬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의 형태가 됩니다. 구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보면 두 개의 극점이 중간으로 모이면서 만들어지죠.” 두 개의 극. 그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남과 여, 안과 밖일 수도 있고 동서남북의 좌표일 수도, 우리의 삶일 수도 있다. 처음엔 작은 찰흙 덩어리지만 구를 빚으며 손과 맞닿는 순간 몸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 물질성이 내 손안에 닿는 순간, 우리를 소리 없이 과거로 이끌고 간다. 양극을 계속 만지고 굴리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성을 갖게 되고 내밀한 내면의 상태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없어지고 찰흙도 없어지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물질이 비물질화되는 순간. 찰흙놀이에서 시작된 구는, 어느 순간 마음 어딘가를 맴돌고 있었다.
“15분 동안 사운드가 나름의 리듬을 갖고 계속 흐르죠.” 구를 만드는 곁으로 마치 사운드트랙처럼 들리는 소리. 작가의 클레이볼 굴리는 퍼포먼스와 가글사운드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작품 ‘구의 궤적’이다. 그는 마치 소리의 실타래를 풀듯 모서리진 구를 굴린다. “구의 모서리가 있어야 소리가 나요. 그게 없으면 소리가 나지 않죠. 구를 빚는 것이 사람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면 볼 하나로 우리의 심상을 드러낼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 소리를 따라가는 구의 궤적. 과연 그 끝엔 무엇이 존재할까. “아웃사이더로서 한국을 보게 되는데 극단적인 이념, 갈등으로 항상 부딪치고 소리가 많잖아요. 이런 모난 것들이 힘을 발휘해서 하나로 뭉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곤 하죠.” 19m의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쌓인 사람들의 마음. 그러고 보니 이 테이블 또한 하나의 보따리가 아닌가. 한 단계 진화한 그의 또 다른 보따리와 만나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뉴욕 대신 베를린으로 메인 스튜디오를 옮길까 생각 중이에요. 한국 스튜디오도 이사를 해야 하고, 스페인, 벨기에, 멕시코에서의 전시도 준비 중이고요.” 그는 애초에 ‘정착’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늘 변화와 진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평생 보따리를 싸야 하는 자발적 보따리 인생을 자처하며. ‘작가적 고뇌’라는 배경음악을 깔아둔 채로. 어느덧 말수가 적고, 예민하다는 그간의 김수자는 사라진 채 그는 두 팔 벌려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바늘 여인’이 나를 관통해 지나갔고, 철학 한 줌, 마음 한 줌의 그것이 마치 씨앗처럼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 

 

 

 

A Needle Woman : Galaxy was a Memory, Earth is a Souvenir, 2014, Photo by Jaeho Chong, Courtesy of Kukje Gallery and Kimsooja Studio

 

 

 

To Breathe : Bottari, 2013, The 55th Biennale di Venezia, Courtesy of Kukje Gallery & Kimsooja Studio, Photo by Jaeho Chong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김두원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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