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간을 찌푸리고 외관을 천천히 살폈다. ‘설마 이게 양산형 모델인가?’ 캐딜락 CTS-V는 당장에라도 트랙에서 발진하려는 레이스카처럼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 배기량은 무려 6.2리터. 그런데도 더 많은 연료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슈퍼차저까지 더했다. 농담이 아니다. 당신의 점심과 저녁 식사 사이 이 녀석은 최대 네 번의 주유소 만찬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먹성을 자랑한다. 다운사이징 다이어트 열풍이 부는 요즘,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 같은 녀석이 나타났다.

CTS-V는 CTS에 콜벳 Z06에서 빌려온 V8 엔진을 얹은 고성능 4도어 머슬카다. 닷지 차저 SRT 헬캣에게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648마력의 심장은 전 세계 4도어 세단 중 서열 2위, 국내에서는 가장 강력하다. 스포츠카나 다름없는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나 아우디 RS7보다 높은 파워라면 실감이 나는가? 구형 CTS-V는 처음 데뷔할 당시 양산 세단 중에서 가장 빠른 뉘르부르크링 랩타임을 기록하며 균형 잡힌 퍼포먼스를 어필하기도 했다. 신형 CTS-V는 외관부터 전사의 이미지를 진하게 풍긴다. 19인치 단조 휠과 295밀리미터 크기의 파일럿 슈퍼 스포츠 타이어는 차체 폭과 정확히 맞춘 듯한 오프셋으로 휠하우스를 빼곡히 채운다. 앞바퀴는 더 전투적이다. 코너를 돌 때 최적의 접지면을 만들기 위해 앞바퀴 캠버를 -2도 이상 눕혔다. 효율적인 엔진룸냉각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프런트 그릴의 캐딜락 로고는 크기를 줄이기까지 했다.

차체 바닥면은 커버로 꼼꼼히 감싸 공력 성능을 향상했다. 바닥면에 수평으로 놓인 인터쿨러의 배치가 독특하다. 인터쿨러는 변속기와 리어 디퍼렌셜의 과열을 막는다. V 형태의 리어 스포일러와 두 쌍의 머플러를 품은 디퓨저까지 모든 디자인 요소에 공기역학적 요소를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한마디로, 보이는 모든 부분에 서슬을 퍼렇게 세웠다. 시동을 걸면 장엄한 V8 엔진의 심포니가 터져나온다. 터프한 V8 엔진 사운드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실현해주는 멋진 배기음이다. 주행 모드를 기본 모드인 투어에서 스포츠나 트랙으로전환하면 머플러의 음색도 한층 굵어진다.

레카로 스웨이드 버킷 시트에 앉아 전동식 사이드 볼스터를 몸에 맞추는 과정이 흡사 레이스카의 6점식 하네스를 몸에 맞춰 조이는 기분이다. 앞유리 너머 후드 안쪽에서 반짝이는 카본 무늬를 발견하자 입가에 미소가 돈다. 무게가 1920킬로그램에 달하는 차체에서 카본 보닛은 경량화의 의미보다 차의 지향점 표출 혹은 오너의 만족을 위한 양념에 가깝다. 12.3인치 풀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바뀐 계기반은 오일 온도부터 슈퍼차저 과급 압력까지 초고속 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원하는 위치에 띄울 수 있게 고안됐다. 터치패널 방식의 센터페시아는 조작의 정확성과 반응이 아쉽지만 스포티한 실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스웨이드로 감싼 스티어링휠은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좋다. 투어 모드에서는 나긋나긋한 무게감을 보여주지만 트랙 모드에서는 팔에 잔뜩 힘을 줘야 할 만큼 아주 묵직하게 변한다. CTS-V는 CTS보다 차체 강성을 20퍼센트 보강하고 하체의 래터럴 링크 접점은 부싱 대신 볼조인트로 유격을 없앴다.

그 결과 트랙이 아닌 공도에서는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고속 영역에서 차선을 변경할 때는 기울어진 앞바퀴 접지면과 뻣뻣한 뒷바퀴 지오메트리가 노면의 굴국을 따라 좌우로 순간 이동할 때가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짧은 스트로크의 서스펜션은 가장 부드러운 투어 모드에서도 충격을 모두 흡수하지 못한다. 87.2kg·m의 광기 어린 토크를 뒷바퀴에 쏟아부을 때는 공포와 스릴에 휩싸인다. 부드럽고 중후한 줄로만 알았던 캐딜락 배지가 무자비하게 돌변한다.

변속하는 것보다 오토매틱 모드에 두는 편이나았다. 트랙 모드에서도 패들시프트에 대한 반응은 그렇게 빨라지지 않고 능청을 부린다. 오히려 오토매틱 모드에서 운전 패턴에 대한 학습 능력이 뛰어나 부드러운 가속에서는 재빨리 시프트업을 하고 스포츠 주행을 할 때는 적극적인 시프트다운을 수행한다. 여유로운 토크를 바탕으로 어느 회전 영역에서도 속도를 올릴 자신감이 넘쳐난다.

별도의 클러치로 제어되는 스로틀을 조금만 열어 엔진회전수를 끌어올리면 슈퍼차저는 레드존까지 가는 내내 작동하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짓이기면 부스트는 순간 0.5바까지 올랐다가 0.4바 부근에서 유지된다. 대배기량 엔 진에서는 적절한 크기의 터빈을 매칭하기가 어렵다. 반면 슈퍼차저는 구동 손실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박력 넘치는 배기음을 해치지도 않으니 6.2리터 V8과 궁합이 좋다. 매끈한 슈퍼차저의 음색과 함께 6단 기어로 시속 280킬로미터를 돌파할 때까지 가속력은 전혀 지치질 않는다. 최고속은 7단 기어의 회전수 끝자락에서 나오도록 조율됐다. 미국제원 기준으로 시속 97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7초다. 그런데 실제로 계측해보니 4초 중반으로 오차가 컸다. 3단 변속을 마치자마자 시속 100킬로미터를 돌파했는데 시승 당일 숨이 막힐 만큼더운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브레이크는 냉각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에서 길이 5미터가 넘는 대형 차체를 멈추는데도 페이드나 디스크 떨림 현상이 없다. 페달 스트로크는 초반에 세밀한 컨트롤을 허용하다가 깊어질수록 둔감해지는 타입으로 다루기 편안한 세팅이다. 투어 모드에서는 전자제어식 LSD의 개 입이 적극적이지 않아 파워 슬라이드를 지속하

기 어렵다. 화끈한 토크로 드리프트를 시도하고 싶다면 반드시 주행모드를 스포츠나 트랙 설정에 맞추어야 양쪽 바퀴가 같이 미끄러진다. 넉넉한 출력과 여유로운 휠베이스로 드리프트 주행은 재미있지만 랩타임을 목표로 타기에는 코너마다 둔중한 무게가 부담스럽다. V8 슈퍼차저 엔진은 발열이 엄청나다. 말 그대로 달리는 용광로다. 조금만 속도를 내도 차체 밑바닥에서 모락모락 열기가 올라오고 배기관 위에 자리한 트렁크는 사우나 수준으로 변한다. 먹거리 장을 보고 빠르게 달릴 생각이라면 꼭 트렁크 대신 뒷자리에 두시길. 달걀이 익을 수도 있다.

연비 향상을 위해 가변 실린더 기술도 적용했다. 저속 주행에서는 V8 실린더 중 네 개의 실린더만 사용한다. 이는 계기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연비 관련 표시창을 띄워놓았다면 ‘V4’라는 표시를 발견 할 것이다. 하지만 약 500킬로미터에 걸친 시승의 평균 연비는 리터당 3킬로미터 초반이다. 슈퍼차저의 음색을 즐겨가며 속도를 높인다면 리터당 2킬로미터 이하의 연비도 쉽게 보인다. 단 시간에 정유사 VIP 고객이 될 각오는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차의 사랑스러운 면을 꼽는다면 그 어떤 V8보다 깊은 고동 소리가 모든 회전 영역에서 울려 퍼지고 앙칼진 슈퍼차저의 섹시한 음색까지 곁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국내에서 살 수 있는 가장 화끈한 출력의 4도어 세단이라는 것도 있다. 캐딜락이 이런 머슬카를 생산할 수 있는 날도, 유가가 지금처럼 안정적인 시절도 얼마나 갈지 모른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