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가 한창일 때 인근 발렌티노 공원에서는 권위 있는 카 디자인 시상식이 열렸다. 이름하여 ‘카 디자인 어워드(CDA)’. 이름부터 정직한 돌직구를 날린다. 그만큼 사족 없이 우수한 자동차 디자인 선발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CDA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인 전문 매거진 <오토 앤 디자인(Auto&Design)>이 지난 1984년 전 세계 자동차 디자인의 발전을 위해 만든 상이다. 처음엔 양산차와 콘셉트카 두 부문으로 나눠서 시상했지만 지난 2000년부터 브랜드 부문이 추가됐다. 차 자체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전반적인 디자인 언어를 심사한다. 올해도 부문별로 쟁쟁한 후보들이 나와 지난여름의 무더위만큼 뜨거운 경쟁을 벌였다. 국내 브랜드로는 양산차 부문에 기아 스포티지, 브랜드 부문에 기아차가 최종 후보로 올랐다. 심사는 세계 유수의 자동차 매거진에 소속된 에디터들이 맡았다. 이번 심사에는 전 세계에서 총 11개의 자동차 매거진이참여했고 한국 최초로 <모터 트렌드> 한국판 편집부도 함께했다.

콘셉트카 디자인 부문에서는 마쓰다 RX 비전이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마쓰다 디자인팀은 숙련되고 잘 조직된 팀워크와 함께 RX 비전을 통해 별다른 기교나 장식 없이 단순한 형식미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마쓰다가 2010년부터 시작한 새로운 디자인 언어인 ‘코도(魂動, 혼의 움직임)’가 다시 한 번 주목받는 기회였다. ‘코도’는 동물과 사람의 움직임에서 나온 역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 콘셉트다. 이어서 르노 알피느 비전 콘셉트, 포르쉐 미션 E 콘셉트가 차례대로 2등과 3등을 수상했다.

콘셉트카 부문은 마쓰다, 브랜드는 볼보, 양산차는 애스턴마틴이 1등을 했다.

애스턴마틴 DB11은 부가티 시론과 페라리 488 GTB 등을 제치고 총 17점을 받아 양산차 디자인 부문에서 1등을 했다. 우아하면서 힘 있는 이미지를 동시에 드러내는 거침없고 강한 라인들에서 인상적인 평가를 받았다. 애스턴마틴의 대표적 디자인 언어인 긴 보닛과 얇은 그린하우스, 근육질 뒤 펜더 등을 잘 계승시킨 점도 주효했다. 볼보 S90과 V90은 16점을 받아 아주 근소한 차이로 2등을 차지했지만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볼보는 브랜드 부문에서 총 26점을 받으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볼보는 포드와 결별 후 좀 더 명확하고 깨끗한 그리고 자연 친화적인 볼보만의 디자인 언어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볼보 디자인의 미래를 두고 오랫동안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그들은 ‘토르의 망치’라고 불리는 헤드램프가 볼보의 전 모델에 확대되면서 하나 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곧 확립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동시에 모델별 특성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관망했다. S90과 V90, XC90이 이미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파트너사로 나선 브렘보가 트로피를 직접 제작했다.

반가운 인물도 있었다. 지난해 ‘미트 더 마스터스(Meet the masters)’ 취재 때 밀라노에서 만났던 로렌초 라마초티가 시상식 연사로 나섰다. 그는 얼마 전까지 FCA 그룹의 부사장을 지내며 그룹 전체 디자인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가 축하 메시지를 전하며 자기도 과거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이너로 있을 때 CDA에서 두 번이나 1등을 했다고 자랑했다. 1974년 현대차는 토리노 모터쇼에서 포니의 콘셉트카 ‘포니 쿠페’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고 1976년 양산차를 발표했다. 토리노 모터쇼는 카로체리아의 디자인이 중심인 모터쇼로 파리 모터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됐다. 하지만 카로체리아들이 몰락하면서 현재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CDA가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꺼져가고 있는, 어쩌면 이미 꺼진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헤리티지를 상징적으로나마 살리려는 노력이 보인다. 멀리서라도 그들의 지속가능성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