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ORACE

지난해 말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전기차 경주대회 포뮬러 E와 영국의 투자회사 키네틱이 자율주행 전기차 경주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회 이름까지 미리 정했다. 로보레이스다. 이들의 계획대로라면 2016~2017 포뮬러 E 시즌에 열리게 될 로보레이스는 각 그랑프리가 시작되기 전 포뮬러 E 서킷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된다. 10개 팀이 각각 두 대의 자율주행차로 참가하는데 모든 팀이 똑같이 생긴 차로 달려야 한다는 게 규정이다. 단, 자율주행 관련 기술과 소프트웨어는 어떤 것을 쓰든 상관없다. “로보레이스의 가장 큰 목적은 자율주행 기술이 얼마나 우리 곁에 가깝게 다가와 있는지를 알리는 것입니다. 자율주행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것을 말이죠.” 키네틱 대표 데니스 스베르들로프의 말이다. “이런 대회를 열게 돼 무척 기쁩니다. 로보레이스는 가장 혁신적인 과학기술을 겨루는 장이 될 것입니다.” 알레한드로 아각 포뮬러 E CEO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지난 4월, 로보레이스에서 활약할 경주차가 공개됐다. SF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미래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이 차는 아니나 다를까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과 <오블리비언>등에서 미래 자동차를 그린 다니엘 사이먼이 디자인했다. 앞뒤로 큼직한 공기흡입구가 뻥 뚫려 있는 이 차는 자율주행차답게 운전석이 아예 없다. 경주차 디자인이 공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엔비디아는 자사의 자율주행 프로그램인 드라이브 PX 2를 넣은 경주차라며 사진을 공개했다. 겉모습과 컬러가 포뮬러 E에서 공개한 경주차와 똑같은데 옆구리에 엔비디아 로고를 새겼다(하지만 달리는 모습을 공개하진 않았다. 넣은 건 맞겠지?). 2016~2017 포뮬러 E 대회는 오는 11월이나 12월에 열릴 예정이다. 과연 이때 자율주행차가 서킷을 질주하는 경주를 볼 수 있을까? 그런데 똑같이 생긴 차 10여 대가 우르르 달리는 걸 보는 게 정말 재미있을까?

AUTONOMO US CAR TRACK DAY

지난 5월 28~29일 미국 캘리포니아의 선더힐 레이스웨이에서 최초의 자율주행차 트랙 데이가 열렸다. 자율주행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이 행사에는 각종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24개의 관련 업체도 참가했다. 미국의 천재 해커로 이름을 날린 조지 호츠가 세운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기업 콤마닷 A1은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를 심은 어큐라 ILX를 데려왔고, 자율주행 기술 전문기업 오토노모스터프는 자율주행 능력을 발휘하는 링컨 MKZ를 데려왔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폴리싱크는 기아 쏘울로 서킷을 달렸고,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의 테슬라 모델 S는 사이드미러에 라이다 센서를 달고 서킷을 누볐다. 자율주행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아우디도 RS7 파일러티드 드라이빙 콘셉트를 자랑했다. 2014년 독일의 호켄하임링 레이스트랙을 최고시속 240킬로미터까지 내며 2분여 만에 완주한 바로 그 RS7이다. 행사가 열린 이틀 동안 선더힐 레이스웨이 주변은 섭씨 38도가 넘는 숨 막히는 더위가 계속됐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유쾌하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행사를 즐겼다. 참가자들이 가져온 차를 구경하고, 그들과 자율주행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더없이 즐거워 보였다. 진정한 덕후(?)의 모습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자율주행 관련 업체에서 만든 완벽한 자율주행차만 참가한 게 아니었다. 테이프로 센서를 둘둘 감고 참가한 차부터 1930년대 클래식카에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차까지 다양한 차가 눈길을 끌었다. 참가자들은 헬멧을 쓰고 자율주행차로 서킷을 달리는 색다른 체험도 했다. 차가 서킷을 한 바퀴 돌 때까지 운전대를 쥐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 행사는 자동차 경주가 아니라 트랙 데이다. 자율주행차들이 서킷을 달리긴 했지만 속도를 경쟁하진 않았다. 대신 서로의 기술과 기량을 뽐내고, 실제 경주를 위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첫 번째 자율주행차 트랙 데이는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무리됐고 참가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미래를 경험했다.

DARPA GRAND CHALLENGE

다르파(DARPA)는 미국 국방부의 최고 연구기관인 국방고등기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을 뜻한다.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는 이곳의 후원으로 열린 최초의 자율주행차 경주대회다. 미국 의회는 2015년까지 지상군 병력의 3분의 1을 자동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율주행차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2004년에 첫 대회를 열었다. 100만달러라는 상금도 준비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에겐 자율주행차라는 개념조차 낯설었다. 자율주행차가 실제로 도로를 달리는 것도 모자라 경주를 벌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04년 3월 8일 캘리포니아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25개 팀의 자율주행차가 스타트라인에 섰다. 이들의 목표는 흙먼지 가득한 모아브 사막의 I-15번 고속도로를 포함해 24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팀도 결승선을 밟지 못했다. 결승선은커녕 10킬로미터도 채 달리지 못하고 뒤집어지거나 고꾸라지는 차가 속출했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레드 팀이 그나마 가장 먼 거리인 11.78킬로미터를 달렸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대회에서는 무려 다섯 대의 차가 결승선을 밟았다. 우승은 스탠퍼드 대학의 경주 팀이 차지했다. 이후 2007년에 어반 챌린지로 이름이 바뀐 세 번째 경주가 열렸다. 96킬로미터의 거리를 6시간 안에 완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린 이 대회에서 카네기 멜론 대학과 GM의 합작 팀인 타탄 레이싱 팀이 1위를 차지하며 상금 200만 달러를 챙겼다.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는 세 번의 대회를 끝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구글과 폭스바겐, 토요타 등으로 들어가 자율주행차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았다. 10여 년 만에 자율주행차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오게 된 것도 이들 덕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