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사이 국민권익위원회 민원 접수창구인 ‘국민신문고’를 통한 교통법규위반 신고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교통 관련 신고는 65만5291건으로 하루 평균 1800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블랙박스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의 번호를 쉽게 판별할 수 있고 동영상이어서 위반 사항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스마트폰을 통해 자동차 불법개조와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과 같은 신고도 늘고 있다.

신고 유형의 많은 부분은 자신이 피해나 손해를 입었을 경우다. 중앙선 침범으로 사고 위험에 닥쳤다거나 난폭운전으로 위협을 느꼈을 경우 동영상을 캡처해 신고한다. 자신이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닌데도 교통법규 위반을 보는 족족 신고하는 신고족도 있다. 3년간 1만5000건을 신고한 이도 있다. 포상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투철한 신고 정신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싶다.

그래서 직접 해봤다.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뽑아 컴퓨터에 꽂은 후 불법 유턴하는 택시 영상을 찾았다. 위반 당시 영상만을 따로 뽑아 저장했다. 국민신문고 홈페이지를 열고 회원가입을 한 뒤 제목과 내용을 적은 후 파일을 첨부했다. 어떠한 위반사항이며 자동차 번호와 위치, 시간 등을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다음은 신고해야 하는 기관을 선택한다. 교통법규와 관련된 내용이니 경찰청을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중앙 행정기관, 지자체, 교육청, 공공기관에 이렇게나 많은 정부기관이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청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런데 이거 하나 신고하자고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게 아까웠다. 더군다나 신고자에게는 그 어떤 대가나 포상도 없다.

‘이 신고 버튼을 누르면 뿌듯할까?’ 한참을 생각하다 취소를 클릭했다. 내가 만약 신고 버튼을 눌렀다면 택시기사는 벌금 6만원에 벌점 30점을 받았을지 모른다. 벌점이 40점이 되면 면허정지 40일이니 어쩌면 그 택시기사는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택시 뒤쪽에 블랙박스가 있다면 어땠을까?

택시기사는 위반 시간과 장소를 알고 있으니 블랙박스를 확인하면 내차 번호와 차종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약 앙갚음을 생각했다면?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다. 신고당한 이가 중고차 매매단지 등에서 자동차 번호를 조회해 차주 이름과 주소를 확인하고 찾아가 해코지를 했다고 한다. 신고가 보복을 부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수많은 감시 카메라 앞에서 운전하고 있다. 서울시를 굴러다니는 택시와 버스는 모두 블랙박스를 몇 개씩 달고 있다. 일반 승용차의 블랙박스 보급률은 계속 높아지고 성능도 좋아져 밤에도 자동차 번호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공익과 선진 교통문화를 앞당기고자 하는 사명감 투철한 신고자들이 매일 밤 블랙박스를 확인하며 교통법규 위반 자동차를 찾고 있다. 중앙선을 살짝 밟거나 정지차선을 살짝 넘겨도 범칙금 청구서가 날아올지 모르는 세상이다. 블랙박스 단속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통법규 준수는 자신과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니 법규 준수와 안전운전을 생활화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고 신고하는 사회에 살게 됐을까? 최근 경찰청은 신고의 간소화를 위해 동영상 편집을 쉽게 하고 스마트폰 앱으로도 신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급했다. 경찰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 정신을 유도해 범칙금과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손 안 대고 코 푸는 신묘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