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어떻게 해?” 해외여행에 나선 듯 보이는 젊은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글쎄. 괜히 샀나봐.” 왜 그러나 싶어서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텔레비전이었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7월 11일 18시 서울 김포공항

뉴스를 보니 걱정의 근원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국내 판매 중인 폭스바겐 코리아 차종 가운데 총 27개 차종에 대해서 인증 취소 처분이….” 그 부부는 폭스바겐을 타나보다. 그것도 디젤 모델을. 그런데 하필 이런 날 그런 뉴스가 터졌다. 난 일본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디젤엔진 관련 취재를 위해서였다. 푸조와 시트로엥, DS를 거느린 PSA 그룹이 12일 일본 시장에 최초로 디젤엔진 모델을 출시하기로 돼 있었다. 가솔린 엔진이 득세하는 시장인데 폭스바겐 사태까지 터진 상황에서 PSA가 디젤엔진 사용의 당위성을 어떻게 설득할지 궁금했다. 바로 거기서 현재 디젤엔진의 지위와 상황을 판단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7월 11일 22시 도쿄 하네다 공항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호텔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디젤엔진 버스다. 얼마 전 중국에 갔을 때 관광버스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어서 조금 놀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버스를 살짝 기대했다. 인터넷을 뒤지니 공항버스는 디젤차만 있는 것 같았다. 의외다. 가장 앞선 하이브리드 기술을 보유한 나라라서 하이브리드 버스가 날 싣고 갈 줄 알았다.

7월 12일 11시 도쿄 시부야

호텔은 시부야 한복판에 자리했다. 시내 중심가여서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차도 많았다.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우습게도 택시였다. 많았다기보다 눈에 잘 띄었다. 택시는 대부분 토요타 크라운이었다. 네모난 모습이 1980년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행사장에 가기 위해 크라운 택시를 탔다. 짐을 실으려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했다. ‘어라!’ 트렁크 안에는 LPG탱크가 있었다. 국내 택시와 동일한 위치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버스는 디젤, 택시는 LPG. 상용차의 연료 구성에 있어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 일본에 처음 출시된 DS4 크로스백 1.6 블루 HDi 디젤엔진을 보는 일본 기자들. 2 오가와 히데유키 교수가 디젤 예찬론을 펴고 있다. 3 일본에 처음 소개된 시트로엥 모델. C4 필(FEEL) 1.6 블루 HDi.

7월 12일 14시 그랜드 하얏트 호텔

행사가 열리는 곳은 그랜드 하얏트 호텔 도쿄롯폰기의 그랜드 볼룸이었다. PSA의 일본 시장 디젤 도입은 지난해로 계획돼 있었다. 디젤엔진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던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디젤은 2000년대 후반부터 효율 좋고, CO₂ 배출량 적은 친환경 엔진으로 부각됐다. 일본 정부는 2009년 부터 디젤차 구입 시 보조금을 지급했다. 산학 협력으로 디젤엔진을 개발하도록 정부가 나서 독려하기도 했다.

현재 일본 내 디젤 승용차 시장은 아직 전체 판매량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해까지 성장률을 살펴보니 최근 3년간 9배나 확대됐다. BMW는 일본 판매량의 절반 정도를 디젤차로 채웠다. 볼보도 지난해 8월 일본에 디젤 라인업 5종을 공개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작년 10월 폭스바겐 사태가 터졌다. 일본 내 여론도 악화됐다. 그러면서 PSA의 일본 내 디젤 모델 발표는 무기한 연기됐다. 사실 이번에 디젤차를 출시하는 것도 꼭 적기로 판단해 내놓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선지 PSA 관계자들은 좀 더 긴장하는 듯 보였다. 크리스티앙 샤펠 PSA그룹 파워트레인 및 섀시 엔지니어링 연구개발부장이 무대에 올랐다. PSA는 최초로 DPF(Diesel Particulate Filter, 디젤 미립자 필터)를 개발해 상용화했고, 모든 디젤 모델에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선택환원 촉매)을 적용한 최초의 회사라고 했다. DPF는 개발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디젤엔진 배기가스 저감장치 중 핵심이다. 한국의 경우 2005년부터 DPF 부착이 법적 의무화됐다. 2007년 이전 생산된 유로3 디젤차는 DPF가 부착되지 않은 경우 내년부터 서울에서 운행할 수 없다. 즉 DPF는 디젤차 배출가스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친환경 기술 개발이란 면에서 상당한 성과다. 

SCR의 전 차종 도입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SCR은 질소산화물을 90퍼센트 이상 저감시킨다. 소위 애드블루라 불리는 요소수를 배기가스에 직접 뿌려 질소산화물을 화학반응으로 분해시킨다. SCR은 요소수 탱크의 자리도 마련해야 하고 분사장치도 넣어야 한다. 작은 차에는 이들을 욱여넣기가 쉽지 않다. 또한 자동차 가격을 200만~400만원 높인다. 대중브랜드에서 적용하긴 쉽지 않다. LNT와 EGR을 함께 사용하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괜찮은 저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PSA는 굳이 SCR을 택했다. SCR은 LNT와 달리 출력과 연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요소수만 제때 보충해주면 현재 상용화된 질소산화물 저감기술 중 가장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7월 12일 16시 그랜드 하얏트 호텔

일본 훗카이도 대학교 공과대학원의 오가와 히데유키 교수도 나왔다. 그는 <디젤이 지구를 구한다>라는 책을 썼을 만큼 디젤 예찬론자다. 그는 세 가지 이유에서 디젤엔진 예찬론을 폈다. 일단 효율이다. 경유는 고압축할 수 있어 열효율이 좋다. 그래서 연료 자체를 상대적으로 적게 쓴다. CO₂ 배출량도 당연히 적다. 두번째는 경유 소비 진작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가져와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 등유 등으로 분리해 제품화한 뒤 시장에 판다. 그런데 휘발유 공급량에 맞춰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면 경유가 매번 남는다. 그럼 정유사에선 이를 다시 수출한다. 오가와 교수는 수입한 양은 내부적으로 소화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휘발유는 정제한 뒤에도 이런저런 가공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반면 경유는 이와 비교하면 거의 그대로 내다 파는 수준의 가공만을 거친다. 세 번째는 연료의 다양성 추구다. 전기차나 수소 연료 전지차가 미래 자동차로서 기대되지만 당분간 액체연료의 효율성을 따라잡긴 힘들다. 그리고 최소 몇십 년은 내연기관이 주류 동력계로 자리할 텐데 현재 내연기관 중 가장 친환경적인 게 디젤엔진이므로 이를 널리 사용하는건 불가피할 것이라 봤다.

사실 오가와 교수의 말에 모두 동의하긴어렵다. 경유까지 내부에서 소화하는 게 이상적이란 건 원유 수입량 자체를 줄인다는 점에선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경유를 수출하면서 그만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있으므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리고 연료 다양성 추구는 막연하다. 유지와 발전이란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선택받지 못해 도태한다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상용차 시장은 경유가 여전히 주요 연료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디젤엔진은 효율이 좋다는 말은 반박하기 어렵다. 실제 디젤엔진 자동차들을 시승하며 뛰어난 연비를 체감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궁극적인 친환경은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연료를 사용해 오염물이 배출된다면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연료 소비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오염물질이 최대한 적게 배출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이게 디젤엔진 사용의 가장 아이러니하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당위인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티앙 샤펠은 설계 일원화와 부품 대량 구매로 비용을 줄여 SCR을 전 모델에 확대했다고 밝혔다.

배기구 쪽에 있는 탱크에서 요소수를 끌어와 DPF 앞쪽(오렌지색)에 뿌리면 질소산화물이 화학반응해 질소와 물로 분리돼 배출된다

7월 12일 18시 도쿄 하네다 공항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치면 대형 택시 같은 미니밴을 타고 이동했다. 국내 같으면 당연히 디젤엔진을 사용할 텐데 가솔린 하이브리드였다. 일본은 가능한 선에서는 가솔린 엔진을 선호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폭스바겐 사태로 디젤차 제조사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많이 가기도 했다. 다만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다양한 방면에 걸쳐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디젤차 판매량도 여전히 증가하는 추세다.

7월 12일 23시 서울 김포공항

만 하루도 되지 않는 짧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서울에 도착했다. 여전히 많은 차들이 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저 중엔 가솔린차가 가장 많을 것이고 나머지는 디젤차일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를 구매하는 건 단순히 디젤이냐 가솔린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디젤차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친환경보다는 유지비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고 구매했을 것이다. 그럼 가장 중요한건 가격일까? 폭스바겐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폭스바겐이 할인행사를 크게 하니 매진이 됐던 게 기억났다. 왠지 가격이 절대 기준인 것 같기도 하다. 소비자의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설득하기도 어렵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DPF를 개발한 회사로서, 전 차종에 SCR을 적용하는 회사로서의 노력과 자부심을 생각하면 PSA는 김포공항에서 만난 젊은 부부 같은 근심 어린 고객을 만들진 않을 것같다. 사실 지금 이런 상황에 어떤 속임수를 쓴다는 건 문 닫겠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아, 복잡하다. 일단 디젤과 가솔린에서 자유로운 지하철이나 타고 집에 가 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