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의 방식으로도 그 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요한 드 나이슨(Johan de Nysschen) 캐딜락 사장이 말했다. “독일 3사는 오랫동안 럭셔리 시장의 최고봉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강점은 엔지니어링입니다. 캐딜락은 그 엔지니어링으로도 그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강점으로 그들을 이긴다면 그 외 어떤 영역에서도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계획입니다.” 나는 이 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CT6 미디어 시승회에서 드 나이슨 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캐딜락 브랜드에 대해 항상 갖고 있던 의문점을 직접 물어봤다. ‘왜 캐딜락은 독일차보다 더 독일차처럼 되고 싶어 하는가’였다. 아무리 독일 브랜드가 럭셔리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미국차가, 그것도 미국 럭셔리 세단의 최고봉이라는 캐딜락이 이러는 것은 이해가 잘 안 갔다. 아무리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는 하지만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권규혁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이런 말까지 했다. “캐딜락이 이제는 영어를 곧잘 하는 독일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맞다. 독일차들이 유연하고 세련돼가는 요즘 오히려 캐딜락이 더 딱딱하게 보인다. 드 나이슨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 안심이 되기는 한다. 캐딜락이 독일차의 방식을 따라가면 자기도 강자가 되리라는 ‘막연한 대세 추종’이 아닌 걸 알았기 때문이다.

CT6를 운전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1시간을 날아 샌디에이고 부근 벌판에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캐딜락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드 나이슨 사장의 말은 캐딜락이 단지 그렇다고 확신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확신을 하고 달려간다면 브랜드의 미래가 더욱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한 번은 타고야 만다는 미국 사람들의 드림카 같은 캐딜락이다. 가장 미국적이어야 할 캐딜락이 독일차처럼 엔지니어링에 집중한다는 것이 석연치 않다. 게다가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던 또 하나의 미국 럭셔리 브랜드인 링컨이 최고급 세단 콘티넨털을 부활시켰다. 링컨은 미국다운 브랜드로 회귀하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하지만 그만큼 캐딜락의 새로운 기함인 CT6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등장했다. 그리고 캐딜락 브랜드의 황금기를 함께했던 대형 럭셔리 세단 시장으로의 복귀를 선언한 것이다. 이제는 전면전이다. 따라서 캐딜락이 원하는 대로 독일 3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정상에 설지, 아니면 반대로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며 과거의 영광만을 간직 할지는 CT6의 성패에 따라 결론이 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밖으로 나오자 검정 고급 세단이 우리 일행을 데리러 다가오고 있었다. 수많은 차와 사람들이 뒤섞인 가운데서도 쉽게 눈에 띄는 존재감. CT6였다. 공항에서부터 바로 시승이 시작됐다. 자신이 타는 차를 밖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소중하다. 도로 위에서의 내 이미지를 완성하는 것이 바로 내가 탄 차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CT6는 합격점이었다. 이전의 캐딜락 모델처럼 강렬한 직선이 주는 힘은 그대로면서 커다란 차체와 낮아진 캐릭터 라인이 주는 안정감은 기함 급에서나 느낄 수 있는 진중함이었다.

수직 라인의 LED 주간 주행등은 마치 의전용 차량의 국기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잘생겼다. 뒷문을 열자 눈에 띄는 것은 큼지막한 시트와 두 개의 10.1인치 대형 스크린이다. 뒷좌석 파워 시트의 조절 스위치들은 팔걸이의 옆면에 있다. 최고급 리무진의 구성이다.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용 화면은 스위치 하나로 앞좌석 등받이 안으로 사라진다. 고급스럽고 안전을 위해서도 좋다. 온도를 따로 조절할 수있는 에어컨 바람은 좌우 뒷좌석의 머리 위에서 불어온다. 송풍구가 센터 콘솔 뒷면이나 B필러 뒤쪽에 있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은은하다. 파노라마 선루프를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남가주의 청명한 하늘은 캐딜락이 새로운 본부인 뉴욕 대신 로스앤젤레스를 행사지로 선택한 이유를 공감하게 한다. 모든 것 이 럭셔리하다.

고속도로를 달렸다. 승차감이 탄탄하지만 딱딱하지는 않다. 노면의 요철을 만나도 차체가 울리는 등의 불필요한 진동이 없다. 가장 좋았던 점은 정숙성이다. 풍절음도 적고 차체를 타고 올라오는 도로 소음이나 구동계 소음도 거의 없다. 울림소리도 없다. 방음과 방진 성능도 좋지만 차체의 강성이 훌륭하다는 증거다. 탄탄한 뒷좌석도 편안하다. 최고급 리무진이라면 조금 더 부드러워도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지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아쉽다면 길이가 5.2미터나 되는 차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뒷좌석 공간이 좁다.

다음 날 오전, 제품 프레젠테이션 장소로 이동한 우리는 캐딜락이 CT6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알고 보니 CT6는 GM과 캐딜락이 가진 엔지니어링의 역량이 총망라된, ‘절대 흑자를 낼 수 없는’ 오버 엔지니어링 모델이었다. 드 나이슨 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한 트래비스 헤스터(Travis Hester) 글로벌 제품 개발 부사장의 얼굴은 소년처럼 행복해 보였다. 엔지니어가 이렇게 행복한 얼굴을 갖고 있을 때를 나는 매우 잘 안다. 소원을 이룬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해낸 엔지니어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의 뒤에 놓인 CT6 차체의 절개 모델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 맙소사!” 내 입에서 나온 감탄사다. 아우디에서 일할 때 AFS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 차체를 보고도 이런 감탄사를 내본 적이 없었다. CT6의 차체 구조는 과잉 살상용 그자체였다. 앞뒤 바퀴 부근의 서브 프레임이 족히 1.5미터는 돼 보이는 알루미늄 다이캐스팅한 덩어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무식한 부품과 공법을 사용하는 자동차를 본 적이 없다. 엔진룸은 엔진을 감싸는 알루미늄 단조 및 다이캐스팅 프레임들로 케이지를 이루고 있는데 마치 미국 데이토나 경주차를 보는 듯했다. 전율이 온몸에 흘렀다. 이것이 앞으로 CT6보다 더 큰 모델들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만들었다는 ‘오메가 플랫폼’이었다.

편리한 수리를 위해 차체의 38퍼센트는 강철로 만들었다. 하지만 62퍼센트의 알루미늄 구조물로 이뤄진 오메가 플랫폼은 부품 개수를 줄이고 최적의 접합 방법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최고의 강성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 흔적이 보였다. 그 결과 CT6는 대형차임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중·대형차 수준보다도 가벼운 1650킬로그램부터 시작한다.

동급 대표 모델인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보다 450킬로그램이나 가볍단다. 이렇게 견고한 뼈대와 경량 차체를 가진 차라면 기본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헤스터 부사장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강조한 CT6의 4대 핵심인 디자인의 존재감, 커다란 차체, 주행 성능, 그리고 정숙성의 뿌리는 바로 이 엄청난 차체 구조에 있다.

독일의 플래그십 세단에서도 볼 수 있는 나이트 비전 등 고급 안전장비가 대거 투입됐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 우리는 헬리콥터에 탔다. 한 시간을 날아 샌디에이고 부근의 황량한 벌판에 당도 했다. 그곳에는 시승용 CT6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최신형 3.0 TT(트윈 터보) AWD, 우리나라에 도입될 3.6 AWD 그리고 2.0T 뒷바퀴굴림 모델 등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시승 장소는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다. 황량한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관리 상태가 최고 일 리 없지만 CT6는 여전히 든든하고 안정적이며 활기찼다. 동생들인 ATS와 CTS에서 불필요하게 너무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도 CT6에서는 매우 적절한 수준을 찾았다. 승차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와인딩에서는 차체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

CT6는 네바퀴굴림과 네바퀴 조향이 동시에 된다. 구동력 분배와 조향 정도는 컴퓨터로 정밀하게 제어된다.

황량한 계곡의 굽은 길을 달리며 대형 세단을 운전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가볍다는 차체는 민첩하게 방향을 바꿨고, 강성이 우수한 오메가 플랫폼은 바퀴를 노면에 꾹꾹 눌러 붙이며 엄청난 접지력을 만들어냈다. 액티브 리어 스티어링 4WS는 차체의 움직임을 더 자연스럽게 만든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평소 앞뒤 구동력을 4:6으로 나누고, 스포츠모드에서는 2:8로 분배해 후륜 구동의 느낌을 살리면서 접지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스티어링 감각이 약간 모호한 면은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중형급 이하의 독일 스포츠 세단과 비교했을 경우다. 대형 설룬에서 이런 감각을 느낀 것은 BMW 뉴 7 시리즈를 끝까지 몰아붙였을 때 정도였을까? 둘 다 차체에 과하다 싶은 투자를 한 모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에 3.0 TT 엔진이 도입되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겠다. 빠르기는 하지만 아직 숙성의 시간이 필요해 보여서다. 승차감 이나 조종 성능 모두에 3.6 엔진이 현재로서는 유리하다. 2.0 터보 모델도 ATS나 CTS에서보 다는 훨씬 온순하다. CT6의 엔트리 모델에 탑재해 도입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을 듯 보인다. 풍부하고 다루기도 쉽다.

이 외에도 시야가 300퍼센트 넓은 카메라 방식의 룸미러, 스피커를 34개나 사용하는 보스 파나레이(Panaray) 사운드 시스템, 나이트 비전이 적용될 수 있는 풀 디지털 계기반 등 CT6의 혁신과 정성은 일일이 나열하기에 리스트가 너무 길다.

이렇듯 차는 좋다. 사양이나 기본기 모두 아마도 역대급 ‘바겐 세일’일 것이다. 다만 이시장에는 자리를 잡은 경쟁자가 많다. 현대차의 제네시스도 있다. 무엇보다 고려할 것은 이렇게 다이내믹한 대형 설룬을 고객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드 나이슨 사장은 이미 캐딜락이 왜 이렇게 다이내믹한 모델을 만드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고객은 얼마 후 은퇴할 장년층이 아닙니다. 캐딜락은 향후 럭셔리 마켓을 지배하게 될 새로운 소비자 그룹에 집중하려 합니다. X세대, Y세대 등으로 표현되는 젊은 소비자 그룹은 2020년까지 럭셔리 마켓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새로운 세대는 좀 더 모던한 럭셔리를 선호합니다. 우리는 강력하고 역동적인 성능을 바탕으로 한 제품 경쟁력을 통해 브랜드 캐릭터를 강화하고자 합니다.”

한국에도 이 메시지를 보다 강하고 명확하게 전달하기를 바란다. 럭셔리 시장, 특히 기함급 시장에서는 메시지나 스토리가 없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캐딜락은 이미 과거의 성공담을 갖고 있다. 미래의 메시지만 정확하게 전달하자.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