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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Lifestyle

문예가의 삶이 깃든 성북동의 곳곳

문예가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공간을 찾아 성북동을 걸었다.

2016.08.01

 

최순우 옛 집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 최순우가 직접 써 사랑방 문 앞에 내건 현판 글귀다. ‘문을 걸어 잠그니 이곳이 곧 깊은 산중’이라는 뜻의 이 글은 선생이 말년을 보낸 집과 꼭 닮았다. 120평 부지에 건평이 33평. 마당이 네 배 더 넓으니 숲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법하다. 4차선 도로 뒤편에 숨은 한옥의 낡은 문턱을 넘으면,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보는 가운데, 사각의 안뜰이 모습을 드러낸다. 안뜰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지만, 거기에는 우물, 연못, 나무, 화초, 꽃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다. 징검돌을 따라 안채 뒤편으로 이어지는 뜰은 선생에게 그러했듯 방문객에게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A 9, Seongbuk-ro 15-gil, Seongbuk-gu, Seoul

 

 

 

길상사

길상사는 원래 요정이었다.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운영하던 김영한이 부지를 통째로 시주한 것. 그런데 그녀가 이렇듯 중차대한 결정을 한 배경에는 천재 시인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김영한은 백석과 서로 사랑했지만, 백석의 부모는 영한이 기생 출신이라는 이유로 둘의 결혼을 반대했다. 영한이 만주로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거절하자 백석이 찾아와 읊은 시가 바로 그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백석을 홀로 만주로 보낸 영한은 남북이 갈라지자 괴로워하며 ‘천억 재산이 백석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다고 한다.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을 떨치지 못한 영한이 법정 스님을 만나 비로소 안식을 얻고 출가한 것. 영한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오르는, 눈이 푹푹 나리는 날 화장하여 길상사 뒤뜰에 뿌려졌다.

A 68, Seonjam-ro 5-gil, Seongbuk-gu, Seoul

 

 

 

수연산방

‘상허의 산문, 지용의 운문’이랬다. 여기서 지용은 시인 정지용, 상허는 소설가 이태준을 말한다. 소설가이자 수필가로 활동한 이태준 선생의 문체는 당대 최고였지만, 해방 직후 월북하며 그 명성은 빛이 바랬다. 북한에서 광산 노동자로 생을 마감한 선생이 가장 행복해했던 순간이 바로 성북동에 기거했을 때라고 한다. 선생은 1933년 작은 안채에 큰 집에나 있을 법한 누마루를 둔 파격적인 집을 짓고, ‘오래가는 벼루처럼 좋은 글을 쓰겠노라’는 마음가짐으로 이름을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 지었다. 선생은 집을 짓던 당시의 소회를 수필집 <무서록>에 남기며 수연산방을 향한 각별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수연산방은 선생의 외종손녀가 찻집으로 운영하여 누구나 들러 휘둘러볼 수 있다.

A 8, Seongbuk-ro 26-gil, Seongbuk-gu, Seoul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진 집. 1933년 승려의 신분으로 선생이 결혼을 결심하자, 주변 사람들이 뜻을 모아 땅을 빌려 집을 지어 줬다. 당시 지인들은 집을 남향으로 짓기를 권했으나, 선생은 이를 한사코 반대했다. 집이 남쪽을 향하면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심우장’은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 건축사에서 보기 드문 북향 집으로 기록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자그마한 목조 골기와집인 이 한옥에 선생은 ‘심우장(尋牛莊)’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예가 오세창에게 부탁해 현판을 만든 후 서재로 쓸 우측 사랑방에 달았다. 한때 선생이 앉았을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선생이 이곳에 삶의 여장을 풀며 심었다는 향나무의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A 24, Seongbuk-ro 29-gil, Seongbuk-gu, Seoul

 

 

 

방우산장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생소한 조형물을 발견한다. 현무암으로 단을 올리고, 잔디를 깐 후 청동 주물로 만든 의자를 이리저리 올려놓았다. 한쪽에 놓인 표지판에 ‘시인의 방, 방우산장’이라 써 있다. 이는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로 활동한 시인 조지훈 선생을 기념하는 건축 조형물이다. 조지훈 선생은 지척에 자리한 한옥에서 32년간 살았으나, 현재 그 집이 헐리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자 성북구가 길가에 조형물을 세웠다. 장소가 생뚱하다 싶지만, 선생이 생전에 살았던 모든 집, 심지어 피란길에 덮었던 담요 한 장에도 ‘방우산장’이라 이름 붙였던 걸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편, 조형물에 딸린 문을 통해 선생의 옛집이 있었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A 142-1, Seongbuk-dong, Seongbuk-gu, Seoul

 

CREDIT

EDITOR / 이주영(프리랜스 에디터) / PHOTO / 박정우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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