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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Lifestyle

Dance Pop A to Z

에디터의 취향대로 골랐다. 춤을 추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역대 최고의 팝 음악과 그 음악의 주역들.

2016.08.01

 

Aha

1980년대로 돌아가보자. 곱상한 외모로 무장한 팝스타들이 MTV 혁명을 일으키며 음악은 귀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노르웨이 밴드 아하는 운이 좋았다. 일부 록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탄을 받거나 말거나 시대가 원하는 경쾌한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내세운 ‘Take on me’(1985) 한 곡으로 세계적인 히트를 치는 데 성공했으니까. 흑백 만화책 속으로 빨려들어간 여자가 섹시한 남자 주인공(보컬 모튼 하켓)과 사랑에 빠진다는 놀라운 상상력의 첨단 뮤직비디오도 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시절,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북유럽 쿨가이들이 몰고 온 댄스 열풍을 그 누가 마다할 수 있었을까?

 

Blood Orange

블러드 오렌지는 비타민 C 함량이 지구에서 가장 높은 오렌지로 사랑받는 과일이지만, 어디서 그루브 좀 탄다는 녀석들이라면 단번에 그 익센트릭한 흑인 청년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데브 하인즈(Dev Hynes) 말이다.
영국 출신의 그 비범한 인디 뮤지션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블러드 오렌지라는 솔로 프로젝트 이름으로 벌써 두 번째 주옥같은 앨범을 선보였다. 블러드 오렌지의 음악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심오하며 매우 감각적이다. 그의 패션이나 댄스 실력도 마찬가지. 지아 코폴라 감독과 의기투합해 만든 뮤직비디오 ‘You’re not good enough’(2013)를 보자. 종종 마이클 잭슨의 팬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길 좋아하는 그의 범상치 않은 댄스는 정작 댄스인 듯 아닌 듯 시종일관 알쏭달쏭.

 

 

 

Cyndi Lauper

폭탄 맞은 머리, 요란한 차림새의 여자아이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춤을 춘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딸 걱정이 많은 엄마를 향해 소리친다. “엄마, 우린 운이 좋지 않아요. 그리고 소녀들은 그저 재미를 원한다고요.” ‘Girls just wanna have fun’(1983)을 통해 신디 로퍼는 그렇게 파격적인 비주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세상은 신디 로퍼와 마돈나를 비교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노선이 달랐다. 마돈나 근처에 조각 같은 남자들이 넘쳐날 때 신디의 곁에는 늘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었다. 마돈나가 최고의 섹스 심벌이자 팝의 여왕이었다면, 신디 로퍼는 싱어송라이터였고 여성해방 운동가였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여성스럽게’ 춤을 춘 적이 없다. 근데
그 ‘막춤’이 지금 봐도 정말 멋지다. 어린 신디 로퍼는 여전히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우리는 그저 재미를 원해(너희와 똑같이).”

 

David Bowie
프랑스의 거장 감독 레오 카락스는 드니 라방이라는 무용수 출신의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 소년이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춤과 음악’을 통해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나쁜 피>(1986)에서 그 소년은 달린다. 그리고 소녀들의 마음을 훔쳤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움켜쥐고 춤을 추듯 질주하는 어린 드니 라방은 언제 보아도 시리게 아름답다.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감독은 그 최고의 명장면에 가슴 뛰는 음악을 잊지 않았다. 20세기 지구를 통틀어 가장 신비로웠던 남자 데이비드 보위를 춤추게 한 그 곡, 바로  ‘Modern love’(1983)다.

 

 

 

Elvis Costello

음악영화 중에 ‘음악’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를 꼽자면 단연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가 아닐까? 전설적인 뮤지션의 이름과 주옥같은 음악들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그 영화는 역시 엘비스 코스텔로를 잊지 않았다. 까만 뿔테 안경과 함께 항상 단정한 수트 차림을 고수해온 그 영국 뮤지션을 ‘She’나 감미롭게 부를 줄 아는 중년 아저씨로만 기억한다면 좀 슬프다. 미국에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다면, 영국에서는 엘비스 코스텔로가 곧 로큰롤이었으니까. 그의 보석 같은 곡들 중에서 ‘High fidelity’(1980)를 골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니 벌어진 영국 남자가 토끼처럼 춤을 추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Fatboy Slim

근사한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 중년의 신사는 매우 피곤해 보인다. 좋은 수트를 입고 있지만 삶의 재미 따위는 잊고 산 지 오래. 집에 갈까, 자살을 할까 싶은 무거운 표정의 그를 사로잡은 건 자살을 할까 싶은 무거운 표정의 그를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예상치 못한 음악. 그는 조용히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텅 빈 호텔을 누비며 몸을 풀더니 급기야 공중을 회전하며 날아다닌다. 아, 악역만 골라 연기하는 크리스토퍼 워큰이 이렇게 춤을 잘 추는 배우였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황제 팻보이 슬림은 ‘Weapon of choice’(2000)를 통해 언제든 춤출 준비가 되어 있는 마니아들 너머로 일상에 지친 아저씨들의 숨은 본능까지 쿡쿡 찔러댄다. 물론 그 압도적인 영상은 심오하고 기발한 필름 메이커 스파이크 존즈이기에 가능했다.

 

 

 

Green Day

1994년 4월, 커트 코베인이 죽었다. 그해 여름은 유독 뜨거웠고, 25년 만에 두 번째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은 없었지만, 전설로 남은 록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체감하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큰 무대에 그린데이가 올랐다. 20대 초반, 알록달록 탈색한 머리에 입만 열면 욕을 쏟아내던 그들은 1990년대판 미국의 섹스 피스톨스였다. 폭발적인 연주가 이어졌다. 관중은 심플하고 강렬한 사운드에 흥분했고 연주하는 그들의 무대 위로 진흙 폭탄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When I come around’(1994)에서는 누군가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빌리 조 암스트롱의 기타에 제대로 한 방 갈겼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쫄지 않았다. 그리고 우드스톡은 그 엄청난 진흙 난장판 속에서 펑크의 재림을 발견했다.

 

 

 

Happy Mondays
아티스트에게 헤로인은 창작의 윤활유와 같은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너무나 많은 뮤지션들이 약물에 취해 굉장한 작품을 남겼고, 우리는 그들을 다시 약물중독에 의해 잃었다. 영국 록 밴드 해피 먼데이스의 칙칙하고 현란한 사운드의 음악은 보들레르의 시를 닮았다. 항상 약에 취해 있기로 작정한 그들은 날카롭고 몽환적인 나날을 그대로 음악에 담았고, 사람들은 ‘Kinky afro’(1990)와 같은 반복적인 댄스 비트에 취해 밤새 클럽을 배회했다. 그들은 천문학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클럽 문화를 바꿨다. 엑스터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약물중독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해피 먼데이스는 마약 문제로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고 그들의 음악은 다시 빛을 보지 못했다.

 

Iggy Pop

영화 <트레인스포팅>(1996)은 오프닝부터 끝내줬다. 마약에 찌들어 사는 구제 불능의 아이들이 세상이 원하는 전형적인 삶으로부터 도망치듯 거리를 질주하는 신 말이다. 그 인상적인 장면을 펑크 록의 대부 이기 팝이 거들었다. 쿵쾅대는 드럼 비트로 심장을 가격하는 음악 ‘Lust for life’(1977)와 함께. 한때 이기 팝도 헤로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이 있었다. 그를 구원해준 이는 다름 아닌 데이비드 보위였고, 이기 팝은 그의 도움으로 이 근사한 음악이 담긴 앨범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2016년 1월, 데이비드 보위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올여름에는 이기 팝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기미 데인저>(2016)를 개봉한다. 감독은 무려 짐 자무시다.

 

 

 

Jamiroquai

자미로콰이의 리더 제이 케이(그 크고 이상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영국 남자)는 어린 시절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미국 인디언 부족 ‘이로콰이 (Iroquois)’의 지구와 교감하는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훗날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한 그는 이로콰이에 잼 세션의 ‘잼(Jam)’을 더해 자신이 이끄는 밴드 이름을 지었고, 곧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애시드 재즈 밴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자미로콰이의 치명적인 매력은 제이 케이가 이끄는 그 원시적인 자유분방함이다. 중독성 강한 사운드는 물론 <정글북>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적인 요소, 특히 그루브를 타면서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그의 ‘중력을 잊은’ 춤은 우리를 즉시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다. 제이 케이가 소유한 슈퍼카(그는 페라리 마니아다!), 자신의 이름을 딴 전용 헬기, 거대한 집 따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Space cowboy’(1994)에서처럼, 아디다스를 신은 매력적인 남자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 정신없이 노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질투가 날 지경이니까.

 

Kim Jungmi
1970년대, ‘담배는 청자요, 춤은 추자’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시원하게 터지는 다이너마이트 창법과 도발적인 춤으로 대중을 유혹했던 김추자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발굴한 국내 초특급 디바였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으나 화려한 김추자의 후광에 가려져 ‘김추자의 아류’로 평가절하된 가수가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와 사이키델릭에 심취해 있던 신중현의 또 다른 뮤즈로 그 사운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했던 한국 최초의 사이키델릭 김정미다. 1971년, 19세에 데뷔한 그녀는 묘한 비음의 육감적인 음성과 정체불명의 춤사위를 휘두르는 전위적인 비주얼로 관중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김정미를 아티스트로 이해하기에 시대는 서툴렀다. 지금은 국내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최고 결정판으로 정평이 나 있으나, 그 시절 암울한 정권은 그녀의 모든 곡들을 금지곡 처분했고 앨범을 압수해 소각했다. 곡 퇴폐, 창법 치졸, 가사 저속이라는 이유였다. 아직 김정미를 모른다면 눈을 감고 그녀의 ‘햇님’(1973)을 다시 들어보자. 춤을 추지 않아도 춤을 추는 기분이 들 것이다.

 

 

 

Lenny Kravit

클럽 정중앙의 무대 위 붉은색 드레스 차림의 레니 크라비츠는 흡사 샤먼이다. 눈부신 조명이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지자 흥겨운 기타 리프와 함께 시작되는 공연. 자, 한 번 푸지게 놀아볼까? 둥둥거리는 원시적인 드럼 비트, 현란한 헤드뱅잉과 야수처럼 내지르는 보컬, 그리고 음악과 영적으로 교류하는 이 능력자의 굿판에 초대되어 격렬하게 춤을 추는 사람들. ‘Are you gonna go my way’(1993)는 레니 크라비츠가 얼마나 파워풀한 뮤지션인지를 명쾌하게 증명해준 최고의 뮤직비디오다. 걸핏하면 알몸을 드러내며 과도한 노출을 즐기는 이 뉴욕 출신의 슈퍼스타는 한때 마돈나, 니콜 키드먼, 나오미 캠벨 등 세기의 미녀들과 염문을 뿌리며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록 뮤지션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지난해 그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공연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에 가죽 바지가 터지는 사고로(하필 중요 부위 노출) 전 세계 대서특필되었다.

 

Michael Jackson
그 시절의 마이클 잭슨은 매우 행복해 보인다. 그의 피부 색깔은 점점 하얘지고 있었고, 더 이상 그를 두고 흑인 혹은 백인으로 분리해 궁시렁거릴 필요가 없었다. 때마침 ‘Black or White’(1991)가 공개되었고,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답게 끝내주는 음악과 메시지, 춤, 획기적인 비주얼로 전 세계를 흔들어 놓았다. 그가 백인이 되고 싶었던 흑인이었든, 아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마이클 잭슨은 팝 역사상 최고 중에 최고였다는 사실뿐이다. 2009년,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흑인, 백인 가릴 것 없이 온 세상이 슬퍼하는 가운데, 미국 <타임>은 그를 이렇게 추모했다. “흑백 인종차별 금지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한 것은 마틴 루터 킹, 버락 오바마가 아니다.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였다.”

 

 

 

Nick Cave and the Bad Seeds
호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배우, 소설가, 시인, 시나리오 작가 등 자신을 수식하는 단어들로 줄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닉 케이브는 가히 현대판 장 콕토에 가까운 전방위 아티스트다. 그중 닉 케이브를 가장 쉽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메인 파트라면 단연 그가 1983년부터 이끌고 있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 그들의 주옥같은 작품 중에서도 닉 케이브가 ‘예술계의 기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Fifteen feet of pure white snow’(2001)는 시적인 가사와 감각적인 사운드 그리고 그 특유의 재치와 파격, 강박과 조소 등이 결합된 영상미가 압권이다. 

 

One Direction
영국의 보이 밴드 원 디렉션은 지금 세계가 실시간으로 주목하는 이 시대 청춘의 상징이다. 2010년, 영국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이 다섯 명의 소년들은 타고난 미모와 재능 그리고 잘 ‘키워진’ 아이들과 다른 의외의 대담함과 스타일리시한 태도로 10대 소녀들은 물론 누나들의 마음까지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밴드 해체를 공식 선언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해 그들의 행보가 더욱 궁금한 가운데, 여전히 귀에 감기는 원 디렉션의 데뷔곡 ‘What makes you beautiful’(2011)을 골랐다. 푸른 해변을 배경으로 브루스 웨버의 사진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건강하고 아름다운 소년들이 우리를 찬란한 청춘의 한 시절로 소환한다.

 

 

 

Pet Shop Boys
“나의 집세를 내줘서 너를 사랑해(I love you, you pay my rent).”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고작 한다는 소리가 집세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고? 영국의 일렉트로닉 팝 듀오 펫 숍 보이스의 ‘Rent’(1987)는 언뜻 듣기에 매우 황당한 곡이다. 이렇게 뻔뻔하고 노골적인 가사를 지극히 아름다운 멜로디에 심어놓고 미성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다니! 그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특유의 부드러움과 재치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메시지 말이다(‘집세’는 매춘을 의미한다). 늘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오로지 한평생 ‘댄스를 피할 수 없는 음악’만을 연구하며 살아온 듯한 두 남자, 닐 테넌트와 크리스 로는 세월이 흐르거나 말거나 여전히 지적이고 댄서블한 음악을 쏟아내며 예민한 ‘소년’의 감성으로 우리를 춤추게 한다.

 

Queen
퀸의 음악은 ‘엑스터시’다. 작은 불씨로 서서히 타오르다 엄청난 에너지의 불꽃으로 터진다. 그중에서도 ‘Don’t stop me now’(1978)는 강렬한 제목 그대로 어느 누구도 ‘날 막을 수 없도록’ 만든다. 심장박동 수와 함께 두뇌 회전, 행동이 빨라지고 그와 동시에 걱정거리도 사라진다. 내일 당장 삶이 끝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화성으로 날아가는 로켓’이고, ‘장전되어 있는 섹스 머신’이니까. 스키니한 가죽 팬츠에 가죽 라이더 재킷을 걸친 미모의 남자가 삐딱한 자세로 피아노를 치며 그 노래를 불렀을 때, 세상은 작고 강인한 그 남자를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그가 직접 지은 밴드 이름처럼 ‘퀸’으로 기억되는 전설의 남자, 프레드 머큐리.

 

 

 

Radiohead

라디오헤드는 음악 그 이상의 음악을 들려주면서 우리의 귀를 열어주었고 무의식의 세포를 깨워주었다. 그 세밀하고 청초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톰 요크의 공허한 목소리는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멋지지 않아도 돼.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그는 때때로 춤을 추었다. 멋지거나 행복해 보이는 춤은 아니었다. 춤이라기보다 행위에 가까운 그의 퍼포먼스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아닌 음악의 비주얼적인 확장에 가깝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스스로를 ‘몸치’라고 여긴다면 유튜브에서 라디오헤드의 ‘Lotus flower’(2011) 영상을 찾아보길 권한다. 관절염을 극복한 환자가 출 법한 춤을 선보이는 톰 요크가 춤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줄 테니까.

 

Scissor Sisters

시저 시스터스는 주체할 수 없는 ‘흥’으로 뭉친 일렉트로닉 댄스 팝 그룹이다. 2000년대 초반, 뉴욕의 게이 클럽에서 서로의 재능을 알아챈 다섯 명의 멤버들은 오로지 1980년대 댄스 플로어의 부활을 위해 온몸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저 시스터스의 흥은 곧 빛나는 앨범으로 발매되었고, 대서양을 건너 런던의 나이트클럽들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게이 컬처의 화려한 밤을 대표하는 그들의 반짝이는 곡 중 하나를 꼽자면 역시 ‘I don’t feel like dancing’ (2006)이다. 당장 탬버린이 필요한 음악인 주제에 그 뻔뻔한 제목이란.

 

 

 

Talking Heads

“파티는 없어! 디스코도 없어!” 토킹 헤즈가 라이브 무대에서 ‘Life during wartime’(1979)을 힘차게 불렀을 때, 멤버들과 댄서들은 더 이상 파티에서 디스코 따위에 몸을 내주지 않겠다고 결의라도 한 듯 ‘춤다운 춤’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들은 뛰었다. 각자 제자리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달리고 또 달렸다. 이 전위적인
무대 연출은 토킹 헤즈의 리더이자 프런트맨이었던 데이비드 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유명한 후렴구는 그 시절을 대표하는 뉴웨이브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이 다른 무대에 올랐을 때, 사람들의 입은 다시 또 쩍 벌어졌다. 과도하게 큰 사이즈의 수트를 입은 데이비드 번이 로봇처럼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틴 마르지엘라가 등장하기 한참 전이었다.

 

UB40
레게 음악은 돌부처도 일어나 춤추게 한다. 몸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레게 특유의 약박 리듬 탓일까? 귀만 열어놓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밥 말리 이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레게 밴드는 단연 영국의 UB40다. 영국의 실업수당 신청카드 양식에서 밴드의 이름을 따온 그들은 흑인과 백인으로 조화롭게 구성되었는데, 그중 밴드의 프런트맨 알리 캠벨은 레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흑인이 아님에도 충분히 솔풀한 목소리에 사회적인 쓴소리까지 겸비한 최상의 보컬이다. UB40의 음악은 마시지 않아도 취하는 술이다. 특히 ‘Red red wine’(1983) 같은 곡은 들을수록 기분 좋게 취한다.

 

 

 

Velvet Underground
이름부터 근사한 미국의 록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1960년대 중반 세상을 휩쓸었던 히피즘에 반기를 들며 뉴욕의 어두운 클럽에서 탄생했다. 루 리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주축이었다. 앤디 워홀, 니코, 존 케일 등 많은 이름이 이 밴드에 연루되어 있었지만, 차갑고 신경질적인 루 리드는 이도 저도 다 짜증이 났던 것 같다. 1970년 여름, 그는 밴드를 영영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Loaded>는 루 리드가 솔로로 전향하기 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이름으로 만든 마지막 앨범이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세상은 그 앨범을 통해 지독하게 아름다운 로큰롤의 광기를 발견했다. 햇살처럼 빛나는 곡 중
‘Rock & Roll’(1970)은 그저 무아지경.

 

Wham!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로 구성된 영국의 팝 듀오 왬!은 그 이름만큼이나 젊고 유쾌한 음악으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왬!의 엄청난 존재감을 알린 곡은 단연 ‘Wake me up before you go go’(1984). 20대 초반의 남자가 전할 수 있는 사랑의 메시지는 여전히 귀에 달콤하게 감기고, 그래픽 로고가 박힌 티셔츠에 과감한 핫팬츠를 입고 춤을 추는 왬!의 비주얼은 언제 보아도 싱그럽다.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이 그들을 숭배하기로 작정했을 때 왬!은 돌연 팀 해체를 결심한다. 그리고 그들은 1986년 런던의 웸블리 구장에 7만2000명의 팬들을 모아놓고 고별 공연을 했다. 그러나 이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에 버금가는 슈퍼스타 조지 마이클의 위대한 시작이었다.

 

 

 

X
1990년대 한국에 삐삐밴드가 있었다면, 1980년대 초반 미국에는 펑크 록 밴드 X가 있었다. 매력적인 보이스의 여성 보컬을 홍일점으로 두고 인상적인 앨범 두 장을 남기고 사라진 그들은 록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밴드다. 메이저 음반사와의 계약과 대중적인 공연을 펼치기도 했지만 그들의 노선은 그저 펑크였다. 라디오, 텔레비전, 음악산업 등에 가질 수 있는 불만을 그냥 덮고 가지 못했다. 시대에 편승하지 않아 더욱 반짝이는 앨범에서 ‘The once over twice’(1981)를 골랐다. 여름밤 시원하게 터지는 맥주 같은 곡이다.

 

Youssou N'dour
그 이름도 읽기 어려운 유순두의 음악을 들어본 이들이라면, 아니 그 음악에 어떻게 춤을 추냐며 항의를 해올 수도 있겠다. (우선 유순두의 음악까지 섭렵한 당신의 음악적 소양에 건배!) 그렇다. ‘Y’로 시작하는 뮤지션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여기까지(A to Y) 오는 데 나도 꽤 지쳤다. 근데 춤도 좀 쉬어가며 춰야 제맛 아니던가. 그렇다면 정신적인 평온을 가져오는 데 유순두는 최고의 뮤지션이 되어줄 수 있다. 사실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의 유순두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팝 아티스트다. 그가 네네 체리와 함께 부른 ‘7 Seconds’(1994)에 이어 ‘Marley’(2010)를 들어보자. 그 깊고 푸른 ‘검은 목소리’에 이끌려 저절로 몸이 반응할 것이다.

 

Zz Top

다프트 펑크가 ‘그냥 쪽팔려서’라는 이유로 헬멧을 쓴다면, 지지톱은 지극히 텍사스 블루스 록 밴드다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커버한다. 카우보이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산신령처럼 길게 늘어뜨린 수염으로 말이다. 드럼, 베이스, 기타로 구성된 이 3인조 록 밴드의 특이점은 또 있다. 1969년 밴드 결성 이래 단 한번도 멤버 교체가 없었다는 것. 그들의 이 결속력에는 잘빠진 슈퍼카와 여자를 좋아하는 한결같은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고 꼭 진실한 건 아니라는 듯 그들은 여전히 같은 비주얼로 단순하고 경쾌한 록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위트 넘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중에서 ‘Sharp dressed man’(1983)을 소개한다. 디스코를 추기에 이렇게 완벽한 하드록은 없었다. 

 

CREDIT

EDITOR / 김정민 / PHOTO / 일러스트레이션/이성범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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