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 그란투리스모 시리즈의 신작 ‘GT 스포트’를 공개하는 자리에 초대받았다. 그란투리스모는 리얼 드라이빙 시뮬레이션으로 소니의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의 독점 타이틀로 1997년에 출시됐다(제작사 폴리포니 디지털). 현재까지 전 세계에 7674만장의 타이틀을 팔며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을 꾸준히 견인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1~3과 PSP를 기반으로 지난 19년간 10개의 타이틀을 내놨다. 매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혁신적인 변화를 담아낸 것도 특징이다. 자동차 라이선스의 확장으로 차종과 범위를 꾸준히 늘려왔다. 최초 타이틀에서 수 대의 플레이어 가능 자동차를 제공했다면 최신의 GT6에서는 1200대 이상으로 차종이 늘었다. 덩달아 자동차의 디테일과 주행 환경 표현 능력이 좋아졌고 이벤트, 온라인 경주 같은 새로운 기능도 더해졌다.

그란투리스모는 내 인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16살 때 친구 집에서 우연히 그란투리스모 2를 접한 것이 지금까지 리얼 자동차 시뮬레이션을 꾸준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다. 유년 시절부터 자동차를 좋아한 이들(현재 20~40세)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동차 마니아에게 교과서 같은 존재였다. 비록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일이지만, 실제처럼 만든 다양한 차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동차의 움직임 특성을 이해하고, 운전 기술을 연습하도록 도와준 선생님이기도 했다. 리얼 드라이빙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발전시킨 게임이 아니라 장르 그 자체였다.

장비가 중요해 GT 스포트를 온전히 즐기려면 다양한 고급 장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보급형 이상의 레이싱 휠을 추천한다.

차종은 줄고, 세부 디테일과 구성은 더 강해졌다

GT 스포트의 프리뷰 행사는 영국 런던에 있는 올림픽공원 내 코퍼 박스에서 열렸다. 다양한 게임쇼가 열리는 곳이다. 예상했던 것처럼 현장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사실 GT 스포트는 2015년 파리 게임즈 위크에서 발표가 예상됐다. 그러나 당시 세부 사항에 발표가 미뤄지며 관심이 증폭됐다. 그란투리스모의 개발사 폴리포니 디지털도 그런 압박을 받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 대단히 신경 쓴 분위기였다. 그들은 새로운 타이틀에 추가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틀간의 행사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게임을 충분히 체험하도록 기회를 줬으며 동시에 여러 나라에서 선발한 선수들을 모아 토너먼트 경주도 개최했다. 람보르기니 우라칸이나 로터스 3 일레븐 등 실제 슈퍼카와 레이싱카를 타보는 자리도 마련해 온몸에 흥분이 전해지도록 했다.

게임에 등장하는 현실 속 자동차 위 사진은 게임 화면이 아니다. GT 스포트 부대 행사인 미니 시승 이벤트를 위해 가져온 실제 자동차다.

그곳은 가상현실을 다루는 현실이었다.

실제로 그란투리스모를 만든 폴리포니 디지털이 가상과 현실을 허무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행사장 중심에 전시된 여러 대의 비전 그란투리스모가 대표적인 예다. 비전 그란투리스모는 폴리포니 디지털이 자동차 브랜드와 협업을 거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게임 안에 등장하는 가상의 자동차다. (최근엔 현대자동차도 참여했다). 물론 상상력만 발휘해 만들지 않는다. 자동차 브랜드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실제로 미래에 양산될 법한 구성을 재현하는 것이 목표다. 그 결과는 놀랍다.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에서 영감을 얻은 자동차 회사가 역으로 비전 그란투리스모를 실제로 만들거나 일부 요소를 양산차에 반영하기도 한다. 

부가티 비전 그란투리스모 콘셉트가 그랬다. 2015년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모습을 드러낸 쇼카는 1936년 르망 24 내구 레이스에서 우승한 타입 57 아틀랜틱과 탱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당시엔 단순한 쇼카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음 해 3월, 부가티 시론이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이 차의 기본 콘셉트가 비전 그란투리스모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폴리포니 디지털과 자동차 회사의 협업이 대단히 긴밀하다는 증거였다. 이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그란투리스모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GT 스포트도 자동차 마니아들이 바라고 생각하던 요소를 담는 데 힘썼다.

개선된 그래픽 효과 그래픽이 크게 발전했다. 못 믿겠다면 이전 타이틀(GT6)과 비교해보라.

게임 속에 등장하는 자동차는 137대다.

이전보다 가짓수가 크게 줄었지만, 슈퍼 프리미엄 모델의 라이선스를 취득해 흥미를 높이는 데 역점을 두었다. 현실감을 주기 위해 대단히 신경 썼다. 프로듀서인 야마우치 가즈노리가 가장 신경 쓴 부분도 자동차의 디테일이었다고 한다. 헤드라이트 내부 구조부터 시트와 대시보드에 들어간 스티치까지 꼼꼼히 표현했다. 주행 코스는 19곳, 27가지 레이아웃으로 구성된다. 기존의 뉘르부르크링 북쪽 코스나 마쓰다 라구나 세카 외에도 일본 도쿄 익스프레스 웨이, 영국 브랜즈 해치 인디 서킷, 미국윌로 스프링스 빅 윌로 등이 추가됐다.

다양하게 구성된 피처들도 눈길을 잡는다. 싱글 레이스와 타임/드리프트 트라이얼, 2인 대결이 가능한 아카데미 모드는 이전과 같다. 반면 캠페인 모드는 총 117개 이벤트로 강화됐다. 다양한 도전 과제를 정복하며 시뮬레이터를 익히는 과정은 드라이빙 스쿨도 포함된다. 자동차의 올바른 조작법과 구조, 원리를 배우고 연습할 수 있다. 10개 이벤트로 구성된 레이싱 기초와 드리프트 기초도 특징. 35개 이벤트로 이뤄진 서킷 익스피리언스 기능도 흥미롭다. 현존하는 레이싱 서킷에서 주어진 조건을 수행하며 트랙을 배워간다. 이전 시리즈에서 이어진 미션 챌린지도 운전 실력 강화에 많은 도움을 준다. 레이싱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도 있다(10개). GT스포트는 ‘7 to 77’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초보자부터 실제 드라이버까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뿐이 아니다. 게임 속 자동차를 감상하고 정보를 얻을 기회까지 확장했다. 브랜드 센트럴 모드에서는 각 자동차가 온라인으로 연결돼 소개와 리뷰, 자동차 개발 스토리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라이브러리 에디터도 플레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기능이다. 내 차고에 있는 자동차를 선택해 커스텀 페인팅이나 데칼 작업을 할 수 있다. 차의 구석구석까지 정교한 페인팅이 가능하다. 이런 모드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기 위함이다. 온라인 경주 무대에서 세상에 한 대뿐인 자신의 경주차로 남들과 겨루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들여 만든 자동차가 차고에 있다면 멋진 배경에서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당연히 가능하다. 전 세계 1000개가 넘는 풍경을 고스란히 연출한 스케이프(풍경) 모드를 활용하면 된다. 스케이프는 이전 시리즈의 포토그래피를 강화한 기능이다. 원하는 배경에 차를 넣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초점, 조리개값, 셔터스피드, 패닝이나 줌인 기법 등 카메라 효과가 한층 강화됐고 시간대, 배경의 광원에 따른 그림자나 차체 표면의 반사도 실제처럼 표현된다. 여러 대의 자동차를 사진 속 원하는 위치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다.

GT 스포트의 가장 큰 특징은 스포트 모드다. 이곳에서 국제자동차연맹(FIA)이 공식으로 주최하는 챔피언십에 참가할 수 있다. FIA와 그란투리스모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디지털 드라이버 라이선스를 발행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경기는 크게 두 종류다. 네이션스컵은 플레이어가 자국 대표로 출전하는 시리즈이고, 매뉴팩처러 팬 컵은 플레이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대표로 출전한다. 둘 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주를 치른다. 자국에서 예선을 거쳐 준결승에서 국가 대표(미국, 유럽,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가 모여서 경주한다. 여기서 승자는 최종 FIA 월드 파이널에서 우승자를 겨룬다. 매뉴팩처러 팬 컵은 국가 대표 선발을 거쳐 자동차 팀 브랜드 소속이 된다. 그리고 브랜드 대표가 모두 모여서 24시간 내구 레이스를 펼친다. 실제로 두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유저는 모터스포츠 챔피언과 나란히 FIA 세레머니에서 시상대에 오른다. 쉽게 말해 F1 드라이버와 함께 FIA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다. 상상이 되는가? 리얼 레이싱 시뮬레이터가 실제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인정받는 역사적인 순간이 머지않았다. 아, 두 경기 모두 국가 대표 경기부터 생중계로 볼 수 있도록 해서 e스포츠 특유의 관전 즐거움도 살리고 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 폴리포니 디지털이 게임을 위해 만든 비전 그란투리스모가 현실로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멋지고 개성이 넘친다.

개선된 주행 감각과 표현력

‘그래봐야 게임이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란투리스모 아카데미(시뮬레이션 교육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드라이버의 경우 실제 레이싱 드라이버로 데뷔해서 좋은 성적을 발휘하기도 한다. 일본 슈퍼 GT와 F3, 호주 내 구레이스 등에서 우승한 전적도 있다. 그만큼 그란투리스모는 현실적인 요소를 반영한 게임이다.

GT 스포트를 해보고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래픽의 눈부신 발전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자동차의 외관이나 실내 표현뿐 아니라 배경 묘사와 광원 효과가 한결 좋아졌다. 특히 전작에서 문제로 지적받았던 코스 고저차와 블라인드 코너 효과가 개선됐다. 이제 뉘르부르크링 북쪽 코스를 달릴 때 내리막과 오르막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현실감있는 사운드 효과도 몰입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차가 정지할 때 들리는 엔진의 공회전 소리부터 듀얼클러치가 ‘버벅’ 하고 연결되는 소음, 코너에서 타이어의 접지력이 변하며 들리는 마찰음 등이 생생하다. 차체에 부딪치는 바람 소리나 엔진과 배기에서 전해지는 굉음이 매력적이다. 꼭 좋은 헤드폰을 사용해서 게임을 즐겨야겠다.

물리 엔진도 대폭 발전했다. 전작인 GT6와 차이가 크다. 리뷰에 사용한 휠은 트러스트 마스터 T500. 보급형보다 상위 기종이라 피드백이 정확한 탓도 있겠지만, 게임 속에서 차가 미끄러지거나 하중이 쏠리는 느낌이 이전보다 강했다. 예컨대 코너를 돌기 시작해서 바깥쪽 바퀴에 무게가 실릴 때 하중이 변한 느낌이 휠로 전해졌다(왼쪽 회전은 피드백이 무겁고 오른쪽 회전은 가볍다). 실제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마치 차를 운전하듯 각종 피드백이 전해진다. 그 감각이 대단히 정확하다. 그래서 특정 타이어가 접지력을 잃거나 언더나 오버스티어로 자동차의 특성이 전환될 때 곧바로 반응해서 제어할 수 있다.

GT 스포트의 한국 출시는 2016년 11월 15일. PS4용 타이틀은 크게 세 가지로 나온다(기본, 리미티드 등). 이전 타이틀과 다르게 발매가 연기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GT스포트를 애타게 기다리는 자동차 마니아에게 반가운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