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나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클래식카 시장이 꾸준히 상승세다. 1990년대 생산된 자동차 중에서 일부는 벌써 가격이 오르는 추세다. 앞으로는 다시 보기 힘든, 가치 있는 자동차라 재조명을 받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자동차 중 가치가 올라갈 모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퓨처 클래식카’라 불리는 차들이다. 이들은 미래에 주목받는 클래식카가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 일단 자동차의 존재 가치에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브랜드의 발전에 이정표가 됐거나 때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불운의 모델이기도 하다. 한정판으로 생산 대수가 제한되거나 극소수를 위해 만들어진 차도 포함된다. 극소수라는 것은 아주 고성능이거나 비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 퓨처 클래식으로 불리는 자동차는 어떤 것일까?

순수해서

1 캐딜락 ELR 쿠페 ELR은 캐딜락의 새로운 도전이자 완벽한 실패라고 불린다(3년 만에 판매를 중지). 하지만 오히려 이런 차가 적은 생산 대수와 제조사의 실험 정신에 힘입어 나중에 퓨처 클래식으로 인정받을 확률이 높다. ELR도 그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실 이 차는 쉐보레의 PHEV 볼트와 같은 차다. 볼트의 고급형 버전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당시 GM이 ELR로 세일즈하며 잘못 판단한 부분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꾸며도 볼트와 같은 차로 소비자를 설득하긴 어렵다. ELR이 먼저 등장했다면 캐딜락에 앞서가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나중에 보급형 버전인 볼트로 소비자를 이해시키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2 포르쉐 911 GT3(997) 포르쉐는 해상 세대 마지막 모델이 언제나 퓨처 클래식 리스트에 오른다. 미래와 과거의 균형을 절묘하게 가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코드네임 997시리즈의 911 GT3는 마지막 수동변속기 GT3로 퓨처 클래식에 꼽힌다. 다음 세대인 991부터는 듀얼클러치 변속기(PDK)만 선택이 가능하다. GT3는 911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고성능을 자랑하는 모델이다. 이런 차에 페달이 2개 달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어쩌면 991 GT3 다음 모델은 터보 엔진을 장착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앞으로 수년 후 다시 991 세대의 GT3가 포르쉐의 마지막 자연흡기 고성능으로 퓨처 클래식이 될 것이다.

3 포르쉐 카이맨 GT4, 박스터 스파이더 성능 면에서 911과 간섭을 고민하지 않은 최초의 카이맨이다. 385마력 엔진을 얹고 수동변속기만 선택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포르쉐일지도 모른다. 엔진을 차체 중앙에 얹은 구조지만 911 GT3의 부품들이 많이 이식됐다는 점도 독특하다. 브랜드에서 처음 등장한 시리즈 이름만큼이나 시장에서도 특별한 모델로 그 값어치가 계속 오르고 있다. GT4와 노선을 달리한 박스터 스파이더는 가장 특별한 박스터로 인정받는다. 550 스파이더의 오마주로 경량화에 집중한 흔적이 매력적이다. 지붕은 수동으로 여닫고, 간단하고 직관적인 실내 편의장비를 갖췄다. 엔진은 911 카레라 S에서 가져온 3.8리터지만 몸무게는 줄고 출력은 375마력으로 껑충 올랐다. 변속기는 6단 수동만 선택 할 수 있다. 이 차는 앞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자동차 애호가에게 최고의 수집 대상이 될 것이다.

한정 판매니까

4 BMW 1M 쿠페 처음부터 3000대 이하만 생산하겠다고 선언하고 별 기대 없이 만든 실험적인 차였다. 1시리즈 쿠페에 M3 부품들을 이식해 개발비를 줄이면서 정식으로 M의 이름을 붙이기 민망해서 1M 쿠페라며 살짝 노선을 틀었다. BMW 안에서도 별종이다. 하지만 이 차는 시장에서 대히트를 쳤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고, 추가 주문이 쇄도해 결국 6000대 이상 차를 만들었다. 수입 대수가 적은 미국에선 이미 중고차 가격이 신차를 추월한 지 오래다. 1M 쿠페 역시 수동변속기만 선택할 수 있다.

5 메르세데스 벤츠 C 63 AMG 507 에디션 이전 세대(W204) C 클래스 중 최상위 버전이다. 2013~15년에 만들어졌고 한국에도 10대가 한정 판매됐다. 해외엔 세단, 쿠페, 왜건에 모두 507마력으로 출력을 높인 V8 자연흡기 엔진을 얹었다. 투톤 시트, 보닛에 구멍을 뚫은 블랙 시리즈 보닛, 단조 휠 등을 넣어 외모도 무시무시하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에 4.2초가 걸려 가장 빠른 C 클래스로 불렸다. 현행 AMG C 63을 비롯해 앞으로 나올 모든 AMG에 터보 엔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마지막 남은 자연흡기 C 63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계속 오를 전망이다.

6 볼보 S60 폴스타 볼보가 폴스타와 손잡고 만든 드라이브 E 파워트레인 기반의 스포츠카다. 2015년에 발표할 당시 S60과 V60 폴스타는 한 해 750대만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볼보가 오랜만에 고성능 모델(350마력, 네바퀴굴림)을 내놓자 소비자가 몰렸고, 초기 물량이었던 750대는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당시 판매량을 750대로 제한한 것이 실수였다는 볼보 임원의 말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생산 대수를 1500대로 늘린다고는 하지만 10년 판매 기준으로도 1만4000대 수준이라 이 차의 미래 가치는 자연스럽게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7 알파로메오 4C 탄소섬유 모노코크를 바탕으로 한 미드십 스포츠카다. 이런 조건을 가진 스포츠카의 가격은 보통 맥라렌이나 페라리 수준이다. 당연히 수억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1억 미만의 예산으로 비슷한 조건의 차를 살 수 있다. 바로 알파로메오 4C다. 차의 구조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넓고 짧은 보디에 파워스티어링이 아예 없다. 탄소섬유 모노코크 보디에 미드십 엔진(240마력)을 얹어 움직임이 안정적이다. 사실 같은 돈을 주고 포르쉐 카이맨이나 박스터 대신 4C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이런 희소성이 바로 퓨처 클래식이 될 이유이기도 하다.

8 포르쉐 911 R 911 R(991)은 데뷔 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다. 카레라 S와 GT3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는 것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R은 GT3 RS 수준의 성능으로 등장했다. 500마력 엔진에 무게를 1370킬로그램까지 줄이고 GT3 RS에는 없는 수동변속기를 갖췄다. 그리고 991대 한정 생산을 못 박았다. 이 차는 등장한 즉시 퓨처 클래식 리스트 상위에 올랐다. 911대가 모두 팔려나갔고, 현재 가격은 두 배로 뛰었다. 나중에는? 분명 예상보다 높을 것이다.

희소성 있는 고성능이라서

9 로터스 에보라 400 로터스가 만든 일반도로용 자동차 중 가장 빠르다. 400마력 엔진을 바탕으로 최고시속 300킬로미터(수동 기준),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4.2초의 성능을 낸다. 에보라는 미드십 엔진 구조임에도 2+2 시트 구성으로 만들어졌다(이런 구성으로는 유일한 자동차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강조하며 고성능차로 탈바꿈한 슈퍼카는 드물다.

10 닷지 챌린저 SRT 헬캣 머슬카의 향수를 살린 레트로카 중에서도 원형에 가장 가까운 모델이다. 기본형의 경우 305마력(2만7000달러)을 발휘하지만 고성능인 SRT 헬캣은 707마력 엔진을 얹고 6만4000달러 수준에 팔린다. 출력과 가격 모두 기본형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이 차는 출시 전부터 퓨처 클래식의 대열에 올라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생산량이 한정된다는 소식에 몇몇 딜러들이 치열 프리미엄 전쟁도 치렀다. 결국 자동차가 출시될 때 이미 웃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실제로 헬캣 1호차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배럿 잭슨 경매장에서 무려 82만5000달러에 낙찰됐다.

11 포드 머스탱 쉘비 GT350R 미국에서는 ‘쉘비’라는 이름이 들어간 모든 차가 퓨처 클래식 반열에 오른다. 주로 레이스에 쓰이는 플랫 크랭크 방식 5.2리터 엔진을 사용한 차들이다. 쉘비 GT350R의 경우 526마력을 발휘하고 6단 수동변속기와 조합된다. 카본파이버 휠과 레이싱용 서스펜션 등 하드코어 모델의 정점을 찍는다. 미국에선 역대 최고의 머스탱으로 칭송받기도 한다고.

12 쉐보레 SS SS는 호주 홀덴 태생이다. 홀덴 코모도어가 폰티액 G8 GXP로 미국에 건너왔고, 폰티액 브랜드가 없어지면서 쉐보레 SS로 살아남았다. 어찌 보면 4도어 카마로라고도 할 수 있다. 6.2리터 스몰블록 V8 엔진은 415마력을 내고, 6단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다. 경쟁 모델보다 가벼운 무게 덕분에 움직임이 빠르다(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5초). 미국에서 가격은 5만 달러 수준. 현재 이 차의 판매량이 매우 저조하다. 따라서 미래에 퓨처 클래식이 될 자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