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디자인 100년’ ‘한국 출판과 북 디자인’ 등 다양한 섹션별 전시가 열리고 있는 책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와 김환기 화백이 그린 책 표지도 숨어 있다.

서울에서 3시간여. 전북 삼례에 자리한 ‘삼례문화예술촌’이 목적지다. 이름만 보고도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이겠지 싶겠지만, 사실 정확한 답은 아니다. 이곳은 원래 삼례양곡창고가 있던 자리. ‘양곡창고’와 ‘삼례’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자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곳 삼례는 만경강 상류에 위치,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하며 드넓은 만경평야가 지척이다. 비옥한 땅의 축복을 받은 대신, 고통도 따랐다. 삼례는 일제 강점기 시절 군산, 익산, 김제와 함께 양곡 수탈의 중심지로, 삼례양곡창고는 삼례역 철도를 이용해 군산으로 양곡을 이출시키는 기지 역할을 했다. 그 이후 1920년 신축해 2010년까지 양곡창고로 쓰였다. 저장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기능성을 상실한 쌀 창고는 지역 재생을 고려한 완주군의 투자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 생명을 담은 삼례문화예술촌이 그것이다.

1 디자인 우수 작품만을 모아놓은 디자인뮤지엄.

2 하늘색 함석 지붕이 인상적인 비주얼미디어아트미술관.

1 김진섭 관장이 이끄는 책공방북아트센터. 2 책박물관 앞에 자리한 무인 서점.

“창고 7개 중 6개 동은 1920년대 지은 건축물로 그 시절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역사적 스토리를 듣고 나니, 공간의 면면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쌀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건물 아래쪽과 위쪽은 바람이 통하도록 환풍구를 두었고, 대문에는 바람은 들어오되, 쥐는 들어오지 못하게 철망을 설치했다. 쌀 창고의 적인 비를 피하기 위해 내부는 목재지만 외벽은 함석을 썼다. 건물 외벽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구호처럼 ‘협동 생산 공동 판매’라는 빛바랜 글씨가 추억처럼 새겨져 있다. 건물 구경에 정신을 놓다 보면 내부 공간 6곳을 둘러볼 시간도 빠듯하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초입에 자리한 비주얼미디어아트미술관. 주로 지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지만, 미술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원래 서울 인사동에 있다가 변질되는 인사동 거리가 보기 싫어 이곳으로 내려왔어요.” 마침 김상림목공소에는 주인장 김상림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은 목가구와 생활 가구를 제작, 전시 판매하는 공간으로 목공예 체험도 할 수 있다. 가구와 소품은 물론 목공소의 역사를 말해주는 낡은 연장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옆으로는 김진섭 관장이 이끄는 ‘책공방북아트센터’가 자리한다. “원래 잡지사에 다녔는데, 출장길에 유럽 문화를 자주 접했죠. 우리나라처럼 책, 인쇄 문화가 홀대받는 나라가 있을까요? 그들을 보면서 책 만드는 일을 해보자 싶었죠.” 그때부터 버려질 위기한 처한 인쇄 기계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활판 인쇄기, 압착기, 재단기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150년 된 인쇄 기계들이 숭고한 역사처럼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 기계들이 아직도 작동되며, 실제로 책을 만드는 데 쓰인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직접 자서전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니, 성공한 위인은 아닐지라도 도전해봄 직하다. 이 밖에도 책박물관, 디자인뮤지엄, 문화카페 등이 너른 마당을 가운데 두고 자리한다.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특별한 문화 공간. 기꺼이 3시간을 달려볼 만하다. 바로 인근에 맛집이 없다는 게 흠이지만, 맛의 고장 전주가 지척이지 않나.

삼례문화예술촌의 마지막 코스로 추천하는 ‘문화카페로’, 커피 한잔의 여유가 덤으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