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전의 위대한 여행에 무임 승차하는 방법

예멘에 살고 있는 영국 남자가 ‘기계화 이전의 가장 위대한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의 여정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래서 그의 고향인 모로코 탕헤르로 갔는데 공교롭게도 ‘이븐 바투타 호텔’에서 묵는다. 여정의 시작으로선 제법 그럴싸하다. 그런데 호텔 직원이 이렇게 말한다. “손님, 이바(이븐 바투타)라면 벌써 찾으셨어요.” 그러곤 이바가 물담배를 피우는 사진을 보여준다. 저자가 묻는다. “그렇지만 담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왔고, 사진은 고작 150년 전에 발명되었을 텐데요.” 많은 책에서 이바의 이름을 보았다. 마르코 폴로 따위는 범접할 수도 없는 위대한 여행가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낯설다. 그가 어떻게 여행했고, 무엇을 보았고, 어떤 생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시니컬하지만 끈덕진 영국 남자 덕에 기회를 얻었다. 이바의 열렬한 덕후이며, 아랍의 역사와 언어에 능통한 작가 덕분에 앉은뱅이 여행의 도락에 빠질 수 있었다. 이바의 여정은, 당시의 여행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성인과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길이었다. 이바가 한 성인을 찾아가면 그가 말한다. 인도의 어떤 성인을 찾아가고, 중국의 어떤 성인을 찾아 안부를 전해달라고. 마치 성인끼리 페이스북 친구라도 맺은 듯하다. 그런데 이바는 정말로 그 성인들을 일일이 찾아간다. 저자는 그 여정을 또 일일이 따라간다. 집요한 선배 밑에 만만찮은 후배가 따라붙은 셈이다. 간간이 전해주는 이바의 여행담도 흥미롭다. 그는 악당 이야기를 좋아했고, 자신이 겪은 아슬아슬한 사건을 떠벌이기 좋아했다고 한다. “이바는 해적과 폭풍, 난파한 배에서 탈출했다. 그는 흑사병을 모면했고, 설익은 얌을 먹고 거의 죽을 뻔한 데다, 멜론을 과식하고 설사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트리폴리에서는 순례객의 딸과 결혼한다. 그러나 이집트를 앞둔 사막 행렬에서 도적을 피하다가 장인과 다투고 이혼한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할 즈음에는 재혼한다. 그는 코끼리를 풀어 정자를 박살내는 방식으로 아버지를 죽인 델리의 술탄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때론 하나의 책이 다른 책 앞으로 길을 낸다.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위대한 개츠비>를 소개했다. 이 책은 우리를 이바의 <여행기> 앞에 데려다놓는다. 다행히 정수일 선생이 세계 두 번째로 완역한 판본이 있다.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 

700년 전의 여행을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것들

700여 년 전에 이 땅을 여행한 자가 남긴 기록을 들고 누군가 서울을 찾는다면, 그는 무엇을 보게 될까. 그저 앉아만 있어도 휙휙 변하는 풍경을 볼 것이다. 서울에서 풍경은 풍경 위에 켜켜이 쌓이지 않는다. 싹 밀어버리고 그 위에 새롭게 지을 뿐이다. 기억도 밀려나간다. 이를테면, 이런 에피소드는 서울에서는 어림도 없다.
이븐 바투타의 흔적을 찾던 저자는 그가 만난 성자 알-무르시디를 찾아 알렉산드리아에서 48km 떨어진 작은 마을 문야 바니 무르시드를 찾아간다. 그는 길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에게 알-무르시디라는 성인에 대해 묻는다. 남자는 말한다. “우리가 어찌 그를 모를 수 있겠소? 이집트의 마을이란 마을은 다 성인의 무덤에서 생겼는데. 우리 성인은 바로 저 모퉁이를 돌면 있어요.”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이븐 바투타라는 여행가가 그를 보러 온 건 알고 있소? 언제였더라? 1326년인 것 같군, 내 기억엔.” 그들에게 과거는 어제의 일과 700년 전의 일이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의 시간은 끊어지거나 매듭지어진 데가 없다. 그렇더라도, 70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가 긴 여행을 떠나면서 이븐 바투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찾아간 무덤은 조악한 가짜다. 대형 할인점 인테리어 매장에서 팔다 남은 것 같은 타일. 공중화장실과 응접실을 섞은 것 같은 외관. 그러나 그는 이바의 무덤에서가 아니라 그곳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축복’을 받는다. 기회가 없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가난한 청년은 코란 112장 구절을 부적으로 써서 건네고, 공항으로 데려다준 택시 운전사는 등을 토닥인다. “이바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았으면 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해요.”
이 기나긴 여행을 함께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그곳이 서울이어도 그렇고, 아랍이어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아랍을 여행하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초적인 토대는 이 박식한 저자가 카펫처럼 깔아준다. 이븐 바투타의 흥미진진한 여행기가, 당대 다른 여행가의 기록이, 역사적 정황이,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현 아랍의 상황이 교차되며 직조된다. 그에 비해 우리가 지불할 것은 상대적으로 아주 작다. 그러나 그 작은 상상력이 없다면, 저 기나긴 여행길을 어떻게 그와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