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것만 비치한다는 옐다의 주방. 바닥은 이 집이 지어질 당시의 것 그대로다. 바닥의 블랙&화이트 대리석 모티프를 따라 1940년대 디자인의 빈티지 식탁과 의자 모두 흰색으로 리폼해 사용하고 있다. 

1 서재 입구의 문은 터키와 아프리카의 전통 패턴을 응용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다. 현지 공예가와 옐다가 협업한 결과물로, 이 집의 컬러풀한 장식 포인트 중 하나다. 2 담 너머로 산이 보이는 정원. 작은 수영장이 딸린 중정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부부의 최고의 휴식처다. 3 정원으로 나가는 입구. 은색 의자와 돼지 오브제는 옐다의 남편이 디자인한 것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템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옐다 바이락타르(Yelda Bayraktar)는 이곳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콘셉트 디자이너 그리고 아트 컨설턴트로 일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고 있다. 10여 년 전, 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여행을 온 후 이 나라의 매력에 빠져 무작정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그녀는 이곳에서 만난 디자이너인 남편 포키 헤퍼(Porky Hefer)와 함께 케이프타운 마사(Massa) 마운틴 기슭에 자리한 18세기 농가에 집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마련해 호젓한 창작 생활을 누리고 있다. 

농가라고 해서 굉장히 단출한 곳일 줄 알았는데, 오렌지 정원과 수영장도 있는 것이 저택처럼 보여요. 이 집을 구한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디자이너인 남편과 저는 맹렬하게 일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다 보니 일하다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기를 바랐죠. 이왕이면 디자인 스튜디오도 운영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으면 했고요. 도시 근교의 창고 건물까지 샅샅이 보고 다니다가 이 집을 운명처럼 만났죠! 1732년에 지어진 농가인데 이 지역 최초의 근대 건물이라 해요. 건축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 걸로 전해지는데, 빅토리언 양식도 보입니다. 오렌지나무가 있는 안뜰도 있고 작은 풀숲도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 무척 매력적이죠. 마사 마운틴에서 내려오는 물이 우리 집 정원을 지나 이웃 정원으로 흘러가요. 게다가 이 집은 처음 지어졌을 때 그대로예요. 저희는 정말 1700년대에 살고 있는 거 같아요! 

300년 가까이 된 집이군요. 인테리어할 때, 문제는 없었나요? 큰 문제는 없었어요. 저희는 정말 편히 일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긴 하지만 솔직히 잡지 촬영을 위해 세팅한 듯 꾸민 집을 싫어해요. 이곳에 입주한 건 8년 전, 남편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였죠. 그때 우리 스튜디오 이름은 ‘동물 농장’이었습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제목을 가져온 것으로,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각자의 공간을 자율적으로 꾸미고 운영할 것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결국은 누군가 더 큰 권한을 가져야만 공간이 제대로 유지된다는 것도 이젠 알아요. 남편과 저, 그리고 스태프들이 모두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원단 더미와 시제품 등 온갖 것이 뒤엉켜 정신없는 공간이 되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래서 인테리어는 제 뜻대로 하기로 결정했죠. 제 콘셉트는 아주 간단했어요. 각자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고, 그 안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만 구분해두는 것! 그 시스템 하나만으로 한동안 스튜디오가 잘 돌아갔답니다. 

1 옐다와 남편이 담소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거실의 한쪽 벽면에는 그들이 스크랩한 자료가 빼곡히 걸려 있는데, 그 자체가 데커레이션이 된다. 카펫은 옐다가 디자인한 것이고, 의자는 남편의 가족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1950년대 디자인이다. 

Yelda Bayraktar 

작업과 생활이 공존하는 집,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겠죠? 글쎄요. 저와 남편은 일하다가 지치면 바로 쉴 수 있는 공간이 옆에 있길 바랐기 때문인지 단점은 크게 못 느끼고 있어요. 오히려 장점이라면, 집을 꾸미기 위해 무언가를 사야 한다는 고민이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우리 집에 있는 것은 거의 다 리미티드 에디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남편이 만든 작품이 가득하거든요. 이처럼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테리어도 없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랍니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어디인가요? 거실요. 제가 스크랩한 잡지와 자료, 사진을 꽂아둔 보드가 걸린 벽면을 중심으로 남편의 가족들로부터 물려받은 다양한 의자와 테이블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커피 한잔을 즐기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남편과 대화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죠. 이때 가장 안정감을 느껴요. 

집 자체도 오래되었지만, 이곳에 있는 가구와 소품도 연륜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이런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수집하나요? 저는 집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여행길에서 혹은 가장 내 마음이 편안할 때 나의 심미안을 사로잡은 가구와 소품이 최고인 것 같아요.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 우리 가족의 즐거운 순간에 함께한 것들을 집에 가져다 놓으면 신기하게도 다 조화롭게 어우러지죠. 개인적으로 40~50년대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그 시대 빈티지를 많이 만날 수 있어요. 

1 욕실은 1930년대 오리지널 디자인 욕조와 수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욕실의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만들어주는 흑백 사진은 <Nikiki>라는 작품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계적 여행 사진작가 Dook의 작품. 2 주방 바닥의 블랙&화이트 콘셉트를 살려 싱크대와 선반 역시 같은 톤으로 연출했다. 이곳이 가장 모던하게 개조된 공간 중 하나지만 1940년대 스타일을 따른 개수대 디자인 덕에 옐다가 좋아하는 빈티지 특유의 감성이 돋보인다. 3 농가 주택답게 주방으로 가는 복도는 따뜻한 나무 바닥과 소박한 목재 의자로 장식했다. 4 오렌지나무가 있는 정원에는 벼룩시장에서 구한 벤치와 의자를 두었다. 제자리를 찾은 듯 잘 어울린다. 

케이프타운에 살기로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말 이곳이 좋아서 눌러앉았어요. 케이프타운에 오기 전, 서아프리카에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케이프타운에 있는 친구가 이곳에 와서 일해보자고 제안했죠. 케이프타운에 와보니 색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이곳만의 자연과 풍부한 색감, 그리고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공예가와 아티스트들에 놀랐죠. 단순히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닌 폭넓은 개념의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착했지요. 그렇게 머문 지 6년이 되어갈 무렵 다시 터키로 돌아가야 하는 고민에 봉착했죠. 그런데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고민이 사라졌어요. 디자이너로서 고민을 공유하고 미래를 설계하면서 든든한 동반자이자 지지자를 만났으니까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 그래서 당신만이 갖고 있는 개성은 무엇인가요? 제 타이틀은 단순히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니에요. 케이프타운 정착 초창기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및 데커레이션 프로젝트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냈죠. 그러나 지금은 콘셉트 디자이너, 아트 컨설턴트 일이 더 많아요. 남편을 통해 만난 이 나라의 아티스트, 공예가들과 함께 아트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펼친 경험이 근간이 되었죠. 저희가 프로젝트로 만든 아트워크나 아티스트를 유럽에 소개하는 전시도 많이 했고, 역으로 유럽에서 궁금해하는 아프리카 아티스트 발굴 작업이나 유럽의 미술관 초대전 기획에 남아프리카 아트 컨설턴트로 고문 역할도 하고요. 그렇게 이곳에서 저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의 작업 중, 우리가 알 수 있을 만한 프로젝트가 있을 듯합니다. 작년 3월에 비트라 뮤지엄에서 열린 <Africa Now> 전시가 있었는데, 거기서 제가 아프리카 아트 어드바이저로 참여했습니다. 굉장히 힘들고 바빴지만 뿌듯한 기획이었죠. 그리고 세계적 가구 디자이너 파트리치아 우르퀴올라의 가구 디자인 프로젝트 역시 함께했습니다. 그녀의 컬렉션 중에 아프리카 공예를 모티프로 한 의자가 있었는데, 현지의 공예가와 협업해 제작할 수 있도록 아트 컨설팅을 했어요. 모로소 가구를 통해 소개되었는데, 워낙 강렬한 디자인이라 어떤 건지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디자이너의 스펙트럼을 넓혀준 케이프타운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흔히 아티스트의 성지라 하면 유럽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남아프리카, 특히 케이프타운은 매우 고요하고 아늑한 곳이에요. 그리고 창조적 생각을 지닌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이런 환경과 사람들의 에너지를 나누고 열정을 불태우다 보면 내가 디자이너라는 사실에 행복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