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드 로터스’ 앞의 오토니엘. 설치하기 전 그는 멀리서 자신의 작품을 응시한 채 한참을 바라봤다. 2 올봄, 그의 꽃이 먼저 만개했다. 신작 <검은 연꽃> 전시를 통해서다. ‘검은’과 ‘연꽃’이라는 상반된 이중성과 검은색 터틀넥을 입은 그와 소년처럼 수줍게 웃는 그가 오버랩된다. 

오전 10시 30분. 파리에서 막 인천공항에 당도한 그가 여장도 풀지 못한 채 갤러리로 달려왔다. 퉁퉁 부은 얼굴과 살짝 떡진 머리가 길고 고단한 그의 비행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보다 먼저 도착한 파리 스태프와 엉킨 구슬이 리프트와 로프에 의지한 채, 그의 오케이 사인만 기다리고 있었다. 장-미셸 오토니엘 하면 목걸이처럼 주렁주렁 얽힌 구슬 작업이 떠오른다. 미완성의 설치 현장을 급습한 건 목걸이 같은 그의 작업이 도대체 왜 인기 있는지 탐정의 마음이 되어 캐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시장 구조에 맞게 사전 드로잉된 위치에 따라 그의 작품이 1차로 배치된 채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설치 작품 하나하나를 몇 분에 걸쳐 응시했고 카메라 셔터 소리만 고요를 방해할 뿐이었다. 공간의 통로와 빛, 간격 등을 고려해 위치가 재정비됐고, 놀라운 건 고작 몇 센티미터의 미세한 이동에 작품 간 연결성이 간결해졌다. 그 후로도 몇 시간을 그의 고심은 계속됐다. 

설치 다음 날 잡힌 그와의 인터뷰를 그다음 날로 미룰 수 있느냐는 갤러리 측의 다급한 전화가 결코 당혹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설치 현장의 묘한 긴장감을 경험한 탓이다. 한국의 매서운 겨울을 맛본 그는 맥을 못 추고 감기에 걸렸고, 개인 일정도 모두 취소한 터였다. “전시장에도 가보고, 무엇보다 한국의 시골을 둘러볼 예정이었죠.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지역이라고는 서울과 제주뿐이에요. 그래서 특정 지역이라기보다는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시골이면 어디든 가고 싶었어요.”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취향을 풍기는 그가 가보고 싶다는 곳이 한국의, 더구나 시골이라니. “어린 시절 자연과 친숙한 소도시에 살았어요. 그때 할머니가 정원에 자주 데려가곤 했죠. 그때부터 정원을 좋아한 것 같아요. 지금의 파리 스튜디오가 이사하면, 지붕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 지붕 위에 정원도 만들고.” 어린 시절, 꽃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눈이 반짝였다. 굳은 표정을 풀고 웃기도 했다. 당신을 꽃에 비유하면 무슨 꽃일 것 같으냐는 농담에 그는 유독 활짝 웃었다. “나를 꽃에 비유하면? Eglantine-Rose Canina, 일종의 야생 장미다(웃음).” 섬세할 것 같은 그와 들장미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답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그의 새로운 파리 스튜디오 정원엔 아마 이 들장미가 심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정원과 꽃을 좋아하던 어린 오토니엘은 지금도 여전히 꽃과 마주하고 선 채다. 

1 보는 각도와 빛에 따라 각기 다른 ‘검은 연꽃’이 다가온다. Black Lotus, 2015, Black Anodised Aluminium Cast, Steel, 150x150x150cm ⓒ Jean-Michel Othoniel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2 그는 작품 설치 간격과 구도는 물론 천장의 빛까지 세심하게 체크했다. 

“단순히 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꽃이 지닌 꽃말에 흥미가 많아요.” 3월 2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릴 그의 개인전 <검은 연꽃 Black Lotus>에 대한 실마리 역시 그의 꽃말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 “사찰은 물론 전통 패브릭, 동상 등 다양한 곳에서 이 꽃을 봤어요.” 그는 각 나라에 가면 캐치할 수 있는 일종의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데, 한국에선 연꽃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연꽃의 복합성이 마음에 들었다. “연꽃은 하루에도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아침엔 피고 저녁엔 봉오리를 오므리죠. 이 ‘변화’는 내 작업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번 한국에 왔을 때가 부처님 오신 날이었는데, 분홍 연등이 유독 그의 눈에 들어왔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은 완전함, 진실함, 고요함을 의미한다. 그는 고고함과 태고의 소용돌이 같은 꽃잎의 둥근 곡선을 바로크적 형태로 풀어냈다. 한데 그의 연꽃은 다름 아닌 블랙이다. 

“블랙 로터스, 검은 연꽃은 실제론 존재하지 않지요. 다만 시적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맑은 영혼의 꽃인 연꽃과 블랙. 이들은 서로 상반되는 요소라 더욱 매력적이죠.” 보들레르의 ‘악의 꽃’, 랭보의 ‘보이지 않는 화려함’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악마 같으면서도 숭고한, 선과 악을 뒤섞어 쏟아부은 이중적인 ‘아름다움’ 말이다. “본질의 순수함과 악의 어두운 부분을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상충되는 두 개념인 ‘검은 연꽃’을 전시 제목으로 붙였죠.” 더러운 물을 정화하면서 피어나는 연꽃은 영혼과 마음을 일깨운다. 그는 이 영적 상징에, 흔히 사용되지 않는 검은색, 보라색 등을 입혀 대범한 그만의 색채 언어를 꽃피웠다. 결국 그의 연꽃은 자연에서 왔지만 더 이상 자연이 아닌, 그만의 시적 형상인 것이다. “미학성은 내 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미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볼 수 있죠. 현실에 대한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이 작가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세계로부터의 탈출. 그는 이를 위해 ‘기묘함’ 하나를 더했다. ‘Gold Lotus’에 그 비밀이 있다. 이 작품의 상단 꽃은 바람이 불면 움직이도록 고안된 구조다. 한데 이번 전시에선 바람의 요소를 제거, 시간으로부터 분리된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공중에 떠 있는 꽃과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순간 전시장은 동화가 만들어지듯 뜻밖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가 말하는 미학성은 바로 그즈음에 있다. 

1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닥은 물론 천장에 뜬 구슬 작업을 만나게 된다. 공중에 떠 있는 꽃,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낯선 풍경. 그는 우리를 동화 같은 뜻밖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2 설치 내내 그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고, 첫 공개를 앞둔 회화 작품의 뒷면까지 챙겼다. 

1 신작 10점의 설치가 완료된 후 그는 비로소 편안하게 구슬 앞에 섰다. 

2 Les Belles Danses(The Beautiful Dances), Versailles 2015 The Entrance of Apollo (detail) Fountain sculptures for the Water Theater grove, Gardens of the Palace of Versailles, Photo: Philippe Chancel, Courtesy of Othoniel Studio ⓒ Jean-Michel Othoniel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3 Grand vitrail du Trésor, vue de la cathérale d’Angoulême 2016, Photo: Jean-Michel Othoniel ⓒ Jean-Michel Othoniel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먼저 수채화를 통해 전체를 구성하죠. 이때 구슬의 앵글과 각도, 채도까지 고안합니다.” 그는 매일 일기를 쓰듯 드로잉을 한다. 이렇게 드로잉한 수채화를 3D로 구현한 후, 유리공예사, 알루미늄 도색팀 등 전문 엔지니어와 협업하게 된다. 그런데 왜 (유리)구슬, 알루미늄이었을까. “내 작업에서 구슬은 대표적인 재료죠. 꽃처럼 일상에서 발견되는, 평범하고 대중적인 재료. 또 구슬은 몸에 착용한다는 점에서 우리 몸과도 연결되죠. 특히 반짝이는 표면이 마음에 들었어요. 자신을 반사하는 듯한 느낌도 좋았고요.” 그는 연약하고 우아한 구슬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누구나 사용 가능한 평범한 재료라는 보편성과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중성. “구슬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볼 수도 있어요. 마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직 미러처럼. 각 구슬 안에 비치는 그것들은 전체 조각의 DNA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실제로 그의 구슬 앞에 서면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조각을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묘하게 DNA의 분자 구조를 연상시킨다. 구슬이 지닌 반짝이고 비치는 투명성. 그는 우리 앞에 기묘한 매직 미러를 조용히 건네는 것이다. 이는 회화 작업에서도 엿보인다. 

“회화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건 처음이지만, 30년의 작업 기간 내내 해온 일이에요.” 이번 전시를 통해 첫선을 보인 그의 회화 작업은 얼핏 수묵화를 떠올린다. “작업 과정을 보면 수묵화와는 좀 달라요. 캔버스에 백금을 덧씌우고 그 위에 잉크로 꽃봉오리의 여러 형태를 드로잉하듯 그렸어요.” 그는 캔버스 위에 백금을 입혀 구슬의 미러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그 때문에 평면이지만 떠 있는 듯하며, 조각의 오라 역시 느껴진다. “조각의 그림자, 반짝이는 표면 그림자, 공간의 확장. 이 세 가지가 내 작업의 포인트죠.” 화려한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평온과 고요의 그림자. 그의 작품 앞에서 선뜻 발을 뗄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1 파리 스태프와 함께 신작 회화 작업의 설치 위치를 고심 중인 오토니엘. 

2 Les Belles Danses(The Beautiful Dances), Versailles 2015, The Bourrée of Achilles, by night Fountain sculptures for the Water Theater grove, Gardens of the Palace of Versailles, Photo: Philippe Chancel, Courtesy of Othoniel Studio ⓒ Jean-Michel Othoniel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이 작업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당시 왕들이 춤을 잘 췄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얼마 전 공개된 베르사유 궁의 ‘물의 극장’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루이 14세 통치 기간에 이곳 물의 극장에서는 수많은 파티가 열렸다. 하나 루이 16세의 지시로 1775년 해체됐고, 예전의 호화로운 자태는 무성한 풀밭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금색 분수 조각 3개를 숲의 물거울들 위에 설치했다. 이름도 아름다운 ‘Beautiful Dances’다. “프랑스는 유일하게 춤의 동선을 책으로 낸 국가일 것입니다. ‘뷰리풀 댄스’는 이 동선을 기본 스케치로 차용했어요.” 그는 이 작업을 위해 보스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던 중 1701년에 발행된 발레 교본 <Raoul-Auger Feuillet>의 초판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책 속에는 왕의 춤추는 동선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왕의 안무 동작이 내가 작업해둔 드로잉과 너무 흡사해 깜짝 놀랐어요.” 그는 그림 속 왕의 몸짓과 글을 디자인으로 차용했고, 그것은 황금 구슬의 아라베스크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조각 3개는 각기 다른 안무에서 착안됐으며 이를 완성하는 데만 구슬 2000개가 쓰였다. 작업 시간만도 1년이 걸렸다. 힘차게 뻗어 나온 황금 물줄기가 춤추는 듯한 이 조각 작품은 구슬로 빚은 한 편의 시처럼 베르사유 궁에서 춤추고 있다. 그 곁으로는 분명 우아한 미뉴에트나 리고동이 흐를 것만 같다. 

“이 작업은 7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올봄 드디어 공개됩니다. 프랑스 앙굴렘에 있는 성베드로 대성당 작업은 올해 가장 기대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성당의 중앙부에는 16세기 성인이 남긴 유물을 보관하는 곳이 있는데, 그에게 이 유물함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프랑스 현대 작가로는 처음으로 종교적인 보물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에 선정돼 더욱 뜻깊죠. 생각해보니 이 작업은 한국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한국에 있는 한 성당이 200년 전 한국에서 순교한 성 오메트로 베드로 신부의 유물을 성당에 기증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 유물이 보관될 성지를 디자인하고 유물함 옆에 둘 성상을 조각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영구 설치라 의미가 더욱 깊다. “성스러움이라는 개념은 다른 내 작업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긴 해요. 그렇다고 이 작업이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자는 의미는 아니에요. 오히려 나는 현대적인 전시이기를 원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종교성은 없어요.” 그의 성스러움은 오히려 현대적이어서, 아름다움 너머 그림자를 품고 있어, 더욱 찬란히 빛난다. 그리고 순간, 탐정의 눈으로 작품의 인기 비결을 찾으려고 한 우매함은 사라지고, 구슬 속에 움튼 여리고 강한 희망과 치유의 DNA가 불현듯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