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승효상, 그는 요즘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더해진 또 하나의 타이틀 때문이다. 서울시 총괄건축가. 이 무거운 감투 덕에 일주일에 두 번 그는 서울시청으로 출근한다. 하지만 그의 터전은 여전히 이로재다. 동숭동에 위치한 승효상의 건축사사무소 이로재(履露齋). <소학>에서 연유한 이로재는 ‘새벽이슬을 밟는 집’이라는 뜻으로, 효성 지긋한 가난한 선비의 집을 의미한다. 인문학적 운치가 더해진 이름을 듣자니 그 공간이 더욱 궁금해졌다. 

개인 작업실과 사무실, 지하 검도장, 옥탑의 가족 공간으로 이루어진 이로재. 사실 이곳은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각각의 공간은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다. 이동도 불편하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아찔한 나선형 계단 앞에 봉착할 때도 있다. 한눈에 다 보이는 탁 트인 공간 구조와는 거리가 먼, 그리하여 지루할 틈 없는 구조다. “탈출하기 좋고, 직원들 감시도 벗어날 수 있으니 더 좋지요(웃음).” 보통 대표의 집무실은 가장 전망 좋은 위층에 자리 잡기 마련. 하나 그의 집무실은 그와 반대로 이로재의 가장 아래층에 자리한다. 아래층에 있으니 직원들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는 농으로 그는 화답했지만, 정작 직원들이 그의 감시를 피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구조라고 봐야 옳을 듯싶다. “1만 권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중간중간에 누군가 가져간 책도 많고. 그러다 보니 같은 책을 여러 번 사기도 했지요. 책 도둑을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의 개인 작업실은 여느 학자의 집무실을 연상시킬 만큼 책장이 공간의 반을 차지한다. 집을 잘 짓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그의 건축 지론을 여실히 증명하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5m는 족히 넘을 듯한 기다란 책상 뒤론 ‘이로재’ 현판이 걸려 있고, 낡은 죽도를 수북이 끌어안은 넉넉한 항아리가 정겹게 우리를 맞는다. “검도를 한 지는 15년쯤 됐어요. 검도는 페인트 모션이 없어요. 페인트 모션을 하는 순간, 얻어맞지요. 검도는 본질 그대로 스트레이트죠.” 페인트 모션 없이, 본질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는 검도의 그것이 그를 매료시켰다. 그것은 화려함 대신 소박한 공간의 본질로 승부하는 그의 건축과도 닮았다. 

“원래 이곳은 작은 집이 있던 자린데 고쳐 쓰기에는 너무 낡아 새로 지었어요. 이 터에는 집보다 더 오래된 오동나무가 하나 있었어요. 집터의 역사를 간직한 오동나무를 살리기 위해 가운데에 마당이 있는 ‘ㄷ’ 자 설계를 했지요. 그런데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인부가 그 오동나무를 싹뚝 잘라버렸더라고요.” 황당하고 애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오래된 오동나무를 위한 기념비처럼 그 공간에 대나무를 심었다. 건물의 중앙을 관통하는 대나무는 이곳 이로재의 푸른 숨구멍처럼 눈과 마음을 어루만진다. 

서울을 다시그리다 

이로재는 주변의 이야기를 품으려는 듯 열린 구조를 띤다. 코르텐 시공을 한 외벽은 또 어떤가. 코르텐이라는 별난 재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벌겋게, 각자의 모습으로 부식된다. 그 아름다운 색채가 시간을 먹으며 익어가는 맛이 여간이 아니다. 승효상의 건축이 그러하듯이. 

“이미 서구 선진 도시에서는 총괄건축가 제도가 도입됐어요. 서울은 이제 시작됐고, 시스템 안착이 중요해요.” 네덜란드는 시장 선거 때 총괄건축가가 러닝메이트로 출마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은 건축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의 정체성을 찾고, 도시 행정의 일관성을 위해 총괄건축가 제도는 분명 필요하다. 오히려 서울은 늦은 감이 있다. 서울시의 첫 번째 총괄건축가, 승효상은 그렇게 1년여를 보냈다. 

“사실 설계 도면에는 모든 걸 그려놓지 않아요. 그려놓지 않은 곳도 많죠. 그래서 개념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오동나무에 얽힌 아픈 기억 때문일까. 그는 건축에 있어 설계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총괄건축가로 나서면서 가장 먼저 한 일도 그것이다. 그는 전체 공무원을 불러놓고 ‘메타시티’라는 자신만의 서울 설계 도면을 이야기했다. “메가시티가 도시와 변두리를 구분하는 일종의 계급 도시라면, 메타시티는 우리말로 번역해 표현하자면 인문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 없이 변화해온 서울이라는 도시. 그는 더 이상 팽창과 성장을 부르짖는 메가시티가 아닌 개인의 삶, 존엄성을 지켜주는 도시, 개발보다는 재생이 목표인 메타시티가 서울의 새로운 밑그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역에서 남산을 가려고 해봐요. 200m 안팎의 짧은 거리인데 걸어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구조예요. 그런데 서울역 고가를 이용하면 걸어서 10~15분이면 다 갈수 있어요.” 차도로는 이미 생명을 다한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도로 재생해, 서울역 주변을 모두 연결하는 이 흥미로운 그림 역시 도시 재생을 위한 그의 밑그림 중 하나다(이 프로젝트는 2017년 완공될 예정이다). “마치 도시에 침술을 놓듯, 치료해야 할 작은 부분에 손을 대서 주변에 영향을 주고 자연스럽게 바꾸자는 것이죠.” 더 이상 랜드마크를 통한 보여주기식 팽창이 아닌 네트워킹, 연대의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논지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공원화, 세운상가 정비 등 서울시가 추진 중인 프로젝트 역시 메타시티라는 밑그림의 일부로, 재생과 연대의 관점에서 비롯한 것이다. “2017년에는 건축비엔날레가 서울에서 열려요. 세계건축총회(UIA)도 함께 열리는데, 전 세계 건축가 1만여 명이 서울을 찾을 거예요. 그뿐 아니라 서울 성곽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데 그때쯤 발표가 날 예정입니다. 2017년은 그야말로 도시, 건축 축제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부동산, 재물로 여기던 건축이 이제는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변화의 시대를 맞았고, 서울은 지금 그 뜨거운 중심부에 서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삶, 그 안에 진실이 있다

위 그의 건축이 그렇듯 이로재 역시 의도된 불편함이 엿보인다. 1층의 집무실에서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자면, 아찔한 나선형 계단을 지나야 한다. 이곳은 설계 도면이 3D로 완성되는, 그의 불편한 건축이 ‘잉태’되는 공간이다. 

승효상, 그의 건축엔 삶과 공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결코 화려함을 뽐내지 않는다. 편리함을 강조한 최첨단 건축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 건축에 사색의 마당을 둔 유홍준 교수의 집 ‘수졸당’, 전통 집의 구조를 차용해 각각의 집을 독립된 구조로 설계한 ‘퇴촌집’, 열린 틈을 통해 다양한 도시 풍경을 담은 ‘웰콤시티’ 등 그를 대표하는 몇 건의 족적만 봐도 그렇다.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죠. 집을 지을 때도 남보다 작은 집을 짓고,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집을 짓는 게 빈자의 미학입니다.” 빈자의 미학, 그의 건축을 논할 때 따라붙는 말이다. 그는 ‘이 집은 당신의 집이 아닙니다’라는 황당한 말로 건축주와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끝내 떠나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집은 집주인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스스로 절제하며 작은 집을 짓고 주변과 공유할 수 있는 집이야말로 ‘좋은 집’의 모습일 거라고 그는 말한다. “꽉 찬 집이 아닌 비움의 아름다움이 깃든 집이 좋은 집이죠. 요를 깔면 침실이 되고, 담요를 펼치면 화투방이 되는 불특정한 비움의 방. 그 공간 안에 집주인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집이 진정 좋은 집이죠.” 인공적인 환경에 길들여진 지금 우리에게 그의 집은 분명 불편한 집일 수도 있지만, 불편함에 익숙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즐거움이 뒤따를 거라는 사실이다. 

위 뚝뚝 떨어진 선조들의 집을 차용한 퇴촌주택, 사진 김종오. 중간 유홍준 교수의 공간, 수졸당. 아래 뉴욕현대미술관의 영구 수장품으로 선정된 수백당, 사진 오사무 무라이(Osamu Murai).

“폭탄주 하면 보통 맥주와 위스키를 떠올리죠. 내가 개발(?)한 폭탄주가 있는데 샴페인과 코냑을 섞는 거죠. 비율요? 호텔에 가면 미니바 있죠? 그 안에 샴페인과 코냑이 있는데, 딱 그게 정량이에요.” 뜬금없이 웬 폭탄주냐 싶을 거다. “이 폭탄주의 이름은 ‘해변의 묘지’예요. 시인 폴 발레리가 묻힌 남프랑스의 공동묘지 이름이기도 하죠.” 그는 몇 해 전 몇 사람과 동행해 유럽의 묘지를 두루 살피는,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묘지를 순례하고 돌아온 그날 밤, 그는 사람들과 이 폭탄주를 마시며 ‘해변의 묘지’라 이름 붙였다. 발레리의 마지막 시구는 이렇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죽은 자들의 무덤을 돌아보며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밤 삶을 이야기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일상적인 삶, 그 안에 진실이 있어요!” 승효상, 그 역시 스트레스가 쌓일 땐 술로 위안을 얻는 평범한 일상을 산다. 하나 그는 ‘해변의 묘지’라는 자신만의 기억과 추억이 깃든 술을 마신다. 그 속엔 우리가 몰랐던 진실 한 모금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20대 때 경동교회를 설립했죠. 지금은 그렇게 못해요. 자신이 없어요.” 고 김수근의 제자였던 그는 20대의 젊음을 경동교회와 함께했다. 한데 그는 지금은 그 시절처럼 자신이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의 입에서 나온 자신 없다는 말은 좀 의외다. 그러나 이 땅에 남긴 그의 족적을 보면 한편으론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완벽하지 않은, 모자란 듯한, 불편함을 덧입은 자신만의 건축물을 이 땅에 소리 없이 그려왔다. 그는 자신이 만든 불편한 건축물 속에 익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더없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제주 서귀포에 ‘우리들 리조트’를 작업 중인데 1년 반은 더 걸릴 거 같아요.”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리조트 설계 도면의 1년 반 후를 기대하며, 이로재를 나서는 길. 그의 12월 더하기 31일이 궁금해졌다. “교회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