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염색한 천으로 만든 쿠션과 이불 커버 등을 모아 놓은 오렐리아의 작업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비쳐드는 풍성한 빛 덕분에 컬러의 아름다움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오렐리아가 식물에서 추출한 안료로 자연 염색한 패브릭 샘플. 다양한 천연 섬유에 염색한 다음 색감이 고운 것을 선별해 제품을 제작한다. 

초록빛이 가득한 정원과 주변 풀숲을 마주하는 거실. 높은 천장, 메자닌 구조의 스튜디오형 공간은 자유로운 감성을 펼치기에 좋은 조건. 남편이 오랜 시간 수집한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 벼룩시장에서 구한 앤티크 러그와 소품 등으로 소박하고 따뜻하게 꾸몄다. 거실에서 오렐리아가 아끼는 가구는 네이비 톤의 소파로, 그녀의 친구가 자신이 쓰던 소파를 새롭게 커버링해서 선물했다. 

2층에 자리한 부부의 침실. 큰 유리창은 채광을 위해 포기할 수 없지만, 외풍으로 인해 한기가 감도는 단점이 있다고. 오렐리아는 창문에 커튼을 다는 대신 창문과 침대 사이에 리넨을 텐트처럼 늘어뜨려 차가운 외풍을 차단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실내지만 계단 난간을 따라 덩굴 식물이 자라도록 해 내추럴한 인테리어를 연출했다 

자연의 색감을 좋아하는 오렐리아는 자신의 염색도 자연에 가깝기를 바란다. 흐린 하늘을 닮았지만 온기가 감도는 그레이 톤을 찾기 위해 실험 중이다. 

녹음이 우거진 정원은 오렐리아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또 하나의 우주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는 식물은 그녀의 염색 실험 재료가 되기도 하며, 또 이곳에 새로운 식물을 재배하면서 자연의 안료를 찾는다. 

Aurélia Wolff

파리에서는 어떤 집에 살았는지 몰라도 이곳은 아주 낭만적이네요. 네! 저희 부부도 이 집을 만난 걸 최대 행운이라 말해요. 파리 근교에 자리한 이브리 쉬르 센(Ivry sur Seine) 지역으로 센 강과 맞닿은 곳입니다. 자연환경도 좋지만 20세기 초에 지어진 창고와 공장이 많아, 지금은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각광받고 있죠. 저희 집은 원래 창고였는데, 1992년부터 조각가가 스튜디오로 이용하던 걸 3년 전 우리 부부가 구입하면서 집과 작업실이 있는 로프트로 꾸몄습니다. 집이 참 넓어 보여요. 빛이 많이 들어와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남편 루프와 3살 된 딸 알마 그리고 봄이 오면 태어날 아기까지 네 명이 함께 살기에 충분한 편이죠. 오픈형 메자닌 구조(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라운지 공간이 있는 구조), 유리창으로 된 박공지붕 덕분에 빛이 넉넉히 들어와 한층 넓어 보인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이웃을 초대하는 재미가 남다른데, 집 전체를 두고 보면 제 디자인 스튜디오와 염색 공방이 차지하는 부분이 더 크답니다. 집 개조는 부부가 함께했을 거 같은데, 맞나요? 맞아요! 우리는 파리를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이곳을 찾았어요. 그런 의미를 살리기 위해 남편과 빛이 최대한 많이 들고 자연을 조망할 수 있도록 개방된 구조로 만들었죠. 천장이 높은 개방형 구조는 자칫 황량해 보일 수 있어서 인테리어는 아늑하고 따스한 감성이 느껴지도록 연출하는 데 신경 썼습니다. 보기엔 이래도 겨울이면 집 안 공기가 꽤 차요. 가구와 소품, 어느 것 하나 새로 산 게 없어 보여요. 한국에서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제 남편이 스칸디나비안 인테리어를 매우 좋아해요. 특별히 좋아하는 가구 디자인과 브랜드가 있을 정도로요. 저는 그냥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정서, 그 자체를 좋아하고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와비사비(Wabi-Sabi: 미완성과 무상함에서 온 일본의 미학)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까요? 인위적이지 않고 고요한 느낌을 선호하는데 이를 제 디자인에도 접목하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이 집에 있는 가구나 데커레이션 모두 우리 부부의 취향으로 모은 빈티지·앤티크 가구와 집에서 물려받은 소품, 그리고 제가 염색한 패브릭 소품으로 꾸며졌지요. 

자연스럽게 취향을 드러낸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데, 비결이 궁금해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색상과 톤이에요. 제가 패션 디자이너로서 경험을 쌓을수록 깨닫는 게 있다면 바로 색상이 지닌 힘이에요. 그것도 자연에서 온 컬러를 어떤 톤으로 뽑아내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감동이 달라지거든요. 이 집에도 그런 원리가 적용되었어요. 남편과 의견이 일치한 건, 부드러운 톤으로 집을 꾸미자는 것이었죠. 내추럴 우드, 차분한 그레이, 따뜻한 흙의 색감을 지닌 가구와 소품을 조합하는 걸로 이를 표현했는데, 패브릭 침구류는 모두 제가 자연에서 추출한 안료로 염색한 것이에요. 그런데 딱히 색상을 계획한 듯한 인위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군요. 식탁 위에 놓인 빨간색 꽃과 2층 복도에 놓은 빨간 잎의 나무를 보세요. 저희 부부가 추구하는 부드러운 자연 톤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런 원색적인 포인트도 필요해요. 다만, 이것이 자연물이기에 원래 추구하는 내추럴 소프트 톤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은 거죠.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만큼 패션과 리빙 디자인에도 같은 생각을 반영하나요? 제가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이름은 ‘로사 타피오카(www.rosatapioca.com)’예요. 눈치챘을지 모르겠는데 꽃과 작물 이름이죠. 여성 기성복 라인인데 모두 자연스러운 색감과 부드러운 활동성을 중시하는 옷감으로 만들죠. 그리고 2년 전에 시작한 홀(WHOLE)이라는 브랜드는 아이를 낳고 나서 만들었는데, 로사 타피오카에서 만들지 못한 것을 보완한 브랜드예요. 100% 오가닉 패브릭과 식물에서 얻은 원사로 만든 천, 식물에서 얻은 염료를 사용해 홈&키즈 용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만의 자연 염색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생각이 한층 넓고 깊어졌어요. 다음 세대가 건강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 진지한 물음 끝에 발견한 답이 바로 식물에서 추출한 안료였어요. 파리에 살 때, 우연히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보게 되었는데, 아보카도 껍질이 많았어요. 혹시 이를 활용해 염색을 하면 무슨 색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에 시작한 실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지요. 아보카도 껍질로 염색하면 무슨 색이 나오는지 아세요? 분홍색이에요!

식물을 활용한 자연 염색은 예부터 계속 이어져왔을 텐데요. 제가 추구하는 자연 염색은 안료 자체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를 의미 있는 디자인으로 승화하는 거예요. 여기서 차별화되는 점은 가능한 버려지는 식자재 쓰레기에서 안료를 찾자는 겁니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과일과 채소 껍질, 뿌리 그리고 카페에서 나오는 찻잎 등이 대표적이죠. 이곳으로 이사한 후에는 주변 숲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꽃과 풀은 물론 염료를 추출하는 식물을 직접 재배, 저만의 컬러를 만들려고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염색과 안료 추출은 전혀 다른 작업 아닌가요? 전문가의 지식과 도움 없이는 힘들죠. 제가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안료를 뽑아내고 어떤 옷감에 염색해야 효과적인지 등의 상용화 과정이 남아 있죠. 이를 위해 식물학자, 화학자, 그리고 오가닉 패브릭 제조자를 만나 솔루션을 찾았고,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를 받았습니다. 컬러에 대한 열정, 결국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디자인으로 느껴집니다. 나의 소망은 경제, 환경, 디자인이 선순환을 하는 거예요. 근교에서 재배한 작물, 이를 사용하는 로컬 푸드 레스토랑, 여기서 버려진 식물 쓰레기에서 안료를 얻고 지역 공방에서 옷감을 염색하고, 디자이너와 수공예가들이 순수한 자연의 색과 촉감을 지닌 건강한 생활용품과 옷을 제작하며 지역 주민과 세계 사람들이 구입하고, 운명을 다한 제품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식이죠. 이런 시나리오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희망적이에요. 소비자도 많이 늘어나고 있고, 2016년 새해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더 큰 공방을 꾸려서 다양한 제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미 에코 패브릭과 니트도 개발한 상태예요. 다만 저는 여기에 여러분을 감동시킬 컬러만 더하면 됩니다. 컬러는 가장 힘 있는 디자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