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의 일반 상식, 라면은 ‘양은 냄비’에 끓여야 제맛이다. 집집마다 양은 냄비가 하나쯤 있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지난 9월 말 출간된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를 내놓으면서 출판사는 양은 냄비를 선물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준비한 냄비 1800개는 순식간에 동났다. 독자들이 김훈의 글을 기다린 것인지 아니면 양은 냄비를 기다린 것인지 아리송할 정도다. 독자들의 호불호는 차치하고, <라면을 끓이며>와 함께 독자 손에 쥐여진 냄비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허용한 포인트 적립 범위를 위반해 제재를 받았다.

마케팅인가, 세일즈인가   
언젠가부터 책을 사면 무언가 끼워주는 일명 ‘도서 굿즈’가 나름 유행이다. ‘언젠가’는 알다시피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난 1년여의 시간이다. 할인, 즉 가격으로 승부할 수 없으니 덤을 얹어서라도 승부하겠다는 심산이다. 양은 냄비가 시작은 아니다. 이전에도 수첩, 색연필, 책갈피, 영화표, 담요, 목침 등을 책과 함께 주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출판사 차원이 아닌 인터넷 서점 차원의 도서 굿즈도 많았다. 알라딘은 일정 액수만큼 책을 사면 베개, 텀블러, 키홀더 등을 선물로 준 바 있다. 4만원이나 5만원에 맞출 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은 “차라리 ‘굿즈숍’을 따로 내달라”고 호소할 정도였다. 서평 이벤트도 곧잘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다. 여러 방식이 있지만, 제공받은 책을 읽고 인터넷 서점의 후기 코너에 글을 올리면 특정 상품을 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서평 이벤트 역시 도서정가제 위반인 경우가 많다. SNS를 통한 홍보는 이제 필수이고, 저자 강연회 등을 자주 여는 고전적 방법도 사실상 출판 마케팅의 일환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출판사들의 마케팅 기법은 조금씩 변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좋은 책만 내면 팔린다는 인식은 이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한국 출판사들의 마케팅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고 감히 진단하고 싶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의 행보는 정확하게 말하면 마케팅이 아니라 책을 파는 방법, 즉 세일즈 기법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마케팅의 사전적 의미는 ‘상품과 용역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원활히 이전하기 위한 비즈니스 활동’이다. 그 일환으로 시장 조사도 하고, 상품화 계획도 세우며, 판매 촉진과 광고 홍보도 한다. 쉽게 말하면 도서 굿즈, 서평 이벤트 등은 책을 팔기 위한 마케팅의 하위 구조, 즉 세일즈 활동인 셈이다.
출판 마케팅이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쓰이지만, 사실 출판사들은 마케팅다운 마케팅을 못하고 있다. 마케팅은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확보하는 일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출판사들은 서점이라는 단 하나의 채널을 세일즈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마케팅 활동을 통해 새로운 채널 혹은 매체를 창출하지 못했다. 이 같은 인식이 없다면 출판사의 마케팅, 아니 세일즈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최근 출판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단어는 ‘발견성’과 ‘연결성’이다. 발견성이란 “독자가 스스로 구매하고 싶은 책을 찾아낼 가능성”을 말한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다시 모바일로 서점이 옮겨가면서 책은 검색이 가능할 뿐 진열은 난망한 일이 되었다. 진열이 되지 않으니 상시적으로 책이 독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각종 언론 매체의 북 섹션 코너는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상태다. 주변에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도서관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제 책은 마음먹어야만 찾아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책의 발견성을 높이려면 책과 독자를 잇는 ‘연결성’을 높여야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 이를테면 SNS는 기본이고 책과 연계한 다양한 사업을 확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책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고객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것이 출판이 벼려야 할 진정한 마케팅의 기본기다.

출판 마케팅이 사는 법
사람들은 말한다. 김훈‘급’ 작가의 책을 팔면서도 양은 냄비 같은 것을 끼워주어야 하느냐고. 입이 제법 걸쭉한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했다. “김훈 정도면 글로만 승부해라.” 이런 와중에 재미있는 일이 하나 발생했다. <라면을 끓이며>가 도서정가제 위반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당수 독자들이 각종 SNS에 “냄비가 어때서” “난 냄비 좋아” “난 냄비 두 개” 등의 글을 올리며 출판사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 출판사는 오랜 기간 독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해왔다. 각종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독자들의 눈길을 자사 책에 묶어두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이른바 팬덤 독자를 형성한 것이다.
이 대목에 하나의 시사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이 출판사의 양은 냄비 세일즈에 동의하지 않는다. 책은 책 자체의 품격이 있고, 그 품격은 저자와 출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책의 격을 지켜내야 할 의무와 책임은 온전히 출판사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 합의를 깨는 과도한 경품은 책과 저자의 격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아울러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문학동네가 창사 이래 매진해온 독자와의 스킨십 강화 전략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어 마땅하다. 자사의 책을 팔기 위한 전략 혹은 돈 있는 출판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쉽게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독자들이 나서서 “냄비가 어때서”라고 말할 정도라면 해당 출판사가 독자들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지 않나. 이런 작은 노력이 이른바 마케팅이며, 위기에 선 출판사를 구할 수도 있다. 독자의 눈을 자사에 집중하도록 하는 일이 바로 요즘 출판의 화두인 발견성과 연결성을 실천하는 일이다. <장미의 이름>의 작가이자 철학자, 기호학자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는 책을 우주에 비유했다. “일단 완벽에 도달한 이상, 더 멀리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정도로 책은 완전무결한 상태다. 이 완벽에 도달한 책을 독자와 연결하기 위해 출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마케팅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마음과 혼을 다해 먼저 책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감히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