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좋아한다

아즈마 히데오의 자전 만화 <실종일기> 뒷부분에는 알코올중독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투병 일기가 실려 있다.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은 그 투병 일기를 한 권 분량으로 자세히 풀어놓은 것이다. 툭하면 가족을 버리고 가출하고, 노숙하며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술집에서 버린 술병 바닥에 남은 술을 모아서 마시다 결국 알코올중독에 빠지는 이 쓰레기 같은 남자는 만화를 그릴 때 빛난다.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다 못해 개그로 승화시키는 실력이 출중하다. 알코올중독자 모임에서 자신의 금주 다짐을 발언할 때도 좋은 개그가 없나 고민했다더니, 뼛속까지 개그 작가인 게다. 이 책은 몇 가지의 효능이 있다. 특히 나처럼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효과 만점이다. 첫 번째로 “아, 나는 이 정도는 아니네”라는 안도감이랄까. 내가 매일매일 그날치의 술을 마시는 걸 사람들은 걱정한다. 내 경우 대체로 태평하지만, 가끔은 울컥 걱정이 몰려오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나 따위는 범접하지 못할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저 나는 야쿠르트를 막걸리인 척하고 마시는 꼬꼬마에 불과했던 셈이다. 알코올중독자는 절대로 완치가 되지 않는다며, 책 속의 의사는 “오이절임이 생오이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그 비유에 따르면 나는 ‘오이절임은 술안주로 좋은데’라고 생각하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 효능은 만약의 경우 알코올 중독증에 걸린다면 그 이후 어떻게 될지 구체적인 정보를 준다는 것이다. 알코올 병동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 묶어놓고 가둬놓나? 퇴원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까? 미지의 세계는 시트콤처럼 천진난만하게 펼쳐진다. 무턱대고 희망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저 절망뿐인 세계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삶은 계속된다. 내가 누구건, 그곳이 어디건. 세 번째 효능은 눈이 즐겁고 웃긴다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간호사들은 전부 귀엽네요”라는 말에 “간호사들을 정말 신경 많이 써서 그렸으니까요. 앞으로도 신세를 지게 될지 모르고”라고 답한다. 작가의 사심 덕분에 독자가 즐거워진 셈이다. 혹시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싶어서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말리겠지만, 부수적인 즐거움치고는 괜찮다. 꽤 괜찮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술꾼이라는 민폐쟁이들 

<실종일기>에서 ‘일하기 싫어 병’에 걸려 탈출했던 남자, 이번엔 ‘술 안 먹곤 못 견뎌’ 병에 걸려 감금되었다. 본인의 체험이 아니고선 그려낼 수 없는 <실종일기 2: 알코올 병동>의 생생한 이야기들이다. 누구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인생의 어두운 장면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하나하나를 살뜰하게 챙겨 보게 만든다. 

알코올 병동의 사람들은 다시는 오이가 될 수 없는 오이지 인간들이다. 단지 술을 끊지 못한다거나 간이 나빠졌다거나 하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다. 뇌 자체가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망가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병동의 모습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정신병원이 떠오른다. 직접 만나보라면 끔찍하겠지만, 폐쇄된 극장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흥미가 동하기는 한다. 게다가 이 만화가의 동글동글한 그림체와 유머 넘치는 표현이라면. 

“병원은 싫어. 내 술 내놔.” 기본적인 입소의 모습은 이렇다. 그러고 어쩔 수 없이 병동에 붙잡힌 뒤에는 제각각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언제든 나가기만 하면 다시 술을 마실 거라 소리 지르는 이도 있고, 신참만 들어오면 속여먹는 나쁜 습성의 사람도 있고, 그 좁은 왕국에서 여왕이 되려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면 하드코어한 시트콤이다. 한참을 깔깔대며 만화를 본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산뜻하게 일상으로 컴백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술을 가끔 입에 대기는 하지만, 꾸준히 즐기지는 않는다. 솔직히 술 마신 인간들의 뒤치다꺼리가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술독에 빠진 인간들보다 그들을 건사하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갔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출했다가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돌아온 아버지를 병원에 끌고 가야 하는 가족들. 완전한 회복이라는 희망조차 없는 상황에서 반미치광이들을 다루어야 하는 병원의 스태프들. 당사라자고 왜 그걸 모르겠나? 조금씩 술을 털어버리고 제정신이 돌아오면서 자신이 얼마나 폐를 끼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술로 달아나기를 바라는 거겠지? 아즈마 히데오에게는 그 비참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머이고 만화였는지도 모르겠다. 만화가라서 다행이야.

-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