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를 뚫고 공사가 한창인 김용택 시인의 생가.

한옥 생가 곁으로 시인의 살림집과 그를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조그마한 강당이 들어설 예정인데, 그는 문학관이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김용택의 작은 학교’가 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책. 그의 책장엔 직접 산 책과 누군가가 보내온 책들이 아웅다웅 어우러져 있다. 

새로 공사 중인 살림집 창문 너머로 한옥 생가의 운치가 깃든다.

전라북도 임실의 진뫼마을. 섬진강 시인이라는 별칭으로 더 익숙한 시인 김용택의 고향집이다. 가구라야 열두 가구가 전부지만 넉넉한 기운이 느껴지는 산세가 아닐 수 없다. 마을 앞으론 섬진강이 고요히 흐르고 마을 어귀엔 듬직한 정자나무가 수문장처럼 손님을 맞는다. “내가 심은 나무여. 스물일곱 살 땐가? 원래 우리 집에 있던 느티나무인데 여기다 옮겨 심었어.” 마을 어귀를 지키고 선 이 늠름한 느티나무는 스물일곱 청년에서 칠순을 코앞에 둔 넉살 좋은 김용택의 삶을 온전히 함께해왔다. 훌쩍 자란 느티나무만큼, 마을 주변으론 자전거 길이 곱게 단장됐고 소박한 국숫집도 하나 생겼다. 정자나무 옆의 시골 국숫집. 대접 수북이 내어온 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넘기며 섬진강에 스미는 여름 장마의 물소리를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마을에, 시인이 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조화이지 싶다. 장맛비를 뚫고 시인의 고향집은 공사가 한창이다. 

“생가인 한옥은 아직 공사를 더 해야 해. 왼쪽 새 공간이 우리가 살 집이고, 오른쪽이 강당으로 쓰일 공간이고.” 마치 관광 코스처럼 답사차 들르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그의 고향집. 임실군에선 그 땅을 버려두는 대신 문학관을 제안했다. 김용택 역시 그 뜻에 따라 생가 터를 기부하기로 했다. 공사의 명칭은 거창하다. 김용택 문학관. 그가 태어나고 자란 한옥 생가를 중심으로, 한 채는 살림집, 다른 한 채는 강당 용도로 쓰일 자그마한 새 공간을 짓는 일. 어느새 외부 골격은 제법 갖춰진 품새다. “50명 정도 들어갈 작은 강당인데, 이름은 아직 고민 중이야. ‘김용택의 작은 학교’ 정도가 좋겠다 싶기는 해.” 그의 말마따나 그를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자, 그간 그의 책장을 채운 수많은 책을 한자리에 모은 서재 정도가 될 거라고 그는 말한다. “세월이 지나 내 문학이 사람들한테 얼마나 남을랑가 몰라도 내가 살았던 삶의 터전잉게….” 문학관이라는 거창한 공간을 지을 나이도 아니고, 그는 그저 자신이 살던 터전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니 김용택 문학관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옥이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 다른 거 생각할 것 없이, 안사람 편하게 지었어~.” 새로 지은 건물이 생가처럼 한옥이 아닌 게 아쉽다고 했더니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어떤 대단한 모임 약속보다 ‘나는 우리 안사람하고 밥 먹는 게 더 좋다’는 이 애처가 시인의 뜻대로, 집은 겉멋 부리지 않고 삶에 가장 편한 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7월 말 예상됐던 공사는 아직 언제 끝날지 미지수지만, 신축 건물이 완공되면 지금 사는 전주의 아파트를 팔고 다시 이곳으로 이사할 계획이란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얼마 전 출간된 시집으로, 벌써 6쇄를 찍었다. 

왜 시가 필요하냐고 묻거든 

“편안하고, 너무 슬프지 않은 시. 이해하기 쉽고 뭣보다 마음을 잡아주는 시를 골랐지.” 얼마 전 출간된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이 책은 엄밀히 말해 김용택의 시집은 아니다. 일종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할까? 기형도, 황지우, 이병률, 기욤 아폴리네르, 프리드리히 니체, 요한 괴테 등 그의 마음을 움직인 시, 독자 역시 꼭 한번은 읽어보고 써보길 바라는 시 101편과 그의 시 10편, 총 111편으로 구성됐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유명 시인들의 시 모음집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시집을 펴는 순간 ‘아~’ 하는 이해의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왼쪽 페이지는 시인의 원문이, 오른쪽은 독자가 직접 시를 따라 쓸 수 있는 빈 공간이 할애되어 있다.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는 거지~. 시 속에는 욕심과 사심이 없어. 희망을 얘기하는 게 시야. 써놓고 나면 나도 모르게 다른 데 가 있어.” 시 읽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접 따라 쓰며 시인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 그러다 보면 평온한 그 어딘가의 세계 속에 안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그는 말한다. ‘감성 치유 라이팅 북’이라는 시집의 콘셉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여행만이 능사는 아닐 터이니. 

“시 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게 중요해. 글은(시는) 자기 삶을 쓰는 거야. 글을 쓰면 세상이 달라져. 옛날 과거만 봐도 시를 이해하는 게 중요했어. 관리란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인데 시는 생각을 넓혀주고 표현력은 물론 철학적인 삶의 태도도 따라와.” 그는 모든 것의 기본은 글쓰기라고 말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들의 글은 짜깁기가 대부분이라고 그는 깊이 한탄한다. “철학이 없으면 글을 못 써.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고 예술이 필요하고, 시가 필요해.” 그는 인터뷰 내내 시 얘기보다는 철학 이야기에 8할을 할애했다. “세상에 장한나 같은 타고난 천재는 많지 않아. 자기 분야에 들어서서 10년 이상은 해야…(궤도에 오르고) 하물며 염소를 키워도 10년이 필요해. 근데 타고난 천재성은 40세 이하에 다 써먹어버려. 그러니 40세 이후엔 철학이 더 필요해.” 고매한 철학자만이 아니라 시인도, 미술가도, 월급쟁이 직장인도 철학이 필요하다. 그것도 40세 이상이라면 더더욱. 일상이 무료해지고, 일이 지겨워진다는 넋두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칼 같은 그의 답이 돌아온다. “철학이 없어서 그래! 철학이 떨어지면 삶이 재미가 없어. 인생이 새롭고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새로운 세계를 향한 공부. 그러기 위해선 분야 불문하고, 끊임없이 읽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렇다고 철학이, 예술이 대단히 거창한 건 아니다. 

“우리 안사람은 밥, 살림이 예술이라고 생각해. 농사짓는 사람은 사는 게 공부야. 자연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어. 삶이 예술이고, 다 시인이야.” 그의 어머니는 글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저 농사가 전부인 삶을 살았다. ‘6.25전쟁이 끝나고 집에 와 보니 너하고 나, 셋이더라. 집터만 남았더라. 염병할 놈들이 싸울 거면 지들끼리 싸우지 왜 장독은 깨고 지랄이야.’, ‘살다 보면 먼 수가 나는디 왜 죽어… 우리가 모르는 수가 얼마나 많은디….’ 돌아보니 그런 어머니의 한마디 한마디 말이, 바로 시였노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손수 스물일곱 청년 시절 마을 어귀에 심었다는 느티나무.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그를 묵묵히 감싼다. 

그곳에 시인은 없었다 

임실 깡촌에서 태어난 김용택. 그에게는 공부와 책보다는 지게질하고 모내기하는 농사일이 더 가까웠다. 하물며 초중고 시절조차 책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스물한 살, 교사 생활을 막 시작할 때였지. 그때는 학교로 월부책 장사가 왔어. 처음으로 산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전집 7권이었어. 그다음엔 헤르만 헤세 전집. 책이 재밌더라고. 읽다 보니 세상이 궁금해졌어.” 그 시절, 임실에서 30~40분 거리인 전주 시내엔 헌책방 거리가 많았다. 그는 학생들이 방학하는 날이면 그곳에 가서 헌책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그 무게도 만만치 않아, 일단 버스에 싣고 온 뒤, 정류장에서 집까진 지게를 지고 날랐다. 가난했던 그 시절 그에겐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돈 생각 안 하고 책을 마음대로 사 보는 것, 돈 생각 없이 담배 사 피우는 것. 소풍 갈 때 멸치를 싸가는 것(웃음). 나는 지금도 멸치 대가리도 다 먹어~. 근데, 이렇게 희망이 다 이뤄진 사람 봤어?(웃음)” 그는 늘 바라는 바도 없었고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내 생각을 쓰다 보니 내가 시를 쓰고 있더라고. 시를 쓴다고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 지금까지 쓴 시도 몇 편만 좋지, 좋은 게 없어(웃음).” 그에게 시는 목표가 아니라 삶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삶을 살다 보니 시집 <섬진강> <나무> <그 여자네 집>이 나왔고, 산문집 <그리운 것은 산 뒤에 있다> <시가 내게로 왔다> 등이 그의 곁에 있었다. 

“나는 친구도 별로 없고 술도 좋아하지 않아. 저녁 8시에 자면 새벽 3시에 일어나, 피곤하면 4시. 그때부터 7시까지 글도 다듬고 그 이후엔 운동도 하고 밥 먹고 강연하고.” 정년퇴직을 한 후 일주일에 2~3일은 강연을 나선다.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섬진강과 내가 무슨 관계냐는 거야. 관계는 무슨 관계야. 그냥 앞에 흐르는 강이지. 의미는 개뿔~(웃음).” 사람들은 그를 ‘섬진강 시인’이라 칭하지만 그는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섬진강은 그저. “만날 강 보고 살았지 뭐~. 누군가는 또 나보고 섬진강 지킴이래. 내가 그랬지. 나는 나도 못 지킨다고. 그러니 그런 황당한 이야기하지 말라고.(웃음)” 38년 동안 매일 시골 초등학교를 출퇴근하며 오갔던 길, 그리고 그 곁을 흐르던 섬진강. 그에게 섬진강은 거창한 영감의 산실이 아니다. 그저 매일 함께한 터전이자 삶일 뿐. 

“내가 나무를 참 좋아하는데, 나무는 정면이 없어. 보는 쪽이 정면이야. 예술은 이렇듯 경계를 지우고, 정면을 지워야 해.” 사람들은 보통 배운 대로 세상을 본다. 

그러나 배운 대로 살다 보면 중요한 걸 놓치고 만다. 김용택은 한 번도 시를 배운 적이 없다. 다만 죽을힘을 다해 삶의 이야기를 썼고 그것이 시가 되었을 뿐. 하여, 그곳 섬진강엔 시인이 살지 않는다. 허리 굽은 채 열심히 살아가는 시골 노인들과 시를 통해 삶을 사는 김용택이 있을 뿐. 섬진강, 그 땅의 온화한 품 속에서 그는 시로써 토닥인다. 삶은 그런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