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작업실은 작업 중인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다른 색의 흙을 사용한 작품과 기존의 형태에서 조금씩 변형되고 규모가 커진 작품이 특히 눈에 띄었다. 굽고 칠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기에 그녀의 작업실은 늘 조용한 듯 분주하다.

등 뒤 책장에는 책이 꽂혀 있고 그 앞으로 작은 인형과 피겨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그녀의 작업실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햇살을 통해 바깥세상과 통하고 있었다. 

이윤희 작가는 이제 서른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젊다면 젊은 나이. 그녀의 작품은 눈으로 보면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정체성이 확고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줄곧 도자 작업을 해왔다는 그녀. 꼬마가 연필을 쥐듯 바짝 잡은 작은 붓으로 도자에 색과 문양을 그리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윤희 작가를 만나기 전,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적인 요소와 먼 과거, 어느 시대라고 말하기도 힘든 향취가 백자 위에 드리워 있었다.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아기자기한 모습의 소녀와 소년은 팔다리가 없거나 울고 있었고, 몸통이 동물 형체로 되어 있기도 했다. 괴기스럽거나 무섭지는 않다. 다만, 어떤 생각으로 이런 작업을 했는지 궁금해졌을 뿐이다. 

“보다시피 옛날 것을 좋아해요.” 그녀의 작업실 벽 한쪽에는 박물관이나 고서에 나올 법한 문화재와 오브제, 패턴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성화(聖畵)나 불화(佛畵)도 좋아해요. 애초 문화재 복원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할아버지도 절을 짓는 분이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없진 않았을 거예요. 할아버지를 따라 절에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요(웃음).” 2000년대 말경이었다. 국내에 신진 작가의 출현이 붐을 이룬 시절. 이윤희 작가는 운이 좋게 그 시기를 잘 탔다고 말했다. “그때는 공모전이나 신진 작가를 위한 전시가 자주 열렸어요. 그래서 갤러리에서 연락도 오고 작품을 사는 이도 많았죠.”

흙으로 하는 일은 느리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습도나 온도에 다른 어떤 재료보다 예민하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형태를 변형, 조합하여 하나의 큰 오브제로 완성하는 그녀의 작품은 하나 만드는 데 평균 한 달 정도 걸린다. 스토리를 구상하고 스케치한 다음 흙이나 석고를 빚어 오브제의 원형을 만든다. 그리고 그 원형의 석고 몰드를 뜨고 흙물, 슬립을 넣고 빼낸 다음 또다시 변형 작업을 시작한다. 얼굴 표정이나 머리카락, 손 모양, 동작을 변형해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작업이다. 어찌 보면 그녀가 좋아한다는 인형 만들기와 같기도 하다. 

“대학생 때, 처음 입체 작업을 시작한 그때보다 작품 규모도 커지고 요소도 풍성해졌어요. 요즘은 주로 벽 작업을 하는데, 말하자면 벽화 같은 거예요.” 그녀의 작업에는 이야기가 있다. ‘한 소녀가 여행을 한다’는 것으로 스토리는 시작된다. 초창기에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건물, 각 장면을 떠올려서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녀의 작품을 본 이들은 그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이윤희 작가는 벽화 작업을 시작했다. 벽화는 그림을 통해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그녀의 작업 역시 그와 같다. 일정한 프레임 안에 그녀는 이야기 속 인물과 주변 상황, 의미를 형상화하고 조합한다. 그녀의 작업은 일반 회화보다는 흙이라는 재료의 한계, 입체 작업의 어려움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니까 목조도 하고, 금속도 배웠어요. 그런데 만들어서 표현하는 데에는 흙이 가장 좋은 재료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그만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돌, 목조, 금속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재료라고 할 수 있죠.” 

작업실을 찬찬히 둘러보면 그녀의 작업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한쪽 벽에는 그녀가 구상한 오브제의 스케치가 붙어 있고, 여러 개의 붓들, 유약 샘플, 물감까지 여느 도자 작업실에서 보기 힘든 재료들이 눈길을 끈다. 이윤희 작가는 현재 파인 아트에서 모티프를 얻어 오일 램프, 화병 등의 상품도 만들고 있다. 

그녀는 올가을 ‘메종&오브제 파리’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고, 프랑스 공예 비엔날레도 참가할 예정이다. 이윤희 작가는 스스로를 ‘얼마 안 된 작가’라 표현한다. 그러나 공예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은근 집요하다. “도서관에 가서 고서 보는 것을 좋아해요. 요즘은 디자인 책도 보는데, 역시 제 관심은 동양적인, 신화적인 것에 쏠리더라고요. 외국에 가면 서점에서 오래된 책을 잔뜩 쌓아놓고 보다가 사오곤 해요. 패턴과 관련된 책도 자주 보고요.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좋아해요. 장르를 불문하고요. 제 작품이 소녀스러운 느낌, 말랑말랑한 느낌이 드는 게 이런 제 취향과 연관되어 있겠죠.” 그렇다. 그녀의 작품은 귀엽고 예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네덜란드 회화 중에 바니타스를 예로 들 수 있겠다. 화려한 꽃이 한데 어우러져 꽃병에 꽂혀 있는 정물화지만, 그 의미는 죽음이다. 꽃은 곧 시들어버리니. 즉, ‘죽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직설적으로 그려내고 있지 않다는 데에 그녀의 작품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오브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작품을 괴기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간혹 있어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외국에서 어떤 전시를 본 적이 있어요. 죽음과 삶에 관해 생각하게끔 하는 전시였는데, 작품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채집한 곤충을 화려한 색으로 염색해서 만든 작품이거나 닭 뼈 같은 것들로 아름다운 꽃을 표현하는 식이었죠. 가까이에서 보기 전까진 아름답기만 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인상은 더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 욕망 같은 단어를 얘기하거나 떠올리면 우울해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인간과 세상의 본질적인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입견에서 오는 암묵적인 제한, 규제를 벗어나고도 싶었고요.” 

낯선 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섦은 익숙함이 있기에 느낄 수 있다. 어느 평론가가 이윤희 작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두 가지 유형이 있어요. 하나는 골방에서 자기 세계만 너무 깊게 파는 작가, 다른 하나는 현실 세계를 사는 작가.’ 그녀는 후자보다 전자에 가깝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낯설지만 사람을 사로잡는 힘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