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로 만든 차고 도어와 콘크리트 담 위로 자연스럽게 담쟁이 덩굴이 뻗어 있는 외관. 길가에서 마주한 이 집의 첫 인상이다. 이 집에 올라가면 상파울루의 마천루를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전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집. 광고 디렉터 앨런과 그래픽 디자이너 티치아나 스트로젠베르크스 부부의 집은 도심 속 무릉도원과 같다. 

“길가에서 보면 이 집은 그저 콘크리트 담벼락에 단풍나무로 만든 대문이 있는 매정한 느낌의 모던한 건물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현관에 들어선 순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림이 펼쳐지죠. 엄청 놀랄 정도로요.” 

상파울루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이사이 웨인필드(Isay Weinfeld)는 3년 전,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부부를 만났다. 브라질 광고계의 신동으로 명성을 떨친 앨런과 그래픽 디자이너 티치아나 스트로젠베르크스 부부가 실용적이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겸손한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 건축가 웨인필드는 호텔과 레스토랑, 그리고 서점 등 주로 공공 장소를 디자인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그래서인지 주택과는 인연이 깊지 않았다. 하지만 디자인 전문가 스트로젠베르크스 부부의 눈에는 웨인필드의 건축과 뛰어난 인테리어 감각은 집에서도 그 빛을 발휘할 것으로 보였다.

“스트로젠베르크스 부부는 제가 디자인한 서점을 보고 한눈에 반했대요. 상파울루는 전 세계에서 복잡하기로 유명한 도시인데, 이런 곳에서 부부는 고요한 삶의 터전을 원했어요.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다 흰색만 사용해 완성한 서점 인테리어를 보고 제게 집 건축을 의뢰했죠.” 웨인필드에게는 부부의 주택이 또 하나의 도전이었을 터. 복잡한 도시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조용한 공간을 조성하려면 주변 경관과 소음, 편의성 등 다양한 요소를 면밀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었다.

left 3층 정원 데크에는 메인 수영장 외에 원형으로 뚫어 놓은 작은 수영장도 있다. 정원은 열대림이 자연스럽게 우거지길 바라, 일체 인위적인 디자인 없이 연출했다.  Right 2층에 자리한 부부 침실. 창문을 열면 데크와 정원을 하나의 공간으로 아우를 수 있다. Bottom 미니멀한 일자형 주방. 상파울루 도심의 스카리라인과 집을 둘러싼 푸른 나무 숲을 바라보며 일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부부는 그에게 몇 가지 조건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첫째, 모든 방과 방이 연결되어야 하고, 각각의 방은 모두 정원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집 자체의 장식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집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 안의 모든 공간은 가족이 활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에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이처럼 거주할 집에 대해 부부가 그린 확고한 그림은 건축가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쓸모없는 미사여구에 집중하면 오히려 뻔한 그림을 만들지만, 실거주자의 생활을 탐독해 공간에 반영하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티치아나는 덧붙여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 집에는 아이가 4명이나 있는데, 어떻게 쇼룸 같은 아름다운 집을 꾸밀 수 있겠어요. 저희가 원하는 집은 리얼 라이프랍니다!” 아이 4명을 돌보는 아내의 바람은 분명했다. 가족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일에 집중하더라도 같은 곳에 있어 금세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세미 개방형 구조가 디자인의 단초가 된 것. 그리고 이는 가족의 실생활이 펼쳐지는 3층에서 실현되었다. 

가로로 긴 형태의 3층. 공간과 공간은 우드 패널로 제작한 파티션 월로 분리하되, 양 끝을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비워놓아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연출했다. 파티션 월에는 사진 작품 및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으며 소파는 B&B 이탈리아 제품, 나머지 우드 라운지 체어는 근교 빈티지 숍에서 구입한 것이다. 

“이 집은 가로로 긴 형태의 건물인데, 3층으로 구성했어요. 집터가 높은 곳에 자리해 전망을 살리고 싶었고, 그 대신 정원은 프라이빗하게 연출하고자 했죠.” 웨인필드는 지형상 축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1층에는 주차장과 앨런의 녹음실을 마련했고, 2층에는 침실 4개가 정원을 따라 일렬로 이어지게 했다. 모든 침실에는 욕실이 딸려 있어 각자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침실과 정원 사이의 유리창을 열면 모든 방이 하나로 연결된다.

“정원과 침실 사이 데크에는 우리 가족의 작은 헬스 공간이 있어요. 지금은 탁구대를 놓아 운동하기 그만이죠.” 어느덧 10대 문턱에 들어선 첫째 아들과 탁구를 칠 수 있게 된 데 감동받은 아빠 앨런은 이 공간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 가족이 집 안에서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일명 ‘헬스 룸’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리 가족은 생활을 대부분 3층에서 해요.” 티치아나의 설명에 따르면 3층은 하나의 원룸이나 마찬가지. 길게 뻗은 직사각형 구조 안에 순서대로 주방, 다이닝 룸, 거실, 미디어 룸이 자리하고 있는 데다 이 모든 공간은 이 집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열대림 무성한 정원과 그 안에 펼쳐진 수영장과 배구 코트를 마주하고 있으니 생활하기에는 한없이 실용적이나 그 공간과 자연이 연출하는 그림은 영화 속 그림 같다.

위부터 오피스가 아닐까 싶을 만큼 프로페셔널한 장비를 갖춘 남편의 작업실.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주택에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틈틈이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시간이 생겼다는 것.

“3층의 콘셉트는 세미 개방형 구조예요. 우드 패널로 공간과 공간을 나누되 문을 열지 않고 바로 옆 공간과 정원이 한 번에 소통할 수 있도록 우드 패널 양쪽을 비운 형식을 택했죠.” 그 덕분에 생활이 편해진 건 엄마 티치아나다. “남편은 미디어 룸에서 풋볼 게임을 시청하고, 저는 손님과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다이닝 룸에서 스낵을 먹거나 정원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일어나니 신기하고 살림하는 엄마이자 아내로서는 편안할 따름이죠.”

부부가 추구하는 건축의 기능성에 대한 욕망은 건축 자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꽤 규모 있는 3층집이나 최신의 고급 외장재를 선택하기보다는 가족이 더 아늑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자재를 고른 것. 3층 거실과 테라스 바닥은 광택이 없는 대리석으로 마감해 자연에 가까운 느낌이 들도록 겸손하게 표현하고, 천장과 벽면은 재활용 목재로 별다른 기교 없이 단순하게 직선형으로 마감했다. 정원을 둘러싼 담과 실내 끝에 보이는 기둥도 별도의 외장재로 포장하지 않고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했다.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은 소재가 심플하지만 자연스러운 풍경을 완성했다.

“스트로젠베르크스 부부는 디자인 전문가답게 합리적인 스타일을 중시하더군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모든 요소가 집을 더 고급스럽게 해요. 생활은 편리하고 모던하지만, 브라질 밀림 속에 사는 것 같은 고요함을 원한 부부의 소원은 이렇듯 자연스러운 배경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할 테니까요.” 건축가 웨인필드는 이 집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거대한 콘크리트 도심 속에 자신이 새겨 넣은 건 창문을 열면 야자수, 대나무 그리고 과실수가 손짓하는 진정한 파라다이스라고.

left  2층의 침실이 모두 다 연결되어 있는 구조의 끝 부분은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작은 룸으로 구성했다. 현재는 아이들의 탁구 연습장으로 활용 중이다. Right 3층의 다이닝룸 벽면에는 형광등으로 만든 미술가의 작품이 실제 조명으로도 한 몫을 한다. 형광등 아트 작품은 <Luz Natural>으로, 브라질 에두아르도 코이브라(Eduardo Coimbra)가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