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은 부담스럽다는 오해가 많은데, 사실은 한 끼 식사를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해줄 따뜻한 서비스가 있는 곳이다. 사진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라카테고리의 모습 

최근 해외에서 공부하고 경력을 쌓고 돌아온 젊은 셰프가 많아지면서 레스토랑 음식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요즘엔 뉴욕, 런던, 파리, 산세바스티안의 유명 레스토랑을 방문해서도 “우와, 서울에서는 이런 수준의 음식을 아직 맛볼 수 없지”라고 감탄한 적이 드물 정도로 한국에도 창의적이고 세련된 요리가 많다. 그런데도 해외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식사했을 때와 같은 감동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음식점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기억에 남는 특별한 한 끼 식사”를 위해서는 음식 맛 말고도 누구와 함께했는지가 중요하다. 거기에 부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아주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즐겁고 유쾌한 식사를 완성하는 훌륭한 서비스다. 

<현대카드 고메위크>에서는 지난 2012년 외국의 스타 셰프를 초청해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행사의 오퍼레이션을 담당했다. 당시 방문하는 셰프가 마침 내가 뉴욕에 살 때 가장 좋아하던 셰프 중 한 명인 폴 리브란트(Paul Liebrandt)였다. 젊은 천재 셰프로 불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한 폴. 식자재 공수부터 레스토랑 인력 교육, 현장 진행까지 한 달여 동안 그를 도우며 ‘파인 다이닝(Fine Dining)’ 서비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맛있는 생선 살을 얻기 위해 살아 있는 농어를 기절시켜 혈관에 칼집을 낸 다음 피를 천천히 흘려 죽게 하던 그의 식자재에 대한 집착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더 인상적인 건 바로 그가 집중하는 서비스였다. 직원 교육을 실시하던 날, 그는 직원들이 엑스퍼다이터(expediter), 서버(server), 버스보이(bus boy)의 역할 분담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에 매우 실망했다. 엑스퍼다이터는 제대로 된 음식이 제때 나갈 수 있도록 키친과 홀 사이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서버는 자신이 맡은 테이블의 손님과 대면하는 역할을 하며, 버스보이는 음식을 나르는 역할만 하는데, 우리나라 파인 다이닝계에는 이런 역할 구분이 아직 없었다. 폴은 직접 엑스퍼다이터 역할을 하며 서버들에게 손님들이 직전에 서브된 요리의 마지막 한 입을 먹기 전에 꼭 주방으로 와서 다음 요리의 콜을 하도록 교육했다. 셰프가 음식뿐 아니라 서비스에 그렇게 신경 쓰는 것을 보고서야 뉴욕의 다니엘, 일레븐 매디슨 파크, 르베르나댕 등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얻은 특별한 기억이 단순히 음식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럼 어떤 서비스가 파인 다이닝을 완성하는 걸까? 그 대답을 라카테고리와 메종드라카테고리의 하주현 총지배인에게 들어봤다. 다니엘과 조엘 로부숑을 거쳐 바 블뤼의 프라이빗 이벤트를 책임졌고, 르베르나댕에서 오너의 수석보좌관으로 근무한 그녀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는 파인 다이닝 이력의 소유자다. 

라카테고리의 모든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하주현 총지배인.

파인 다이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이죠. 음식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훌륭한 서비스가 따라야 합니다. 이젠 음식을 눈과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가슴과 머리로 즐기는 시대니까요. 

무엇이 훌륭한 서비스를 만드나요? 철저한 사전 준비입니다. 손님의 취향, 식사의 목적을 미리 파악합니다. 사전에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손님들의 대화에서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항상 “눈을 12개 갖고 다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머리에도 눈, 가슴에도 눈을 달고 손님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서빙은 행위지만, 서비스는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파인 다이닝은 어렵다는 오해를 하는데요, 손님들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나요?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식당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편하게 느끼도록 미소로 맞고, 직책을 파악했다면 직책을 불러드립니다. 파인 다이닝에서는 메뉴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고 요리를 설명합니다. 부야베스는 프랑스식 매운탕, 트뤼프는 송로버섯이라고 말입니다. ‘프랑스식 메뉴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 많은 사람이 어렵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주도록 노력합니다.

뉴욕의 레스토랑에선 이런 세심한 서비스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다니엘에 손님으로 처음 식사를 하러 갔을 때, 세심하고 정확한 서비스에 놀랐는데, 그곳에서 일하면서 그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비스를 위한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고객 정보를 기록, 관리하는 데 철저합니다. 사이가 안 좋은 손님이 방문했다면 테이블을 떨어뜨려서 앉히고, 특정 식자재에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라면 기록해두었다가 다음 방문 때 그 재료가 든 음식이 나가지 않도록 신경 씁니다. 

라카테고리에서 음식을 서브하고 있다. 서비스는 요리와 더불어 파인 다이닝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파인 다이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물어보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아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데요. 잘 모르는 메뉴를 시켰다가 입맛에 맞지 않아 남기고 가는 손님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하주현이 만들어갈 파인 다이닝이란 무엇인가요? 엄마 같은 마음으로 하는 식당입니다. 엄마는 5성급 요리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집밥을 그리워합니다. 앞에서 잘 먹는지 지켜보고, 잘 안 먹으면 “왜 그러니?”라고 물어보고 신경 써주는 엄마의 따뜻한 마음 때문입니다. 엄마가 예쁜 그릇에 요리를 내오면 기분이 더 좋을 수는 있겠지요. 식당의 장식이나 기물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영국의 팻덕과 덴마크의 노마에 갔을 때 의외로 레스토랑이 평범해서 놀랐습니다. 하지만 노마에 가면 전 직원이 미소를 띠고 맞이합니다. 파인 다이닝은 으리으리하고 번쩍번쩍한 성이 아닙니다. 엄마가 없는 집은 의미가 없습니다. 

- 이 글을 쓴 배지영은 Fionabae Communications의 대표이자 요리 칼럼니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