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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그는 무엇을 꿈꿨나

도자와 회화의 경계를 허문, 평면 도자 회화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이승희 작가. 그가 이번에는 도자 대나무를 들고 왔다. 그것도 중국 최대의 예술 특구인 다산쯔 798에서다. 베이징에서 그를 만났고, 그곳엔 붉은 바람이 불었다.

2015.07.27

 

버려진 무기 공장 지대였던 다산쯔 798. 현지 갤러리는 물론 해외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 편집숍 등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문화 예술 거리로 변신한 이곳에서는 연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지난 6월 13일 주말 오후, 무슨 일인지 유독 북적이는 갤러리 하나가 보인다. 798 입구에 자리한 포스 갤러리(FORCE Gallery). 이승희 작가의 베이징 첫 전시 오프닝이 열린 날이었다. 7월 19일까지 열리는 이승희 작가의 <물외물 物外物>전. 전시장엔 붉은 대나무가 숲을 이룬 채였다. 

 

“310그루쯤 되는 듯해요. 중국에서 붉은색은 행복을 주는 색이죠.” 높이 4.5m의 붉은 대나무. 그것도 310그루다. 붉은 대나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도자다. 이렇게 큰 대나무를 가마에 넣고 한 번에 구웠을 리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디마디가 연결된 구조다. 먼저 마디마디를 흙으로 빚은 뒤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구워 완성한 후, 이것을 다시 하나의 대나무로 연결했다. “완성된 대나무를 포장하는 데만 장정 5명이서 10일이 걸렸고, 징더전(景德鎭)에서 베이징까지 옮기는 데 이틀, 작품을 설치하는 데만 꼬박 8일이 걸렸어요.” 전시장 한쪽엔 이 고단한 과정을 담은 사진이 한자리를 차지했고, 흠뻑 젖은 그의 셔츠가 이 무모한 도전의 노고를 말해주는 듯하다. “영화 <와호장룡>의 대나무 숲 장면을 보고 떠올린 작품인데, 그때의 제 능력으론 실현 가능성이 없었고(웃음) 도자 평면 작업으로 입지를 구축하고 나서야 제 꿈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거죠.”(웃음) 대숲의 바람소리를 타고 마치 춤추듯 싸움을 펼치는 <와호장룡>의 한 장면. 그 순간 떠오른 감흥을 드로잉으로 남겼고, 거실 벽에 붙여두었다. 그때가 2008년이니, 그가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터전을 옮긴 즈음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대나무가 아닌 대나무. 그 상상 속의 대나무를 그는 만들고 싶었다. 말 그대로 ‘물외물(物外物)’인 것이다. 

 

1 높이 4.5m, 310그루의 붉은 대나무가 웅장한 숲을 이뤘다. 그곳엔 붉은 대숲의 바람이 불었다. 2 모자와 슬리퍼도 벗어둔 채 대나무의 마디마디를 연결하고, 쌀포대를 나르고 며칠간의 설치 작업에 매달렸다. 3 이승희의 도자 대나무 작업은 빛과 만날 때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4 도자 대나무 작업은 마디마디 따로 구워내, 어느 한 마디도 똑같은 형태와 색깔이 없다. 자그마치 1만 마디다. 5 징더전 작업실에 갇혀 흙, 물, 불, 공기, 바람, 색, 안료를 실험한 지 3~4년. 그의 도자 회화는 평면처럼 보이지만 2D의 입체 평면이다. 

 

 

 

“도자기의 장점이자 단점은 수축이에요. 굽는 과정에서 20%가 줄어드는데, 보통은 이 변형률을 줄이고, 도자기의 색깔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최대 목표죠. 이 논리에 따르면, 도자 대나무 작업은 실패작에 가깝죠.” 그의 도자 대나무는 균일한 붉은색이 아니다. 심지어 하얀 대나무도 있다. 물론 하얀색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의도치 않은 예상 밖의 컬러. 처음엔 당황했지만 볼수록 아름다웠고 신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관념을 깬 붉은 대나무와 그것이 만든 기이한 풍경. 그것 때문이었을까. 그의 대나무 숲에선 붉은 바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데 대나무 숲의 바닥을 채운 하얀 것은 뭘까. “쌀이에요. 쌀은 음식이지만 주술적인 의미도 담겨 있죠. 옛날엔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건강과 복을 기원했는데, 이때 쌀을 놓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쌀을 먹는 걸로만 알지 ‘쌀을 본다’는 건 생소할 거예요. 익숙한 것에는 관심이 없는 거죠.” 날마다 밥을 먹지만 우리는 쌀을 제대로 본 적이 있을까? 대나무 하면 사군자가 떠오르지만 그게 다일까? 사람들은 도자기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다 알까?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것, 그리고 이미지가 가진 권력. 그는 결국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이 왜곡된 이미지의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징더전은 인구의 80%가 도자 관련 일에 종사할 만큼 중국 최대의 도자 도시예요. 도자기를 나르는 사람, 굽는 사람 등 모든 과정이 분업화되어 있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한 사람이 다해야 하는 우리나라 상황과는 천지 차이죠.” 도예 작가로서의 한계에 부닥칠 무렵, 그는 우연처럼 중국 장시(江西) 성의 징더전을 만나게 됐다. 흙, 불, 물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징더전. 그는 과감히 한국에서의 50년 생활을 뒤로하고, 이곳 징더전으로 작업의 터전을 옮겼다. 그의 대표작 ‘도자 회화’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흙물을 칠하는 과정을 70회 정도 반복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데, 서너 달이 걸려요.” 그의 도자 회화는 수행의 과정과도 닮았다. 매일 출근하듯 작업실에 들러 흙물을 칠하고 마르기를 기다려 다음 날 또 칠하고, 이 과정을 70~80회 반복하면 두께 3mm의 도톰한 부분이 올라온다. 여기에 도자기를 그리고 유약을 바른 뒤 굽는 과정을 거친다. 기존의 도자기 하면 흔히 입체의 3D를 떠올린 게 사실. 그는 이러한 관념에서 탈피해 도자기를 평면 회화로 탈바꿈시켰다. 극적인 것은 거듭 흙물을 칠한 결과, 평면의 도자가 아닌 부조 형태의 입체적인 평면 회화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를 주목하는 건 이러한 독보적인 화풍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의 옛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이승희의 도자 회화, 그 속엔 과거와 현대를 잇는 묵직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청주 전시에선 음향을 넣을 예정이에요. 영화가 그렇듯 음악이 더해지면 이미지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죠.” 붉은 대나무 숲과 빛을 통해 그려지는 또 다른 대나무 숲의 그림자, 그리고 그들 사이를 넘나드는 음악. 이 오묘한 대숲의 소리를 9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통해 다시금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는 9월 7~13일에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열리는 스타트 아트페어(Start Art Fair)를 위해 또다시 짐을 꾸려야 한다며 그는 자리를 떴다.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츄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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