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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PICK_Lifestyle

또 다른 이방인에게

한국인 이민자의 아들로 평범한 삶을 사는 헨리. 어느 날 그의 아내는 이 말과 함께 떠났다. ‘당신의 언어는 엉터리’.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민자의 삶을 담은 <영원한 이방인>.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창래의 20주년 기념작이다.

2015.07.22

 

 

이방인의 삶-반쪽의 삶, 두 배의 삶

주인공 헨리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헨리와 그의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온 ‘아줌마’는 작은 가방 두 개와 노끈으로 얼기설기 묶은 판지 상자를 갖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그녀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그녀의 집에서 만든 반찬, 절인 채소와 고기, 신 김치가 들어 있었다. 판지 상자를 들어주려던 헨리는 신 김치의 강한 냄새에 하마터면 상자를 떨어뜨릴 뻔한다. 그 먼 나라에서 신주 단지인 양 애지중지 모시고 온 김치. ‘아줌마’라는 호칭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음식. 

만삭인 어머니는 미국에 와서 헨리를 낳았다. 그는 완벽하게 미국의 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에 닿아 있다. 주말이면 어머니는 ‘생선 맛이 섞인 짭짤한 냄새’가 나는, 다시 말해 멸치 육수를 넣은 칼국수를 끓여주었고, 더운 날이면 맵고 뜨거운 국을 식탁에 냈다. “어머니의 관행이지.(…) 더울 때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국을 먹으면 다 먹고 나서 그만큼 시원해진다는 거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부인 릴리아에게 ‘양념이 강한 국’을 건넨다. ‘잘 모르겠어’라고 하면서도 릴리아는 소매로 이마를 닦아가며 그 국을 다 먹는다. 화려하게 눈길을 모으다가 결국 몰락하고 마는 정치인 존 강의 지하실에서도 먼 이국의 음식 냄새가 떠돈다. 임시 사무실인 이곳에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은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항아리를 톡톡 두드려본다. 시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한국식 먹을거리인 절인 채소, 고기, 발효된 장, 말린 해물은 꽁꽁 싸두었음에도 어쩔 수 없는 냄새를 풍긴다. 헨리는 그 냄새를 맡으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 음식 때문에 헨리는 미국에서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다. 그를 먹여온 여자들이 치마폭에서 내어놓는 쿰쿰한 음식이 그를 미국의 한가운데서 끌어낸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영어로 이 작품을 쓴 한국계 미국 작가 이창래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계선에 서 있는 그들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지만, 자신의 고향에서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단단하게 머나먼 땅에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이지만, 또한 다른 세계의 말을 하는 이다. 경계에 사는 삶은 반쪽의 삶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 배의 삶일 것이다.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행복한 악취를 잃어버린 남자

뉴욕의 한국계 노인들이 맥도날드 직원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싼 음식 하나를 시키고 몇 시간째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매장 측에서 경찰을 불러 쫓아냈고, 노인들은 인종 차별이라며 맞섰다. 어떤 노인이 주문을 빨리 받지 않는다고 따지다가 직원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한국계 미국인 헨리 박은 알 것 같다.

“사거나 나가.” 어쩌면 그 노인들도 똑같은 말을 내뱉어왔을지 모르겠다. 헨리의 아버지가 자신의 청과상에 들어온 흑인들에게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몇 십 년 전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고, 몇 개의 가게를 열 정도로 성공리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생존을 위한 전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적은 미국인이지만, 마음은 철저히 한국인이다. 그것도 이전의 상태로 박제된 채로. 그의 대척점에 한국계 시의원 존 강이 있다. 그 역시 장사를 통해 크게 성공했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다른 소수 인종을 열심히 만났고, 그들의 대표자로 정치에 나섰으며, 뉴욕 시장 후보로까지 물망에 오른다. 그는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헨리 박은 두 세계 사이에 떠 있다. 그의 직업 - 아시아계 인물의 뒤를 캐는 스파이 - 자체가 상징적이다. 그는 목표로 삼은 인물에게 다가가 그들에 대한 작은 자서전을 쓴다. 반대로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위장된 자서전을 만들어둔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채, 그 나라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에게 걸맞은 직업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진짜 정체성과 위장된 정체성은 자신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이게 된다. 서로가 그렇게나 다르지만, 모두가 외치는 게 있다. 가족이다. 아버지는 당연한 가부장적 가족주의자. 존 강의 정치 조직은 여러 소수 인종이 모여든 패밀리다. 심지어 헨리를 파견한 정보 회사의 사람들도 말한다.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야. 나도 이게 초라한 구실이라는 건 알지만 달리 우리에게 무엇이 있나?” 과연 헨리는 어느 가족에 속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폴란드계 백인인 릴리아와 만들어낸 새로운 가족도 이미 무너진 상태다. ‘내 어머니의 숨결에서 나는 그 행복한 악취’만이 그리울 뿐이다. 

이 글을 쓴 이명석은 문화 칼럼니스트이다. 

 

 

CREDIT

EDITOR / 설미현 / PHOTO / 김래영 / THE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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