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ia Delaunay, Coat made for Gloria Swanson 1923-24, Private Collection Ⓒ Pracusa 

색(色).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색의 마술사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 1885~1979). 그녀의 트레이드마크 하면 화려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다. 하나 그녀의 화려한 추상 회화를 단지 컬러의 향연 정도로 규정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의 컬러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이 답을 찾기에 앞서, 우리는 먼저 그녀의 예술적 동반자인 어떤 이를 만나볼 필요가 있다. 바로 오르피즘의 창시자인 로버트 들로네다. 그는 다름 아닌 소니아의 남편이자 예술적 동반자로, 이들 부부는 오르피즘이라는 새로운 유파를 이끌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르피즘(Orphism)의 정체는 뭘까. 오르피즘은 입체주의에서 파생한 분파로, 1910~1920년대를 풍미한 미술 사조다. 그 특징을 꼽자면 입체파의 조형성, 미래파의 동적인 요소, 그리고 화려한 색채를 들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를 주축으로 한 입체파와 비교하면, 그 특징은 명확해진다. 입체파가 색채보다 구성을 중시했다면, 오르피즘은 입체파의 조형성은 물론 화려한 색채에 집중했다. 그 때문에 입체파의 그것에 비해 더욱 감각적이며 색채적이다. 여기에 한 가지. 그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선명한 색의 원과 호(弧)를 목도하게 된다. 주목할 것은 그 화면 속엔 묘한 움직임이 포착된다는 것. 운동성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표현한 미래파의 영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화려한 색채와 율동적인 화면. 이 때문에 그녀의 화면에선 단순히 화려한 색채와 조형의 미학을 넘은, 묘한 상상력이 발현된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다이내믹한 컬러 대비 속에 숨은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 소니아 들로네가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위 Two models wearing fur coats designed by Sonia Delaunay International Exposition of Modern Industrial and Decorative Arts, Paris 1925,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Paris

아래 Sonia Delaunay and two friends in Robert Delaunay’s Studio, rue des Grands-Augustins, Paris 1924,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Paris 
 

상단 왼쪽 Sonia Delaunay Simultaneous Dresses(The Three Women) 1925, Museo Thyssen-Bornemisza, Madrid Ⓒ Pracusa 2014083 
상단 오른쪽 Sonia Delaunay, Rhythm Colour No. 1076 1939,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Fonds National d’Art Contemporain, Paris, on loan to Palais des Beaux-Arts de Lille Ⓒ Pracusa 2014083 
하단 Sonia Delaunay, Propeller(Air Pavilion) 1937, Skissernas Museum, Lund, Sweden Ⓒ Pracusa 2014083 Photo: Emma 

“내게 있어 장식미술과 회화 사이에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방 예술(Minor Art)이라 여겨지는 장식미술이 예술적으로 내 삶의 감흥을 좌초시키거나 하는 식의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장식미술은 내 세계의 확장이며, 언제나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이룬 또 하나의 업적을 들라면,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인 과감한 시도라 하겠다. 1911년, 그녀는 아들을 위해 색색의 조각 천을 잇댄 이불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을 러시아에서 보낸 들로네는 그곳의 전통 시골 가옥과 풍경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컬러를 이불 패턴 속에 투영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현재 최초의 추상적 콜라주로 미술사에 기록되었다. 그녀가 패션과 인연을 맺은 건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피난을 다니던 무렵이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부티크를, 급기야 1924년엔 파리에 패션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러고는 자신만의 패턴을 활용해 의상은 물론 스카프, 우산, 모자, 신발, 수영복 등 당시로선 급진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녀의 대담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은 당시 신여성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심벌로 여겨지며 큰인기를 끌었다.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였던 글로리아 스완슨, 그레타 가르보, 건축가 에르노 골드핑거 등이 그녀의 클라이언트였다는 사실은 그 인기를 방증한다. 1941년 남편의 죽음 이후, 그녀는 기하학적인 태피스트리와 카펫, 모자이크를 상기시키는 각진 형태와 얼룩무늬 색상으로 된 리드미컬한 작품을 포함, 좀 더 형식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8월 8일까지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는 소니아 들로네의 전시 <The EY Exhibition: Sonia Delaunay>는 그녀의 예술을 총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자리로, 무엇보다 영국에서의 첫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1900년대 초기 구상화부터 1960년대 그녀의 열정적인 추상화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구성된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는 컬러 작업부터 피난 시절에 머물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그린 ‘Market in Minho’ ‘Flamenco Singers’ 등 그녀의 작품 뒤에 숨은 다양한 영감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다. 그뿐 아니라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 비행기, 에펠탑에서 전기, 전구까지, 들로네가 활동했던 시기의 현대 기술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도 대거 공개된다. 특히 1913년 발표된 경쾌한 컬러의 패치워크 작품 ‘Simultaneous Dress’가 첫 공개되는 의미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상단 Sonia Delaunay Yellow Nude 1908 Musée des Beaux-Arts de Nantes, Nantes Ⓒ Pracusa 2014083 
하단 Sonia Delaunay, Prismes Electriques 1914 Ⓒ Pracusa 2013057 Ⓒ CNAP 

현대의 도시 풍경을 극명한 색채 대비와 기계 문명이 지닌 역동적인 속도감을 자신만의 추상으로 풀어낸 소니아 들로네.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던 당시의 아방가르드 미술가 사이에 소니아 들로네가 있었고, 그녀는 고매한 예술을 대중 곁으로 끌어들이며 친숙한 미술을 이끌었다. 기억할 것은 이불을 만들고, 옷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이 모든 행위가 그녀에겐 똑같은 동시대 미술이라는 점이다. 대중과 생동하는 살아 있는 미술. 그녀의 색이 화려하지만 정감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