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디자인뮤지엄의 김명한 관장은 해외 거장 디자이너뿐 아니라 컨템퍼러리 디자이너들의 미감 좋은 가구를 약 10년 전부터 국내에 소개해 온 이. 그는 aA카페를 운영하며 공간에 디자인 가구를 배치하여 사람들이 직접 좋은 디자인 가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윤리적이라는 말은 상호 관계가 좋을 때 가능한 말입니다. 윤리적 디자인이란 쉽게 말하면 필요한 것, 또 지속 가능한 물건을 만드는 일을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상업적 디자인은 소비를 위한 것이죠. 윤리적 디자인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에 가깝습니다. 또 하나, 그 과정 역시 산업적인 것과는 다릅니다. 생산자와 디자이너의 관계가 정당하고 동등해야 합니다.” 갑을 관계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시대에서 정당한 관계, 동등한 위치가 가능할까. 김명한 대표는 이를 위해 생산자와 디자이너가 같은 목적 아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말한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많은 이들이 소통 수단으로 이용하는 SNS에는 자극적인 이슈나 과시적인 이야기와 장면만 넘쳐난다. 맛있는 집보다 유명한 집이 필요하다. 공감의 코드가 자기 가치가 아니고 타인의 가치가 되어버린 셈이다. 

몇 해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럽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전부터 디자인을 놀이, 생활의 일부로 여겼다. 그 때문에 ‘좋은’ 디자인에 대한 체감 기회가 대중에게까지 항상 열려 있었다. 그러니, 신진 디자이너나 디자인, 건축 전공 대학생은 오죽하겠는가. “유럽 사회는 유명하든 아니든, 돈이 많든 적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절대 가치를 갖고, 서로 그 가치를 인정해주죠. 반면 우리는 외모,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입니다. 외국에서는 내가 조금 배가 고프더라도 어디 가서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혹은 아티스트입니다’ 하면 존경해줍니다. 그 힘든 직업을 버티고 있다는 것, 그 막연한 길을 신념을 굳건히 하고 지속하고 있음에 대한 존중이죠. 유럽 디자이너도 힘들긴 매한가지니까요. 디자인이라는 게 공부해서 되는 영역이 아니잖습니까. 스스로 깨우치고 느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디자이너는 가치와 신념을 세워야 한다. 엉성한 디자인으로 마케팅 잘해서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생각은 아예 접으란 말이다. “신진 디자이너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웃으면서 한 소리가 있습니다. ‘너희들은 기술은 가지고 있다. 다만 디자인을 못한다. 디자인은 조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이다.’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으라는 이야기였죠. 사람들이 북유럽 스타일을 찾고, 특정 작가가 돈을 잘 번다 해서 거기에 다들 달려들면 결국은 마케팅 싸움이죠. 같은 디자인으로 누가 싸게 팔고 누가 이슈가 되는지를 겨루는 셈입니다. 디자인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죠.” 

1 홍대에 위치한 aA카페의 모습. 2 거장 디자이너의 빈티지 작품과 리프로덕트 작품이 함께 매치되어 있는 aA디자인뮤지엄의 모습. 3 프랑스 여성 건축가 샬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테이블. 그녀는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벌목된 나무를 재활용하여 테이블을 비롯하여 다양한 가구를 만들었다.

그는 디자이너로서 내가 정말 필요한 물건을 디자인하고 있는지, 그 가치에 맞는 정당한 가격을 매기고 생산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지, 기본부터 바로잡고 되짚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을 세우고 마인드를 바로 한 다음에 조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무시하고 조형부터 하는 행위는 결국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윤리적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것이다. 그러나 김명한 관장은 그전에 사회 인프라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많은 디자이너는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네덜란드에는 건축학과나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이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 최소한의 보조를 해주는 제도가 있다. 경제적인 보조는 물론, 그들에게 일할 기회도 준다. 학생들은 국비로 대학을 다녀, 나라에서 인재를 키운 셈인데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전업한다면, 나라에서는 손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사회가 성장할 때 계층별, 단계별 가치가 함께 성숙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에만 집중했죠. 그래서 돈을 버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념을 갖고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걷는, 진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맙니다. 윤리는 유명해진 한 놈만 배 터지게 먹는 게 아닙니다. 공생입니다. 그 가치가 존재해야 윤리가 성립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윤리적 디자인 작품이 탄생하기 힘든 근본적 이유 중 또 다를 하나는 대중이다. 우리나라는 뭔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패션은 물론 모든 집에 같은 가구를 들이는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냉장고, 텔레비전, 에어컨, 그릇까지 그렇다. 결국 대중이 지속 가능한 물건, 윤리적 디자인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트렌드만 좇고 있다는 말이다. “아직 정서적 가치를 체감하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좋은 테이블 위에 스탠드가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곳에 앉아 글을 쓸 때 나무가 주는 편안함과 아늑한 분위기. 이때 느끼는 만족감이 바로 정서적 가치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찾아 산책하고, 집 안에 정원을 꾸미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정서적 가치는 무형이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정서적 가치를 알면,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소비할 것이고, 그랬을 때 윤리적 디자인 물건의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1 텍스타일 디자인 브랜드 요한나 글릭센의 트레이. 요한나 글릭센은 전통적인 위빙 기술과 천연 소재를 사용하여 패브릭 제품을 생산한다. 2 김명한 관장이 윤리적 디자인 브랜드로 꼽은 니카리의 제품. 니카리와 핀란드 알토 대학교의 학생들이 협업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나무의 본질을 살린 디자인의 체어는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3 원목은 지속 가능한 디자인 물건의 주된 소재로 사용된다. 나무는 조림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감벌을 해야 산림이 유지된다. 이 때 감벌한 나무를 사용하여 펄프와 가구 등을 만든다. 그리고 그 가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그는 핀란드 브랜드인 ‘니카리’를 윤리적 디자인 브랜드로 꼽았다. 니카리는 피스카스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의 기계들은 동네 사람 모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숙련공이 되면 니카리에서 만든 디자인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나는 매년 니카리에 갑니다. 3개월 전에는 가구 하나를 주문했어요. 지난주에 니카리에 직접 다녀왔는데, 모르는 얼굴이 있더군요. 26세 된 청년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내 가구를 만든다고 하더군요. 신기한 마음에 같이 사진도 찍었죠. 니카리에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하게 진행합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익히 알고 있기에 로열티를 거의 받지 않으면서 디자인을 해줍니다. 자재 역시 그 지역에서 해결합니다. 생산비가 절감되기 때문에 제품의 질이 좋고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니카리의 제품을 구매하고, 그 기업은 그 지역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활성화시키죠.” 이것이 윤리적 기업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의 대중은 배고프면 사흘을 못 견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배불리 빵을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 성숙한 사회의 사람들은 굶어도 빵을 먹지 않습니다. 기다리면 더 좋고 맛있고 비양심적인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을 수 있는 사회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어떤 디자이너가 윤리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고 싶지 않겠습니까. 디자이너들이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기약 없는 불안한 미래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몇 세대를 지나야 풀리는 문제 건 아닙니다. 교수가, 선생이, 정치가가 바뀌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민 사회가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한층 더 성숙해져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