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의 카사 밀라(Casa Mila)

* 이 글을 쓴 이병기는 가우디의 모교인 바르셀로나 공과대학에서 수학한 건축가이다. 

고독한 삶, 빛나는 건축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는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 주의 레우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대로 대장장이였던 가우디 가문에서 태어났다. 안토니는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모든 형제가 사망하고 그에게 딸린 가족이라고는 환갑을 넘긴 홀아버지와 세 살배기 조카딸뿐이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상당히 고독한 인생을 살았다. 60세가 되어 하나뿐인 혈육 조카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인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자신의 집이 아닌 성가족 성당에 마련된 작업실에 거주하며 오직 이 성당의 건설에만 집중했다. 노년에 그는 매일 10km를 걸어 성당에 다니고, 지극히 적은 양의 식사를 하며 마치 수도자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가우디의 집안은 대대로 대장장이였고, 그 역시 어려서 아버지에게 쇠 다루는 일을 배웠다. 그 덕인지 가우디는 모든 종류의 공작에 능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만든 책상과 에스테베 코메야스를 위해 제작한 장갑 진열대는 그가 디자인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어떤 것이든 대단히 섬세하게 만들 만한 손재주를 겸비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그가 어릴 때부터 배운 집안의 가업은 그의 건축과 닮았다. 가우디를 도와 성가족 성당의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 유이스 보네트는 그가 얼핏 쉬워 보이는 건축적 해법에 그치지 않고, 단 하나의 면으로 여러 요소를 표현하는 조형 방식을 활용했다고 설명하였는데, 이는 하나의 덩어리를 두드려 펼쳐 입체를 만드는 대장장이의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밀라 주택의 입면은 도드라지고 움푹 들어간 단 하나의 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이전의 건축물에서는 보지 못한 리듬감과 조화를 성취한다. 그는 이런 작업의 미학적 가능성을 연구했고, 이를 구현할 만한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그의 건물에서 느껴지는 경쾌함은 상당 부분 이런 섬세한 철 작업이 자아내는 눈부신 효과에 기인한다. 초기작인 비센스 주택의 철제 담장이나, 구엘 별장의 출입구 철문 등의 화려한 철 작업은 그의 건축 곳곳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가우디는 지중해가 낳은 예술가였다. 그는 지중해가 ‘사물을 거짓되지 않고, 정확히 지각하게 하는’ 빛을 가졌다고 말했고, 이 빛이 성가신 눈부심을 유발하는 남쪽 나라들의 강렬한 빛이나,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북쪽 나라들의 음침한 빛과는 전혀 다른 조화로운 조형 감각을 이끌어낸다고 확신했다. 그가 생각하는 지중해 예술은 이 조화로움에 기초했다. 우리는 흔히 가우디를 가리켜 ‘자연을 모방한 건축가’라고 하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은 자연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의 본성, 즉 ‘조화로움’에 있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그는 당시 유행한 자연을 모방한 조각으로 가득 채워진 자연주의 건축과는 분명히 길을 달리했다. 제자들과 이야기할 때, 그는 ‘옷 입은 고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그가 고딕의 합리성을 취하되 (이제는 발가벗기지 않고) 이것에 옷을 입혀 꾸미겠다는 심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우디가 어떤 규칙도 없이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나무 모양을 한 성가족 성당의 기둥은 실은 정사각형을 회전시키며 만들어낸, 온전히 기하학의 산물이다. 숨겨진 체계를 이해한다면 누구라도 자와 컴퍼스만으로 이 기둥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 다만 그의 건축물은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듯한 건조함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는 그의 건축물이 그가 그리도 강조한 지중해 건축의 조화로운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가우디의 건축은 합리적 구조에 근거하여 건설되고, 자연의 색채와 운동감을 입은, 그만의 지성과 감성으로 빚은 새로운 지중해 건축이다.

*이 글을 쓴 김선현은 디림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왜 안토니 가우디인가!

1926년 6월 7일 골똘히 생각에 잠긴 한 노인이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전차에 치여 치명상을 입는다. 노인의 초라한 행색을 본 운전자는 그를 노숙자로 짐작하고 그냥 전차를 몰고 가버렸고, 병원에서마저 거부당해 결국 빈민자를 위한 열악한 시설로 옮겨졌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가 바로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다.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인이 가우디의 건축에 매료되는 이유는 그가 홀로 일군 예술적 독창성에 있다.

어느 시대나 주류의 문화 흐름이 있으며, 그 흐름은 그 시대 대중의 지지 속에 문화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가우디의 건축은 건축사에 근거한 특정 시대 건축 양식으로 분류하여 평가할 수 없다. 그의 작품은 당대의 건축 양식과 관념을 초월해 있으며, 그의 건축 스승은 특정 단체나 사람이 아닌 자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동시대 예술 시대상과 그의 건축 간의 관계와 그의 예술 철학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해야 한다. 당시 합리주의적 건축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에 자유로운 곡선을 고집한 가우디의 건축은 그만큼 독보적이었다. “직선은 인간에 속하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The straight line belongs to men, the curved one to God - Antoni Gaudi).” 그의 건축 철학을 함축한 말로 카사 밀라,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많은 작품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선으로 이뤄낸 독창적인 조형성만으로 가우디의 건축이 높이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자연을 닮은 유기체여야 한다고 믿으며, 자연에는 직선도 날카로운 모서리도 없기 때문에 건축물도 그것들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나무, 하늘, 바람, 식물 등과 같은 자연 속에서 사물의 형태와 유기적 질서를 발견하고 건축에 도입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건축물에 합리적 구조와 기능도 실현시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작품은 아르누보의 한계, 즉 곡선과 곡면에 의한 유동적 미를 구축하였으나 기능적 합리성을 간과한 점을 극복한, 진정한 아르누보(19세기경부터 20세기 초기에 걸쳐서 일어난 ‘새로운 예술’ 이라는 의미, 역사적 양식을 탈피, 새로운 미를 창조하려고 했던 범유럽적 예술 운동)였다. 

가난했지만 장인 집안에서 태어난 천재 건축가, 그리고 그의 능력을 알아본 평생의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 그리고 그의 건축을 이해했던 사회적 분위기, 이 세 요소가 결국 천재 건축가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작품이 지상에 실현될 수 있게 했으며,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술적 환희와 영감을 얻는 것이다.

더불어 스페인 북부의 공업 도시 빌바오가 산업의 발전과 내란 등으로 도시 기능이 침체되자 구겐하임 미술관(프랭크 게리)의 설립을 통해 죽어가는 항구 도시를 살려낸 지방정부의 정책과 가우디의 건축물로 발생하는 관광 수입만으로도 바르셀로나라는 한 도시가 자생할 수 있는 점에서 문화가 국가의 미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