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정 PD는 3년간 24개국에 달하는 나라를 여행했고,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했다.

이 사진은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빵을 화산의 열기로 익혀 먹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인간은 요리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남자들이 사냥하면 여자들은 요리를 도맡았고, 완성되면 함께 나눠 먹었다. 인류는 50만 년 혹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요리를 시작했을 수도 있다.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불은 인류 문명의 시발점이었다. 커리는 런던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을 비롯, 인도네시아, 일본까지 지구의 끝에서 끝을 연결하는 재료가 되었다. 또 어떤 요리는 종교적 의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인류가 빵 하나에 풍요와 번영, 그리고 행복이라는 염원을 담아 기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해져온 음식은 그 역사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많은 음식들이 교류되지 못한 채 어느 한 나라에, 어느 한 시절에 갇혀 잊혀져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욱정 PD는 시공을 넘어 변함없는 가치는 ‘요리가 인간에게 주는 가장 원초적인 기쁨’이라 말한다. 내 손으로 음식을 해서 좋아하는 사람들, 함께하고픈 사람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데서 오는 기쁨 말이다. “친구, 가족과 외식을 할 때의 즐거움과 직접 요리를 해서 나눠 먹는 즐거움은 비교할 수가 없죠. 요리의 퀄리티는 다소 떨어지고 따져보니 사 먹는 것보다 재료값이 더 들지언정, 그 준비 과정이 주는 행복감. 그 시간의 행복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거예요.” 이런 그의 생각은 얼마 전 방영을 마친 <요리人류>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리人류>에는 전 세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는 인터넷에 ‘바비큐’라는 단어만 치면 주르륵 나오는 전문가적인 요리 이야기가 아닌, 직접 보고 전해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요리人류>는 요리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요리하는 사람들 하면 <미슐랭 가이드> 스타 셰프처럼 유명한 사람들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죠. 물론 그들이 요리에 대해 더 깊이 공부했을지 몰라도 보통 사람들, 집에 있는 엄마, 분식집에서 요리하는 이모, 그 무명인들도 요리하는 데 분명한 철학을 갖고 있어요. 그것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를 많이 담고자 했던 것이 <요리人류>고요. ‘영혼의 맛 빵’ 편에 에티오피아의 축제 때 먹는 큰 빵, ‘드포다보’가 소개됐죠. 저는 그 빵을 굽던 할머니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나요. 그 빵을 만드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요. 할아버지가 나뭇잎을 일일이 따오고, 할머니는 반죽을 하고도 1시간 넘게 구워지는 빵을 살피죠. 에티오피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잖아요. 그런 나라에서 그 큰 빵을 굽는다는 것은 없는 살림에 돈도 많이 드는 일이죠. 그런데 그 할머니가 가만히 계시다가, ‘내가 만드는 이 빵이 저 카메라 너머의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그 즐거움을 같이 나누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작은 마을에 사는 시골 할머니가. 특별할 것 없는 에티오피아 시골의 한 여인도 자신의 혼을 담아 살고 있다는 것. 그게 요리를 통해 전해진다는 것. 그걸 통해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거죠.” 이렇듯 요리는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이고,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매개체다. 인류에게 좋은 요리, 건강하고 올바른 요리란 이 두 가지를 오롯이 만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의 식문화는 큰 나무와 같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진공 상태에서 갑자기 생긴 식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 식문화, 이탈리아 식문화, 스페인, 남미, 아시아까지 깊이 들어가면 하나로 연결되는 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탓에 남의 것을 보면 자기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이욱정 PD는 오만에 빠져선 안 된다고 덧붙인다. “‘우리 음식이 다른 나라 것보다 최고다’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죠.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 사람들에게는 그 요리가 가장 소중한 것이고 가치 있는 문화니까요. 또 하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게 서열을 짓는 태도예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이 1등, 2등이라며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협소하고 막혀 있는 시각이죠.” 비교문화적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문화의 선진성은 다채로움, 남의 것에 대해 얼마나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는지, 관용성에서 비롯된다. 문화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들은 이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음식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식문화를 주도하는 도시로 꼽히는 파리, 뉴욕, 도쿄 모두 이국 음식점이 제대로 자리 잡혀 있다. 그리고 문화의 우수성은 사람들의 생각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프랑스가 왜 미식의 나라, 세계의 식문화를 이끌어가는 나라일까요. 이는 프랑스의 요리 레시피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에게 요리란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같이 나눠 먹는 ‘식사’가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고,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프랑스 음식 문화가 대접을 받죠.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고 있어요. 이제 요리사를 하나의 장인으로 여기고, 스타 셰프가 대접받는 시대잖아요. 요리사를 단순히 주방장으로 보던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졌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브랜드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진짜배기가 무언지 알게 되겠죠.”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간 진짜배기를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집 밖에서 집밥을 그리워하고, 먹는 것을 공유하는 먹방이 유행인 이유. 엄마가 차려준 국 하나 밥 한 그릇, 찬 하나. 이 소소한 식탁이 완벽한 한 끼로 여겨지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