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팔린 국산 중고차 중 인기가 가장 높았던 차는 기아 카니발이었고 그건 올해도 마찬가지다. 올 뉴 카니발 중고차의 감가율은 대략 8~10퍼센트로 신차 가격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없어서 못 파는 것도 아니다. SK엔카에 따르면 자사 사이트에 올라온 올 뉴 카니발만 330대가 넘고, 이전 세대 모델인 카니발 R은 1000대 넘게 등록돼 있다고 한다. 그 만큼 신차도 많이 팔렸단 뜻이다. 공급이 많으면 수요가 줄고 가격은 내려가야 정상이거늘 카니발이 뭐기에 경제 법칙마저 초월하는가?

독재자

“대항마가 없습니다. 국산차와 수입차 모두 통틀어도 카니발을 대체할 차가 없어요.” 스마트폰 너머로 들리는 기아자동차 관계자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현재 올 뉴 카니발은 주문이 많이 밀려 있어서 어떤 모델은 몇 개월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순간 왜 중고차 시장에서 카니발이 주목받는지 느낌이 왔다. 일단 카니발을 대체할 차가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 당장 카니발을 갖고 싶다는 수요가 중고차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기아 카니발은 1998년 미니밴 형태로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초창기 카니발은 선루프와 에어컨의 유무로 ‘랜드’, ‘파크’ 트림으로 나뉘었다. 이어서 나온 카니발 Ⅱ는 도어 트림과 인테리어, 옵션을 강화했다. 스티어링휠에 우드 그레인을 적용했고 센터페시아와 알루미늄 휠의 디자인을 개선했다. 트립 컴퓨터와 후방 경고 장치 등도 달았다. 다양한 옵션이 추가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뒷자리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시트만 돌아가게 만들었을 뿐이다. 2세대 모델인 그랜드 카니발부터 오토 슬라이딩 도어 등 ‘2열과 3열’을 위한 기능이 강화됐다. 그러면서 안락한 밴으로서의 성격이 짙어졌고 지금은 패밀리 밴을 넘어 기업 임원이나 연예인도 애용하는 의전용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런 역할에 카니발 말곤 없다.

중고차 영업 직원의 말에 따르면 중고SUV를 사러 온 사람이 카니발을 계약하는 경우는 있어도 중고 카니발을 보러 온 사람이 다른 차종을 찾진 않는다. 원하는 매물이 없으면 다른 카니발을 찾는다고 한다. 대체재로 현대스타렉스가 있긴 하지만 업무용 성격이 짙어 카니발이 주는 세련된 이미지와 편리한 옵션의 허전함을 채우진 못한다. 사실 올 뉴 카니발의 중고 가격은 토요타 시에나와 혼다 오딧세이와 비슷하다. 비슷한 값이면 카니발 대신 이 차들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결국 카니발로 돌아간다. 시에나는 셋 중 길이가 가장 짧지만 실내 공간은 가장 넓게 활용할 수 있다. 2열 시트는 앞뒤로 65센티미터 까지 움직이고 종아리 보조 받침대를 올리면 비즈니스석이 된다. 하지만 7인승이라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없다. 혼다 오딧세이 역시 7인승과 8인승 모델이 전부다. 무엇보다 카니발의 주를 이루는 모델은 힘과 연비가 좋은 디젤 모델이고 시에나와 오딧세이는 상대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고배기량 가솔린 모델이다. 카니발을 찾는 사람에게 카니발 말곤 답이 없는 까닭이다.

7·9·11인승

현재 올 뉴 카니발은 최고급 사양인 하이리무진 7인승 모델과 9인승, 11인승 모델을 고를 수 있다. 이 중 최고 인기는 9인승이다. 중고 시장에서도 매물 중 70퍼센트를 9인승 모델이 차지하고 있다. 9인승은 11인승과 비교해 중간 세로 열에 시트가 없다. 덕분에 2열과 3열 탑승자는 좌우 독립 시트에서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 11인승은 승합차로 분류돼 자동차세가 1년에 10만원도 안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최고속도가 110킬로미터에서 제한된다. 이런 이유로 11인승 신차를 샀다가 9인승 중고차로 바꾸는 사람도 여럿 있다고 한다.

7인승 하이리무진은 지난해 새롭게 선보였다. 가장 비싼 R 2.2 디젤 프레지던트 트림의 신차 가격은 5696만원이다. 공급이 수요를 못따라가 현재 주문을 넣으면 6개월 이상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공급이 더딘 이유는 아웃소싱 제작 방식 때문이다. 하이리무진은 기아차 공장에서 생산된 카니발을 외주 업체에서 받아 개조해 만드는데, 하루에 한두 대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외장 색상은 화이트 아니면 블랙, 실내는 베이식 색만 고를 수 있다. 현재 올 뉴 카니발 하이리무진의 중고가는 3000만원대에 형성돼 있다.

이것만은 알고 사라

경쟁자가 없다고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해이해질 소지가 더 많다. 얼마 전 올 뉴카니발은 공명음과 진동에 대한 고객 불만으로 애를 먹었다. 엔진회전수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엔진의 진동과 소음이 실내로 유입된다며 두통과 멀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지난해 연말엔 소유주들이 집단으로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기아차는 결국 ‘무상 수리’로 뿔난 고객의 화를 잠재웠다. 중고로 구매한 카니발 실내가 ‘윙윙’ 울린다면 근처 오토큐 서비스 센터에 가 무상 A/S를 받길 바란다.

마지막 4열에 있는 팝업 싱킹 시트는 기아차가 ‘세계 최초’를 내세우며 강조했지만, 실제 오너들의 말을 들어보면 카니발에서 가장 쓸모없는 부분이다. 공간이 너무 좁아 1열부터 3열까지 모두 앞으로 옮겨야 어린이가 간신히 앉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대로 펼 수조차 없다. 그러니 아예 기대를 안 하는 게 좋다.

카니발은 혼자 타는 차가 아니므로 중고차 시트나 차 바닥의 오염 확률이 다른 차보다 높다. 그래서 중고차로 카니발을 구매했다면 시트와 바닥 대청소를 권한다. 시트를 들어내고 매트를 들어내 청소를 깨끗이 하고 안에 장판을 깔면 항균과 함께 방음 효과까지 톡톡히 누릴 수 있다. 스스로 하기 버겁다면 전문 업체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든든한 버팀목

중고차 가격은 신차 수요와 직결된다. 신차가 망하면 중고차 가격도 내려간다. 13년이 넘은 카니발이 아직도 300만~400만원에서 거래 되는 건 그만큼 최신 모델들이 가격 마지노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SK엔카 장한평 직영점 이상원 대리의 말이다. “아무리 오래된 차라도 카니발을 팔겠다는 연락이 오면 일단 주행거리와 차 상태부터 물어봅니다. 비슷한 연식과 주행거리의 SUV보다 카니발이 더 인기가 좋아요. 500만원 아래에서도 카니발을 대체 할 만한 차는 없습니다.” 카니발의 독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