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규어는 한국 대중의 관심을 끄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신차가 많지 않았고, 이벤트로 끌고 갈 소재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재규어는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수입차 브랜드 중 하나다. 이제는 두어 달에 한 번꼴로 큰 행사가 열린다. 모든 이슈의 중심에는 쏟아지는 신차가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재규어는 탄탄하고 폭넓은 라인업을 갖췄다.

프리미엄 콤팩트 세단 XE와 스포츠카 F 타입을 추가하며 콤팩트 세단부터 중형(XF), 대형(XJ)까지 시장에 내놨다. 올해 하반기에는 브랜드의 첫 SUV인 F 페이스도 합세할 예정이어서 라인업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신차 속에서도 재규어가 특히 애증을 두는 모델이 있다. 바로 라인업의 중심인 XF다. XF는 21세기형 재규어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한 브랜드의 터닝 포인트였다. 2007년에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데뷔한 후(한국은 2008년 5월에 데뷔) 기존의 브랜드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3박스를 강조한 각진 세단 형태의 재규어가 갑자기 쿠페형 세단으로 변신하며 적절하게 시대를 갈아탔다. 21세기형 재규어를 만든 첫 번째 발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동안 빠져 있던 XF가 다시 브랜드의 중심으로 들어와 판매 볼륨의 견인 역할을 한다. 재규어에게 이 차는 그만큼 중요하다. XF 첫 시승회를 여수에서 열어서 우리가 330킬로미터 이상 차를 경험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재규어에 없는 XF만의 매력 간단한 제품 설명회를 마치고 여수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엠블 호텔 앞에서 시승을 시작했다. 우리는 두 그룹으로 올 뉴 XF(25t, 20d)를 나눠 타고 출발했다. 새로운 XF는 많은 부분이 변했다. 첫인상은 이전보다 훨씬 남성적이고 각진 구성이다. 실제로는 곡선 위주의 디자인이지만 XJ, XE와 맥을 함께하는 가파르게 꺾인 프런트 그릴과 트렁크 리드가 그런 인상을 준다. 디자인은 기교보다 비율에 더 신경 쓴 흔적이다.

차 길이는 4954밀리미터로, 길고 늘씬하다. 거기에 짧은 앞뒤 오버행과 긴 휠베이스가 안정감을 살린다. 섀시는 경량화를 꾀했다.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 구조에 리벳 본딩 테크놀로지로 차체 무게가 기존보다 190킬로그램 이상 가볍다(반면 더 많은 장비와 진동 소음을 줄이기 위한 재료가 더해져 총 무게는 이전과 비슷하다). 자료에 따르면 섀시 강성도 28퍼센트 더 좋아졌다. 실내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T자 구성 대시보드에 포인트를 준 알루미늄 트림 같은 XF 고유의 요소를 제외하면 세부 디테일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트림에 기본인 12.3인치 풀 HD 가상 계기반은 새로운 그래픽과 인터페이스로 자동차의 각종 정보와 내비게이션 기능을 흡수한다. 더불어 대시보드 가운데 달린 10.2인치 인컨트롤 터치 프로 디스플레이를 통해 각종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제어한다.

인컨트롤 터치 프로는 뉴 XJ에서 선보였던 기술로 실제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 손가락으로 슬라이드와 터치, 두 손가락으로 멀티제스처와 줌인, 줌아웃이 가능하다. 지도나 전화, 오디오를 직관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어디서 개발한 것인지 쓰임새도 좋고 구성도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재규어가 자체 개발한 기술로 인텔 쿼드 코어 프로세서와 60기가바이트 SSD를 쓴다고 한다.

올 뉴 XF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달렸다. 제품 PT에서는 ‘새로운 레이저 기술로 타사보다 한결 선명한 이미지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실제로는 그렇게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잔뜩 기대하고 봐서인지 장점보다는 개선의 여지가 더 보였다. 단점 한 가지 더. XF의 실내는 다 좋은데 일부 버튼이 너무 작고 눌리는 감각이 애매했다. 기어레버 하단에 자리한 주행 모드 버튼이 그랬다. 디자인적으로는 분명 깔끔하다. 하지만 자주 쓰는 기능인데 잘 눌리지 않도록 작게, 바닥과 평평하게 만든 점이 아쉽다(드라이브 셀렉트 주변에 남는 공간이 많아서 더 그렇게 보인다). 반면 공간의 아쉬움은 없었다. 특히 뒷좌석은 이전보다 15, 24밀리미터 늘어난 다리와 무릎 공간, 27밀리미터 여유로워진 머리 공간으로 한결 여유롭다. 40:20:40으로 접히는 폴딩 시트도 특징이다.

올 뉴 XF는 2.0과 3.0 터보 디젤, 터보 가솔린 등 총 4가지 엔진을 바탕으로 7가지 트림으로 구성된다. 모두 ZF 8단 변속기와 뒷바퀴굴림을 기본으로 한다. 그중 AWD를 쓰는 것은 고성능인 35t(3.0리터 터보)다. 먼저 경험한 차는 25t였다. 2.0리터 터보는 최고출력 240마력/5500rpm, 최대토크 34.7kg·m/1750~4000rpm을 발휘한다. 병렬 방식 트윈 터보와 세라믹 볼베어링을 사용한 터빈으로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고속도로에 올라 속도를 높였다. 출력은 고작 240마력인데 출력을 짜내며 매섭게 몰아붙인다. 8단 변속기의 반응이 재빠르다. 요즘 차와 다르게 운전자가 느끼는 속도감이 제법 있는 편이라 재미있다. 전체적인 움직임은 차분했다. 저속부터 고속까지 여러 주행 영역을 경험하며 느낀 것은 시속 120~140킬로미터 구간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차의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줄고 NVH 억제가 도드라지는 구간이었다. 스포트 모드에서 25t를 코너로 밀어붙였다.

첫 움직임은 이전 재규어처럼 약간 흐느적거렸다. 하지만 곧 직관적인 스티어링 감각이 느껴졌다. 코너에서 타이어 접지력도 좋았다. 토크벡터링이 다소 강하게 차를 회전시켰다. 그래서 어느 순간 코너 안쪽으로 ‘훅~’ 하고 말리는 감각이었다. 불안하거나 나쁜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올 뉴 XF는 앞에 더블 위시본, 뒤는 인티그럴 링크 서스펜션을 썼다. 뒤 차축에 수직 및 수평 강성을 강화한 구조로 접지력과 승차감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뒤 서스펜션이 도드라지는 구간은 본격적인 코너링이나 고속보다 시내 주행이었다. 요철에서 승차감이 한결 좋다고 느껴졌다.

출발 지점에서 144킬로미터를 달려 지리산 오도재 휴게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20d로 차를 바꿔 탔다. 20d는 최고출력 180마력/4000rpm, 최대토크 43.9kg·m/1750~2500rpm을 발휘하는 엔진을 얹었다. 차를 바꾸자마자 느낀 것은 균형감이었다. 출력이 높은 25t 쪽이 가볍게 움직이고 경쾌한 감각을 줬지만, 실제 차의 균형은 20d가 더 좋았다. 25t보다 75킬로그램 무겁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차분하고 묵직한 감각이 살아 있다. 43.9kg·m이라는 최대토크를 살린 가속력도 시원했다. ‘딸딸’거리는 디젤 특유의 소음도 잘 억제한 편이었다. 따라서 저속 주행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동안 가솔린 엔진처럼 편안한 느낌을 줬다. 

한국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뽑힌 ‘남사예담촌 최씨고가’에서 휴식을 하고 다시 여수까지 107킬로미터 구간을 달렸다. XF의 저장공간에 100곡 가까운 곡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4시간 30분 넘게 달리며 드디어 마지막 세 곡을 남겨뒀다. 마지막 리스트는 ‘봄봄봄’과 ‘벚꽃 엔딩’, 그리고 ‘여수 밤바다’였다. 누구의 솜씨인지 기가 막힌 세팅이었다. 그렇게 음악을 크게 틀고 해가 지는 여수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XF 시승을 마무리했다.

희망이 가득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여수 바다에서도, 그리고 재규어에게도.

2016 JAGUAR NEW XF 20d (25t)

기본 가격 6380만~7180만원(6490만~729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R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4기통 2.0ℓ DOHC 터보 디젤, 180마력, 43.9kg·m(4기통 2.0ℓ DOHC 터보, 240마력, 34.7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1830kg(1745kg) 휠베이스 2960mm 길이×넓이×높이 4954×1880×1457mm 복합연비 14.2km/ℓ(10.1km/ℓ) CO₂ 배출량 133g/km(166g/km)

환상적인 시승 코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인 지안재를 지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인 남사예담촌 최씨고가에 들렀다. XF는 이런 코스에서 타볼 만한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