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경주차라면 멋져야 한다. 폼 좀 나야 한다. 생김새부터 마음에 안 들면 응원은커녕 볼 맛도 싹 가신다. 개인적으론 스프린트 카 레이싱이 그렇다. 불과 640킬로그램짜리 오픈휠 경주차에 무려 00마력이나 내뿜는 엔진을 넣어 만든 스프린트 카는 엄청난 속도로 격렬한 순위 싸움을 벌이는 걸로 유명하다. 북미와 오세아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인기도 꽤 높다. 하지만 언뜻 허접해 보일 수 있는 커다란 날개와 그로 인해 더 이상해 보이는 경주차의 생김새가 내 눈엔 너무나 별로다. 이상해서 보고픈 마음이 뚝 떨어진다.

반면 WRC(World Rally Championship)에 출전하는 차들은 멋지다. 마음에 든다. 양산차라서, 더군다나 세계 주요 브랜드의 주력 모델이라 바탕이 되는 디자인 자체가 예쁘다. 이미 눈에 익었단 것도 플러스 요인 중 하나일 거다. 거기에 스포일러를 얹고 경주용 휠을 달고 각 팀 고유의 디자인을 입히고 데칼을 붙이면 아, 딱 저대로 갖고 싶을 만큼 멋지다. 잘 달리기 위해 붙이고 더한 것들이 오히려 장식처럼 보인다. 하긴 차를 꾸미기 위해 일부러 스포일러와 데칼을 붙이는 요즘이다. 휠도 많이 바꾸고. 대중적으로 멋있어 보일 수밖에 없겠다.

현대 셸 월드랠리 팀은 멕시코 랠리에서 타이어 부정 사용과 사고 등을 겪으며 시상대에 오르는 데 실패했다.

올 시즌 WRC에서 볼 수 있는 차종은 총 네 가지다. 현대 셸 월드랠리 팀과 폭스바겐 모터스포츠 팀은 자사 양산 모델인 i20와 폴로로 출전한다. 아부다비 토털 월드랠리 팀은 지난해까지 시트로엥과 함께 팀을 운영해왔다. 때문에 시트로엥에서 최근 고급 브랜드로 독립해 운영되기 시작한 DS의 DS3를 내보내고 있다. WRC에서 가장 사랑받는 경주차는 포드 피에스타다. M-스포트 월드랠리 팀과 디맥 월드랠리 팀, 지포카 체코 국영팀, 야지드 레이싱 팀 등 무려 네 팀이나 포드 피에스타를 애용하고 있다. 제조사가 직접 운영하는 팀이 아닌 경우엔 모두 포드 피에스타를 선택한 셈이다.

물론 아부다비 토털 월드랠리 팀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재는 제조사 팀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함께했던 시트로엥이 신형 WRC 랠리카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 올해만 참가를 포기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아부다비 토털 월드랠리 팀도 올해는 유럽에서 열리는 랠리에만 참가하기로 했다. 즉, 내년에 시트로엥이 복귀하면 다시 함께할 예정이다.

1 디맥 월드랠리 팀 2 2016 WRC 개막전이 치러진 몬테 카를로 3 아부다비 토털 월드랠리 팀 4 야지드 레이싱 팀 5 지포카 체코 국영팀 6 폭스바겐 모터스포츠 팀

WRC의 공식 홈페이지인 WRC.COM에서는 올해 WRC에 출전 중인 랠리카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조사를 진행 중이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랠리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지난 3월 17일부터 홈페이지 방문자를 대상으로 진행해왔다. WRC 팬이 아닌 이상 이 페이지에 들어올 일은 아마 없을 거다. 그러니 진짜 WRC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뽑은 결과라고 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4월 16일 정오 현재까지 딱 한 달간 조사된 결과 1위는 총 33퍼센트의 표를 얻은 M-스포트 월드랠리 팀의 피에스타(왼쪽 사진)였다. 파란색과 검은색의 조화가 멋지고 쿨한 인상을 준다. 공격적인 인상의 피에스타와 잘 어울린다. 2위는 총 32퍼센트의 지지를 받은 아부다비 토털 월드랠리 팀이 선정됐다. 사실 4월 초까지만 해도 이 팀이 1위였다. 하지만 4월 중순으로 접어들며 M-스포트 월드랠리 팀에 역전됐다. 아부다비 팀의 랠리카 디자인은 WRC의 전설 세바스티앵 뢰브가 WRC를 떠난 이듬해인 2013년 살짝 바뀌고 여태 거의 그대로다. 익숙해서, 혹은 뢰브의 향수에 젖어 선택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뭐, DS3 자체도 패션카로 불릴 만큼 예쁜 디자인이긴 하다.

3위는 15퍼센트의 선택을 받은 현대 셸 월드랠리 팀이다. 사실 이 팀도 4월 초까지는 20퍼센트가 넘는 표를 끌어모으며 2위를 달리고 있었다. 역시나 M-스포트가 1위로 올라가며 3위로 떨어졌다. 현대 셸 월드랠리 팀의 신형 i20 랠리카는 올해 처음 투입됐다. 2014년 완전변경 모델이 출시된 i20를 기반으로 신규 개발됐다. 앞뒤 휠 색상까지 다르게 쓰며 디자인에 꽤 신경 쓴 눈치다. 폭스바겐 모터스포츠 팀은 10퍼센트의 표를 얻으며 4위에 그쳤다. 일곱 팀 중 4위가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겠지만 5위부터 7위까지는 5퍼센트 미만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격차가 워낙 컸다. 주요 팀 중엔 꼴찌다. 이유는 솔직히 잘 파악되지 않는다. 어쨌든 1, 2위 팀의 3분의 1만큼도 선택받지 못했다. 내년엔 디자인이 좀 개선될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인원은 총 7522명이었다.

포드 피에스타는 어떻게 WRC를 장악했나?
포드 피에스타를 랠리카로 사용하는 팀은 WRC에 참가하는 일곱 팀 중 네 팀이다. 절반 이상이 피에스타다. 이 정도면 거의 장악이다. 피에스타를 이처럼 많은 팀이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차가 좋아서?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아서? 아니다. 포드가 WRC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다. 포드는 WRC가 처음 치러졌던 1973년부터 출전했다. 잠시 대회를 떠난 적도 있었지만 2012년까지는 팀을 꾸준히 운영했다. 하지만 WRC 팀을 운영하던 포드 유럽법인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2012년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포드 유럽법인은 랠리카 및 기술, 노하우는 계속 지원하기로 했다. 그 말인즉 포드 피에스타를 랠리카로 운영하면 포드가 직접 운영하는 팀과 경쟁하는 데 따르는 기술 지원 차별을 걱정할 일이 없고, 30년 가까이 WRC 팀을 운영해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정도라면 굳이 다른 랠리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올해도 오지에
2016 WRC는 4월 16일 현재 3번째 경주인 멕시코 랠리까지 마무리됐다. 우승은 모두 폭스바겐 팀이 가져갔다. 4년 연속 시즌 우승을 노리는 세바스티앵 오지에가 1, 2회 랠리의 챔피언에 올랐고, 폭스바겐 팀의 맏형 야리 마티 라트발라가 멕시코 랠리를 정복했다. 현대 팀은 실질적 에이스인 티에리 누빌의 불운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 제조사 순위 2위를 달리곤 있지만 벌써부터 폭스바겐 팀과 30점 이상 벌어졌다. 하지만 아직 11번의 랠리가 남았다. 우승은 결국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의 것이다. 다음 랠리는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치러지는 아르헨티나 랠리다. 아울러 올해 처음 중국 랠리가 신설됐다. 9월 8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다. 공교롭게도 추석 바로 전 주말이다. 국내 WRC 팬이라면 직접 관람도 욕심내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