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가 쿠뱅 콘셉트를 처음 선보인 게 2003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삼지창 로고를 새긴 SUV가 세상에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저 마세라티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발상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마세라티는 그들의 생각을 더욱 구체화한 쿠뱅을 선보였다. 이때까지도 반신반의했었다. 마세라티는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레이싱 피가 들끓는 납작한 차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2016년 3월, 이탈리아에서 마세라티 최초의 SUV를 직접 만났다.

르반떼는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을 뜻한다. 마세라티의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뜻하며 르반떼의 모든 것이 이탈리아에서 생산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르반떼는 디자인을 비롯해 모든 부품을 이탈리아에서 만든다. 한때 지프의 뼈대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마세라티는 ‘순수 혈통’을 위해 기블리의 섀시를 개량했다.

디자인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크고 세련됐다. 보닛을 가로지르는 굵직한 캐릭터라인이 스포티한 감성을 더하고 알피에린 콘셉트에서 가져온 대형 그릴에서 이어지는 헤드램프는 강렬하다. 리어 펜더의 볼륨감에서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진다. 루프라인은 특히 매력적이다. 숄더라인 위쪽만 보면 스포츠카의 그것과 다름없다. 윈도 프레임이 없는 도어 덕분에 루프라인이 더욱 간결해졌다고 한다.

실내는 넓고 풍요롭다. 차체 길이 5미터, 휠베이스 3미터가 넘으니 당연하다. 질감 좋은 두툼한 시트에선 이탤리언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넉넉하다. 섹시한 루프라인으로 뒷자리 헤드룸이 좁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거인이 아니라면 누가 앉아도 좁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뒷자리 센터터널도 발목 높이로 낮은 편이다.

처음 시승한 모델은 3.0리터 디젤. 마세라티가 한국은 디젤이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는 발로코 서킷까지 가는 여정(2시간 거리)에 디젤 모델을 권했다.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리니 가볍고 자연스럽다. 엔진은 고요하고 진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차를 움직이자 바퀴의 보들거림이 느껴질 정도다. 느낌이 좋았다. 마세라티의 레이싱 역사가 시차 때문에 잠 못 이룬 비루한 몸뚱이를 괴롭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부드러운 승차감과 적당한 낭창거림이 반갑다. 예전 렉서스 같은 출렁임이 아니다. 스프링이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부드러움이다.

편안함과 스포티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에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편안한 승차감을 만든다.

이 서스펜션은 노면 충격을 걸러내는 솜씨도 여간 아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볼로냐 사이에 있는 시골동네 노면은 아스팔트보다 포트홀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날 밤 피아트 프리몬트를 타고 이 길을 달렸을(거의 기다시피 했다) 때는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았는데, 르반떼는 느낌만 남기고 충격은 덜어냈다. 바퀴에 큰 충격이 가해졌을 때도 운전대는 요동치지 않았다.

시골길을 벗어나 도시에서는 자연스러운 핸들링이 다시 비루한 몸뚱이에 활력을 줬다. 속도에 따라 무게감과 조향각이 달라지고 노면 정보를 풍부하게 전달한다. 특히 앞바퀴 조향감이 좋다. 기계나 전기 힘이 느껴지지 않고 앞바퀴에 바로 연결된 것처럼 또렷한 정보를 전달했다.

코너에서는 적당한 롤을 허용했다. 서스펜션이 횡중력에 대응하면서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단단해지는 것은 지양한다(물론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놓으면 서스펜션이 20밀리미터 낮아지고 댐퍼가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스티어링 조향각은 좀 더 줄어들고 토크벡터링 시스템이 코너를 간결하고 안정적으로 돌 수 있도록 돕는다. 좀 더 속도를 올리면 초반에 약간의 언더스티어가 이는가 싶다가 뒤에서 오버스티어 성향으로 바뀐다.

앞 더블 위시본, 뒤 멀티링크 구조의 서스펜션은 에어서스펜션과 마세라티가 ‘스카이훅’이라 부르는 전자식 댐핑 시스템이 조합을 이룬다. 기본 구조는 기블리의 것과 같지만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길어 노면 대응 폭이 넓다. 스카이훅은 주행 중 속도와 충격량, 횡중력 등의 정보에 따라 댐핑 압력과 에어스프링의 높낮이를 조절한다.

마세라티는 브리핑에서 서스펜션 세팅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랄트 베스터 마세라티 CEO가 가장 우선적으로 ‘운전자의 안정감’을 지시했고, 이를 위해 같은 섀시를 쓰는 기블리보다 비틀림 강성을 20퍼센트 높였다. 그의 두 번째 주문은 ‘편안함과 쉬운 운전.’ 서스펜션 세팅과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마세라티 최초의 SUV는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핸들링과 차체 반응에 과함이 없다. 편안함과 스포티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에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편안한 승차감을 만든다. 가속 시에는 노즈를 아래로 끌어내리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횡중력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도 서스펜션이 과하게 차체 수평을 유지하지 않았다.  

마을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오르니 엔진 성향이 조금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일반 도로에서는 ZF의 8단 자동변속기가 터보래그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모습이었다. 초반에 약간 느린 엔진 반응이 SUV 특성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으니 예민하게 가속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차가 느리다는 건 아니다. 르반떼 디젤은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6.9초에 달린다. 특히 3500rpm이 넘으면서는 그 성향이 아주 스포티해진다. 61.2kg·m의 높은 토크가 자연흡기 휘발유 엔진처럼 치고 빠지니 추월가속에 유리하다. 더불어 소리도 휘발유 엔진의 그것과 다름없다.

시속 200킬로미터에 가깝게 속도를 올려도 안정감에 변화가 없다. 운전대는 무겁고 서스펜션은 단단하다. 섀시 강성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진다. 다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앞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커진다. 이 차는 평상시에는 그릴을 닫아 엔진룸에서 생기는 와류를 줄인다. 엔진 온도가 높아질 때 그릴의 셔터를 열어 공기흡입량을 높인다.

2시간 넘게 운전했지만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운전이 재미있었고 차체가 내 몸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 발로코 서킷에 도달해서는 르반떼 S를 탔다. 3.0리터 V6 트윈스크롤 터보가 들어가 430마력을 낸다. 페라리가 만든 이 엔진의 가장 큰 특징은 반응과 지구력이다. 최대토크 59.1kg·m를 1750~5000rpm의 넓은 구간에서 뽑아낸다. 스펙만으로는 운전이 굉장히 까다롭지 않을까 싶은데, 다행히 이는 오버부스트 시의 과급 형태다. 평상시에는 5000rpm에서만 최대토크가 나오는 고른 토크 곡선을 만든다.  

마세라티의 오프로드
몇 년 전만 해도 마세라티를 타고 오프로드를 달린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것도 아주 잘 달린다.

르반떼는 운전자를 자극하는 교태가 여간 아니다. 한계를 슬쩍슬쩍 보여주면서 운전자를 독려하는데 실상은 그게 한계가 아니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에 놓자 배기 밸브가 열리면서 아이들링 상태임에도 배기음이 불규칙하게 헛기침을 한다. 가속페달은 민감하고 그에 따라 처음부터 앞에서 공기 빨아들이는 소리가 우렁차다. 뒤에서는 더 큰 배기음이 몰아친다. SUV 중에서 이렇게나 배기음이 무겁게 울리는 차는 없을 듯싶다. 콰트로포르테와 기블리에서 나는 소리보다 크다. 배기음만으로도 차가 발사될 것 같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난 이 차의 한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앞 265/50R19, 뒤 295/45R19 사이즈의 피렐리 P제로 타이어가 만드는 엄청난 그립과 브렘보의 6피스톤 브레이크의 제동력은 두터운 신뢰를 안겨줬다. 랩이 더해질수록 차는 더 빨라졌고 엄청난 횡중력에 대항하며 스키드음을 발산했다. 네 바퀴에 달린 안티 롤 바와 토크벡터링 시스템이 양옆에서 차체를 밀어줘 코너도 간결하게 돌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한계 아닐까?’ 싶었는데 너무 쉽게 돌고, 속도를 더 높여도 타이어는 끈덕지게 아스팔트를 붙들고 있었다. 사운드는 점점 커지고 서스펜션은 극도로 단단해지는 것이 마치 하드코어 스포츠카를 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위아래 움직이는 느낌이 더 크다는 것. 이게 무서웠다. FCA 그룹의 발로코 서킷은 경주용이 아닌 자동차 테스트용으로 고저차가 크다. 때문에 위아래로 가해지는 물리적 힘이 일반도로보다 크다. 차가 무서운 게 아니라 서킷이 무서웠던 거다. 지난해 이곳에서 알파로메오 4C를 탔을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었는데, 4C는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워낙 짧고 시트 포지션이 낮아 물리적인 힘이 위로 작용해도 르반떼만큼의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또 르반떼는 고속 코너링에서 약간의 오버스티어 성향을 띤다. 속도를 높일수록 미세하게 스티어링을 조작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있어진다. 스티어링 피드백이 빠르고 정확한 덕분이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지면 2톤이 넘는 무게로 인해 타이어 사이드월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더 이상 페달에 힘을 줄 수 없었다.

MADE IN ITALY
실내 곳곳에 이탤리언 감성이 묻어난다. 그런데 크라이슬러 냄새도 없지는 않다.

르반떼 S는 운전자를 자극하는 교태가 여간 아니다. 한계를 슬쩍슬쩍 보여주면서 운전자를 독려하는데 실상은 그게 한계가 아니다. 성능의 한계점에서 또 다른 한계영역을 살포시 들이민다. 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을 하게 될 포르쉐 카이엔과 비교하면 카이엔만큼 빠르지만 감성 자극은 그보다 더 크다. 그 자극에 화답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기술과 기백이 있어야 한다. 확실히 마세라티의 레이싱 혈통은 차체가 커지고 형태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변치 않았다.

마세라티는 “르반떼가 마세라티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이 뜻은 곧 “지금 판매량의 두 배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현재 마세라티 연간 판매량은 3만2000대 정도. 즉 6만 대 이상이 그들의 목표다. 2012년에 고작 6000대 판매되던 것을 생각하면 4년 만에 10배가 넘는 판매량에 도전하는 것이다. 수치로만 보면 터무니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르반떼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고 그 고심의 결과물은 훌륭했다. 각각의 수치가 경쟁모델에 미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섀시, 엔진, 변속기 등 모든 부속의 논리와 작용이 빈틈없이 연동했다. 르반떼는 분명 시장을 뒤흔들 만한 성능과 기술을 지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마세라티를 타고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100년 역사에 마세라티가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이니까. 그런데 마세라티의 새로운 첫걸음은 훌륭했다. 이제부터는 더욱 잰걸음을 달릴 것이다. 마세라티의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마세라티 르반떼는 오는 10월부터 국내에 판매되고 가격은 디젤이 1억1000만원, V6가 1억1480만원, V6 S가 1억4270만원이다. 다만 FMK에 따르면 판매 시기와 가격은 환율 등의 요인으로 조정될 여지가 있다고 한다.

SPECIFICATIONS

MASERATI LEVANT V6 DIESEL
기본 가격 1억100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AWD, 5인승, 5도어 왜건 
엔진 V6 3.0ℓ DOHC 터보 디젤 275마력, 61.2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2205kg      
휠베이스 3004mm   
길이×너비×높이 5003×1968×1679mm
복합연비 13.8km/ℓ(유럽 기준) 
CO₂ 배출량 189g/km 194g/km   
한국 출시 10월  

MASERATI LEVANTE V6
기본 가격1억1480만원   
레이아웃 ←   
엔진V6 3.0ℓ DOHC 터보 350마력, 50.9kg·m 
변속기  ←   
공차중량 2109kg
휠베이스 ← 
길이×너비×높이  ←  
복합연비 9.3km/ℓ(유럽 기준)  
CO₂ 배출량 249g/km 
한국 출시 12월
 

MASERATI LEVANTE V6 S
기본 가격  1억4270만원
레이아웃 ←
엔진 V6 3.0ℓ DOHC 터보 430마력, 59.1kg·m
변속기 ←
공차중량 2109kg
휠베이스 ←
길이×너비×높이 ←
복합연비 9.1km/ℓ(유럽 기준)
CO₂ 배출량 253g/km
한국 출시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