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에 앉자 한껏 멋을 낸 D컷 스티어링휠이 눈에 들어온다. ‘디자인만큼 스티어링 감각도 좋을까?’ 의문스럽지만 일단 실내 탐구를 계속한다. A필러는 예상외로 두터워 시야를 살짝 가린다. 변속레버는 작은데 도톰하니 움켜쥐는 맛이 좋다. 힘차게 달리고 싶다면 기어레버를 S모드로 바꾸면 된다. 조작감은 매끈하면서도 ‘툭툭’ 절도가 넘친다. 그 옆으로 높은 전력이 드는 공조장치에 비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냉난방 시트와 운전대 열선 버튼이 있다. 공조장치 또한 전력 효율을 위해 운전자에게만 송풍이 가능하다. 운전자의 패턴을 연구한 티가 역력하다. 버려지는 에너지를 살뜰하게 챙긴 배기열 회수장치처럼.

말 많던 뒷좌석에 올라탔다. 역시다. 천장을 움푹 파놓았지만 허리를 등받이에 밀착하니 아쉽지만 내 머리도 닿았다. 공간 설계의 달인인 현대차답지 않은 모습. 한껏 느슨하게 몸을 기울이는 수밖에. 벨로스터의 낯설었던 후방 분할 유리가 아이오닉에 와서는 익숙하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스포일러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겠다. 정작 아쉬운 건 750리터의 트렁크다. 후방으로 갈수록 가파르게 떨어지는 해치 때문에 부피가 큰 짐은 넣기 어렵다. 내가 아이오닉을 산다면 트렁크 바닥 커버를 열면 나오는 수납함을 없애 약간이나마 깊이를 확보하겠다. 이게 다 연비 때문이다. 하이브리드 지상과제는 그놈의 효율성 아닌가!

분명 가득 주유했을 시승차의 계기반에 뜨는 주행가능거리는 925킬로미터, 배터리 충전량은 3분의 2가량이었다. 매뉴얼에 나온 대로 EV 모드 주행을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는다. 지하주차장에 “쌔액” 하는 모터 구동음이 울려 퍼진다. 흥미롭다고 생각한 찰나 EV 모드에 집착한다. 평지에서는 출발 직후부터 거의 전기차로 순항이 가능한데 연비 그래프가 끝까지 꽉 차는 쾌감이 야릇하다. 기쁨이 깨진 건 주차장 램프에서부터다. 프리우스는 EV 모드로 쉽게 탈출할 수 있는 언덕이지만 아이오닉은 반드시 엔진이 개입한다. 본격적인 시내 주행에서도 토크가 필요할 때면 엔진이 자주 개입한다. 반면 완만한 내리막길에서는 고속에서도 전기모드로만 주행이 가능하다. 영동고속도로 서울 방면에서 기름 한 방울 안 쓰고 수십 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었다.

슬슬 아이오닉의 특성이 드러난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모터 하나를 슬쩍 끼워놓고 단속기를 설치한 구조는 분명 장점이 많다. 두께가 얇고 지름이 큰 32킬로와트 모터를 써서 파워트레인의 부피와 무게 증가를 막았다. 아이오닉의 배터리 제어 기술은 훌륭하다. 배터리는 적극적으로 충·방전을 거듭한다. 바닥에서 4칸 위에 다다르면 무조건 엔진이 개입해 강제 충전한다. 배터리팩의 과전류 예방은 물론 고전압 부품에 이상이 생기면 자체 셧다운이 이뤄진다. 리튬이온 배터리 셀은 프레임으로 감싼 뒤 연료탱크와 맞물려 뒤 서스펜션 구조를 완벽하게 바꾼 변형 플랫폼에 세팅됐다.  

시내 주행거리가 212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이때 평균 연비는 리터당 24.4킬로미터를 기록했다. 에너지 흐름을 보여주는 그래픽은 프리우스의 그것에 비해 첨단의 느낌이 부족하다. 우려했던 스티어링 감각은 썩 괜찮다. 의뭉스러웠던 조타감도 상당 부분 중심을 찾았다. 결론적으로 일상적인 주행 패턴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준이다. 오히려 햇볕이 드리워지면 윈드실드 아래에 길게 반사되는 통풍 슬롯 같은 소소한 단점이 두드러질 정도로.   

다시 달린다. S 모드의 주행질감이 아주 좋다. 배터리 때문에 차체가 무거워졌지만 무게 배분이 이뤄져서다. 특히 고속주행의 감도가 뛰어난데 제원상 최고시속의 영역까지도 토크 감각이 시원하다. 의외의 결과다. 완만한 고속 코너에서조차 보디워크가 휘청대지 않는다. 과장해 말한다면 섀시 강성을 높여 무게를 보강한 감각과 비슷하다. 관성에 의해 무거운 차체가 밀릴 때 서스펜션은 오히려 움켜쥐는 이질적인 느낌이 다소 아쉽지만 하이브리드 모델이 이 정도라면 분명 수준급이다. 비슷한 휘발유차의 실력을 훌쩍 능가하는 즐거움이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제동 감각이 매끈하다. 회생제동은 이질감이 없으며 고속에서의 제동력 또한 훌륭하다.

아이오닉을 타고 총 618킬로미터를 달렸다. 평균속도는 시속 36킬로미터, 주행가능거리는 193킬로미터였다. 운전모드는 경제 51, 보통 35, 비경제 14퍼센트로 나왔다. 평균연비는 리터당 18.7킬로미터. 아주 만족스러운 수치다. 공인연비 리터당 20.2킬로미터(17인치 타이어)에 이르지 못했지만 힘껏 달린 걸 감안한다면 흡족하다.

전기를 품은 이종교배의 결과물이 날 만족시킬 줄은 몰랐다. 먼 훗날의 시각으로는 이미 소멸의 궤도에 들어선 내연기관을 제대로 활용한 차다. 환경보호와 자원 재생산의 규제에 대비한 실리적 계산이 아이오닉이다. 배터리 평생 보증과 엔트리 모델의 가격 또한 흡족하다. 물론 강력한 경쟁자인 기아 니로와 오리지널 하이브리드인 4세대 프리우스가 걸림돌이지만 구매를 추천하고 싶은 차다.

SPECIFICATION

레이아웃  앞 엔진, FWD, 5인승, 5도어 해치백 엔진 직렬 4기통 1.6ℓ DOHC, 105마력, 15.0kg·m/시스템 141마력, 27.0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6단 자동 공차중량 1380kg 휠베이스  2700mm 길이×너비×높이 4470×1820×1450mm 복합연비 20.2km/ℓ CO₂ 배출량 69g/km

계기반에 태코미터가 없다. 효율적인 운전을 독려하는 계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