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650i CONVERTIBLE
BMW 650i 컨버터블을 타고 대청호 수변을 달린다. 벚꽃과 햇살이 흐드러지게 핀 날이다. 기분 좋은 나른함을 더하는 건 유키 구라모토의 ‘메모리 오브 신데렐라 타임’이었다. 루프를 열었는데도 하만카돈 오디오의 공간 장악력이 대단하다. 음악이 햇살처럼 온몸을 감싼다.

예전부터 유키 구라모토를 좋아했다. 휴대전화에 음원을 넣을 수 있을 때부터 내 전화기에는 언제나 그의 음악이 있었고, 벨 소리도 그의 ‘레이크 루이즈 (Lake Louise)’나 ‘로맨스(Romance)’였다. 그의 연주곡에는 사랑도 이별도, 망각도 평온도 있다. 가끔은 어디론가 떠나는 여정도 있다. 가사 하나 없지만 모든 게 또렷하다. 그렇게 그의 연주는 내게 일상에서의 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추억의 떨림이기도 하다.

언제인지 기억이 없다. 유키 구라모토는 매년 성탄절이면 한국을 찾아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이라는 콘서트를 연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러니 10년 안의 기억 속 어딘가라고 가늠할 뿐이다. 그토록 좋아했던 그의 연주를 직접 대했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커튼콜에서 가장 유명한 ‘레이크 루이즈’를 연주했고 관중 모두는 숨죽여가며 그의 연주를 아로새겼다.

‘붕어 기억력’을 가진 내가 지금까지 그 순간을 생생히 떠올리는 건 순간의 떨림을 공유했던 누군가가 옆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손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때때로 눈을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우리는 유키 구라모토가 증폭시킨 서로의 감성과 감각을 공유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기억은 산화된 사진처럼 희미해졌다. 그런데 기억의 저편 어딘가를 더듬거리면 그녀와의 접점 어딘가에 벚꽃이 있었다. 그 순간의 기록과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봄날의 기억 한편에 벚꽃이 있었다. 그곳에 분명 벚꽃이 있었다. 글/이진우

Instrumental

‘MEMORY OF CINDERELLA TIME’,
YUKI KURAMOTO

Kindness is timeless, Love is so easy to give, It just takes a moment to give someone your love

‘TIMELESS’,
SERGIO MENDES FEAT. INDIA ARIE

JAGUAR F TYPE S AWD CONVERTIBLE
꽃이 아름다운 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꽃망울을 터뜨리지만 촉촉한 봄비에도 이내 그 잎을 떨어뜨리고, 넘실대는 바람에도 가녀린 송이를 힘없이 놓는다. 끝내 버티더라도 결국은 곱디고운 색을 잃는다. 그리고 슬며시 자취를 감춘다. 짧은 황홀함과 긴 기다림. 꽃의 아름다움엔 그렇게 마음의 환상이 덧씌워진다.

하지만 사랑은 영원해야 더 아름답다. 시작할 때의 뜨거움은 금세 식어버릴 수 있다. 그건 괜찮다. 타오른 뒤 남는 건 어차피 바스러지는 재뿐이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마저 거둬진 둘의 동행은 아름다울 수 없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존은 사랑일 수 없다. 오히려 끝없이 이어지는 사소한 마음과 표현이 사랑일 수 있다.

브라질 최고의 음악가 중 하나로 꼽히는 세르지우 멘지스도 사랑의 영원과 초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딱 10년 전에.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아이.엠(will.i.am)과 함께 프로듀싱하고 당대 최고의 후배 음악인들과 공동 작업해 내놓은 앨범 ‘타임리스’에서다. 멘지스는 흥이 폭발하는 삼바 리듬을 적당히 식혀 따사로운 보사노바 리듬으로 엮었다. 다양한 퍼커션도 곳곳에 맛깔나게 깔았다. 여기에 리드미컬한 기타와 양념 같은 키보드를 얹어 멜로디가 담길 예쁜 연주를 만들었다. 사랑을 부추기는 건 인디아 아리의 달콤한 목소리다. 원래 그녀의 음색은 담백하다. 하지만 ‘타임리스’에서만큼은 달달하다. 재규어 F 타입 컨버터블의 지붕을 활짝 열고 꽃길을 달리며 ‘타임리스’를 들었다. 블루투스로 전달하는 디지털 음원이지만 메리디안 오디오를 거치면 좀 더 생생하다. 그리고 아날로그적이다. 디지털 음원을 아날로그적인 느낌으로 재생하는 건 메리디안 오디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음악 때문일까? 머리 위로 보이는 꽃의 유한한 아름다움에서 영원을 이어갈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벌과 나비를 유혹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게 꽃이다. 그리고 꽃이 진 자리에서 열매란 결실이 맺어진다. 영원할 수 없었던, 결실을 맺지 못한 나의 사랑도 차 안으로 쏟아지는 봄 햇살에 녹아 바람결에 흩날리는 것 같았다. 글/고정식

PORSCHE 911 CARRERA S CABRIOLET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곳곳에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괜히 설레어, 괜히 주변 일에 참견하고 싶어지는 때다. 그렇게 하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밖으로 무작정 나간다. 싱그러운 봄기운을 맞으며 컨버터블을 타기 딱 좋은 때다.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무작정 지붕을 열고 달린다. 그게 새로 나온 포르쉐 911 카레라 S 카브리올레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이 차는 420마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터보 엔진과 똑똑해진 듀얼클러치 변속기, 새로운 하이테크 주행 장비로 무장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드레날린이 필요 없다. 그저 부드럽게 봄을 따라 도로를 쫓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엔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야 하는 건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기분 좋은 진동보다 더 느끼고 싶은 게 바람의 속삭임이다. 머리가 헝클어져도 좋다. 버튼만 누르면 언제든 윈드 디플렉터를 곧추세울 수 있지만 사양한다. 그냥 부드럽게 달리는 게 좋다. 911은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스포츠카보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달릴 줄 안다. 극과 극을 달리는 폭넓은 쓰임새가 이 차의 진짜 매력이다.

911에는 보스 사운드 시스템이 달린다. 하지만 911을 포함해 모든 포르쉐에 달리는 사운드 시스템은 언제나 오디오가 도드라진 적이 없다. 그저 순간순간 필요한 음악의 감정을 정확하게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그거면 된다. 그게 오디오의 목적이고, 그게 좋은 오디오다.

많고 많은 노래 중에 꼭 봄에 어울리는 노래를 들을 필요는 없다. 지난봄 옆자리에서 함께  들었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케이티 페리의 ‘틴에이지 드림’을 튼다. 볼륨을 더 높인다. 어느 순간 온몸에 전율이 진하게 전해지는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 기억을 더 간직하고 싶어서 곡을 처음으로 돌린다. 그렇게 봄꽃이 만발한 길을 달린다. 글/김태영

Let’s go all the way tonight
No regrets, just love
We can dance until we die
You and I, We’ll be young forever
You make me feel like I’m living a Teenage dream
The way you turn me on
I can’t sleep
Let’s runaway
And don’t ever look back
Don’t ever look back

‘TEENAGE DREAM’,
KATY PERRY

We keep this love in this photograph, We made these memories for ourselves, Where our eyes are never closing, hearts are never broken, And times forever frozen still

‘PHOTOGRAPH’, ED SHEERAN

AUDI TT ROADSTER
아우디 TT 로드스터의 담백한 스피커로 에드 시런의 ‘포토그래프’가 흘러나온다. 담담한 기타 선율이 가슴을 때린다. 인적이 드문 비포장도로를 지붕 열고 달리는 맛이 꿀맛이다. 감미로운 노래가 따사로운 봄 햇살에 뒤섞여 온몸을 어루만진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시골길,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노래 속 가사처럼 시간이 그대로 얼어붙은 것 같은 기분이다. 에드 시런의 목소리가 가만히 내 심장을 건드린다.

TT는 스피커에 보스나 하만카돈, 메리디안 같은 유명한 오디오 브랜드를 붙이지 않았다. 아우디에서 제공하는 기본 오디오 시스템을 얹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리가 ‘보스’ 딱지를 붙인 내 차 오디오보다 다섯 배쯤 좋다. 사운드가 풍성하고, 묵직하다. 고음과 저음, 밸런스 등을 취향에 맞게 조정할 수 있어 내 귀가 좋아하는 사운드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모든 과정을 스티어링휠에 있는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거다. 버추얼 콕핏에선 친절하게 노래 제목도 알려준다. 한글로 된 제목도 이상한 특수문자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문자로.   

TT 로드스터의 소프트톱은 10초 만에 하늘을 통째로 보여준다. 지붕을 열고 고개를 들자 머리 위로 벚꽃이 만개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눈처럼 떨어진다. 시트에 몸을 기대고 오디오 볼륨을 높였다. 따사로운 햇살이 얼굴을 만지는 느낌이 좋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기분이 좋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봄이 좋고, 컨버터블이 좋다. 아아, 에드 시런의 기타 연주가 좋다. 글/서인수

FIAT 500C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익숙한 피아노 선율을 듣고 손가락이 멈췄다. 영화 <4월 이야기>의 OST 중 1번 트랙 ‘에이프릴 프런트(April front)’다. 2000년 이맘때 대학교 새내기였던 난 이 영화를 보고 극장 근처 레코드 가게로 가 OST CD를 샀다. 그리고 한동안 1번 트랙만 주야장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라디오에서는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때의 감성이 그리워 스마트폰으로 ‘에이프릴 프런트’를 찾았다. USB 선으로 500C의 오디오 시스템에 접속하자 여섯 개의 알파인 스피커에서 주인공 우즈키의 설렘을 담은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캔버스로 된 500C의 지붕을 활짝 열고 시트를 뒤로 젖혀 하늘을 마주하고 누웠다. 그때의 봄바람을 불러들여 같이 음악을 들었다. 4분 7초 동안 16년 전 그때로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났다.

<4월 이야기>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처럼 이야기할 게 별로 없는 영화다. 주인공 우즈키가 고향 홋카이도를 떠나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겪는 사소한 에피소드가 전부다. 내러티브보다 새로운 시작을 맞는 설렘, 풋풋함, 분주함, 낯선 감정들을 우즈키의 밝은 캐릭터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 ‘시작의 감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영화다. ‘4월’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이 아닌 그 자체로 조연이었다. 참고로 일본은 4월이 입학 시즌이다. 영화의 마지막엔 우즈키가 도쿄로 온 목적이 드러난다. 바로 짝사랑하는 선배 야마자키를 만나기 위해서다. 감독 이와이 순지는 이 대목에서 사랑만큼 설렘의 강도가 큰 시작도 없다는 걸 이야기한다. 당시 우즈키의 모습은 꼭 내 모습 같았다. 나 역시 홀로 서울로 올라와 설렘과 불안 사이에서 또 다른 시작을 꿈꾸고 있었다. 언젠가 만나게 될 미래의 여자친구도 상상하며. 글/조두현

비 오는 4월의 오후, 난 다시 선배를 만났다. 내 머릿속에
그림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는 선배의 모습이 지금 내 앞에 있다.
영화 <4월 이야기> 중 우즈키의 독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