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MKX + 딥소프트 가죽
“이 정도면 최상급입니다. 가정용 소파에서도 최고 품질에 속해요. 가죽 질감이 쫀쫀하고 섬세하게 살아 있어요. 만져보세요. 이런 가죽은 촉감도 좋습니다. 엉덩이가 맞닿은 부분은 통풍 때문에 펀칭해서 더 부드럽네요.” 천용환 장인은 말을 하는 내내 시트에서 쉽게 손을 떼지 못했다.
링컨 MKX는 시트에 브리지 오브 위어(Bridge of Weir)사의 딥소프트 가죽을 사용해 럭셔리카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차 시트에 사용하는 가죽은 두 시간 동안 건조하면서 연화 과정을 거치는데, 딥소프트 가죽은 16시간을 할애한다. 그만큼 더 부드럽고 탄탄하다. 브리지 오브 위어는 1905년 영국 스코틀랜드에 세워진 전통 있는 가죽 가공 회사다. 이곳은 공장 반경 480킬로미터 이내에서 자란 소가죽만 사용하는데 품질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스코틀랜드 지역은 기후가 서늘해 모기가 없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방목한 소의 가죽은 흠집이 없고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천용환 장인의 호평이 이어졌다. “푹신하고 안락한 가죽 소파에 가장 가까운 시트를 꼽는다면 바로 이겁니다. 이 정도면 장거리 운전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것 같네요. 이런 시트에는 당연히 마사지 기능도 있을 겁니다.” 장인의 눈썰미는 옳았다. MKX 앞좌석에는 ‘액티브 모션’이라고 하는 마사지 기능이 있다. 정형외과 의사들이 참여해 개발했다는 멀티 컨투어 기능을 사용하면 22가지 방향으로 시트를 조절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GLC + 나파 가죽
“시트 디자인은 이 중에서 제일 멋지네요. 특히 베이지색 컬러가 전반적인 실내 디자인과 어우러져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가죽 질감이 조금 실망입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나파 가죽을 사용하긴 했지만 벤츠라고 해서 뭔가 다를 줄 알았거든요. 푹신함도 기대보다 덜하고요.” 김만식 장인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이 차의 시트는 컬러가 살렸습니다.”
과거엔 소파도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이 대세였다. 하지만 요즘엔 흰색이나 베이지색도 많이 찾는다. 주요 고객은 젊은 층이다. 밝은색 소파나 가구는 쉽게 때가 타 관리하기 어렵지만 인테리어의 멋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겐 그런 불편 따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 시트 역시 마찬가지다.
메르세데스 벤츠 GLC 시트에는 나파 가죽을 둘렀다. 나파 가죽은 1875년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소이어 태잉 컴퍼니’에서 시작됐다. 이곳에서 일하던 에마누엘 마나세는 가공되지 않은 천연 가죽을 알루미늄 황산염이나 크롬염으로 무두질했다. 그러자 원래 성질은 그대로 있으면서 질감이 더욱 부들부들해졌다. 내구성도 좋아졌고 염색도 더 잘됐다. 나파 가죽은 이후 지금까지 자동차, 소파, 가방 등 여러 분야에서 단골 소재로 쓰이고 있다.
소파의 쿠션을 담당하고 있는 김성길 장인이 등받이를 손바닥으로 눌러보더니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좀 더 푹신푹신하면 좋을 텐데. 어째 쿠션감이 생기다 만 것 같네.” 더 푹신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물었다. “지금 여기엔 스프링을 쓴 것 같은데, 저라면 탄성 좋은 우레탄을 넣을 겁니다. 몸 전체를 받치기엔 우레탄이 나아요.” 앉았을 때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만들어주고 싶은 33년 차 장인의 고집이 느껴졌다.

포르쉐 911 타르가 4 GTS + 알칸타라
“앉자마자 몸을 착 감싸주네요. 리클라이너 소파라고 등받이를 뒤로 눕힐 수 있는 안락 소파가 있는데 딱 그 느낌입니다. 앉았다기보다 누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소파만 50년 동안 만든 김만식 장인이 포르쉐 911 타르가 4 GTS 조수석에 앉아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엉덩이가 뒤로 쑥 들어가는 시트 포지션이 낯선 모양이었다. 타르가 4 GTS의 스포츠 시트 가운데 패널엔 검은색 알칸타라가 쓰였다. 알칸타라는 이 밖에도 스티어링휠 림, 변속 레버, 파킹 브레이크 레버, 도어 핸들, 도어 수납부 커버 등 실내 곳곳을 장식했다. 알칸타라는 머리카락 굵기 400분의 1 크기의 폴리우레탄과 폴리에스테르를 촘촘하게 짜 만든 합성 직물이다. 무게가 천연 가죽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스웨이드보다 내구성이 뛰어나 차의 실내나 가구 등에 고급 소재로 쓰인다. “알칸타라는 구조상 진드기가 살 수 있는 공간이 안 나와요. 그래서 아토피 환자가 있는 집에서 주문하기도 하는데 가격이 워낙 비싸 수요가 많진 않습니다.”
운전석 쪽에 있던 천용환 장인이 알칸타라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나라도 샤무드라고 이런 비슷한 소재를 만듭니다. 육안과 촉감으로는 알칸타라와 구분이 잘 안 되지요.” 샤무드(Chamude)는 1993년 코오롱 인더스트리에서 자체 개발한 초극세사 합성 직물이다. 폴리에스테르 원사가 머리카락의 1000분의 1 크기로 부드러운 촉감이 특징이다. 천용환 장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차의 알칸타라는 소파에 쓰이는 것과는 다르네요. 아마 뚜껑(?)을 열고 다니는 차라 직사광선에 잘 견디고 변색이 안 일어나도록 알칸타라와 가죽에 화학 처리를 강하게 한 것 같습니다.” 모두가 알칸타라에 빠져 있을 때 23년 동안 소파 봉제 작업을 해온 구홍순 장인은 스티치를 꼼꼼하게 살피며 조용히 혼잣말을 뱉었다. “누가 했는지 자로 잰 듯 기가 막히게 박았네.”

BMW i3 + 올리브 잎
“이건 겉보기에 도꼬 같은데 만져보니 아니네요.” “설마 도꼬를 BMW에 쓰려고요?” “광택이 독특한 걸 보니 마감을 후노리 같은 거로 했나요?” 생소한 가죽 용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도꼬’란 소가죽 밑면을 얇게 떼어내 가공한 가죽으로 가격이 저렴해 주로 보급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우리말로 상가죽이라고 한다. ‘후노리’는 해초를 이용한 가죽 마감재의 한 종류다. 지난 2004년 기술표준원이 1500개 가죽 용어를 KS 규격으로 제정해 우리말로 바꾸었지만 아직 국내 가죽 산업에서는 한자어와 일본식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가죽 용어가 내게 생소한 것처럼 장인들에겐 난생처음 보는 전기차가 신기했다. “이 차의 시트는 대충 만든 것처럼 보여도 가죽과 직물이 꼼꼼하게 잘 연결됐습니다. 가죽과 직물의 조화가 산뜻해 보여요. 시트 두께가 얇아 딱딱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락하고 푹신합니다. 가벼워 보여 바로 떼어서 의자로 써도 되겠어요.” 20년째 소파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이효진 장인이 감탄하며 말했다.
BMW i3 실내 곳곳엔 친환경적 요소가 담겨 있다. 시트의 주된 면을 이루는 직물은 100퍼센트 재생 가능한 폴리에스테르로 만든다. 신체와 시트 사이의 온도 차를 줄여 더운 날에도 기온이 많이 오르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이는 곧 공조장치 이용을 줄여 연료 효율을 돕는다.
가죽은 독일 남부에서 키운 소의 것을 사용한다. BMW i3는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에서 생산되는데 그만큼 가죽 공급 경로가 짧다. 가죽 마감은 올리브 잎에서 추출한 타닌으로 무두질해 오묘한 브라운 컬러로 멋을 더했다.
요즘엔 가구에도 친환경 바람이 분다. 소파의 뼈대와 합판, 도료, 가공 약품 등 모두 친환경적 소재를 골라 사용한다. 김만식 장인이 활짝 열린 i3의 실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작 기간이 더 오래 걸리고 비용도 비싸지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자동차도 이렇게 만드는데 소파가 이에 뒤질 수 없지요.”

르노삼성 SM6 + 퀼트 나파 가죽
“가죽의 질감은 자동차에서 많이 사용하는 나파 가죽 같은데 잘 꾸며놨습니다. 마치 샤넬 핸드백 같아요. 이런 누빔은 가방이든 소파든 가죽 제품을 고급스럽게 보이기 위해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죠. 바느질이 생명인데 재봉선이 아주 깔끔해요. 통풍을 위한 펀칭도 균일하게 잘 찍었네요.” 전성구 장인이 르노삼성 SM6의 시트 여기저기를 눌러보며 말했다. 그는 올해로 소파 제작만 25년 차로 현재 품질 검사를 맡고 있다. SM6 시트와 같은 디자인의 소파는 고급스럽긴 하지만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고 했다. 요즘은 북유럽 스타일처럼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어보라고 권했다. 시동이 걸리자 시트 전체가 앞으로 당겨지면서 허벅지 부분의 쿠션도 움직였다. SM6는 시동이 걸리고 꺼질 때마다 운전석이 앞뒤로 50밀리미터씩 자동으로 움직여 타고 내리기가 편하다. 시트 쿠션 또한 운전자의 체형에 맞게 최대 60밀리미터까지 늘릴 수 있다. 앞좌석엔 마사지 기능도 있다. 조수석에 앉아 마사지 메뉴를 눌렀다. 마사지는 ‘파워’, ‘스포트’, ‘요추’ 세 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고 세기와 속도도 조절할 수 있다. 시트가 꿀렁거리자 장인들이 웅성웅성 모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 서 있던 공장장 천용환 장인이 슬쩍 물었다. “이런 차는 얼마나 하나요? 한 4000만~5000만원 하나요?” 순간 시트 하나로 차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요. 일반적으로 2000만원대고 지금 보시는 모델이 가장 비싼 모델인데 3190만원입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그는 놀란 눈빛으로 시트 이외에 차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쇼파 1975’의 장인들
취재에 ‘쇼파 1975’의 국내 최고의 소파 장인들이 함께했다. ‘쇼파 1975’는 이름대로 1975년부터 지금까지 소파만 만들어온 기업이다. 각 분야 20~30년 경력의 전문 장인들이 모든 제품을 직접 손으로 만든다. 대표를 맡고 있는 김만식 장인은 50년 동안 한결같이 소파만 만들어온 역사적인 인물로 아직도 손수 디자인한다. 27년 동안 소파를 만들어온 공장장 천용환 장인은 ‘쇼파 1975’의 모든 제품의 시작과 끝을 지휘한다.
모든 제품은 개인 맞춤형으로 주문 생산된다. 그래서 한 달에 150개 정도만 만든다. 주로 이탈리아 피요르드 가죽을 사용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소재와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들에겐 뚜렷한 장인 정신이 있다. 모든 제작 과정은 1년이 지나도 똑같아야 한다. 그리고 한 번 구입하면 평생 A/S를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