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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한복 그리는 사람들__2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 열두 명을 만났다. 이들은 더 이상 ‘한복을 만든다’고 말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로서 스케치하고 그들이 채워갈 트렌드를 논한다.

2016.03.11

 

김영진, 아주 다른 세계를 찾아서
김영진에게 한복은 처음부터 오트 쿠튀르였기에 최고급 레이스를 안감에도 쓴다.

 

“차이킴을 시작하고서 달라졌어요. 시즌마다 더 과감하게 제한 없이 도전할 수 있는 목표가 생겨서 즐거워요.” 김영진은 2013년 기성복 세컨드 브랜드 차이킴을 내면서부터 머리를 짧게 잘랐다. 흡사 그의 뮤즈인 1930년대 한국 무용가 최승희가 연상되는 모습이다. 김영진의 팀은 지금 새로운 컬렉션 준비에 한창이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고민이 많다. “보다 더 알려져야 제가 원하는 만큼 색다른 소재를 써서 한복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데, 난 참 그게 안 돼요.” 그는 한복 디자이너라면 유독 소재에 더 예민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루이 비통과 로로 피아나에서 일했던 경력도 김영진 한복의 차이를 만든다. “한복은 소재든 바느질이든 무조건 가장 뛰어나야 해요. 속이면 바로 드러나거든요.” 차이의 한복은 오트 쿠튀르이므로, 안감과 겉감을 구분하지 않고 가장 좋은 천을 찾아, 디자인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사람들이 샤넬 하면 바로 트위드 재킷과 블랙 드레스를 떠올리잖아요? 제가 만드는 한복도 나만의 언어가 되어서 사람들이 딱 떠올리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영진은 지금 더 잘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김영진의 시그너처라 할 수 있는 철릭 원피스는 근래 모사품이 부쩍 늘었다. 그만큼 대중이 받아들였다는 뜻이라 위안한다. “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직업이라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정직하잖아요. 피카소가 자기 스타일을 구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초를 연마했는지 사람들이 모를까요? 제 한복도 그래요.” 지금 입은 저고리도 16세기 우리 한복을 토대로 만들었다. 이 옷을 한복처럼 느끼지 못했다면 그 의도가 적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차이킴의 한복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전혀 낯선 세계였으면 좋겠어요. 계속 입고 노는 옷이길 원해요.” 김영진은 음악과 미술을 즐기고 크리에이터 집단을 만나 부지런히 영감을 얻는다. 그의 꿈은 여러 방향에서 뛰놀고 있다. “텍스처에 관심이 많은 드리스 반 노튼이나 저와 전혀 다른 아제딘 알라이아가 한복을 만들면 어떨까요?”

 

About  남성 무관의 옷을 여성복 모티브로 바꾼 철릭 원피스는 김영진을 대표하는 디자인이다. 최근 사람들이 보다 쉽게 그의 스타일을 접할 수 있도록 기성복 차이킴을 론칭했다. 2015년 프랑스 국립장식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시도로 현대적인 한복을 알리고 있다.

 

 

 

김혜순, 순도 높은 원색의 춤
김혜순은 한복이라면 두 말 없이 일을 벌인다. 가장 좋아하는 샛노랑 저고리와 진분홍 치마를 마음에 입고서.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한복을 할 거예요. 그러려면 잘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지요.” 김혜순은 그간 저술해온 책을 챙기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로 하여금 전통 복식 연구에 매달리게 하는 건 사명감이라고 하기엔 너무 뜨거운 본능 같은 것이다. 지금은 대학 강의 외에도 고향 순천 청암고에 디자인 교육 센터 예정관을 열고 다문화 가정 학생들에게 우리 옷 만들기를 가르친다. 한복으로 정체성을 배우기 때문이다. “옷은 사회를 비춰요. 제가 연구를 멈추지 않는 건 그런 매력을 자꾸만 발견하기 때문일 거예요. 사람들이 예를 갖추면 반드시 옷이 발달하고 권력을 과시할 때 덧붙일 것들이 많아지죠. 조선 시대에는 갓에 달린 작은 장식 하나까지 여자 옷보다 남자  옷이 화려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잖아요?” 한복도 패션이기에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죠. 그런데 왜 모든 분야에서 ‘원조’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누구나 원조로 돌아가고픈 충동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옛것보다 편하다는 요즘 한복에 개의치 않지만 하고픈 말은 있다. “기본이 있어야 흩어지지 않아요. 좋은 옷은 입는 사람에게 잘 맞아서 입었을 때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는 꼭 10년 전 드라마 <황진이>에서 터부시됐던 조선 기생의 옷을 원 없이 풀어냈다. 당시 자기 마음이 다할 때까지 만들겠다고 제작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모든 의상을 만든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때 하지원 씨가 입었던 옷이 어색하지 않았던 건 배우가 이미 황진이가 돼 있고 옷도 황진이의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조곤조곤한 말투에서 김혜순의 힘이 느껴졌다. “난 그냥 내 길을 가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죽도록 뛰고 있어요. 내가 하는 만큼 일은 다가오거든.” 김혜순은 디자이너이기보단 ‘장이’에 가깝다. 범인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통도 크다. “올해 9월 24일, 전남 순천으로 와요. 내가 만든 한복을 거기 온 사람들한테 다 입혀서 축제를 할 거거든. 음악가 양방언 씨가 연주도 해주겠대요. 수천 명이 한복을 입고 들판에 선 광경이라니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아요?”

 

About  김혜순은 한복디자이너이자 전통 복식 연구가로 한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대하 사극 의상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 <토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천년학>, 그리고 영화 <광해>가 대표적이다. 드라마 <황진이>는 한국 현대 한복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는다. 다수의 국제 패션쇼와 전시를 통해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오인경의 앤티크 드레스
오인경은 한복을 빈티지 패션으로 본다. 그의 옷이 한껏 젊으면서도 전통을 잃지 않는 이유다.

 

“저는 왜 21세기를 회피하는 걸까요?” 오인경이 자문하듯 물었다. 스펀지밥이 그려진 저고리로 이름을 알린 지 오래지만 18세기 빈티지를 고수하는 자신의 취향에 대한 고민은 오늘날 한복의 현주소와 같다고 할까. “배우 정려원을 생각하면서 옷을 그릴 때가 있어요. 한복을 그저 옛날 옷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한복처럼 보이지 않길 바라요. 한복을 아는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길 바라고요.” 그녀 옆에 세워둔 마네킹이 입은 드레스, 아니 도트 무늬 한복을 보면 그 말의 의미를 금세 알 수 있다. 그 옷속에는 배냇저고리도 재현해보고 입어보는 전통 의상 디자이너로서의 고민이 꽤 깊이 스며 있다. 여전히 누군가 개량 한복을 만드느냐고 물을 때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누구든 한복을 좀 더 알면, 이노주단이 고수하는 전통 선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오인경은 자투리 옷감으로 소품을 만드는 ‘누에에게 미안해’ 프로젝트도 같은 마음으로 진행한다. 그런 사람이니 포장도 남다르다. “한복 상자가 쉽게 버려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사이드 테이블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오동나무로 만들고 있어요.” 어느 맥주 바 한가운데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한복 상자. 그것이 오인경이 그 안에 접어 넣는 한복의 가치다.

 

About  전통 속에 실용성을 갖춘 한복을 찾는 데 몰두하는 디자이너다. 2012년 자신의 영어 이름을 얹어 이노주단을 열었다. 만화 캐릭터 스펀지밥이 그려진 저고리처럼 재치 있는 디자인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먼저 알려졌다. 여러 장르의 창작자들과 함께 환경과 동물보호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곤 한다. 

 

 

 

김민정, 입고 싶은 한복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고 싶어 하는 신부가 있을까? 한복린의 수장, 김민정의 ‘한복 드레스’를 보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김민정은 ‘한복 드레스’로 유명하다. “제 디자인에 시그너처 스타일이 있고, 그걸 인정받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에요. 다만 이름에 ‘드레스’라는 단어가 붙었다고 해서 ‘모던하고 트렌디할 뿐이겠지’라고 지레짐작하지 않았으면 해요.“ 사실 그의 한복 드레스는 ‘모던’보다 ‘전통’에 가깝다. 찬찬히 살피면 한국의 전통 혼례복인 활옷과 닮았다. “전통 활옷은 붉은색 비단 위에 연꽃, 모란 등을 화려하게 수놓은 디자인이 특징이에요. 제가 디자인한 한복 드레스는 활옷의 전통적인 형태를 많이 닮았지만, 분홍빛 칠색 양단으로 지어 색감으로부터 전해지는 모던함이 있어요.” 그녀가 한복 드레스를 만드는 이유는 심플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었으면 해서다. “요즘 한복 열풍이 불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한복을 가장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자리는 결혼식이에요. 그래서 예비 신부가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기꺼이 포기하면서까지 입고 싶은 한복 드레스를 많이 만드는 것이 제 목표 중 하나입니다.” 한복을 입고 결혼하는 것은 의복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통에도 숨을 불어넣는 일. 한복 입은 신부라면 서구식 결혼식 대신 전통 혼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한복의 전통적인 요소만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한복을 입던 시대를 좋아해요. 그렇다고 ‘한복을 입어야만 해’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전통적이면서도 끌리고, 입고 싶은 한복을 만들고 있어요.”

 

About  김민정은 전통을 잘 모르는 이도 입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한복을 만들려 한다. 전통 한복의 형태는 갖추지만 동시에 톤 다운된 색, 검은색과 비슷한 색, 은색 등 한복에 흔히 쓰이지 않던 감각적인 색을 사용하면서 한복을 ‘여자의 로망’으로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 유진, 이보영, 미란다 커, 탕웨이 등의 유명 스타들도 한복린의 팬이다.

 

 

 

이혜순, 반듯하고 꼿꼿이
이혜순은 한복에 눈물짓는다. 나무껍질에 앉은 색을 잡아내는 매서운 눈으로.

 

“나는 붉은색 치마를 입으면 어색해요.” 이혜순은 오늘도 상아색 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은 단아한 모습이다. 그가 만든 한복 역시 단아하다. 정해둔 전통의 기준을 더는 넘지 않는다. 그건 전통에 대한 경외와는 조금 다른 얘기다. “몇 년째 보던 것도 불쑥 달리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어서 염색하는 분들이 고생합니다. 나무 껍질을 들고 가서 똑같이 해주세요, 그러기도 해요.” 그 색에 붙인 이름은 ‘먼지색’이다. “5000년 역사가 모양을 바꾸면서 한복에 살아 있었죠. 자연에서 옷감을 얻고, 그 특성에 맞는 바느질로 옷을 만들고 계절감을 담아요. 누구든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게 돼 있고요.” 그런 한복을 그저 옷의 한 종류로 쉽게 구분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 신한복이란 말도 있어요. 그럼 나는 구한복을 만들고 있는 건가요?” 그는 정부든 기획자든 한복을 이벤트화하려는 시도가 마뜩잖다. 이혜순은 한참 치맛단을 내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전주한옥마을의 풍경이 앞에 있었다. 거리에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은 소년과 소년들이 유난히 많던 그날을 묘사하는 이혜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도 비에 한복이 젖는 걸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나한테 이렇게 귀한 옷이 아무렇게나 입고 고름조차 제대로 매지 않는 옷이라니요.” 가던 길을 뒤돌아 무엇에 홀린 듯 사람들을 세우고 고름을 매줬다. “그들이 한복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옷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일본 기모노가 좋은 예다. “그 옷을 입으러 가면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경건히 맞고 발끝까지 옷을 갖춰 입혀줘요. 그때부터 그 옷은 귀한 옷이 되는 거예요.” 그녀는 여전히 한복을 걱정한다. 남은 바람은 한복을 갖춰 입는 일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좋은 숍들을 마다하고 여기까지 찾아온 신부가 있었어요. 한복을 입고 전통 혼례를 치르고 싶다고 했죠.” 이혜순은 그 말에 설레었다. 그래서 꽃가지 하나까지, 공들여 고르고 꽂으며 혼례식장을 한껏 꾸몄다. 신랑이 배우 송일국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About  이혜순은 전통 한복의 고증을 통해 현대적인 디자인의 변화를 꾀하는 디자이너다.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쌍화점>의 의상을 맡으며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15년 12월 열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전시 등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한 쇼와 패션 관련 프로젝트에 적극 나서고 있다.

 

 

 

CREDIT

EDITOR / 김미한, 이응경(프리랜서 작가) / PHOTO / Kim Chunho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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