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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한복 그리는 사람들_1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 열두 명을 만났다. 이들은 더 이상 ‘한복을 만든다’고 말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로서 스케치하고 그들이 채워갈 트렌드를 논한다.

2016.03.10

 

이영희는 이영희를 기다린다
40년 전 한복 디자이너라는 말을 만든 사람, 이영희가 자기 옷장을 열었다.

 

“여기, 조성진 좀 틀어줘요.” 이영희는 오늘 아침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음반을 듣다 나왔다. “나는 이 사람 연주 들을 때 마다 울어요. 이 어린 사람이 친구 보러 밖도 못 나가고 수 만 번 연습했을 거 아니에요.” 생각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클래식을 듣는 건 오랜 버릇이다. 그는 1983년 첫 해외 한복쇼부터 지금껏 주목받는 스타지만 연습의 외로움을 아는 현직이다. 조만간 쇼가 있고, 이전의 우울했던 마음을 다잡는 중이었다. 미 9.11 사건 이후 파리와 뉴욕의 컬렉션도 타격을 받았다. 10년 간 운영했던 맨해튼의 한국문화박물관을 접고 왔다. “고민이 생기면 나는 나한테 물어보거든요. 새벽에 수영할 때 딱 30분, 호흡에만 집중해야 할 때 물어요. 영감을 얻는 것도 그래요. 억지로 뭘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럴때 슬픔은 기쁨으로 바뀐다. 이영희는 지난해 40주년 기념 전시 ‘바람, 바램’을 치렀다. “한복이 참 운명처럼 왔잖아요? 나는 뭐가 좋으면 좋아가지고 그것만 하거든요. 서른 중반에 애 키우던 아줌마가 시작한 거잖아요. 벌써 40년이더라고.” 입을 가리고 웃는 이영희는 처음으로 이불을 팔던 수줍은 새댁의 모습 그대로다. 기념전에도 젊은 학생들이 훨씬 많아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서 한복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 만난 기념으로 회색하고 자주색을 머리에 담고 가라해요. 뭘 만나도 받쳐주고 어울리거든. 나도 감히 회색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요즘 이영희는 작업실의 옛 옷장을 다시 열어 보고 있다. 회색 치마를 보여줬다. 승려를 상징하는 회색은 그가 쓰기 전까지 한복에선 쓰지 않았다. 얽매이는 것이 없는 건, 한복디자이너로서 이영희를 있게 하는 가장 센 무기다. 그와 일했던 이들이 가장 높이 산 건 그런 젊은 태도였다. 그만큼 한복을 입고 노는 요즘 청년들의 풍경에는 판단을 아낀다. “진짜 한복이 좋아서 하는 걸까? 잠시 재미로 튀고 싶어서 하는 행위일까?” 차라리 자기 작품의 복제품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저는 ‘카피’ 해도 욕 안 해요. 그냥 하라고 둬요. 요즘 흔한 지퍼를 달고 위로 밑위를 좀 더 올려 편하게 만든 사폭 바지는 우리집에서 한복을 해 입은 사람만 아는 디자인이고. 신윤복 그림에 반해서 내 놓은 수놓은 치마 말기도 그렇고 지금은 어디서건 다 볼 수 있는 한복이잖아요? 그럼 그걸 개량한복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그로 인해 한복이 편해졌다거나 눈이 간다면 그만이다. “카피가 많이 팔려도 상관없어요. 나는 그렇게 한 다음에 자기 것을 하나 더 얹고 발전시킨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해요. 정말 스스로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거든요.”


이영희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숍의 쇼윈도를 치운다. 다음 세대의 ‘브랜드 이영희’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 “과학자들이 100살이 되도 아이디어는 안 늙는데요. 내 몸은 10년 후를 모르잖아요. 딱 맞는 친구가 오면 나랑 희한한 옷을 만들거야. 그렇죠?” 이영희란 이름을 계단삼아 한복을 제 것으로 바꿔 갈 젊은이가 고프다. “나는 풀어 놓거든. 활옷 하나 주고 키워드 하나 주고, ‘네 식대로 한 번 해봐라’하는데, 그래서 더 어렵나봐. 기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다 어딜 갔을까요. 내가 까먹을까봐 수첩에 이름도 써놨는데.”

 

About 이영희는 여전히 현장을 누비는 최초의 ‘한복 디자이너’로 한복을 세계 패션의 한 장으로 자리 잡게 한 인물이다. 1983년 첫 해외 한복패션쇼를 미국에서 열고 1993년부터 파리 컬렉션과 이영희 브랜드로 프랑스에 진출했다. 2007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영구 소장됐으며 구글이 선정한 ‘세계 60인 아티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김영석, 양복 입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한복은 족두리 장식부터 테이블 세팅까지 ‘코리안 스타일링’을 향해 가고 있다.

 

“한복은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이라고 하잖아요? 은유적이기 때문에 더 도발적이죠.” 16년 전, 이벤트 기획자였던 그가 한복 디자이너로 방향을 전환한 건 극적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그의 기질은 파격적인 한복 소재로 이어졌다. 김영석은 합성 소재에 과감한 색을 넣었고, 심플한 라인을 선보여 순식간에 이름을 알렸다. 김영석이 전통을 의식적으로 멀리한 적은 없다. 조선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으면서 그때의 기억에 속박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서구 문명이 1800년대 이미 들어오고 있었어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요. 한국적인 것을 끌어안으면서 역사적 사실을 포괄적으로 봐야 해요.” 그가 숍 이름을 ‘전통한복 김영석’으로 정한 건 전통에 대한 고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유롭다. “유일할 줄 알았던 새하얀 아이폰이 모든 휴대폰의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어요. 어떤 전통 한복이든 그 시대 최신 유행이었고,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전통이 된 것이죠. 한복도 항상 세계 트렌드의 영향을 받았어요. 내가 지금 하는 한복과 전통이 객기가 아니라 진화 할 때 살아남겠죠.”


김영석은 한복을 10년만 하려고 했었다. “한복은 계속할 겁니다. 앞으로는 환경을 바꾸고 싶어요. 특급 호텔 아케이드에 한복 매장을 입점시킨 것도 제겐 그런 일이죠.” 정확히는 한국적인 디자인이 어우러진 삶을 스타일링하려 한다. 그래서 전통 라이프스타일 박물관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4월 오픈할 충남 부여의 카페 G340도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김영석의 별명은 ‘까실이’다. 친구들은 까칠하게 뱉는 디자이너의 직감을 그렇게 부른다. “나의 작업이 지금, 당대의 스타일이라고 말하면 나는 그때 끝나는 거예요.”

 

About 김영석은 화학 소재와 강렬한 색으로 특별한 장식 없이도 돋보이는 한복을 제시한 디자이너다. 모노톤의 컬러감과 질감이 다른 양장 소재로 한복을 구성해 핸드백과 구두가 어색하지 않은 고유의 라인을 만들어 각광받았다. 201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60주년의 테이블 등 한복뿐 아니라 한국의 스타일링을 제안하는 일도 즐겨 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과 순방길에서 보는 옷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전옥화, 쉽게 드러내지 않는 미덕
한복 디자이너 이고운과 김선화는 생전 전옥화가 했던 그대로 조용히 물러서서 옷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안 될까요?” 취재진 앞에서 두 사람은 계속 주저했다. 전옥화는 지난해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한복은 남았다. 보통 한복보다 살짝 더 돌린 앞섶과 자그마한 고름, 직선에 가까운 소매는 20년째 서울의 양반들과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차분히 이어온 고유의 스타일이다. 이고운과 김선화, 두 디자이너는 조심스럽지만 완고하게 전옥화 한복을 그대로 잇고 있다. 이고운은 전옥화의 며느리이고 김선화는 이 숍에서 10여 년간 한복을 만드는 데 몰두해온 후배다.


“여긴 한복과 전통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분들이 찾아오세요. 선생님도 한복을 판다고 생각하신 적이 없고요.” 두 사람은 한 사람처럼 말한다. 한복 디자이너지만 ‘나의 옷’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변함없이 전옥화를 찾는 이들이 매번 손염색을 해오는 정성과 고집을 알아주니까. 그런 한복에 확신을 갖고 있다. “분명히 한복은 양장에 비할 수 없는 퀄리티가 있어요. 한껏 빨라진 트렌드가 두렵긴 하지만 전옥화답게 나서진 않을 거예요.” 언젠가 빨간 옷감을 받고 보니 세상에 없던 장미색이 왔더라는 그들만의 행운처럼, 예측할 수 없는 한복의 변화를 마중하고 있을 뿐이다.

 

About 故 전옥화는 한국 전통 의상 연구의 대가 석주선 선생과 인간문화재 이병찬 선생에게 염색을 사사했다. 조선 중기의 한복 라인과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색의 조화를 특징으로 한다. 한국 정재계 인사들이 즐겨 찾아 먼저 알려졌다. 1995년 전옥화 한복을 열었고 현재는 후대가 그의 스타일을 이어가고 있다.

 

 

 

이일순, 제대로 그리고 더 멀리
이일순에게 한복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는 일은 한복을 짓는 것만큼 중요하다.

 

이일순은 한복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미술 평론을 공부하며 예술이라면 뭐든 관심을 가진 그가 한복에 눈을 돌린 것은 신윤복의 그림에 빠진 이후다. 그는 신윤복이 그린 여인들의 담백하고 기품 있는 한복에 매료되었다. 금단제의 한복은 그가 반한 신윤복 그림 속 여인네를 좇았고, 남다른 완성도에 금세 입소문을 탔다. 이일순은 한복 짓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명성을 얻었지만, 그 힘들다는 한복 패션쇼에도 늘 적극적이다. 그는 한복을 짓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한복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여 2002년부터 현재까지 17회가 넘는 패션쇼를 진행했다. 쇼에 한복만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더욱 집중하고 있어요. 특히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매년 해외에서 패션쇼를 열었는데, 매번 우리나라 전통 공연단의 공연도 함께 올렸죠. 반응이 뜨거웠어요. 한국 문화를 알게 될 때 한복의 존재감도 더욱 사는 것 같아요.” 금단제는 한복의 영역을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하고 있다. 한복 매장 건너편에 아트 리빙 숍을 연 이유다. “숍을 열기까지 고민이 컸어요. 요즘 사람들이 병풍이나 화초장, 함과 이바지 그릇 같은 걸 얼마나 많이 원할지 지금도 확신하지 못하고요. 그럼에도 시작한 이유는 하나예요. 우리 전통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으니까요.”

 

About  이일순의 한복은 다채롭다. 형태는 전통을 따르지만, 색은 우리나라 천연염색 방식이 만들어 낼 수 있는 180여 가지의 색과 유럽의 700~800가지의 색, 일본의 1050가지의 색을 기본으로 감각적으로 사용한다. 영화 <관상>과 <사도>의 의상을 제작했다.

 

 

 

이현숙, 사랑하는 만큼
이현숙은 한복 열풍에 질문을 던진다. 한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현숙은 제대로 된 한복 차림보다 중요한 것이 한복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라고 말한다. “한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복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언젠가 한옥마을에서 본 사람처럼 치마 아래 속치마 대신 청바지를 입더라도 완벽한 한복의 착장을 알았으면 해요. 한창 유행하고 있는 철릭 원피스를 입는 것은 환영하지만 그 유래가 조선 시대 남자 무관이 입던 철릭인 것을 알고 입는 걸까요?” 그는 3년 전, 미국 LA에 위치한 폴 게티 뮤지엄에서 열었던 패션쇼를 떠올렸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박물관 관계자들은 한복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고, 박물관 역사상 첫 패션쇼를 한복 패션쇼로 만들었어요. 저는 그 패션쇼에서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전통 한복과 장신구, 현대 디자인 한복 의상 등을 선보였어요. 반응은 최고였죠. 쇼를 보러 온 사람들이 한복에 열광했고 궁금한 점들을 쏟아냈어요. 사실 그 순간이 한옥마을에서의 경험보다 즐거웠던 것 같아요.”

 

About  ‘주단집 며느리’ 한복 디자이너 이현숙은 가장 좋은 원단만 사용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예복 등을 전통에 맞춰 재현하고 있다.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와 <신들의 만찬>에서 각각 김소은과 전인화가 입었던 아름다운 한복이 그의 솜씨다.

 

 

 

조영기, 옛날 옛날 한복  
조영기는 우리가 몰랐던 ‘전통’의 영역에서 한복을 이야기한다.

 

‘천의무봉’으로 들어가자 낯선 한복들이 시선을 빼앗았다. 한복이라기보다는 ‘디자인이 독특한 양장’ 내지 ‘기모노에서 모티브를 따온 옷’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디자인이었다. “제가 입고 있는 옷이 한복의 전형적 디자인이 아니라 의아하셨죠?” 의문을 읽은 듯 조영기가 먼저 물었다. “천의무봉 한복의 디자인은 고려 시대의 복식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백제와 일본의 교류, 신라와 당나라의 교류, 원나라에 복속된 고려 등 시대적 상황을 겪은 고려 후기의 한복은 일본과 중국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 두 나라의 영향을 받기도 했죠. 동시에 엄연한 전통 한복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한복의 모습은 조선 시대나 개화기 이후의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 시대의 것은 사실 낯설다. “한복은 5000년 역사를 거치며 시대별로 형태가 조금씩 변했어요. 그런데 조선시대의 한복만을 전통이라고 여기고 그 외 시대의 한복은 전통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상하잖아요.” 그의 바램은 한복을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복 형태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About   조영기는 고려 시대의 복식을 바탕으로 개성 있는 한복을 짓는 디자이너다. 여러 패션쇼를 통해 전통적이지만 하이힐이나 브리프케이스와도 잘 어울리는, 모던한 옷을 지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4 한복의 날’ 패션쇼와 ‘2015 런던 코리안 페스티벌’ 등을 통해 한복을 알리고 있다.

 

 

CREDIT

EDITOR / 김미한, 이응경(프리랜서 작가) / PHOTO / Kim Chunho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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