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가입해둔 보험회사에 전화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 차량이 도착해 상황을 살피고 조치를 해준다. 이 구조 차량을 일반적으로 서비스 모바일이라고 한다. 일부 자동차 회사는 자체적으로 이러한 출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조사로서 차에 관한 문제는 직접 책임지겠다는 의도다. 차마다 다르겠지만 앞유리 모서리 어딘가를 잘 살펴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전화를 걸 수 있는 콜센터 혹은 긴급출동 서비스 전화번호가 있다. 서비스 모바일 프로그램을 제대로 제공하는 브랜드는 자사 브랜드의 정식 긴급출동 차도 갖추고 있다.

정식 서비스 모바일을 갖추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서비스 모바일 전용으로 제작된 스페셜 모델을 주문하는 것이다. 모델을 주문할 때 ‘서비스 모바일’ 또는 ‘서비스 모바일용 개조’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생산 단계에서 서비스 모바일용 차로 제작하거나 혹은 일반 차로 만들어진 다음 서비스 모바일용으로 개조해 출고된다. 두 번째는 서비스 모바일 개조용 부품을 구입해 서비스가 필요한 현지에서 바꾸는 방법이다. 단, 이 경우엔 해당 차가 서비스 모바일로 바꿀 수 있는 모델인지, 옵션 구성이 적합한지 등을 엄격하게 확인한다. 즉 서비스 모바일은 완제품이든 공장 튜닝이든 현지 튜닝이든, 긴급출동을 위해 공인된 스페셜 모델이다.

서비스 모바일은 일반 모델과 무엇이 다를까? 긴급하게 출동해야 하니 더 빠르게 튜닝됐을까? 다른 차를 구조하기 위해 어떤 장비를 싣고 다닐까? 국내에서 나름의 서비스 모바일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BMW와 포르쉐가 이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BMW는 X3 20d를, 포르쉐는 마칸 S 디젤을 서비스 모바일로 운행 중이다. 어느 날 이들이 <모터 트렌드> 독자들을 위해 특별한 출동을 했다.

서랍 안에는 공구와 진단기 등을 단단히 고정해 주행 중에도 흔들리거나 충격을
받지 않도록 설계됐다. 안전, 아니 완전 제일이 느껴진다.

차마 마음껏 운전할 수 없었던
BMW X3 20D
거의 매일 통화하는 후배가 한 명 있다. 평소에 내가 시승하는 차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친구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도 딱 잡아떼고 알려주지 않은 차가 생겼다. 롤스로이스나 부가티 베이론을 탔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그만큼 특별한 차라는 뜻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보통 사람은 쉽게 탈 수 없는 차, 그리고 평소에 길거리에서 만나면 별로 유쾌하지는 않은 차. 바로 BMW가 모빌리티 서비스로 운행 중인 X3 20d 서비스 모바일이다.

불현듯 과거에 수입차 회사에서 일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정식 서비스 모바일 도입을 검토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딜러사의 긴급출동 차는 자사의 일반 모델(주로 장기 재고 모델이나 중고차)에 본사 카탈로그대로 차체에 시트지 작업을 한 것이 전부였다. 공구나 진단기 등 긴급 조치에 필요한 장비들은 출동할 때 챙겼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지방의 소규모 딜러들은 국산차에 스티커만 간단히 붙이거나 심지어 당일 비상 출동 담당자의 출퇴근용 개인차가 긴급출동 차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무늬만’ 서비스 모바일이거나 ‘아무나’ 서비스 모바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일반 차에 공구만 싣고 다니는 것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원이나 조명, 압축공기 등 추가 지원이 필요했다. 그리고 혹시 사고라도 나면 차 안의 공구나 점프용 배터리가 무시무시한 흉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 본사 규격에 맞는 제대로 된 서비스 모바일이 필요한 이유다.

BMW X3 서비스 모바일은 전용 순정 부품으로 국내에서 완성된 차다. 가장 궁금한 곳은 역시 트렁크에 장착된 툴박스다. 그 안에는 자동차 긴급 구조에 필요한 각종 공구로 가득 차 있다. 테일게이트를 닫으면 거의 빈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런데도 차체 일부분처럼 완벽하게 고정한 만듦새가 대단하다. 혹시 차가 넘어지려 해도 툴박스 덕분에 버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서랍 안에는 공구와 진단기 등을 단단히 고정해 주행 중에도 흔들리거나 충격을 받지 않도록 설계됐다. 안전, 아니 완전 제일이 느껴진다.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 차를 위한 충전용 전원과 작업등, 기타 장비를 위한 별도의 전원 모듈은 적재함 바닥의 추가 배터리와 함께 차와 일체화됐다. 안전을 위한 소화기와 비상 삼각대, 고깔 등도 싣고 다닌다. 비상 견인용 장비는 물론이고.

이 모두를 합치면 무게가 엄청나다. 게다가 이 X3 서비스 모바일은 2010년형(BMW는 지난 2008년부터 ‘모빌리티 케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주행거리도 10만 킬로미터나 된다. 독일차의 내구성을 생각하면 이 주행거리는 이제 길들이기가 끝나서 한창 컨디션이 좋을 때다. 하지만 뒤에 실려 있는 100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장비, 그리고 전화를 받으면 한겨울에도 예열할 짬 없이 출발해 빠르게 달려야 하는 서비스 모바일의 운명을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일반 차의 20만 킬로미터만큼은 될 거다. 특히 트렁크에 집중된 하중 때문에 뒤 서스펜션이 물러지거나 심할 경우 주저앉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주행 안정성은 괜찮은지가 가장 궁금했다.

전력 배달 방전된 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전원 모듈이 별도로 장착돼 있다.

이번 시승에서 난 X3의 스티어링휠을 오래 잡을 수 없었다. 대신 이 차를 항상 운전하는 긴급출동 요원의 소감을 듣고 그가 어느 정도의 상황까지 자신 있게 운전하는지를 보면서 차의 한계를 가늠했다. 옆자리에서 차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느끼려 애썼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이 차는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서울·경기·인천 지역에 등록된 14만여 대의 BMW에게 긴급한 도움을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서비스 모바일이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조심 다루어야 했다. 언제든지 바로 출동해야 하는 차였다.

주행 사진을 찍는 과정은 반복의 연속이다. 따라서 유턴도 수없이 해야 한다. 서비스 모바일처럼 뒤꽁무니가 무거운 차는 유턴을 하면 차체의 뒷부분이 얼마나 안정적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촬영을 위해 서비스 모바일을 직접 몰고 온 BMW 긴급출동 요원은 일반 정비 업무를 하며 팀원에게 작업을 분배하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바꿔 말해 촬영이 끝나는 대로 복귀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라는 뜻이다. 촬영의 속도를 올리자 유턴 속도도 빨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정도 속도의 유턴이라면 차의 뒤가 주저앉거나 최소한 휘청거릴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멀쩡했다. 과속 방지턱을 통과할 때도 뒤가 묵직하기는 했지만 과도하게 출렁이지 않았고 운전대가 가벼워지는 느낌도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긴급출동 요원은 일반 정비 업무도 처리하는 정비사다. BMW의 수도권 요원은 2주씩 당직제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중 1주는 24시간 당직이다. 밤에 잠도 깊게 들지 못하고, 친구들과 술 한 잔도 마실 수 없다. 그 탓에 전화벨 환청이 들리고 엉덩이에서는 환진동이 느껴진단다. 몸은 쉬어도 정신은 쉬지 못하는 고통은 느껴 본 사람만 안다. 그러면서 고장난 차에 당황하고 마음이 상한 고객을 만나는 자기 임무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시승은 거의 운전석 옆에서 이루어졌음에도 특별하다. 내가 만난 BMW 서비스 모바일에서 사람을 생각하는 ‘운전의 즐거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타고난 서비스 모바일
포르쉐 마칸 S 디젤
촬영 장소로 하얀색 마칸 한 대가 유유히 들어왔다. 차체 옆면에 스티커로 새겨진 ‘PORSCHE ASSISTANCE’ 글자가 서비스 모바일임을 드러냈다. 스티커 디자인과 색이 하얀 차체 색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깔끔한 첫인상을 안겨주었다. 이어서 말끔한 비즈니스 캐주얼을 차려입은 정비사가 내렸다. 포르쉐의 공식 딜러 슈투트가르트 스포츠카의 김바위 대리다. 촬영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입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평소 출동 복장이라고 했다. 트렁크 안에는 각종 공구가 들어 있는 툴박스와 진단기, 소화기와 작은 리프트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프레임에 단단히 고정된 툴박스의 서랍을 열었다. 스패너와 드라이버 등의 공구가 깔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구 보관함이라기보다 공구를 파는 진열장 같았다. 트렁크 아래 수납공간에는 점프 케이블이 숨겨져 있었다. 운전석을 비롯한 실내는 일반 마칸과 똑같이 고급스러웠다. 현장 출동차나 정비사에게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기름때’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포르쉐의 서비스 모바일은 뭔가 스페셜 에디션이길 기대했는데 별 차이 없는 ‘포르쉐’였다.

“맞습니다. 트렁크에 항상 장비가 실려 있는 것 말고는 일반 마칸 S 디젤과 다를 게 없습니다.” 김바위 대리의 설명이다. “마칸 자체가 긴급 출동에 필요한 파워와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요. 그래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포르쉐 서비스 센터에서 일반 마칸을 튠업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포르쉐의 서비스 모바일은 평균 일주일에 7번 정도 출동하는데 주로 주말에 집중된다. 배터리가 방전돼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차 문이 열리지 않아 출동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시동이 안 걸린다고 접수를 받아 출동해서 확인해보면 브레이크 페달을 살짝 밟고 시동을 걸어 안 걸린 경우도 있다. 언젠가 컨버터블의 루프가 열리다 멈춰 출동한 적도 있다고 한다.

트렁크의 공구들을 다시 살펴봤다. 툴박스에 자석으로 고정된 붉은 경광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항상 켜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 정말 시급할 때 사용한다. 단단한 갑옷을 입은 노트북 같은 기계도 보였다. 실제 노트북은 아니고 차의 이상을 전자식으로 점검하는 휴대용 진단기다. 4단 서랍으로 구성된 툴박스에는 누수와 누유 등을 점검하기 위한 래칫과 스패너 세트, 공기압 측정기, 배터리 전압 테스터 등이 맞춤형 케이스에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이 밖에도 소화기, 리프트, 고깔, 경광봉, 작업등, 각종 케이블 등 자동차 응급조치에 필요한 도구가 깨알같이 담겨 있었다.

첨단 장비 포르쉐 서비스 모바일의 구호 장비는 기능적이고 세련돼 보였다. 툴에서도 브랜드 이미지가 엿보인다.

“마칸 자체가 긴급 출동에 필요한 파워와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요. 그래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포르쉐 서비스 센터에서 일반 마칸을 튠업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칸을 타고 출동하는 기분은 어떨까? 다음 촬영 장소까지 직접 운전할 기회를 얻었다. 시승한 서비스 모바일은 마칸 S 디젤로 3.0리터 V6 터보 디젤 엔진을 얹어 최고 258마력의 힘을 낸다. 여기에 7단 PDK 변속기를 맞물렸다. 마칸 S 디젤은 예상대로 잘 달렸다. 시속 100킬로미터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그 위를 쉽게 오르내렸다. 뒤에 무거운 장비를 실었지만 그건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코너를 고속으로 돌아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진가는 스포츠 모드에서 드러났다. 엔진 출력의 피드백이 빨라지고 스티어링휠의 움직임이 한층 예민해지면서 꼬리털에 불붙은 성난 말처럼 질주했다. SUV라기보다 키가 큰 스포츠카에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김바위 대리에게 되물었다. “마칸 같은 차라면 출동할 맛이 나겠는데요?”

그런데 예상 밖으로 너무 조용했다. 마칸도 포르쉐인지라 부왕거리는 배기음이 귓바퀴를 따라 귓속으로 빨려 들어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앞부분 저 멀리 어디선가 디젤 엔진이 떠는 소리만 곰살궂게 들려왔고 달리는 속도에 비해 실내에 울리는 소리는 얌전했다. 승차감마저 부드러워 과속방지턱에서 속도를 많이 줄이지 않아도 됐다. 오프로드 모드로 변환하면 차는 모든 힘을 견인에 집중한다. 포르쉐가 왜 별다른 튠업 없이 마칸을 서비스 모바일로 사용하는지 이해가 갔다. 마칸은 위급 상황에 신속히 도착해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나인 일레븐’이다.  글/조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