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일반화된 이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많은 물건을 효율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시장조사부터 시작해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 촉진 활동 등이 이루어진다. 직접적인 상품 광고부터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까지, 실제로는 모두가 제품의 판매를 늘리기 위한 활동(마케팅)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다양한 판매 촉진 활동(프로모션)이 포함된다.

자동차는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개인과 연결된 산업 중에서도 묵직한 의미가 있다.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높은 만큼 제품의 가격도 비싸 수익도 크다. 그래서 다양한 판촉 활동이 진행되고 치열한 경쟁이 여러 수단과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광고부터 고객과 직접 교류하는 SNS 등 마케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더해진다. 이 중 고객 참여 이벤트는 마케팅의 백미다.  

이런 기업의 마케팅 활동은 뚜렷한 양면성이 있다. 한쪽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위험한 부분도 있지만, 긍정적으로는 평소 접하기 힘든 경험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전자의 부정적인 영향이 컸다. 특히 특정 모델의 판매를 위한 막무가내 마케팅은 기묘한 논리에 빠져 아전인수와 조삼모사가 되기 쉽다.  예를 들면, 자동차는 무게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전통적인 철 이외에 다양한 소재를 시험하고 실제로 쓰는 곳이 많다.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이 많이 쓰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알루미늄은 원석에서 가공이 힘들어 비용이 많이 들지만, 재활용이 가능한 장점 때문에 미래에도 각광받을 소재임이 분명하다.

같은 회사에서 A라는 모델에 알루미늄 패널을 쓰며 ‘고가의 소재이지만 경량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라고 말했다면, B 모델에 철을 쓴 이유는 ‘차값과 등급에 맞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만약 B 모델이‘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철을 썼다’거나 ‘철로도 충분한 경량화가 가능하다’라고 했다면 자가당착이다. 당연히 소비자는 ‘그럼 A 모델에 알루미늄은 왜 썼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바보 같은 일이지만 벌써 몇 번 반복된 현실이다. 결국 기업의 ‘그때그때 달라요’ 마케팅에 휘둘려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장점을 강조하겠다는 원래 의도와 달리, ‘저 차는 이게 나쁘고 이 차는 저게 나쁘다’는 말만 기억에 남아 차 고르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장점 리스트가 아니라 단점 무더기를 놓고 구입한 차에 정을 주기 힘들다. 사랑하려고 시작한 만남이 파경으로 흐른 꼴이다. 조삼모사 마케팅이 기업에도 절대 유리한 것이 아닌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개미지옥 같은 마케팅의 늪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솔직한 마케팅이 우선이다. 또한 좋은 것만 가져가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것이 두 번째다.

솔직하고 공정한 마케팅은 기업의 입장에서 쉽지 않다. 당장 숫자에 좌우되는 판매부서의 목소리가 크고 절실할수록 무리한 방법을 선택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지난해 현대 쏘나타 충돌 시연을 보자. 현대차 입장에서는 새로 론칭한 쏘나타의 판매량을 한 번에 회복하고 케케묵은 내수형 모델 차별 논란을 잠재울 한 방이 필요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과연 그 논란이 사라졌나?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을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솔직하고 공정한 마케팅이라면 사실을 정확히 이야기해야 한다. 자동차는 판매되는 국가마다 다른 안전 기준과 선택사양, 성능 기준에 맞춰 다르게 만들어진다. 화폐가치와 국민소득이 다르기에 가격도 다르다. 그래서 안전 기준의 차이를 차근차근 설명하고 그에 따라 다른 부분을 정확히 이야기해주면 된다. 시장의 요구 사항이 다르고 소비자의 기대치가 달라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일단 생긴 오해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벌어지고 깊어진다. 오랫동안 커진 상처를 한 번의 이벤트로 풀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다.  

그런데도 이 이벤트가 아예 쓸모없진 않았다. 비록 차근차근 설득하고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정면충돌에서 세이프티 케이지와 전면 에어백, 안전벨트와 프리텐셔너 등이 정상 작동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비록 안전 기준이 달라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충돌테스트 안전도를 보였으니까. 굉장히 위험한 도박이었는데 확실한 사실 하나는 전달했으니 성공적인 이벤트라 할 수 있다. 특히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동차 충돌이라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똑똑한 소비자라면 그렇게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느낀 경험을 그대로 남기되 행사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조금은 다른 예로 지난 1월 서울 DDP에서 열린 ‘재규어 XJ 레어 디자인 스튜디오’ 이벤트를 보자. 이언 칼럼이 직접 방한해 페이스리프트된 뉴 XJ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였다. 물론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세계 4위의 XJ 시장인 한국을 위한 프로모션이다. S 클래스가 연간 9231대나 팔리는 한국 시장은, 수익성이 높은 XJ 판매를 위해 그만큼 공들일 만하다. 1세대와 3세대 XJ까지 영국에서 실어올 이유가 충분하고 얻어갈 것도 매우 많은 행사였음은 분명하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분명하고 굵직한 획을 그은 디자이너의 강의를 직접 듣고 그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역시나 드문 기회니까. 제대로 된 자동차 박물관 하나 없는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의 차를 직접 보고 흐름을 살피는 경험은 소중하다. 결국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사다.

매일 마케팅이라는 이름 아래 수없이 많은 기회와 함정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나쁜 마케팅 때문에 얼마나 많이 속아왔는지를 생각하면 억울함이 하늘로 뻗치겠지만, 똑똑하고 꼼꼼해질수록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엔진 실린더 개수, 서스펜션 구조, 가변식 터보, 알루미늄 보디 패널 등은 제작사의 마케팅에 따라 좋았다 나빴다 해왔다. 시장의 성숙은 소비자의 변화만으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솔직하고 공정한 마케팅을 기획하고 긴 시간 동안 올바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기업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날카롭게 날을 세운 언론과 두 눈을 부릅뜬 소비자가 함께 있을 때 우리도 한 단계 올라간 자동차 문화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