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균 1600대. 쉐보레 임팔라의 지난 5개월간 출고 성적표다. 하지만 밀려 있는 주문은 1만대가 넘는다. 그러니 계약을 해도 3~4개월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일부 트림은 6개월 넘게 걸린다고 한다. 물론 이유는 생산 부족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미국 내에서 한국 물량을 월 1000대로 묶어놨다. 이를 두고 GM이 한국 시장을 홀대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이는 전적으로 예측 실패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과 미국의 절묘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임팔라 출시 전 국내 영업본부의 월 예상 판매는 1000대였다. 그래서 GM 본사도 한국 요청을 받아들여 월평균 공급량을 1000대로 계획했다. 한국으로 수출하는 차종은 미국 내 판매와 달리 다양한 편의기능이 추가된 만큼 관련 협력사에도 그 정도 수량만 요구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이 달랐다. 예상보다 한국 소비자의 반응이 뜨거웠고, 현대·기아차 준대형에 싫증을 느꼈던 소비자들이 임팔라로 시선을 돌렸다. 당황한 한국지엠은 부랴부랴 미국에 공급 확대를 요청했지만 본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완성차를 제작하는 곳은 조립 공장일 뿐 한국 수출용 생산을 늘리려면 부품 공급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부품이라는 게 한 곳에서 공급하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모든 협력사가 공급을 일제히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많은 부품 중 하나라도 없으면 완성되지 못하는 게 자동차라는 점에서 공급 확대는 애초부터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러니 예측에 실패한 한국지엠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해가 바뀌었으니 올해 한국 물량을 늘리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한국지엠과 미국 본사의 절묘한 이해관계가 드러난다. 먼저 공급 확대가 받아들여졌을 경우다. 다시 말해 공급량을 월 2000대로 확대해 연간 2만4000대를 목표로 했을 때 ‘과연 해당 물량을 모두 소진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이야 주문이 밀렸으니 출고 적체를 해소만 해도 월 2000대 소화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적체가 끝난 후 계약이 줄어들면 한국지엠은 매월 쏟아져 들어오는 2000대의 임팔라 처리에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공급이라는 게 한 번 늘리면 시설 확대와 연관돼 물량을 줄이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적체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나중을 대비해 월 1000대를 유지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또 하나는 공급을 늘렸을 때 확대되는 국내 생산 요구다. 노조는 이미 임팔라의 국내 생산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다. 이전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물론, 현재 새로 부임한 제임스 김 사장 모두 노조에 연간 1만대 판매가 넘으면 국내 생산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출시 첫해부터 1만대가 넘어갈 조짐을 보이자 슬며시 국내 생산 조건을 3만대로 올렸다. 하지만 3만대는 준대형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불가능한 목표에 가깝다. 그러니 국내 생산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굳게 깔린 셈이다.

그럼 이들은 왜 국내 생산을 하지 않을까? 이유는 생산성이다. GM은 지금도 한국지엠의 고비용 생산구조를 못마땅해한다. 그래서 쉐보레 유럽 철수를 빌미로 국내에서 생산, 수출하던 차종을 독일 오펠로 넘겼다. 대신 중앙아시아 지역의 수출을 한국지엠에 배정했고 완성차 수출은 크게 줄었다. 수출 감소는 원활한 공장 가동에 제동을 걸었다. 일감이 줄어든 만큼 임금이 낮아졌고 노조는 대책 해결을 요구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임팔라의 국내 생산은 요원하다. 이는 GM의 전략이기도 하다. 연간 900만대를 판매하는 GM 입장에서 불과 15만대만 판매되는 한국 시장은 결코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다. 오히려 지난해 생산한 완성차 62만대와 CKD(반조립 생산 납품 방식) 80만대를 어떻게 줄일까를 고민한다. 다시 말해 한국의 생산 능력은 과잉이라고 판단했고, 점차 생산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실제로 2019년까지 매년 생산 물량을 축소하는 계획이 이미 잡혀 있다. 현재 임팔라의 국내 생산은 요원하다. 오히려 앞으로 국내에 판매할 차종의 해외 완성차 수입이 검토되고 있다. 고비용 구조의 생산비를 한국에서 부담하느니 값싸게 생산된 완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또 하나의 대목은 경영진의 교체다. GM은 올해 1월부터 최고 경영자로 IT 전문가인 제임스 김 사장을 영입했다. 이를 시작으로 국내 마케팅 부문 또한 IT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자동차산업과 거리가 먼 인물을 영입해 새로운 혁신을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자동차산업과 이해관계가 없는 인물을 앞세워 향후 한국지엠의 생산물량 축소를 진행하겠다는 의도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연간 15만대 시장에선 그 정도 규모만 가져가야 한다는 게 GM의 기본적인 방침이다. 2000년 초반 쓰러져가는 대우차를 인수해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쉐보레 브랜드 확산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비용 앞에선 누구도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니 임팔라의 국내 생산은 애당초 계획 자체가 없던 것이고, 검토는 말 그대로 검토일 뿐이었다.
글/권용주(<오토타임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