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친환경차는 빠지지 않는 주인공이다. 자동차 산업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친환경차가 자동차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과연 친환경차가 자동차 시장의 판을 180도 바꿀 정도로 대세가 될 것인지는 짚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에너지 전문가 토니 세바가 지은 <에너지 혁명 2030>이란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올해 CEO 필독서 리스트에 꼽히며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라갈 정도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토니 세바는 지난해 12월 중순 한국을 찾아 국내 기업과 에너지 관련 기관을 방문하고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그런데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책에서 펼치는 주장을 요악하면 이렇다. 2030년에는 전기차가 모든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것이며 자동차 시장은 지금보다 20퍼센트로 축소돼 결국 붕괴한다. 그리고 자율주행차가 지배한다. 모든 에너지는 태양과 바람에서 나올 것이며 휘발유, 천연가스, 석탄은 무용지물이 된다. 주차 공간의 80퍼센트가 필요 없어지고 자동차 소유의 개념이 사라진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나 참고 문헌은 없다. 굳이 근거를 들자면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비유하며 청동기시대가 도래한 것은 석기시대의 돌이 고갈돼서가 아닌 청동이라는 신물질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15년 뒤에 토니 세바의 말대로 모든 내연 기관차는 사라지고 도로 위에는 배터리로 움직이는 전기차만 가득해질까?

토니 세바는 전기차의 에너지 효율성이 내연기관보다 5배 높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 생성 단계에서 소비 단계까지의 효율성을 뜻하는 ‘Well to Wheel’ 개념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전기를 만드는 데도 비용이 들어간다.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할 경우 열전환율, 그러니까 효율성은 30~40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태양열 발전을 든다. 물론 태양열 발전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미국의 태양열 발전량만 보더라도 최근 매년 2기가와트씩 늘고 있으며 유럽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15년 내로 전 세계 에너지 원천이 태양열로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충전 비용이 휘발유보다 10분의 1수준으로 낮다고 하는데 이는 전기 소매가격이 계속 지금과 같다고 가정할 때다. 충전 인프라가 원활히 지원되지 않는다면 충전 비용은 오히려 올라갈 것이다. 앞으로 전기차가 늘어 나면 당연히 전력 사용량도 증가한다. 특히 급속충전기는 전압이 높고 단위 시간당 전력망에 큰 부담을 준다. 급속충전기 한 대가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전력량은 1년에 10만 킬로와트시다. 이는 평범한 한국 가정 3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급속충전기 1대는 대략 시간당 50킬로와트의 전력을 쓴다.

이런 급속충전기 2만 대가 동시에 가동되려면 원자력발전소 1기 규모의 전력량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국내만 보더라도 인프라와 사회적 비용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전기차 생산 속도에 못 미치고 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오른다.

반박할 주장은 또 있다. 토니 세바는 전기차 원가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연간 12~16퍼센트씩 떨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적신호는 이미 원재료에서 발생했다. 리튬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리튬의 가격은 지난해 11월 이후 두 달 만에 두 배로 올랐다. 지난해 10월 중국이 자국 전기차 사용 장려를 천명하면서 리튬 투기 세력을 자극한 것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원가 중 반 이상이 리튬과 코발트 등으로 이루어진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이다. 원재료 비용이 많이 들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어렵다.

그는 책에서 자가당착에 빠졌다. 209페이지에 보면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 하려면 ‘테슬라가 매년 수백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면’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면서 테슬라가 품질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성장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테슬라의 연간 생산량은 5만 대에 그쳤고 최근 1년간 주가 상승률은 0.5퍼센트에 머물렀다. 그리고 테슬라는 럭셔리 틈새시장만을 타깃으로 한 회사가 아닌가? 15년 뒤에 친환경 발전이 지금 보다 확대되고 리튬이온 배터리와 수소연료 전지를 동력으로 한 전기차가 많아질 것이라는 예견엔 한 치의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고 자동차 시장이 몰락한다는 주장은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이 살아 돌아와도 받아들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