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VO V60 D4
선관 씨는 볼보 V60을 탄다. 사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형 해치백을 탔었다. 총각 때부터 타던 차를 결혼해서도 계속 몰아왔던 거다. 그러다 지난봄 이 차를 뽑았다. 가을에 아이가 태어날 걸 대비해 차를 V60으로 바꿨단다. 하지만 이건 그저 선관 씨의 주장일 뿐이다. 엄밀히 따지면 전부터 차가 바꾸고 싶었는데 아이가 생겨주신 상황이다. 그래서 선관 씨는 아이의 태명을 ‘복덩이’라고 지었다. 처음엔 ‘나이스 타이밍(Nice Timing)’을 의미하는 NT, ‘굿잡(Good Job)’을 뜻하는 ‘GJ’ 등을 생각했는데 영어 태명은 곤란하다는 아버지의 만류에 복덩이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선관 씨의 트렁크는 항상 정신이 없다. 각종 운동 장비와 전용 신발이 널브러져 있다. 물론 이건 하루이틀 습관이 아니다. 전에 해치백을 탈 때부터 그랬다. 장비가 트렁크에 실려 있어야 틈날 때마다 운동을 할 수 있기에 생긴 버릇이다. 그런데 해치백을 탈 때는 아내와 여행을 가거나 명절날 처가에 갈 때면 트렁크를 싹 다 비워야 했다. 공간이 좁아 장비를 실은 채로 다른 짐을 싣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V60으로 바꾸곤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온갖 운동 장비를 다 실은 상태에서도 다른 짐을 충분히 넣을 수 있다. 해치백은 물론 세단도 넘볼 수 없는 여유다. 결혼 전에는 아내와 여행을 가면 온갖 핑계를 대서라도 어떻게든 1박을 하려던 선관 씨였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아내가 여행 가자고 조르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집에만 있었다. 이유는 딱 하나. 트렁크 비우기 귀찮아서. 그런데 V60으로 바꾸곤 아내의 바람을 모두 들어주는 착한 선관 씨가 됐다. 벌써 둘째를 가졌다는 소문이….

아이를 낳은 이후에 왜건의 실용성은 더 빛났다. 운동 장비가 실린 상태에서 큰 가방으로 하나 가득한 아이의 짐과 유모차를 거뜬히 실을 수 있어서였다. 심지어 유모차는 딜럭스형이 아니라면 선 채로 그냥 들어갔다. 또 딜럭스 유모차라도 한 번 분리만으로 쉽게 실린다. 이렇게 끼우고 저렇게 넣고 하며 테트리스 맞출 필요도 없다. 딜럭스 유모차 싣고 쇼핑한 거 싣고 아이 짐 싣고 다 할 수 있다. 심지어 SUV처럼 트렁크가 높지 않아 아이 낳느라 고생한 아내도 ‘영차’ 하지 않고도 짐을 실을 수 있다.

그런데 선관 씨가 왜건을 고른 건 꼭 실용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건의 주행감도 좋아한다. 사실 실용성만 따지면 SUV나 미니밴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었다. 하지만 SUV나 미니밴은 왜건의 드라이빙 쾌감을 따라올 수가 없다. 사실 선관 씨는 도심에서나 교통법규를 딱딱 지키는 모범 시민일 뿐, 구불구불한 와인딩 코스에만 들어가면 그야말로 상남자가 따로 없다. 못 말리는 거친 질주를 위해서는 왜건이 딱이다. 왜건의 주행감은 세단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관 씨는 세단보다 왜건의 주행감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역시 입증된 바는 아니지만 세단보다는 뒤가 좀 더 눌리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특히 고속으로 갈수록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말이다.

선관 씨의 왜건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왜건의 디자인도 좋아졌다고 했다. 그럼 냉장고도 실릴 듯한 예전의 통자 트렁크 왜건은 어떠냐니까 그건 좀 그렇단다. 아직 왜건 성애자 급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볼보 V60의 늘씬한 지붕라인은 너무 예쁘단다. 뒤로 갈수록 뚝 떨어지는 창문 위쪽 라인이 특히 관능적이라고 했다. 이 사람 말하는 거 보니 앞으로 쭉 왜건만 탈 것 같다. SUV가 필요하더라도 XC90으로 가는 게 아니라 XC70을 선택할 것만 같다. 지금 선관 씨에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왜건이 딱이다. 글/고정식, 소품 협조/세피앙

VOLVO V60 D4
기본 가격 518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FWD, 5인승, 5도어 왜건 엔진 4기통 2.0ℓ DOHC 트윈터보 디젤, 181마력, 40.8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1705kg 휠베이스 2776mm 길이×너비×높이 4635×1865×1480mm 0→시속 100km 가속시간 7.6초 복합연비 15.8km/ℓ CO₂ 배출량 123g/km

MERCEDES-BENZ C 220D ESTATE 4MATIC
‘눈을 뜬다. 파란 하늘과 가지 위의 하얀 눈이 바로 눈앞에 있다. 아름답다. 발은 따뜻하고 머리는 차갑다. 상쾌한 수면에 딱 좋은 조건. 머리가 조금 많이 차갑기는 하지만.’

예전에 한창 스키에 미쳤던 시절의 이야기다. 쉬는 날이면 새벽부터 스키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복잡한 차량을 피하고 스키하우스나 슬로프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싶어서였다. 남은 시간 동안 차에서 잠을 청하면 안성맞춤이었다. 이를 위해 두툼한 침낭 하나면 족했다. 아무리 따뜻해도 차 안에서 자면 허리 아프지 않냐고? 돈 워리. 당시 내 차는 왜건이었다.

물론 왜건이라고 누구나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만일 차 안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왜건만큼 편안한 차는 없다. 대부분의 SUV나 소형 미니밴, 심지어는 해치백들도 뒷시트를 접으면 평평한 바닥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이가 사람이 눕기에는 부족하다. 오늘 나와 함께했던 메르세데스 벤츠의 C 220d 4매틱 에스테이트는 크지 않은 왜건임에도 키 175센티미터 정도까지는 편안하게 누울 수 있다. 같은 급의 SUV인 GLC는 뒷시트를 접었을 때 공간 길이가 거의 10센티미터나 짧아서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없다. 9인승이나 12인승 미니버스도 시트를 뜯어내면 평평한 바닥이 나오겠지만 1. 시트를 뜯고 보관하는 것이 고생이고 2. 발로 밟던 곳에 눕는 게 찜찜하고 3. 승용차가 아니니 운전하기 어색하다. 왜건만 한 게 없다.

왜 차에서 잔다고 청승을 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차의 장르나 용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차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왜건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반면 앞을 보고 달릴 때는 완벽하게 승용차의 감각이다. 예를 들어 럭셔리 왜건은 럭셔리 세단의 왜건형이고, 스포츠 왜건은 스포츠 세단의 왜건형이다. 하지만 SUV는 높은 무게중심 때문에 움직임이 원천적으로 다르고, 스포츠 쿠페는 내가 피곤해도 마치 빨리 달려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해치백은 공간이 작아서 쓸모가 제한된다. 나를 온전히 주인으로 인정하는 장르는 왜건뿐이다.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세었던 아내와의 추억이, 내 좌우에 누워서 까르르 웃던 이젠 다 커버린 두 딸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 내게는 왜건이었으며, 그리고 비록 꿈속이었지만 왕년의 스키 황제 헤르만 마이어처럼 슬로프를 가르는 쾌감을 슬로프 바로 옆에서 스키와 함께 누워서 만끽했던 공간도 왜건이었다. 필요할 때는 화물차 뺨치는 적재 공간으로 변신했지만, 나에게 왜건은 추억을 만드는 사람의 공간이었다. 왜건은 흔히 생각하듯 실용적이기만 한 멋없는 녀석이 절대 아니다.

이번에 만났던 C 클래스 에스테이트는 섬세한 배려가 고마운 친구였다. 롤러형 뒷선반은 전동식 테일게이트가 올라가면 자기도 올라가서 적재함 안쪽을 들여다보기가 좋았다. 많은 메르세데스 벤츠 모델처럼 트렁크 바닥 아래에 있는 접이식 바구니와 트렁크 그물은 왜건의 넓은 공간에서 실용성이 특히 빛났다. 적재함 안쪽을 들여다보기 쉬운 왜건의 특성에 알맞게 작은 걸레 같은 것을 잘 숨겨놓을 수 있도록 적재함 바닥과 그 좌우의 보관함이 세심했다. 역시 많이 써본 친구들이 잘 만드는구나 싶다. 그리고 파노라마 선루프는 누워서 하늘을 보기에 더할 나위가 없었다.

오랜만에 왜건 뒤에 스키 세트를 싣고 침낭을 펼치고 나니 기분이 촉촉해진다. 오늘은 옛날 생각을 하며 침낭에서 하루 자볼까? 꿈속에서 싱그러운 아내와 재잘대는 어린 시절의 딸들을 만나면 좋겠다. 만일 그렇다면 내게 왜건은 진정한 드림카라는 뜻이리라. 잘 자.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소품 협조/아머스포츠코리아

MERCEDES-BENZ C 220d ESTATE 4MATIC
기본 가격 602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AWD, 5인승, 5도어 왜건 엔진 4기통 2.2ℓ DOHC 터보 디젤, 170마력, 40.8kg·m 변속기 7단 자동 공차중량 1820kg 휠베이스 2840mm 길이×너비×높이 4700×1810×1465mm 0→시속 100km 가속시간 7.9초 복합연비 13.5km/ℓ CO₂ 배출량 141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