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백+GT 이렇게 작고 앙증맞은 해치백이 240마력의 힘을 도로에 모두 쏟아낼 때는 영락없는 고성능 GT카다.

알파로메오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다. 과거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빛났고 디자인에서도 앞섰다. 1930년대 만들어진 경주용 차는 일반도로를 그대로 달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파로메오 플라잉 스타의 자태는 지금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얼마 전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거장들을 만나고 왔다.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알파로메오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디자인이 뛰어난 차를 말할 때 알파로메오는 항상 등장했다. 물론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더 멋져 보일 수 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 마음속 깊이 자리한 차는 오랜 역사의 알파로메오였다.

밀라노까지 온 김에 시 외곽에 있는 알파로메오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100년이 넘는 역사만큼 수많은 차를 전시했는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1950년대에 나온 작은 차들이 한가득 있었다. 줄리아, 줄리에타, 스파이더 두에토… 나의 마음은 소년 시절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1950년대에 제2차 세계대전의 경제난을 헤치고 등장한 작은 로드스터는 스포츠카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그 중심엔 줄리에타가 있었다.

줄리에타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4년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작고 매력적인 알파로메오를 ‘이탈리아의 연인’이라고 부르며 사랑했다. 줄리에타는 당시 유행하던 감미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딱 들어맞는 차였다. 줄리에타는 세단과 쿠페, 로드스터 등 수많은 버전으로 양산됐다. 그리고 스프린트와 스페치알레, 스프린트 자가토 같은 스페셜 에디션도 나왔다. 줄리에타는 올해로 62번째 생일을 맞았다.

FCA의 도움으로 밀라노에서 줄리에타 콰드리폴리오 베르데를 타볼 수 있었다. 알파로메오 레이싱 혼을 계승하고 있는 이 모델은 지난 2014년 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뜻하는 콰드리폴리오 베르데는 93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네 잎 클로버 엠블럼은 1923년 타르가 플로리오 경주에서 우승한 우고 시보치의 경주차 RL에 처음 부착했다. 그 뒤로 엔초 페라리, 안토니오 아스카리, 줄리오 람포니 등의 알파로메오 소속 선수들도 자신의 경주차에 이 행운의 상징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후 콰드리폴리오 베르데는 알파로메오 엠블럼만큼이나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나중에 이 네 잎 클로버는 알파로메오 경주차와 고성능 GT를 뜻하게 됐고 1960년대 고성능 양산차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BMW M이나 메르세데스 벤츠 AMG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줄리에타 콰드리폴리오 베르데는 폭스바겐 골프 GTI와 자주 비교됐다.

1 페달을 알루미늄으로 감싸 고급스러운 고성능의 멋을 더했다. 2 후면의 양쪽으로 찢어진 눈매는 듀얼 머플러와 균형을 이룬다. 그 모습이 꼭 147을 닮았다.

밀라노에서 시승한 줄리에타 콰드리폴리오 베르데는 로렌초 라마초티가 이끄는 알파로메오 디자인 팀의 작품이다. 지금까지 모든 알파로메오가 그러했듯 독특한 개성과 곡선미 돋보이는 이 4도어 해치백은 한마디로 멋지다. 앞부분은 방패형 그릴 양옆으로 수평 그릴을 두어 전형적인 알파로메오 얼굴을 만들었다. 뒷문 손잡이는 쉐보레 스파크처럼 창틀에 달아 뒷문을 말끔하게 마무리했다. 이런 스타일은 발터 드 실바가 디자인한 156부터 선보인 것으로 알파로메오가 원조다.

줄리에타의 대시보드는 원근법을 사용해 가장자리로 갈수록 좁아진다. 덕분에 실내는 넓어 보인다. 검은색 바탕에 갈색 가죽으로 투톤 치장을 한 실내는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시트도 갈색으로 은은한 멋을 살렸다. 군데군데 보이는 두툼한 크롬 장식은 차를 든든한 이미지로 만들어준다. 하이라이트는 스티어링휠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한 엠블럼이다. 많고 많은 엠블럼 가운데 가장 강렬한 모습이 아닌가! 이 밖에도 가죽 스티어링휠과 알루미늄 페달 등 호화로운 장비가 눈에 띄었다.

와이퍼는 A필러 쪽을 상당 부분 남기고 닦아낸다. 이탈리아차만의 특징이다. 스티어링휠 위치가 높은 편이어서 팔을 뻗고 다리를 오므리게 된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스타일 운전 자세다. 뒷자리는 넉넉하며 트렁크 용량도 적당하다. 유럽 해치백 디자인의 실용성은 당연하다. 줄리에타 콰드리폴리오 베르데는 5750rpm에서 최고출력 240마력, 2000~4000rpm에서 최대토크 34.7kg·m를 내뿜는다. 이 힘을 내는 1750cc 직렬 4기통 직분사 터보 엔진은 알파로메오의 작은 스포츠카 4C에서 가져왔다. 6단 트윈 클러치 역시 4C와 같은 것으로 콰드리폴리오 베르데에는 이 변속기 하나만 있다.

주행모드는 내추럴, 다이내믹, 올 웨더 세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는데 일반 주행모드인 내추럴 모드에서도 엔진 소리가 그윽하게 들린다. QV 인테이크 엔진 사운드 시스템 덕분이다. 달리는 차는 가볍고 조용하다. 듣기 좋은 마른 음색의 엔진음은 별개의 사운드로 추임새를 넣는다.

트윈 클러치 변속기는 론치 컨트롤도 지원한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같이 꾹 밟은 상태에서 시프트 페달을 아래 단으로 내린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이 변속기와 같이 작동하며 가속 시간을 최대로 줄인다. 1320킬로그램의 가벼운 이 앞바퀴굴림차는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6초에 도달한다. 최고속도는 시속 244킬로미터다. 강하고 빠르지만 복합연비는 리터당 14.3킬로미터로 일상에서 쓰기에도 경제적이다.

토리노까지 왕복 300킬로미터를 달렸다. 서툰 길에서 내비게이션의 정확한 길 안내가 큰 도움이 됐다. 이탈리아 도로는 모든 차가 순발력 있게 달린다. 작은 차는 빠릿빠릿하고 큰 차도 민첩했다. 고속도로에서 천천히 달리기라도 하면 뒤차가 바로 쫓아와 꽁무니에 바짝 붙어 위협한다. 시내 도로의 차선은 중앙선밖에 없어 보인다. 신호대기에 걸리면 알아서 2줄, 3줄로 적당히 선다.

이 배지 하나로 차의 성격은 확 달라진다.

줄리에타는 차체가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서스펜션은 조금 무른 편으로 단단한 차체가 부드럽게 지면을 밟도록 돕는다. 스티어링휠 감각도 민첩해 어떤 길에서든 빠른 달리기가 가능하다. 아반떼 크기의 줄리에타는 이탈리아에서는 상당히 크고 호화로운 차였다. 길가 주차에 앞뒤로 신경을 써야 할 만큼 덩치가 크게 느껴졌다.

이탈리아 고속도로의 속도제한은 시속 130킬로미터였지만 대부분 시속 150킬로미터는 거뜬히 넘기며 달렸다. 1차로는 철저히 비어 있었다. 차선을 바꿀 때 방향지시등을 안 켜는 편이다. 고속도로가 한가해지자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기는 차들도 많았다. 어디에서건 과속은 금물이지만 경험상 이탈리아 고속도로는 관대한 편이다.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를 만드는 나라가 아닌가.

넋 놓고 달리다 보면 줄리에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속도를 높인다. 줄리에타 콰드리폴리오 베르데에게 시속 200킬로미터는 그저 우습다. 트윈 클러치 변속기는 가볍고 깔끔하게 힘을 전달한다. 저 멀리서 마른 엔진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고속 안정감은 훌륭했다.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전혀 빠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탄 조두현 에디터가 먼 길을 편하게 달리는 그랜드 투어러 같다고 말했다. 달리기에서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나는 패들시프트를 당겨 박진감을 더했다. 차에서 내려도 그 흥분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줄리엣에 푹 빠진 로미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줄리에타는 일상에서 타기에 적절하면서 알파로메오 DNA가 가득한 개성 넘치는 스포츠카였다. 이렇게 멋진 차가 국내에 들어올 시점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에디터/조두현

SPECIFICATION ALFA ROMEO GIULIETTA QUADRIFOGLIO VERDE
기본 가격 4만 달러(추정) 레이아웃 앞 엔진, FWD, 4/5인승, 5도어 해치백 엔진 직렬 4기통 1.7ℓ DOHC 16밸브 터보, 240마력, 34.7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6단 자동 공차중량 1320kg 휠베이스 2634mm 길이×너비×높이 4351×1798×1465mm 복합연비 14.3km/ℓ CO₂ 배출량 162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