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조성룡, 경복궁, 1000개의 지붕
By Ahn Sangho, Freelance Writer  Photography by Ahn Hajin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위화도회군으로 조선왕조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당시에는 남경으로 불렸던 곳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한양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서울이다. 한양은 계획도시다.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풍수리지학에서 배산임수를 이용해 궁궐과 묏자리, 마을 등의 위치를 정했다. 전 세계의 수도에 산이 있는 나라는 흔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평평한 지형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인 중국의 베이징이나 일본의 도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형의 85%가 산인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산을 끼고 살아야 했다. 배산임수 사상은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됐다. 이 땅의 사람들은 산이 뒤에 있고 앞에 물이 있는 지형을 찾아 마을과 무덤의 터를 고민했다. 경복궁도 그렇다. 삼각산을 주산으로 안산은 남산, 오른쪽의 인왕산을 우백호, 왼쪽의 낙산을 좌청룡으로 정했고 지금의 자리에 궁궐을 세웠다. 삼각산과 남산 가운데 있는 청계천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렀다. 

조선 시대 이중환이 쓴 지리지 <택리지>에 한양의 풍수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 백악과 남산, 인왕산이 훌륭한 형국을 이루고 있으나 바위산의 형세가 지나치게 강하다고 지적했다. 흠을 보완하기 위해 경복궁 서쪽을 파서 그 물을 궁으로 끌어들여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어구인 금천을 만들었다. 이 물은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간다. 일제강점기,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수로가 끊기고 보완이  무용해졌으나 현재는 일부 재건됐다. 

도성이 들어갈 자리를 정한 후 궁궐의 위치와 좌향을 정하는 과정에서 승려인 무학대사와 공신 정도전의 주장이 달랐지만 결국은 정도전의 뜻에 따랐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유교 이념이 적용됐다. 중국의 관제를 기술한 <주례고공기>를 골자로 중국의 왕성과 궁궐제도를 수용해 주산인 삼각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섰을 때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 남쪽에 조정을 뒀다. 먼저 종묘와 사직을 만들었고 다음에 지은 것이 궁궐이다. 성벽은 가장 마지막에 쌓았다. 종묘는 왕실의 신위를 봉안하는 곳이고 사직은 백성을 위해 토지와 곡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성계와 정도전이 꿈꾼 조선의 근본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에는 5개의 궁이 있지만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처음으로 지은 궁궐은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이다. 이곳은 양지바르고 바람의 움직임이 좋은 살기 좋은 장소다. 궁궐은 왕성이 자리 잡은 도읍지의 중심으로 한 나라의 정치 행정이 이뤄지는 사무적인 공간이지만 왕과 왕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돌보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생활 공간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여러 왕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생을 마감했다. 

경복궁의 설계자는 정도전이었다. 그는 궁의 위치뿐만 아니라 전각의 용도와 배치, 이름까지 정했다. 광화문과 흥례문, 영제교,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령전, 교태전이 차례로 배치됐다. 광화문외에도 방위에 따라 궁궐의 동과 서에 각각 건춘문과 영추문, 북쪽 후원이 있었던 청와대 방면에 신무문을 두었다. 하지만 경복궁은 부침이 심했다. 개국 후 150년이 지났을 즈음 큰 화재로 인해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후에는 임진왜란의 발발로 인해 궁이 다시 소실되면서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궁이었던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했다. 경복궁이 다시 제 형태를 갖춘 것은 270여 년 후의 일이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됐고 다시 조선왕조의 정궁으로 거듭났다. 대원군이 재건했던 당시 경복궁의 전각은 크고 작은 집을 포함해 무려 1000여 채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정확한 모습은 알 길이 없고 다만 백악과 인왕산이 함께한 일대의 경관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경복궁의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가 경복궁 건청궁에서 시해를 당했고 이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일어나면서 왕궁이었던 경복궁은 제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산자락 아래에 있던 수백 채의 전각들이 헐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서 심각하게 훼철되었다. 일제는 1915년 박람회 성격인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했다. 전시를 위해 세워진 2~3층 높이의 여러 건물과 탑들이 들어선 당시 자료 사진을 보면 일제가 정궁인 경복궁의 의미를 얼마나 훼손했는지 알 수 있다. 이어 흥례문 자리에 총독부 건물을 세웠고 광화문은 헐어 건춘문 북쪽인 지금의 삼청동으로 옮겼다. 심지어 이토 히로부미의 명복을 비는 사당을 장충동에 짓기 위해 경복궁 전각을 헐기도 했다. 명성황후의 비극이 서려 있는 건청궁 자리에는 미술관을 세우고 광복 이후에도 국립민속박물관과 후생관(고궁박물관)등이 새로 건축됐다.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며 그렸던, 산과 물 속에서 조화를 이룬 경복궁의 풍경이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광복 이후 중앙청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했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4년 해체해서 철거되었다. 이후 경복궁 복원 계획이 세워지고 지난 20여 년 동안 근대에 훼손된 경복궁의 전각들을 재건하고 외부 공간을 정비해오고 있다. 광화문과 흥례문, 강령전, 교태전 영역을 먼저 완성했고 북쪽 끝에 있는 건청궁과 태원전도 재건했다. 궁궐의 수라간인 소주방 터도 발굴 후에 새로이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복원이 올바르게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비 방법은 문화유산의 원형과 진정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유네스코의 보존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복원으로 보기는 어렵다. 멸실 전의 자료와 자재, 기술 등의 문제로 옛 형태를 재현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지금의 경복궁은 박제된 과거의 섬이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채 오늘 날의 도시공간과 단절되어 있다. 북쪽 후원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끊어졌다. 광화문 밖 행정관청이 있던 6조 거리, 지금의 세종로 광장 역시 자동차 도로로 둘러 싸인, 키 높은 동상 두 개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절대군주가 통치하던 왕조 시대의 유물은 식민지시대를 지나면서 훼손된 채 남아있다. 그것을 많은 세금과 시간을 들여 보존하는 것이 지금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경복궁은 한 때 1000여 개의 기와 지붕의 집합이었다. 그 장엄한 궁궐이 북악산, 인왕산, 북촌, 서촌과 함께 이루었던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시절을 상상할 수 있을까?  

about 조성룡은 건축가다. 선유도 공원과 지앤아트스페이스, 홍성 이응노 기념과, 꿈마루 등을 설계했다. 건축의 목적이 편리함을 위해 새로이 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 기반해서 짓고 다시 고쳐 쓰는 일에 있다고 믿어왔다. 

사신상과 십이지신상 주작, 백호, 현무, 청룡이라는 영험한 동물로 표현된 사신상은 궁과 왕의 수호신이다. 땅을 지키는 열두 짐승을 뜻하는 십이지신상 역시 왕의 공간에 있는 월대를 장식한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LITERATURE
함돈균, 궁의 초현실주의   
By Ahn Sangho, Freelance Writer  Photography by Kim Chunho

궁이 현대문학 작품에 직접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궁이 비어버린 순간부터 전근대는 완전히 끝났다. 그리고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졌다. 그 단절로 근대가, 새로운 문학이 시작됐다. 

“궁이 역사적인 생명을 다하면서 시조 같은 전통적인 예술 형식이 사라졌죠. 그리고 일제 식민지와 함께 현대문학이 나타났어요. 어찌 보면 애증의 대상이죠. 현대문학 작품 중에서 궁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입장 두 가지가 있어요. 서정주의 ‘광화문’과 조지훈의 ‘봉황수’라는 시죠.” 

서정주는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로, 조지훈은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고 표현했다. “서정주가 광화문에서 바라보는 경복궁은 복고적인 관점입니다. 왕이 살았고 우리 문화의 찬란했던 시간이 담긴 장소와 전통에 대한 향수를 묘사하죠. 궁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이에요. 조지훈은 봉황의 슬픔을 말해요. 중국이 천자의 나라였고 천자의 상징이 용이지만 부마국이었던 우리 왕의 상징은 봉황이었죠. 그걸 궁과 왕좌에서 봐요. 주체성이 없는 국가의 모습이에요. 중국 휘하에서 일본으로 바뀐 것도 마찬가지예요. 철학자 니체는 역사를 기념비적 역사와 골동품적 역사, 비판적인 역사 세 가지로 나눠요. 서정주가 기념비적인 시선이고 조지훈이 비판적인 시선이지요.”

함돈균은 시인 이상을 분석하는 데 꽤 공을 들인 이다. 이상은 모더니즘의 정점이다. 모더니스트에게 감정은 복합적이다. “이상은 전위적인 작가였습니다. 2015년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요. 그의 시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시가 ‘오감도’죠. 제 관점에서 ‘오감도’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에요.” 

교과서에 실린 ‘오감도’가 아득했다. 어렴풋이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가 떠올랐다. 그리고 제13의 아해까지. “주체가 아이예요. 어디서 무섭다고 하는가? 바로 도로예요. 이상이 살던 시대에 도로는 예전부터 쓰던 말이 아니죠. 도로는 현대의 도시 공간에 형성된 길을 일컬어요. 사직동에서 태어나고 서촌에서 자란, 사대문 안에서 평생을 산 이상이 무섭다고 말할 때 그 공간은 궁 주변이에요. 당시에 나라가 망해서 아파한 이도 있었지만 나라가 망해서 새로운 문명이 도래할 거라고 믿은 이들도 많았어요. 심지어 만세를 부른 이들도 있었죠. 그 무너진 상징이 궁이었어요. 무섭다는 건 변해가는 도시와 비어 있는 궁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뜻해요. 그리고 궁 주변은 늘 공사장이었어요. 경복궁을 해체하고 조선총독부가 지어졌고, 광화문과 을지로, 종로가 만들어졌죠. 그때 미쓰코시 백화점과 서울역사 같은 근대적인 일본의 도시 풍경이 들어섰어요. 그런데 이상은 항일 의식에 대한 시를 쓴 이가 아니죠. 무섭다는 건 바뀌는 도시에 매료되었던 그가 자연스럽게 인식한 감정이었어요.”

빈 궁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변화에 휩싸였다. 창경궁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경복궁에는 조선만국박람회가 열려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모두 국민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상의 그 감각을 확장시킨다면 창경궁을 예로 들 수 있어요.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요. 궁이 짐승의 우리가 됐죠. 일제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공간에 상징적 죽음을 부여했어요. 그럼 궁은 백성에게 치욕의 공간이자 트라우마의 공간이 되었어야 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대한제국 최고의 놀이동산이 됐어요.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은 뒤, 창경원의 벚꽃놀이는 인산인해를 이뤄요. 1980년대 초반까지 봄이 되면 창경원의 벚꽃놀이를 즐겼으니까요.”

창경궁 복원 공사를 위해 일반 공개를 중단한 1983년 7월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창경궁이 아닌 창경원의 인기는 20세기에서 70년 이상 이어진 셈이다. 사람의 실질적인 시간과 공간에 역사란 그렇게 가까이 붙기 힘든 지점에 있다. “궁을 비탄한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박물관이나 에버랜드, 롯데월드처럼 일상의 감각으로 존재했죠. 키치적인 공간으로 전락한 거예요. 실제로 사람들은 궁이나 숭례문 같은 문화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광화문이나 덕수궁에서 하는 수문장 교대식 같은 문화 상품 정도에 머물러 있죠. 숭례문이 불탄 다음에 그제야 숭례문이 있었다는 걸 인식하는 것처럼요.”

단절이라고 치부하고 멈춰버리면 역사는 과거에 머무른다. “궁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영국이나 일본, 러시아 같은 나라가 있어요. 아직 사람이 살고 있으니 연속성이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표피적이에요. 적어도 인문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전통과 현재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역사 교과서 문제를 깊이 자각하지 않는 이들도 많으니까요. 역사와 지금 우리의 거리감은 구한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거예요. 요즘 이른바 ‘헬조선’이나 ‘흙수저’라는 말을 쓰잖아요. 궁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조선총독부는 남아 있어야 했죠.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몰락한다는 불편함을 대면하는 공간으로요. 지금의 궁은 수문장 교대식이 에버랜드의 퍼레이드처럼 벌어지는 스위트한 공간이죠. 오히려 중요한 정치적 공간은 궁 앞이 됐어요. 경복궁을 완충지대로 국민이 호소하는 공간이 광화문 앞이 됐죠. 광화문과 권력 사이에서 호소들이 메아리쳐요. 궁이 바로 거기에 있어요.” 

about 함돈균은 문학평론가다. 사물과 현상을 철학적 시선으로 읽고 해석하는 인문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문학적 관점에서 서울 궁궐의 비탄한 역사를 읽었다. 

청기와 정교하게 새긴 용과 봉황, 수백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깊고 우아한 푸른 빛. 궁의 청기와는 왕실의 존엄한 위상을 드러내는 건축요소다. 창덕궁의 선정전에서 혁혁한 자태를 확인할 수 있다. 

URBANOLOGY
최종현, 서울의 나이테   

By Ahn Sangho, Freelance Writer  Photography by Kim Chunho

도시학자 최종현은 경복궁 서쪽인 효자동과 통의동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도 산다. 그에게 궁은 서울의 출발점이자 미래로 향하는 반환점이다. 그래서 오늘의 서울과 궁에 아쉬움과 못마땅한 마음이 있다. 

“경복궁은 상수(常數) 철학에 의해 설계됐어요. 진보주의 학자였던 정도전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바탕으로 만들었지. 역과 수로 공간을 배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어요. 보통 우리가  구중궁궐이라는 말을 쓰는데 9가‘꽉 찬’이라는 의미를 지닌 숫자이기 때문이에요.” 

홍범구주는 중국 하나라 우왕이 만든 정치 이념이다. 아홉 가지 큰 조항이 있고, 그중 다섯 번째가 황극이다. 왕이 법도를 세우면 관리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백성에게 베풀고, 백성이 이를 지키면 다시 왕은 나라를 더욱 보살펴 스스로를 치켜세울 수 있다는 내용이다. “소강절이  쓴‘황극경세서 (皇極經世書)’에 그 내용이 나오는데 우주가 순환한다는 논리예요. 중국은 장수와 불멸의 문화죠. 5라는 숫자가 중심이고, 그게 임금이야. 그래서 왕과 왕비의 거처인 강녕전 앞에  향오문이 있어요.‘모이다’, ‘누리다’라는 의미인데 오복을 말하는 거지. 경복이라는 말에도 ‘온 국민이 즐겁게 술에 취해 만수무강을 빕니다’라는 뜻이 있어요. 근정전은 정치는 근면해야 한다는 거고. 정도전이 경복궁 안의 모든 명칭을 경전에서 가져온 거야.” 

경복궁 내의 여러 명칭이 그렇듯이 건물이나 계단의 숫자도 모두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그 의미는 후대에도 본을 삼기 위한 것이었다. 

“숫자를 바탕으로 모든 게 지어졌어요. 강녕전에는 왕의 숫자에 맞춰 계단이 5개가 있어야 하는데, 복원하면서 6~7개로 바뀌었어요. 잘못된 고증이지. 월대에 있는 계단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제후국이라는 의미에서 계단이 7개였어. 그런데 복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지. 지난봄에 경복궁 답사를 갔는데 이를 설명하다가 결국 화가 나더라고. 한두 개가 아니야.” 

최종현 소장은 궁의 변질과 역사를 소실한 서울이라는 도시 사이에서 유관함을 찾는다. 제멋대로 개발된 도시 서울은 주체인 시민이 살기에 너무 불편한 도시다. 연속성이나 가변성이 전혀 없다. 그도 1982년에 서울의 도시 설계에 관여했지만 시장이 바뀔 때마다 도시계획이 매번 바뀌었다. 

“도시는 시민을 위주로 정책이 펼쳐져야 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로 정책이 돌아가. 화교들을 내쫓고 플라자 호텔이 올라갔고, 사창가를 밀고 삼성 본관이 올라섰어요.” 개발에 맞춰 사대문 안에서 거주하던 이들은 강남으로 빠져나갔다.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이 살던 동네는 재개발로 인해 그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 기존 동네들이 가지고 있던 각각의 용도는 모두 폐기처분 됐다. 

“서울에는 도시의 정의가 없어요. 골목길과 작은 공원이 있어야 하고 다양성이 존재해야 해요. 그곳에서 사회를 배우며 자라야 하는데 정작 사람들이 머물러 있을 곳이 없죠. 보행과 휴식 위주가 아닌 거죠. 자신이 사는 마을에 대한 애착도 없어요.”결국 서울은 돈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도시가 됐다. 차로 이동하고, 커피를 사서 마시며 쉬는, 철저히 자본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자연스레 시민들은 도시의 역사에서 멀어지고 도시적 삶은 본래의 가치에서 변질된 채 퍼져나갔다. 서울이 도시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되돌릴 시기가 몇 번 있었지만 우리는 매번 그 기회를 놓쳤다. 

“고종 때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해치상이 생겼어요. 해치는 선과 악을 가리는 상상의 동물이에요. 그리고 흉배에 해치 문양을 단 신하들은 쪽문이 아니라 정문으로 출입했어요. 간언을 하던 신하들이지. 국민의 소망하는 것을 외면하지 말고 직언하라는 의미야. 홍무관에 자색 바닥을 깐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진정성이 없어요.”도시의 역사는 경복궁의 상징들처럼 동네와 골목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이면서 흘러간다. 하지만 서울은 이미 과거를 지운 도시가 됐다. 구도심과 신도심의 경계도 이미 허물어졌다. 그럼에도 최종현 소장은 요즘 서울과 지방을 잇는 고려 시대의 길을 되살리고 있다. 

“궁에서부터 임진강까지의 길이 아직 살아 있어요. 도시에는 그런 과거의 길이 누적되어야 해요. 오래된 도시는 나이테를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about 최종현 통의도시연구소 소장은 도시학자다. 도시 역사에서부터 지리, 구조, 설계까지 아울러 연구해왔다. 당연히 연구한 도시의 중심에 서울이 있다. 그는 궁의 역사에서 오늘의 서울이 지향해야 할 도시 지형도를 찾는다. 

잡상 서울 궁궐의 추녀 마루를 보면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의 장식을 볼 수 있다. 잡귀와 살을 물리치기 위해 올린 ‘잡상’이다. 궁과 왕가의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다. 

MODERN HISTORY
안창모, 고궁 말고 덕수궁

By Kim Gahye, Freelance Writer Photography by Kim Chunho

서울에 5개의 궁궐이 있다는 말은 맞지만, 5개의 ‘고궁’이 있다는 말은 틀리다. 덕수궁은 고궁이 아니다. 나는 덕수궁의 정체성을 ‘근대도시 궁궐’이라고 말한다.  서울시청 별관 옥상에 올라가면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규모가 작은 덕수궁. 규모로 치면 경복궁에 비할 수 없고, 아름답기로는 창덕궁에 비할 수 없다. 게다가 궁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격도 갖추지 못했다. 궁의 터는 산을 등지고 물을 끼고 있는 배산임수의 땅이어야 하는데, 덕수궁 뒤에는 산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전조후침(앞에 조정을 두고 뒤에 침전을 둔다), 좌묘우사(왼쪽에 종묘를 두고 오른쪽에 사직단을 둔다) 같은 궁을 짓는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경복궁과 창덕궁을 보는 시선으로 덕수궁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규모도 작고, 격도 못 갖춘 이 궁은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근대사를 품고 있으니까 말이다. 

덕수궁은 예기치 않은 장소에, 예기치 않은 순간에 세워진 궁궐이다. 유난히 일본과 악연이 깊다. 임진왜란 당시 몽진을 다녀온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궁궐로 삼은 것이 그 시작. 당시 선조는 단청도 없는 민간 건물을 침전으로 삼아 지내다 승하했는데, 이곳이 요즘 복원 작업이 한창인 ‘석어당’이다. 1904년에 이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자 고종은 통탄을 금치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석어당은 국란 극복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라 1000년, 조선 500년 식으로 국가의 존속 시간을 기계적으로 암기해서인지 500년을 기본(?)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임진왜란에 패한 일본이 막부 시대를 맞이하고, 중국은 명나라가 청나라에 정복당했던 시기에 조선이 300년이란 역사를 더 이어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의 우리에게 특별히 각인되는 공이 없던 선조의 이름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왕에게 허락되는 ‘조’가 붙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덕수궁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7년,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5대 궁궐의 안내책자의 내용과 디자인을 문화재청에 기증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5개의 궁 가운데 유일한 근대 궁궐인 덕수궁을 근대건축을 연구하는 내게 맡긴 것인데, 이 일을 계기로 덕수궁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다. 4~5년간 덕수궁에 관한 자료를 모으면서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은 우리에게 ‘근대’란 참으로 희미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라가 망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대한제국을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름 없는 임시 행궁이 ‘경운궁’이란 이름을 얻게 된 후 이곳을 다시 찾은 왕은 알다시피 고종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질문 하나. 당신에게 고종은 어떤 왕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무능하고 심약한 왕으로 기억한다. 당연하다. 학교에서 1896년에 일어난 ‘아관파천’에 대해 알려주기를, ‘일국의 왕이란 자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숨긴 수치스러운 사건’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 사건을 곱씹을수록 의문이 든다. 왕의 안위가 곧 국가의 안위인 왕조 국가 시절에, 왕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게 욕먹을 일일까? 국모가 참혹하게 살해당하며(을미사변) 국가의 존립이 흔들리던 때, 적(일본)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적의 적(러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비난받을 일인가 말이다. 우리가 고종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형적인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한다. 아무리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자료대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상황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러시아 공사관에 있는 1년이란 시간 동안 고종은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먼저 친일파를 숙청한 다음 새로운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도시 건축 사업을 펼쳤다. 많은 사람들이 서재필 박사가 세운 것으로 알고 있는 독립문 역시 그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또한 왕이 있는 경복궁과 행정의 중심인 육조 거리, 그리고 상권의 중심인 종로로 상징적(정치적) 중심과 기능적(경제적) 중심이 나뉘어 있던 조선의 도시 구조를 개편해 서울 도시 구조의 근간을 만들었다. 1897년에 건국한 대한제국의 존속 기간은 불과 13년.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고종이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빠르게 근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것,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다. 

근대사를 알고 나면 덕수궁의 정문과 정전의 의미 역시 이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혹시 덕수궁의 정전은 4개의 고궁과 달리 돌림자를 쓰지 않은 것을 알고 있나? 조선의 궁들은 좋은 정치를 베푸는 성군이 되기를 바라며 정전의 이름을 근정전, 인정전, 명정전과 같이 지었는데, 덕수궁을 지을 당시의 조선은 성군을 운운할 시기가 아니었다. 덕수궁 정전의 이름은 중화전. 여기서 ‘중화’란 ‘세상의 모든 사물이 다 중심을 잡고 있으면 온 세계의 질서가 바로잡힌다’는 뜻이다. 나는 세계사를 꿰뚫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개항한 나라가 아닐까 추측한다. 적어도 아시아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마지막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이권 쟁탈의 마지막 장소이자, 우리보다 20년 앞서 개항한 일본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나라가 개항 이후의 조선이었던 것이다. 고종은 우리나라가 그 어느 나라의 속국도 아닌 제국임을 천명하는 동시에, 당시 중립국이었던 벨기에를 모델로 그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는 중립국으로서 자리 잡으려 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13일(대한제국 선포일)에 ‘대한제국역사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석조전의 복원 작업은, 단순히 건축물 하나를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우리의 근대사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최초의 서양식 석조 건축물인 석조전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제 침탈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언제 철거될지 모를 운명이었다. 그런데 대한제국이 새로운 근대국가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운영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고종의 프로젝트란 사실이 역사적 증거들과 함께 밝혀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었다. 10년 가까이 덕수궁을 연구하고, 5년 동안 복원 작업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석조전 내부에 처음 들어서면 사람들은 고궁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함에 눈길을 뺏기기 쉽다. 하지만 그곳을 둘러보면서 고종이 왜 이런 공간을 세웠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꼭 가져보길 바란다. 경운궁이라 불리던 이곳이 덕수궁이란 새 이름을 얻은 것은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를 한 1907년.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였다. 

덕수궁은 서울의 5대 궁 중 도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일한 궁이다. 외국의 공사관이 몰려 있는 외교 타운이자 선교 기지였던 정동과 근대 제국의 시작을 알린 덕수궁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누군가는 물리적으로 도시 안에 있는 경복궁도 도시 궁궐이지 않느냐고 묻는데, 질서의 중심으로 기능하긴 했지만, 경복궁은 철저히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킨 궁이었다. 그러니 이 도시와 호흡하는 덕수궁을 돌아볼 때는 근대사를 함께 한 주변의 공간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지나간 얘기지만, 문화재청과 서울시, 국토부가 덕수궁의 담장을 없애는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는데, 대다수 전문가들이 ‘미쳤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찬성했다. 근대가 전근대와 다른 점이 뭔가, 근대는 이전까지 소수의 것이었던 지식과 권력을 ‘공유’하는 시대라는 것이 아닌가. 근대의 상징으로서, 덕수궁의 담장을 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의 담장 바깥 공간(서울광장)은 원래 대한제국의 개혁을 이끈 핵심 부서인 궁내부와 온수부가 있었던 자리다. 그런데 현재의 모습으로는 근대사에 빠질 수 없는 공간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현재의 덕수궁 담장을 허물고, 서울광장을 ‘대한문 앞 광장’이라 부르는 것이다. 대한제국이 출범하며 서울의 중심이 재편된 근대사의 이 현장을, 부디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땅이 갖는 역사성을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about 안창모는 건축사가이자 문화재위원이다. 덕수궁 안내책자 재편 작업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돼 <덕수궁-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란 책을 냈고, 석조전 복원의 자문위원을 맡았다. 

당가 궁궐에서 가장 최고의 권위를 지니는 전각은 정전이고, 정전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당가다. 모든 궁궐의 장식은 당가의 어좌에 앉은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고 칭송한다. 

ARCHITECTURE
김대균, 현대건축과 궁궐의 연결 고리

By Kim Gahye, Freelance Writer  Photography by Kim Chunho

세지마 가즈요의 건축을 좋아한다. 조선의 궁을 이야기하는 페이지에서 일본 건축가 이야기부터 꺼내니 뭔 소린가 싶겠지만, 잠시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길 바란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지마 가즈요의 건축은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 개념을 뒤집는 것이었다. 한 예로, 초기작인 기후 현의 아파트는 공공 건축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아파트의 이미지를 허문 대지 위의 작품이다. 보통 아파트라 하면  ‘블록’형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녀가 지은 아파트는 얇은, 선형(Linear) 건축물. 그뿐 아니라 크기와 모양이 저마다 다른 형태로 각 집의 구획이 나뉘어 있어 층과 층, 호와 호를 나눌 수 있는 ‘경계’를 없애버렸다. 

그런가 하면 네덜란드의 위성도시 알메러(Almere)에 지은 뮤지엄은 복도와 통로 없이 방으로만 이어져 있어 위치 감각을 상실하기에 딱 좋은 건축물이다. 길을 따로 두지 않고, 장소와 장소를 연속시키면서 최대한 공간을 활용하는 것은 세지마 가즈요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데, 이때 동선이 정해져 있지 않은 건물 안에서 길을 만드는 건 바로‘사람’이다. 그녀의 건축 철학이 집약됐다고 평가받는 카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또 어떤가? ‘마을로 열린 공원 같은 미술관’이 콘셉트인 이 거대한 원형 미술관엔 정면은 물론이고, 입구가 따로 없다(사방에서 들어가는 모든 곳이 입구가 된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또 그녀가 좋아하는 건축 소재인 유리를 극적으로 사용한 이 건물은 안과 밖, 공간과 공간의 경계를 비현실적으로 허문다.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경계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브루노 제비와 카밀로 지테의 이론이다.‘공간으로서의 건축’을 이야기한 브루노 제비는 “모든 건축 볼륨과 모든 벽의 구조물은 경계를 설정하고 공간의 연속성에 멈춤을 가져온다”며, “건물에 의해서 한정된 공간은 내부 공간이고 이외의 공간은 외부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근대도시 이론가인 카밀로 지테의 생각은 달랐다. 도시계획에 의한 도시광장을 하나의 방과 같이 인식하면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개념은 단순히 물리적인 구분이 아니라 인간의 지각을 통해 형성되는 상대적인 공간개념이라는 것이다.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경복궁을 볼 때마다 이 거대한 ‘미로’공간의 마스터플랜을 짠 이름 모를 건축가의 솜씨에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궁궐 터를 잡고 건물을 배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주례>의‘고궁기’는 땅 위에 점을 찍는 정도를 알려줄 뿐, 견고하면서도 복잡한 경복궁의 조직을 분석할 자료는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은 자연 친화적인 형태를 갖췄다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복잡하면서도 너무나 두루뭉술한 표현은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이라도 한 듯 복잡하고 치밀한 궁의 조직 구성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화만 돋웠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행랑’이다. 대문의 양쪽에 벌려 있어 하인들이 거처하는 집채로 안채, 사랑채 등 주 건물의 주위에 둘러 있는 건물’을 뜻하는데, 여기서 행랑은 건축 자체보다는 외부 공간을 조직하는 구조체를 의미한다. 행랑은 기본적으로 마당, 즉 외부 공간과 면해있는데, 물리적으로는 외부였던 외부 공간이 담이나 행랑에 둘러싸이면 폐쇄적인 내부적 속성을 갖게 된다. 나는 이러한 행랑을 전체적인 공간의 조직을 가능하게 하는 건축적 하부

구조로 바라봤다. 하부 구조이면서 동시에 상부 구조로서도 작용하며, 공간의 점유가 아닌 외부 공간과 관계성을 통해 전체 공간을 조직하니 여타의 다른 건축적 하부 구조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말이다. 태조가 조선을 세운 뒤 한양에 수도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만든 길에도, 태종이 왕자의 난을 통해 왕권을 잡은 뒤 세운 창덕궁에도 외부와 경계를 이루는 행랑은 늘 상호관계와 집합을 통해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주택은 물론이거나 사찰, 궁궐, 도시 등 다양한 스케일의 건축 유형에 적용됐다. 컴퓨터가 0과 1만으로 세상을 조직하는 것처럼, 우리의 궁궐은 행랑의 정면성과 배면성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할 수 있다. 건물 하나가 아니라‘조합’이 건축이 되는 세지마 가즈요의 공간과 외부 공간의 성격이 행랑 간의 관계성을 통해 부여되는 우리 궁궐. 겉으로 볼 땐 경계와 방향성을 좀처럼 찾기 힘든 이 두 공간의 공통점은 관계를 통한 완성이 아니었을까?

about 김대균은 ‘스튜디오 착착’을 운영하는 건축설계사다. 얼마 전 소록도 병원 안에 한센인과 일반인의 경계를 허무는 ‘작은 미술관’을 설계했다. 행복을 위한 건축물을 지어나가는 게 꿈이다. 

해태 해태는 봉황과 유니콘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성한 동물이다. 사자의 두상에 뿔이 달린 모양새. 화재,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의 상징으로 바르지 못한 사람, 그릇된 사람을 가려내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