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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야쿠르트 아줌마예요!

낯선 이들에게 한없이 경계의 신호를 보내는 날 선 이 사회에서 “야쿠르트 아줌마예요”라는 한마디로 마음의 빗장을 푸는 이들. 수년 동안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아침 인사를 건네온 서울의 야쿠르트 아줌마 3명을 만났다.

2016.01.15

 

스트라이프 파라솔은 Pimlico 제품 (왼쪽부터) 박성희, 김선숙, 박점희

 

 

Q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부르면 될까요?
A 물론이죠!(이구동성으로)
Q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호칭을 좋아하나 봐요? ‘아줌마’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쳐질 때가 많은데.
A 박성희 괜찮아요. 오히려 좋아요. 친근감 있잖아요. 요즘같이 삭막한 시대에도 “야쿠르트 아줌마예요” 하면 문을 열어준다니까요.  
김선숙 ‘야쿠르트 아줌마’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열심히 사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요.
박점희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자식들은 다 잘 커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쉬는 법이 없으니까. 성실한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엇나가는 아이들이 없더라고요.
Q 야쿠르트 아저씨는 왜 없는 거예요? 일본, 태국 같은 다른 나라도 그래요?
A (일동 웃음) 박성희 그렇대요. 야쿠르트 아줌마는 일본에서 시작된 건데, 아마도 아줌마들이 근성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아가씨들은 얼마 못 버티잖아요.
박점희 지금은 아가씨도 할 수 있게 됐지만 처음에는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정말 ‘아줌마’만 할 수 있었어요. 자기 일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김선숙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부드럽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객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응대해야 하니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아줌마가 더 좋을 거 같아요.
Q 늦었지만 자기소개를 부탁해요.
A 박성희 제 이름은 박성희. 마흔다섯 살이고, 야쿠르트 일을 시작한 건 3년 정도 됐어요.
박점희 저는 박점희라고 해요. 58세.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1년이나 됐네요. 중간에 13년 동안 쉬었으니 처음 시작한 때는 훨씬 오래됐고요.  
김선숙 저는 김선숙이에요. 마흔여덟 살이고요. 출산하고 직장에 나가려니까 남편이 결사 반대를 하더라고요. 남편이 어느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물어봤대요. 한 달에 얼마나 버느냐고.(웃음) 그래서 남편 권유로 시작했어요.
Q 야쿠르트 아줌마는 전부 자영업자라고 들었어요. 본인만의 영업 노하우가 있나요?
A 박성희 평소에 고객과 대화를 많이 나눠요. 불편한 건 없는지도 물어보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보이더라고요.
김선숙 고객의 달력을 유심히 봐요. 회사원들의 달력엔 중요한 일이 다 적혀 있거든요. 휴가나 연차, 중요한 가족 행사 등등. 출근하지 않는 날은 배달하면 안 되잖아요. 사소한 실수를 줄여야 저에 대한 신뢰가 생겨요.
박점희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참고하기도 해요. 사진을 보면 고객이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대충 감이 잡히잖아요. 예전에는 가정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어림잡아보기도 했어요. 가족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사람인 만큼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중요해요.  
Q (박점희에게) 11년 전과 가장 달라진 게 뭐예요?
A 박점희 서울이 이만큼 빌딩 숲이 아니어서 훨씬 많이 걸어야 했어요. 지금은 한 건물 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이동 거리도 짧아졌죠. 젊은 고객도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먹다가 질려도 정이 있어서 가져다주면 계속 먹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주관이 뚜렷해서 본인이 싫으면 그만이에요. 월요일엔 야쿠르트, 화요일엔 윌, 수요일엔 수퍼백 이렇게 매일 다른 걸 주문하는 이도 많고.
Q 기억력이 굉장히 좋아야겠네요?   
A 박점희 기본적으로는 노트에 꼼꼼히 메모를 하고 컴퓨터로 데이터베이스화해요.
김선숙 저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닌데도 지금까지 한 번도 메모를 안 했어요. 고객 얼굴을 보면 신기하게도 뭘 주문했는지 다 기억이 나요. “내일모레 출장입니다”라고 불쑥 말하고 지나가도 머릿속에 남고요.
박성희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여사님들이(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서로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정말 놀라웠어요. 요즘엔 회사든 빌라든 웬만한 출입구엔 다 비밀번호가 있잖아요. 하루에 몇 개 건물을 도는데 어떻게 그걸 다 외우나 했거든요. 근데 한 달 정도 지나니까 그 문 앞에 가면 저절로 그 번호가 떠오르더라고요.

 

 

 

우리는 탤런트가 되어야 해요. 그게 우리의 영업 수칙이죠.

 

Q 이제껏 수많은 고객을 만나왔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어요?
A 박성희 저는 늘 새벽에 출근하니까 아침 식사를 매일 거르거든요. 그래서 사우나 직원인 고객이 항상 먹을 걸 준비해두세요. 제가 아파서 넘어졌을 때도 병원비 하라고 3만원을 손에 꼭 쥐어주더라고요.
박 점희 애 아빠가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아무리 쉬지 않는 직업이라도 그날만은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 지구의 직원이 고객들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상을 치르고 보니 너무나 많은 분들로부터 답장이 온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상 잘 치르고 오시라고. 부의금을 주신 분만 열 분이 넘고, 세 분은 직접 장례식장까지 와줬어요. 그만큼 가족 같다는 거죠. 미안해서 혼났어요.
Q 그분들은 오랫동안 고객이었어요?
A 박점희 오래된 분도 있지만 얼마 안 된 고객도 있었어요. 모 패션 회사 전무님도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때였는데 비서를 통해서 부의금을 맡겨 두었더라고요.  
김선숙 춥고 비 오는 날 배달을 가면 정말 내 엄마처럼 보듬어주시는 분도 많아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면 밥 사 먹으라고 손에 돈도 쥐어주시고.  
박성희 아! 제 큰딸에게 직장을 소개해준 고객도 있어요. 딸의 취업 문제로 얘기를 나누다가 그 고객이 절 믿고 제 딸을 좋은 직장에 추천해준 거예요.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Q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야쿠르트 아줌마만은 친근하게 느끼는 이유가 뭘까요?  
A 박점희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가 아닐까요? 야쿠르트 아줌마가 찡그리고 있는 거 본 적 있어요? 제 남편이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오늘내일 하고 있을 때 제 심정이 어땠겠어요. 엘리베이터에서는 ‘어떡하나’ 울고불고 하다가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짠!’ 하고 웃어야 했어요. 우리는 탤런트가 되어야 해요. 그게 우리의 영업 수칙이죠.
Q 가장 힘들 땐 언제예요?
A 박점희 고객에게 “이제 그만 먹을게요”라는 말을 들을 때죠. 그 말이 그렇게 가슴 아플 수가 없어요. 실연을 해도 그 정도로 아프진 않을 거예요.(웃음)
박성희 악천후요. 날씨가 안 받쳐주면 시간도 더 들고 체력적으로도 지치니까요.
Q 한국 야쿠르트는 보상 제도가 잘되어 있던데. 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A 박성희 입사한 지 1년 만에 ‘세일즈 퀸’에 올랐어요. 그전에 비해 매출이 많이 올랐거나 고객이 크게 늘었을 때 주는 상이에요. 초창기 땐 아예 대본을 써서 집에서 거울 보면서 연습했어요. 무표정하게 있으면 화나 보이는 상이라 입꼬리를 최대한 올리고 무작정 고객들한테 들이댔죠. 처음 본 사람에게 단 3초 만에 저의 존재를 알려야 하거든요. 길 가다가도 눈만 마주치면 “야쿠르트 아줌마예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방도 마음을 열어줘요.  
박점희 여기 있는 김 여사도 정말 대단해요. 타고난 사업가예요. 이래 봬도 엄청 적극적이라니까.
김선숙 세일즈 퀸이 되어서 지난 9월에 베이징에 다녀왔어요. 특출 난 건 전혀 없어요. 그저 성실히 일하는 거죠.
Q 야쿠르트 아줌마로서 꿈이 있나요?
A 박성희 즐겁고 건강하게 고객을 오랫동안 보는 거. 건강히 오래 할 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선숙 저도 평생 이 일을 하는 게 꿈이에요.
박점희 저는 야구르트 대회에서 ‘명인’이 되고 싶어요. 그중에서도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 포상으로 자동차를 주거든요.
Q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 그만둘 거예요?
A 박점희 그럴 리가! 죽기 전까지 일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고 싶어요.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Yun Sukmu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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