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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이정현의 다음이 궁금한 이유

의문은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지난 20년간 이정현이 우리에게 보여준 퍼포먼스 앞에서 대부분의 첫 반응은 물음표였다. 그녀의 취향은 곧 새로운 흐름이 됐다. 이정현의 다음이 궁금한 이유.

2016.01.11


보디수트와 벌키한 텍스처가 가미된 롱 재킷은 H&M, 귀고리는 Eenk 제품

 

 

 

 

이정현은 풍문 속의 존재였다. 데뷔 때부터 그랬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16세 소녀가 영화 촬영 중 유리창에 머리를 진짜로 박아서 기절하고, 상대 배우가 던진 돌에 발을 맞아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울면서 연기를 이어나갔을 때 사람들은 ‘어딘가 미친 게 분명한’ 여자애의 정체에 대해 수근거렸다. 1999년, 이정현은 외눈박이 부채와 손가락 마이크를 달고 지구에서 생전 처음 보는 춤으로 무대를 휘저었다. 부채의 ‘초록 눈동자’가 지구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이 독특한 소녀가 방송 3사의 음반 차트를 석권했을 때, SF 영화 <용가리>의 심형래가 만들어준 20kg짜리 날개를 달고 나타났을 때, 대중은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장면에 그저 입을 벌릴 뿐이었다. 이후 8집까지 여전사, 바비 인형, 전통 무예와 같은 기상한 퍼포먼스는 계속됐다. 당시 이정현이 강남의 한 클럽에서 노는 장면을 목도한 모 CF 감독은 “신 내림 받은 사람처럼 흥과 기가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이 말이 매우 주관적이며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일지라도, 우리의 인식과 상상 속에서 이정현은 충분히 그런 이미지를 가진 행위 예술가였다. 2008년 숨 쉬는 일 조차 전 세계의 연예지와 가십지에 오르는 미국의 ‘레이디 가가’를 보고 나서야 대중들은 10년 전에 그런 퍼포먼스를 우리에게 보여준 이정현의 기발한 감각과 선견을 인정했다. 

 

 


독특한 커팅 디테일의 니트는 Low Classic, 팬츠는 Lucky Chouette, 조형미가 돋보이는 귀고리는 Eenk 제품

 
 
 

2000년부터 이정현은 한국보다 중국과 일본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풍문은 이제 이정현의 재능 대신 재산으로 거처를 옮긴다. 여배우 장쯔이와 동급의 개런티를 받는 스타, 본인의 이름을 딴 냉장고와 휴대폰을 가진 국민 연예인, 그 인기와 영예로 한국의 3대 기획사 수입보다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다는 무성한 소문에 휩싸인 이 비현실적인 존재와의 만남이 조금은 걱정됐다. 마일리 사이러스처럼 엄청나게 특이하진 않을까? 아쉬울 게 없는 인기와 부와 명예를 가진 이 여배우가 촬영 도중 갑자기 몰디브산 망고가 먹고 싶다고 강짜를 부리지는 않을까? 무수한 풍문과 걷잡을 수 없는 상상력을 잠시 걷어내고 9시간의 화보 촬영을 마친 이정현 앞에 앉았다. 그녀의 짧은 하품이 끝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을 건넸다. 

 

 


메탈릭한 시퀸 장식의 베어백 드레스는 H&M 제품

 
 
 
 

Q 저는 어제 보고 왔어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A 네? 아, 음, 감사합니다. 

Q 저한테도 물어보실 줄 알고요.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랑 인터뷰할 때 영화 봤느냐는 질문으로 그 날카로운 분의 말문을 막았잖아요.  
A 아하하.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어요.

Q 무기력한 마음에 위로가 좀 됐어요. 영화가 꼬집은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갖고, 분노도 해보고 지지도 해보고 참여도 해봤지만 변하는 게 없었잖아요. 연기하는 입장에선 어떤 마음이었어요? 
A 저는 배우로서 그 역할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인데 그 어떤 영화에서도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독특한 캐릭터거든요. ‘수남’이라는 인물이 극 중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극단적인 행동들이 속 시원하기도 했고, 웃기기도, 무섭기도 했고. 보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연기하는 마음도.

Q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고 했어요. ‘좋은’의 기준이 뭐예요?
A 시나리오를 처음 딱 받고 얼마나 빨리 읽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빨리 읽으면 재미가 있는 거고요. 읽다가 잠시 덮고 띄엄띄엄, 다음 날에 읽는 시나리오는 결국 선택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단숨에 읽히는 작품. 그리고 제가 해보지 않은 캐릭터가 있는 극. 

Q 필모그래피를 보면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는 영화가 많아요. 데뷔작 <꽃잎>부터 이전 작 <범죄 소년>까지. ‘메시지’도 선택의 기준인가요? 
A 일부러 그런 작품을 고르진 않았는데 하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미혼모 문제를 다룬 <범죄 소년> 같은 경우는 세 번 정도 고사했어요. 그러던 중 감독님이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는데 그게 다 ‘미혼모’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거기에 완전히 방치된 미혼모들의 현실이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 환경 안에서 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다큐멘터리를 더 보고 나서 출연을 결심했죠. 영화로 그런 문제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든 것 같아요. 

Q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상업 영화를 많이 찍고 싶다”고 말한 걸 봤어요. 좀 의아했는데, 이유가 뭐예요? 
A 저는 ‘다양성 영화’에 큰 매력을 느껴요. 상업 영화는 비슷한 소재로 관객이 원하는 걸 만든다면 다양성 영화는 흥행에 대한 부담이 덜하잖아요. 배우로서 욕심나는 내용과 역할이 많아요. 제가 상업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한 건 다양성 영화 때문이에요. 제 인기나 인지도, 영향력이 높아지면 다양성 영화의 개봉관을 늘릴 수도 있고, 흥행할 수도 있고, 제작 환경도 나아질 수 있잖아요. 그런 마음에서 한 말이에요. 

Q “이 역할은 이정현이 해야 돼”라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그 말은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해요. 독보적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박혀버린 이미지일 수도 있으니까. 
A 그 말이 정말 사실이고요. 그래서 다음 영화는 좀 평범하고 부드러운 캐릭터예요. 너무 평범해요. 그래서 골랐어요. 그간의 영화 속에서 평범한 이정현은 없었잖아요. 

Q 실제로는 평범해요? 
A 너무요. 취미도, 일상생활도. 연기나 음악을 할 때는 좀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집중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냥 한 인간으로서 저는 지극히 평범해요. 

Q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 같아요. 
A 아직까지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배우로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제가 학부 때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동기인 윤종빈 감독과 같이 과제도 하고 했었거든요. 그땐 항상 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배우로서 풀지 못한 한이 있어서 연기를 더 하고 싶어요. 연출은 나이가 더 들면 해보려고요. 

Q 배우로서 풀지 못한 한? 
A 많이 못 보여드렸잖아요. 가수 활동을 병행하고, 중국과 일본에서 드라마 찍고 그러다 휴식기도 갖고. 지금은 연기가 하고 싶어요. 

Q 만약 본인이 감독이라면 나를 이렇게 한 번 써볼 텐데, 라는 생각은요? 
A 안 해본 역할이 너무 많아요. 무협물이나 액션 영화도 하고 싶고, 한국에 아직 SF 영화가 없으니까 그런 영화의 여자 주인공도 해보고 싶어요. 

 

 


진주와 시퀸 장식의 톱은 Lucky Chouette, 스트라이프 디테일의 풍성한 퍼 코트는 Jalouse, 펌프스는 본인 소장품

 
 
 

Q 이번에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어요. 그 상이 본인에겐 어떤 의미예요? 
A 그렇게 큰 영화제에서 작은 영화에 나온 제게 상을 주셨잖아요. 앞으로 상업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다양성 영화에 많이 참여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영화가 정말 다양해질 거예요. 제작 환경도 좋아지고. 미국은 독립 영화 제작비가 150억 정도 된대요. 어마어마하죠? 우리나라 독립 영화 제작비가 10억 정도만 되도 정말 좋은 감독과 영화가 쏟아져 나올 거예요. 

Q 데뷔했을 때부터 가수 활동까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늘 들고 나왔잖아요. 정말 궁금해요. 그 무수한 반대와 반발을 뚫고 본인의 뜻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A 늘 반대를 뚫고 뭘 한 건 아니에요. 1집 때만 그랬어요. 저는 이미 많은 여가수들이 하고 있었던 콘셉트와 반대로 가고 싶었어요.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거 같아요. 안전한 길을 두고 막 비녀 꽂고 부채 들고 한다니까 회사에선 난리가 났죠. CD를 집어던지고… 그랬거든요. 근데 제가 울면서 그랬어요. 망해도 좋으니까 이번 한 번만 하게 해달라고요. 열아홉 살 때는 고집이 엄청 셌던 거 같아요. 첫 방송을 하고 사장님한테 받은 전화가 “우리 망했다”였어요. 그땐 SNS가 없었으니까 반응이 한 3일 뒤에 올라왔거든요. 그 사흘 동안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했었는데 정말 ‘대박’이 났잖아요. 그 이후론 회사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줬어요.

Q 망하는 게 두렵지 않았어요?
A 망해도, 후회를 한다고 해도 정말 하고 싶었어요. 제가 시도했던 게 정말 새로운 거니까, 되게 다르니까, 그런 걸 사람들에게 접하게 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Q 혹시 새로움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있나요? 
있었겠죠. 당시엔 그걸 ‘강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죠. 나이가 어린 데도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 컸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꾸 원하니까 다른 걸 찾아서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블라우스처럼 연출할 수 있는 보디수트와 볼드한 티어드 드롭 이어링은 H&M, 시크한 테일러드 수트는 Saint Laurent 제품

 
 
 

Q 예전에 이정현 씨가 어느 클럽에서 노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해줬어요. ‘끼 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흥이나 에너지가 ‘100’이라면 저 여자는 ‘200’일 거라고. 그건 정말 타고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A 하하. 그 분이 뭘 본 걸까요? 걱정되네요. 솔직히 “나는 타고났어.” 이렇게 생각한 적은 없고요. 재미있어서 뭔가에 빠진 모습을 보신 거 같아요. 저는 재미있으면 그런 모습이 나와요. 제가 몰랐던 에너지가 있어요. 

Q 그 200을 가졌을 때랑 지금이랑 많이 다른가요? 
다르죠. 나이가 들었잖아요. 체력이 금세 방전돼요. 예전 같았으면 오늘 화보 촬영 끝나고 친구들 불러서 술 마시러 갔을 텐데. 그런데 에너지나 체력이 되살아날 때는 영화 촬영할 때예요. 몸이 아프고, 기분이 울적하고, 그러다가도 촬영 들어가면 바로 나아요. 너무 신기해요. 

Q 올해가 데뷔 20주년이 되는 해죠?
A 20주년에 대한 감회 같은 건 아직 느끼고 싶지 않아요. 아앙… 나이가 너무 많아. 

Q 그런 피부를 가지고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요. 
A 청룡영화상 끝나고 뒤풀이를 갔는데요. 그 자리에 유아인 씨랑 송강호 선배님, 이정재 오빠… 다 있었어요. 다들 저한테 “20년 만에 청룡영화상에서 상 받는 거지?”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에 한국에서 영화를 많이 찍었어야 했는데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이러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활동했으면 지금 완전히 하락세였을지도 모르는데, 넌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얼마나 좋니. 신인 배우처럼 신선하잖아.”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힘도 나고. 근데 제가 이 말을 왜 하고 있죠?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 이정현 씨의 다음이 궁금해졌어요. 음악이든 영화든, 또 엄청난 걸 가지고 나오겠지? 
A 큰일났네. 다음 작품 진짜 평범한 건데. 아, 그게 새롭게 보일 수도 있겠죠? 

Q 그 영화 뭔지 알려주면 안 돼요? 
A 어… 아직 엠바고래요. 

Q 그럼 다음 좀 알려주세요. 가까운 다음, 먼 다음. 
A 먼 다음은 생각할 능력이 안 돼요. 눈앞에 있는 것도 잘할까 말까 한데. 그리고 멀리 볼 수가 없어요. 이 직업을 가진 한 일이 제 마음대로 안 되니까요. 그래서 그때그때 현재에 충실해야 살아남는 것 같아요. 미래를 계획하면 너무 복잡해지거든요. 

Q 그래도 끝이 어딘지 알고 가야 하잖아요. 중간에 바뀌더라도. 
나중에 저는 그냥 ‘배우’로 남고 싶어요. 수식어 필요 없이 그냥 배우라는 말로 충분한 사람. 요즘 연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 가수 이정현 씨 아니세요?” 하면 좀 속상해요. 

Q 해보고 싶은 데 못 해본 거 있어요?
A 없어요. 없는 거 같아요. 

Q 좋겠다. 
A 아! 아니다! 결혼! 


 


소매에 프린지가 달린 레더 미니 드레스는 Lucky Chouette, 사가 퍼 소재의 베스트는 Jalouse, 깃털 장식의 이어 커프는 H&M, 펌프스는 본인 소장품

 

 

By Park Wonjung, Fashion Assistant Editor
Styling by Kwak Saebom
Hair by Kang Hyunjin
Makeup by Hong Hyunjung

 

 

CREDIT

EDITOR / 류진 / PHOTO / 안주영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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