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행사는 이탈리아 자동차 잡지 <콰트로루오테>를 발행하는 에디토리알레 도무스 미디어 그룹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기회였다.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거장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그들만이 할 수 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번 행사 참가는 차를 좋아하는 나에게 성지순례와 같았다.

거장들의 강연은 일주일간 계속됐다. 전 BMW 디자인 총괄 크리스 뱅글, 폭스바겐의 발터 드 실바, 람보르기니의 필리포 페리니, 자가토의 에르콜레 스파다, 피닌파리나의 알도 브로바로네, 이탈디자인의 주지아로와 아들 파브리치오, 피닌파리나의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 피아트의 로베르토 졸리토, 페라리의 플라비오 만초니, 그리고 FCA의 로렌초 라마초티 등 전·현직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만든 차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해나갔다. 한때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던 나에게는 모두 반가운 이들이다. 71학번의 내게 거장들이 말하는 모든 차는 바로 나의 젊은 날 드림카였다. 유명한 분은 반가워서 좋았고, 몰랐던 분은 내가 좋아하던 차의 디자이너임을 아는 순간 반가움이 컸다.

90세가 넘은 알도 브로바로네는 내가 좋아한 푸조 504를 디자인했다. 아, 당신이 푸조 504를 디자인하셨어요? 트렁크 끝은 왜 그렇게 잘라내셨나요? 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요? 전직 피닌파리나 디자이너 레오나르도 피오라반티는 많은 페라리 모델 중 F40, 365GT/4 등 내가 좋아하는 차들만 디자인했다는 사실이 반갑다. 이탈리아에 눌러살기로 결정한 미국인 크리스 뱅글은 가족과 전원생활을 즐기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강연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넘치는 카리스마에 친해지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디자인을 할 때 상식을 넘어서는 발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불과 며칠 전 폭스바겐을 사직한 발터 드 실바는 폭스바겐을 사랑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에 사직했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생각의 그는 애플과 구글 차의 실현에 회의적이었다. 테슬라가 위험을 무릅쓴다고 했다. 주지아로는 아들 파브리치오와 함께 왔다. 그는 비틀을 골프로 바꾸는 데 성공한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중에 피아트 판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피터 슈라이어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디자인은 민주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능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미적 감각보다 앞선다는 말을 남겼다.

자동차 디자인에 성공한 그들과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나이 든 그들이 어린 시절에는 디자인을 배울 학교도 없었다. 그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로 채용이 되고,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한없이 노력했다. 많은 분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한다. 브루노 사코와 마르첼로 간디니는 원래 이번 행사에 참가할 계획이었으나 건강 악화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들의 공통된 충고는 디자인은 예정된 방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라는 것이었다. 항상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라. 아방가르드하지만 받아들여지는 디자인을 얘기했다.

토리노 박물관은 어둠 속에 차를 전시해 과거로 돌아간 착각에 빠지는 것 같았다. 이탈리아 자동차 공업 중심지의 박물관인 만큼 자동차 디자인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데, 이번 행사에 참가한 대부분 인물이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었다. 미국인 크리스 뱅글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주지아로의 아들 파브리치오도 아버지와 같은 자격으로 올라 있었다. 그곳에 오른 많은 거장들은 자신이 영감을 받은 차로 시트로엥 DS를 꼽고 있었다. DS는 분명 상식적인 생각에서 나온 차가 아니다. DS의 디자이너 역시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마지막 날, 행사는 밀라노 근교의 레이스트랙으로 이어졌다. <콰트로루오테>는 자체의 레이스트랙까지 갖고 있었다. 옛날 농장을 개조한 목가적 분위기의 창고에 람보르기니 미우라, 그리고 쿤타치부터 피아트 친퀘첸토까지 23대의 주옥같은 클래식카들이 늘어섰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거장들이 말하는 모든 차는 바로 나의 젊은 날 드림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