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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디자인에 취하다

화요의 리뉴얼 후, 값싸고 올드한 술로 인식돼온 소주의 이미지가 달라졌다.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술 화요를 이끈 일등공신, 디자이너 엄주원을 만났다.

2015.12.11


화요의 일등공신, 디스커버리아이의 대표 엄주원 

 

 


Q 작업실에 유난히 술병이 많다. 전부 당신의 작품인가? 
A 술병 자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디자인한 건 화요가 처음이다. 이전에는 조니 워커, 베일리스 등 브랜딩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내 회사를 차리고 난 뒤 공간, 병 디자인 등 입체적인 작업에 주력하게 됐다. 그중에 조니 워커 블루 패키지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웃음)

Q ‘화요’ 역시 대히트작 아닌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사제지간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진작가 준초이 선생님 덕분이다. 평소 화요 디자인을 아쉽게 여긴 선생님이 화요 브레인스토밍 회의에서 조태권 회장님을 소개해주셨다. 첫 대면에 회장님에게서 “화요 디자인이 어떤가요”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최대한 솔직하게, 가감 없이 평소 생각을 털어놨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화요가 추구하는 한국의 전통, 세계화, 프리미엄의 가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름 빼고 다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Q 자칫 무례해 보일 수 있는 제안이었을 텐데, 어떻게 받아들여졌나? 
A 도대체 뭘 다 바꿔야 한다는 건지 회장님을 비롯한 화요 측 담당자들은 꽤 당황스러워했다. 그래도 무슨 생각이 있어서겠거니 싶어 프레젠테이션을 받기로 했는데, 첫 PT에서 지금 화요의 콘셉트와 형태에 대한 틀이 거의 잡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서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화요만의 특별한 보틀 형태를 갖춰야 하고, 한글 표기를 해야 하며, 도수마다 병의 컬러에 차별화를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광주요를 상징하는 운학을 엠블럼으로 사용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Q 그런데 왜 완성하는 데 5년이나 걸렸나?
A ‘디테일’을 위해서다. 거의 2주에 한 번씩 제작소와 만나 병 디자인의 디테일을 확인했다. 병의 라인을 잡는 데 몇 개월, 옆선을 잡는 데 또 몇 개월, 미묘한 컬러의 차이와 투명도에 또 몇 개월을 투자했다. 화요 엑스 프리미엄의 방짜 뚜껑은 완성하는 데 반년이 걸렸다. 도자 전문가인 클라이언트가 ‘디테일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Q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 
A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약 2년 반이 지났을 때이다. 특별한 진전이 없이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는 느낌이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화요 측에서 나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건 아닐까 조바심도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시각으로 화요를 바라볼 수 있는 다른 디자이너와 작업해보면 어떨지 회장님에게 제안했는데, 단호하게 거절 당했다.(웃음) ‘대한민국에 이런 술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1 하나의 보틀을 완성하기까지의 수많은 작업물 2 화요 스케칭 작업

 

 

 

소주는 올드하거나 싼 술로 인식돼 왔는데, 화요가 그 이미지를 깨주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디자인의 힘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화요는 본래 품질 좋고 맛있는 술이다. 그것을 잘 표현해줄 디자인을 만나지 못했던 것뿐이다. 여러모로 절박한 상황에서 브랜드 오너를 시작으로 술 빚는 사람, 파는 사람, 화요와 관련한 모든 이의 혼이 응집된 결과라 생각한다. 

Q요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서 왔나. 
A 화요는 100% ‘쌀’로 빚은 술이다. 쌀알의 아름답고 오묘한 반투명 색을 병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도자에서도 많은 모티브를 얻었다. 여러 도자기를 만져보면서 그 미묘한 선의 느낌을 찾으려 애썼다. 디자인이 술맛을 함부로 연상시키거나 해치는 일이 없도록 장식 요소는 최대한 배제했다. 

Q 화요는 ‘한국적인 것’의 정의를 새롭게 한 느낌이다. 
A 평소 잡지나 TV를 많이 보는데 <보그>에서 이영희 선생의 한복을 보고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 이브닝드레스로 변신한 아름다운 선과 색이 한국적인 이미지를 지니면서도 그토록 세련되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전에는 한국적인 것이라 하면 전통 문양이나 한지가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 돌이켜보면, 그때 만난 한복 디자인의 색채와 세련미가 화요 디자인에 나도 모르는 사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Q 화요 작업이 디자인의 전환점이 되었나? 
A ‘브랜드’를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브랜드를 하나의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브랜드의 인생 설계를 하는 것은 브랜드 디자인에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접근하게 되었다. 

Q 평소 디자인 철학이 있다면. 
A ‘시작’을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한다. 실패를 거듭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더라도 시작만큼은 남들이 안 해본 길로 가려고 한다. 

Q 현재 준비하고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 있나? 
A 회사 1층에 ‘인비저블’이라는 브랜드 갤러리, 즉 전시 공간을 열 계획이다. 우리 회사에 영감을 준 브랜드를 우리 스스로 해석해 전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브랜드 담당자들에게는 일단 비밀이다.(웃음) 아마도 ‘아, 이 브랜드가 이런 스토리를 가질 수도 있나?’ 하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최창락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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