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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맨발의 순례자, 이은미

그녀는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맨발의 순례자 같았다.

2015.12.10


블랙 베스트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롱 네크리스는 H.R 제품

 

 

 

나는 어릴 적부터 ‘누나’라는 존재가 어려웠다. 손위 남자들은 술잔 몇 번 부딪히고 적당히 치대면 그냥 형이 되지만 누나들은 까다롭다. ‘누구씨’라고 했더니 건방지단다. ‘누님’이랬더니 업소 직원이냐고 타박을 주고, ‘누나’라고 부르니 언제 봤다고 친한 척하느냐고 무안을 준다. 내가 알던 누나들은 이토록 까다로웠다. 그런 내가 강단 있기로 소문난 가수 이은미의 인터뷰를 해야 한다니. 동석한 에디터의 “긴장 좀 푸세요”라는 말로 대화는 시작되었다. 

“우연히 내가 흥얼거리는 걸 들은 선배의 제의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이은미의 과거는 한 편의 다큐 같았다. 신촌의 한 클럽에서 부른 조지 벤슨의 ‘The greatest love of all’로 기립 박수를 받은 완벽한 데뷔 무대를 시작으로, 곧 1000회에 이르는 라이브 공연 횟수를 채워가는 동안 그녀를 힘들게 그리고 행복하게 한 단 하나는 바로 음악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다 보니 지나친 연습과 리허설로 인해 본공연을 망친 적도 많다. 후유증은 오래가지 않는다. “좋고 나쁨을 떠나 무대가 끝나면 잊어버리려 애써요. 그래야 다음을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거든요. 실패에 연연했다면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는 실로 부지런한 ‘음악 순혈주의자’가 아닐까. 

이은미는 매우 가혹하고 엄격한 밴드 리더다. 이은미 밴드 출신치고 연습하다 눈물 안 흘려본 사람이 없다. “내 성격이 그래요. 될 때까지 하는 거죠. 당시엔 힘들어하지만 나중엔 다들 고마워해요. 내가 그때 왜 그랬어야만 했는지 훗날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래도 이은미 밴드 출신이라 하면 어딜 가나 칭찬받는대요.”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은미에게 라이벌이란 없다. 음악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두고 닮고 싶은 유일한 존재는 사라 본뿐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돌아보고 연마하는 성숙한 자세. 이 사람이 한없이 높아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시종일관 당당했다. 다소 까칠해 보이고 냉정해 보인다는 말에 “내 일에 집중하다 보면 당연히 날카롭고 예민해질 수 있어요. 난 굳이 아니라고 해명하지 않아요. 뭐하러 그래요? 내가 표현하는 음악 안에는 이은미가 녹아들어 있어요. 이은미를 좋아해주는 분들은 모두 나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자칫 거만해 보일 수도 있는 그 말이 담담하게 다가와 납득이 되었다. 거만과 자신감은 닮은 듯 엄연히 다른 거니까. 

슬슬 민감하고 위험한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은데 내가 아직 긴장이 덜 풀렸다. 실없는 말로라도 이 긴장감을 풀어야 한다. “솔직히 이제 신발 신고 공연하고 싶지 않으세요?” 툭 터져 나온 질문이었다. “이미 신고 있는데요?” 거창한 철학을 쫙 펼치며 맨발 예찬론을 들려줄 줄 알았더니,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붙여준 타이틀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내 자신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자유로워지려고 해요. 그래서 요즘은 종종 신발을 신고 공연하기도 해요.” 새로운 헤어스타일과 무대의상에 도전하는 것도 이제는 좀 쉬고 싶어 짧은 헤어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은미. 그녀에게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는 것들’을 털어내고 점점 본질에 가까워지려 하는 프로의 모습을 보았다. 깎아내고 비워가는데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플리츠 디테일 화이트 드레스는 Jardin de Chouette, 디스트로이드 데님 팬츠는 Plac Jean, 와이드 싱글 커프 데님은 ZARA, 볼드한 실버 뱅글은 CYE Design, 체인 뱅글은 H.R, 초커와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녀는 과연 언제까지 최고의 컨디션으로 무대 위에 남을 수 있을까. “무대 위 이은미의 생명력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 팬들이 바라는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 없는 시점이 오면 이은미의 존재 가치는 희미해질 것이고, 점점 나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겠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사라지는 거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난 최대한 노력해서 오래 남고 싶어요.”(웃음)

‘신촌블루스’라는 화려한 타이틀로 공식 데뷔, 솔로 음반의 연이은 히트, ‘이은미’ 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대표곡의 행진. 그녀는 이미 음악으로 이루고 싶었던 소망은 다 이루었다. 참으로 행복한 음악인이다. 하지만 그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연습하고 창작하는 그녀이기에 그 행복에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기와 명성을 얻으면 흔들리고 무너지는 수많은 스타를 우린 봐왔다. 이은미의 음악 인생은 큰 굴곡 없이 꾸준한 상향 곡선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우린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은 화려한 포장지를 두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정성 있는 음악을 내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 그녀에게도 많은 유혹과 시련이 있었겠지만 음악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잘 버텨온 것이겠지. 그리고 우리도 어느새 그녀를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무대에 오르기 전엔 ‘조명이 타는 듯 매캐한 흥분의 냄새’가 선명했던 첫 무대의 기억을 떠올려본다는 그녀는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맨발의 순례자 같았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 걸음의 이유가 아니라 그 길을 걷는 하루하루에 의미를 둔다. 오늘의 무대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과 감사함이 몸에 밴 그녀는 하루하루를 갈고닦는다. 그 행위 자체가 그녀에겐 음악이고 인생이다.

음악을 배울 곳도 없었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데뷔 초기의 그녀에게, 주변의 좋은 선배들이 해주는 조언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20년 가까이 음악을 하며 나 역시 많은 선배의 조언을 듣고 살아왔지만 이렇게 ‘고급’ 수업을 들은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선배들의 조언은 대부분 지적과 타박 그리고 훈계로 흘러가기 마련인데 오늘은 좀 다르다. 스스로 생각하고 깨우쳐보라는 동기 유발의 자극제 같달까. 

인터뷰를 마친 그녀는 “다음에 또 봐요”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언젠가 꼭 또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땐, 이 멋진 존재를, 아 몰라, 그냥 ‘누나’라고 부르고 싶다. 



About 인터뷰어 류정헌은 신스록 밴드 ‘코어매거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다. 후배이자 팬으로서 존경 어린 시선을 담아 이은미의 음악 인생을 더듬었다. 늘 스스로 위풍당당한 이은미의 여린 떨림을 그가 포착했다. 


 

Interviewer 류정헌(뮤지션)
Styling by Cho Yunehee 
Hair&Makeup Kim Yunyoung(Jungsaemmool Inspiration)

 

CREDIT

EDITOR / 전희란 / PHOTO / 김형식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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